옥택연 “가기로 했으면 가야죠”

오후 두 시, 가장 뜨거운 한낮을 뜻하는 팀명으로 데뷔한 지 10년이 흘렀다. 서른이 된 옥택연은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했다.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비이커, 데님 셔츠는 클럽 모나코.

무슨 과일을 그렇게 잘 먹어요? 스튜디오에 아직도 과일 향이 진동해요. 스태프들한테는 앙코르 요청까지 받고. 이거 너무들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셔츠까지 물을 잔뜩 묻히시고. 하하.

더운 공기가 좀 청량해졌네요. 여름 좋아해요? 더위도 추위도 못 참는데, 여름이 나아요. 옷을 얇게 입으면 되잖아요. 뭐, 너무 더우면 안 입을 수도 있고.(웃음) 여태까지 출연한 드라마도 <드림하이>를 빼면 거의 여름 배경이었던 것 같네요.

옥택연, 투피엠이라는 이름 모두 여름과 어울리는 이미지기도 하죠. 그런데 겨울생에 염소자리네요? 염소자리는 어떤 느낌인가요?

현실적이고 차가운 이미지가 있다고 하죠. 저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차가운 구석도 있고. 안 그래 보이나요?

지금 보면 서핑보드를 든 캘리포니아 남자 같은데, 실은 미국 동부 출신이잖아요. 공부도 잘했고, 메사추세츠 주립대에선 조기 입학 허가도 받았고. 아유, 점점 작아지는데요.(웃음) 미국 동부 쪽 정서와 더 잘 맞긴 해요. 보스턴에서 자랐고, 친구들도 다 거기에 있죠. 서부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살아보진 못해서 궁금한 마음이나 동경은 좀 있어요.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어느 날 갑자기 백만원>에서 미국 서부로 캠핑카 여행을 떠났죠? 네, 서부로 여행을 간 건 처음이에요. 공연 때 LA에 간 거 외에 개인적으로 가본 적은 없었거든요. 라스베이거스나 그랜드 캐니언이나 전부 처음이라 더 새롭고 와 닿는 것도 많더라고요.

흰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흰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캠핑카에서 살림하는 모습을 보니, 오지에 떨어뜨려놔도 잘 살 것 같아요. 그런 상상을 가끔 해요. 오지에 떨어지면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어릴 적부터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거든요. 뭐랄까, 도전 정신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엔 잘 못해도 한 번 경험해보면 좋아진다는 걸 알거든요.

그런데 돈을 거의 극한까지 아껴 쓰던데, 원래 어떤 식으로 돈을 써요? 프로그램만큼 극단적이진 않지만, 지금도 부모님께 용돈 받아 쓰고, 돈을 잘 안 써요. 물욕이 없거든요. 보시는 것처럼 옷도 별로 안 사 입고요.(그는 사복으로 입은 러닝셔츠를 슬쩍봤다.) 주로 먹는 데만 씁니다. 엥겔계수가 엄청 높아요.

옷에 민감하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닐 것 같았어요.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거긴 교복이 없잖아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입고 다녀요. 너는 네 스타일대로 입는구나, 나는 내 스타일대로 입을게. 서로 신경 안 쓰고 존중하는 분위기죠. 그런 사고방식이 잡혀서 그런지 남들 시선에 신경 안 써요. 그리고 솔직히 저희 멤버들도 그렇게 옷을 잘 입진 않아서요. 하하.

종일 광활한 사막을 운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는 게 있나요? 이제 서른이에요. 태어나서 처음 10년은 부모님이 키워주시고 자라나는 시간이었고, 10대 때는 친구들과 관계망을 형성하며 자아 성립을 하는 시기고, 20대는 남들보다는 조금 이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이걸 바탕으로 30대라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게 될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마침 곧 군대를 가니까, 2년간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가는 마음으로(웃음) 열심히 수련하면서 지내다 와야죠.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디스크 수술을 두 번 받으면서 현역으로 입대하네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어릴 때 결심한 거예요. “남자라면 가야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죠. 디스크 터지고 나서는 “그래도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순 없지”라는 생각이었고요. 가기로 했으면 가야죠. 어떤 문제든 편법보다는 정공법을 좋아해요.

직진하는 게 옥택연답긴 해요. 돌이켜보면 옥택연의 20대는 올곧은 직구였잖아요. 짐승돌, 찢택연, 야성적이고 뜨거운 별칭은 다 가져갔죠. 그랬죠. 좋은 때였어요. 정신없이 보내기도 했지만, 20대만이 표출할 수 있는 젊음과 열정을 마음껏 표현했던 시절인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스트라이프 셔츠는 8 PEOPLE.
스트라이프 셔츠는 8 PEOPLE.

