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스타일스 “이젠 정말 솔직해지고 싶어요”

보이 밴드 원 디렉션에서 귀여운 웃음을 짓던 소년은 어디서든 새바람을 일으키는 패셔니스타가 되었다. 모두의 관심 속에 저 유명한 데이트와 연애를 몇 번인가 하더니, 이제는 첫 솔로 앨범을 낸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시작했다. 해리 스타일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 셋이다.

CHARLES JEFFREY LOVERBOY
의상은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매일 밤 헤리 스타일스가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다음 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해 자신의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다. “비록 ‘아침 9시: 커피’같이 정말 지루한 내용이라 해도, 뭔가 계획이 없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어요.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싫더라고요.” 어쩌면 원 디렉션으로 지내온 6년의 세월이 남긴 후유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이 밴드의 멤버로 사는 삶은 매 순간, 1분 1초까지 냉혹하게 관리를 받았다는 의미일 테니까. 영화 <슈퍼사이즈 미>의 감독이었던 모건 스펄록이 제작과 연출을 맡은 다큐멘터리 <원 디렉션>을 보면 그들의 2013년 활동 당시 뒷모습이 나오는데, 그중엔 자인 말리크가 투어 버스에서 잠이 든지 10분도 안되어 녹음을 해야한다며 스태프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2015년 말리크가 떠난 후 출간된 책을 보면 강압적인 스케줄로 인해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고백도 나온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스타일스는 그런 훈련이 있었기에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는 쪽인 것 같다. “저는 정해진 일과가 좋아요. 어릴 때는 다 그랬잖아요. 일정한 시간에 학교를 가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아침식사를 해야 하고, 일어나는 시간도 정해 놓고요.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앞으로 자신이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잖아요.” 스스로에게 보내는 이메일은 그런 리듬을 간직 하려는 그만의 방식일 수도 있겠다.

스타일스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 X Factor >에 참가하기 위해 첼셔에서 런던으로 왔다.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이 오디션 한번 본 적 없는 다섯 소년을 모아 팀을 만든 2010년, 스타일스는 곧장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년 밴드의 가장 갈채 받는 멤버가 되었고, 지금은 4천만 파운드의 가치를 인정받는 스타다.

이제 스물세 살이 된 스타일스는 내내 전진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년에 원 디렉션은 ‘기한 없는 활동 중단’을 선언한 상태, 그동안 스타일스는 첫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로 배우 데뷔를 했다. 앨범 타이틀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옮긴 < Harry Styles >다. 아마도 로비 윌리엄스가 테이크 댓을 떠나 처음 낸 솔로 앨범 이후 가장 많은 기대와 환호를 받은 앨범일 것이다. 첫 번째 싱글은 주변의 예상과 달리 서사적인 곡 진행과 파워풀한 보컬로 호소하는 5분 30초 길이의 록 발라드 ‘Sign of the Times’인데, 발표하던 날 무려 84개국에서 차트를 석권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 나를 놀래킨 건 어느 금요일 오후,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그가 급작스럽게 전화를 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해리입니다.” 영국 북서쪽 지방 악센트의 젊은 목소리는 발신자 제한 표시와 함께 들려왔다. “해리, 누구라고요?” 나는 장난 전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더해 쏘아붙이듯 되물었다. “해리 스타일스입니다. 혹시 다음 주에 점심을 함께할 수 있을까요?” 글쎄, ‘섬세한 손길’이라는 덕목이야말로 슈퍼스타가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닐까. U2의 보노,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 그리고 테일러 스위프트 모두 PR 관계자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직접 전화로 말하는 친밀한 환대의 의미를 알고있다. 이런 행동은 많은 것을 대변해주는데, 가장 명확한 건 그들 역시 전화를 사용할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부드러운 표현이기도 하다. 내가 웃으며 스케줄이 대부분 비어 있다고 전하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 레스토랑에서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물론 예약은 해리 스타일스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사흘 후, 그 레스토랑에는 해리 스타일스라는 이름으로 예약된 테이블이 없었다. 비슷한 이름의 예약이 있긴 했지만, VIP의 테이블인지라 웨이터는 사뭇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나를 그곳으로 안내하기를 주저했다. 다행히 5분 후 해리 스타일스와 굉장히 비슷한 모습의 VIP ‘해리 스프링’ 씨가 오셔서 나를 보증해줬다, 휴.

그는 처음부터 친근했다. 굳이 내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서빙을 하는 스태프 모두에게 따뜻한 인사와 포옹을 시도했고, 모든 말의 마지막엔 항상 “감사합니다”와 “부탁드려요”를 붙였다. 우리에게 물을 따라 주려는 스태프에게는 몸을 잠시 비켜주기도 했다. 그는 과연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그는 청바지에 하와이안 무늬의 셔츠 그리고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가슴과 왼팔에 끝없이 이어지는 문신이 관대하게 보일 만큼 적당히 버튼이 풀려 있었고, 길게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이마 위에 올려 놓은 선글라스로 인해 뒤로 젖혀진 상태였다. 목엔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었고 손가락엔 두꺼운 은반지가 가득했다. 당연하게도, 그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남자다운 얼굴에 부드러운 태도와 나무랄 데 없는 매너까지. 하지만 그를 집에 데려가고 싶다는 식의 욕망과는 달랐다. 말하자면 그가 내 아들이었으면 했다.

커스텀 메이드 수트는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커스텀 메이드 수트는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스타일스는 두 대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왔다. 하나는 개인적인 용도였고(잠금 화면에는 세례식에 입회한 대녀의 사진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분홍색이었는데 그의 새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가져온 것이었다. 이제 그는 스물세 살이지만, 이미 세 아이의 대부가 되었다. 그와 가까운 친구들이 대부분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고 했다. “런던으로 이사 오면서 저에게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러다 라디오 원의 DJ 닉 그림쇼와의 우정은 그가 양성애자라는 루머를 낳기도 했다.

그는 치킨 파이야르(닭고기를 얇게 펴서 구운 요리)를 주문하고 채식 다이어트를 하는 페스케터리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험 삼아 2주동안 해본 적이 있어요. 언젠가는 조금 더 오랫동안 해볼 생각이에요.” 갑자기 왜 그런 걸 하고 싶었을까? 그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냥 조금 훈련하듯이 해두는 게 나쁠 건 없죠.” 그 말은 마치 원 디렉션으로 활동한 날들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의미로도 들렸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정말 놀라운 경험을 어떻게 피하고 부정하겠어요.” 지금 원 디렉션은 휴식에 들어갔지만, 공식적으로 그룹을 떠난 건 말리크뿐이다. 그와는 조금 불편한 관계일까? “아니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각자의 활동이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고, 서로 응원해주는 것 같아요.” 다른 세 멤버의 근황을 묻자 웃음이 돌아왔다. “모두 각자 정말 열심히 해요. 가끔은 만나서 어울리기도 하고요.”

그럼 사이먼 코웰과는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을까? “사실