그래서, 하고 싶은 건 다 했나요? 네, 웬만한 해볼 건 다 해봤네요. 데뷔할 때 목표를 세워놓잖아요. 1등 해야지, 그래서 1등 하고. 대상 받아야지, 그래서 대상 받고. 하나씩 성취해나간 20대였네요. 참 좋은 20대였다! 하하하.

입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투피엠 콘서트를 했어요. 최신곡부터 시작해서 데뷔곡까지, 과거로 돌아가는 콘셉트였어요. 마지막 무대를 하고 들어왔는데 어우, 눈물이 그냥…. 민망하게시리 오열하는 장면이 다 찍혔더라고요. 회사에서 묶어놔서 팀이 됐지만,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서로 아끼는 가족 같은 존재가 됐어요. 몇 년 뒤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같이 하자는 구상을 하고 있어요.

투피엠이 어느덧 10년 차 아이돌이네요. 아이돌 2세대를 빅뱅과 원더걸스가 열었고 저희가 문 닫고 들어간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아이돌 시조새가 됐죠. 처음 데뷔할 때 김종국 선배가 “용띠니? 나도 용띠인데” 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또 제 밑으로 띠동갑들이 데뷔하고 있잖아요. 세월이 이렇게 빨라요. “나야 나”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너야 너”…. 하하.

정상을 이미 찍어본 입장에서 이제 막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누가 잘되고 못되고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항상 대박이 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럴 때 선배들은 어떻게 했지, 하는 사례로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 밑에는 갓세븐 같은 후배들이 있잖아요. 형들은 이렇게 했다더라, 전달이 되니까 행동도 조심하려고 노력해요.

그럼 30대가 된 옥택연은 이전보다 조심스러워졌을까요? 20대 때와는 달라졌을 거예요. 그땐 (박)진영이 형이 끌어줬으니까 쉬웠죠. 목표도 정확했고 성취도 따라왔고. 그런데 이제는 이끌어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물론 인생의 선배들은 있고 조언을 해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가려고 하는 길에 있는 건 나뿐인 거고, 결국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할 때가 된 거죠. 갈팡질팡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하지만 두렵다기보다는 설레요. 명확한 목표보단 뜬구름 잡는 목표를 세우고 싶기도 하죠. 이를테면 건강하게 살자, 여유를 즐기자, 이런 게 의외로 되게 힘들잖아요. 평범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싶어요.

원래 옥택연에겐 연예인이라는 틀에서 비껴나는 이미지가 있죠. 당장 1백만원만 가지고 미국 서부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일반인들 틈에 끼어 패키지 여행을 간다거나, 무대 의상을 입고 전공 시험을 보러 간다거나 하는 일화도 있었고요. 데뷔 전까지는 약 20년을 평범하게 살았잖아요. 사춘기를 겪어가면서 형성한 그 모습이 10년 만에 뚝딱 변할 순 없어요. ‘Down To Earth’, 땅에 발을 디디고 있듯, 원래 나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 게 저한텐 되게 중요한 일이에요. 연예인이 아닌 친구들을 계속 만나려는 것도 그런 연장선이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당연한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 해요. 일단, 학교를 다니면 학교에 가야죠. 시험도 당연히 봐야 하고. 유적지에 가면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투어를 신청했고 여행객들과 재미있게 다녔어요. 이런 영역을 지키기 때문에 일도 즐겁게 할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수트는 페르드르 알렌느, 셔츠는 제이백쿠튀르.
수트는 페르드르 알렌느, 셔츠는 제이백쿠튀르.

“누워보세요, 라고 말하자 옥택연은 한쪽 팔로 머리를 받치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 편안한 적막이 흘렀고, 알지 못했던 그의 얼굴이 보였다.”

학부에선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국제협력과에 진학해서 착실히 다녔죠. 공부하는 걸 좋아하나요? 공부하러 가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방송국 가면 막 찌들어 있는데 학교에서는 파릇파릇한 배움의 학구열이 느껴지는 게, 크, 너무 좋았죠.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을 다녀오고 나서 국제 쪽에 관심이 생겨서 대학원은 국제협력과에 진학했어요. 지금 내 위치에서 어떻게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자선 재단도 만들어보고 싶어졌고요. 언제 이룰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언젠간 해봐야죠.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고 들었어요. 아유, 제가 조 모임은 잘 못해서 덜덜….(웃음) 그래도 조별 과제 덕에 쉽게 친해졌네요. 지금도 잘 지내요.

고연전에선 연대생이 사인해달라고 했는데 안 해줬다면서요. 네, 진짜로 파란 옷 입고 있으면 안 해줬어요.(웃음) 그리고 다 같이 즐기러 왔는데 굳이 사인해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부업도 하죠. 장난 삼아 그리던 캐릭터 ‘옥캣’으로 캐릭터 사업을 하고 있죠? 초등학교 때부터 그린 캐릭터예요. 그런데 팬들이 중국에서 옥캣 캐릭터 상품을 팔고 있다고 제보해줬어요. 경영학도로서 촉이 섰죠. ‘짝퉁’이 있다는 건 수요가 있다는 뜻인데? 수요가 있다면, 해야지! 이렇게 구상해서 인형부터 시작했죠. 용돈 벌이 정도는 돼요.

설사 연예인이 아닌 삶을 선택했다고 해도, 그 삶이 자연스럽게 그려져요. 좋은 대학 나와서 번듯한 직장 다니고,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원래 스물일곱 살에 결혼하고 싶었다면서요. 미국 친구들의 근황을 페이스북으로 종종 봐요. 제 또래 애들이 많이들 결혼해서 애 사진도 올라와요. 기분이 묘하죠. 하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결혼을 늦게 하는 편이니까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죠. 계속 거기서 지냈으면 어땠을까요? 원래 꿈은 의사였는데 그렇게까진 못 됐을 것 같고, 아직 공부하고 있었을지도요. 친구들은 사진가, 로봇 팔 만드는 친구, 백악관에서 일하는 친구, 피자집 하는 친구도 있고, 다양한 삶을 살고 있어요. 물론 제 직업도 흔한 직업은 아니죠. 저 살던 동네에선 유명하대요. 조용히 학교 다니던 아시안 남자애가 슈퍼스타됐다고. 하하.

지금이 만족스럽나요? 네. 지금이 좋아요.

하와이안 셔츠는 미스터 젠틀맨 바이 무이.
하와이안 셔츠는 미스터 젠틀맨 바이 무이.

“잘 때 거의 꿈을 안 꿔요. 꾼다 해도 현실과 별다를 게 없는 꿈이죠.” 옥택연의 낮과 밤은 나란하다. 눈을 가려도 스튜디오에 그가 베어 문 과일 향이 가시지 않았다.

아이돌로서는 해볼 만큼 해봤다고 했지만, 배우로선 해보고 싶은 게 더 많을 거예요. 많은 드라마를 했지만, 대부분은 옥택연이 지닌 건강한 이미지에 기대는 캐릭터들이었어요. 제가 맡은 캐릭터들이 좀 비슷비슷해요. 아무래도 드라마는 이미지 캐스팅이다 보니 그러기 쉽죠. 지금 찍고 있는 사전 제작 드라마 <구해줘>에선 드물게 금수저에 아주 ‘꼴통’인 비호감 캐릭터로 나옵니다만, 작가님이 후반부에 ‘사이다’를 주시길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서사 위주니까 좀 다른 역할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시간 위의 집> 시사회 끝나고 한 지인이 “넌 너무 착하게 생겨서 진짜 나쁜 역할을 맡아도 사람들이 믿게끔 하는 감독님을 만나보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와 닿더라고요. 한 번쯤 이미지 변신도 필요할 것같아요. 본격적인 악역도 맡아보고 싶고. 군대 다녀와서는 영화에도 많이 도전해보고 싶네요.

듣다 보니 대답이 빠르고 뭐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하는 것 같아요. 문제가 닥치면 속전속결하는 타입인가요? 네. 장고하지 않습니다. 고민해도 나오는 답은 같으니까요. 고민을 잘 안 해서 그런지 우울함도 잘 못 느껴요. 잠도 되게 잘 자고요. 이런 열대야에도 선풍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요.

잘 때 꿈도 잘 안 꾸죠? 네. 거의 안 꾸는데, 희한하게 간밤엔 닉쿤 꿈을 꾼 거예요. 중국에서 촬영 중인데 19일에 돌아오는 일정이거든요. 그날 쿤이랑 술 한잔 하면서 수다 떠는 꿈을 꿨어요. 그래서 나 네 꿈 꿨다, 우리 그날 술 먹나 보다 했더니 자기 20일에 돌아온다고 하더라고요. 예지몽은 아니었죠.

참으로 건강하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랬는데 군대 가서는 으아아악 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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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영화와 시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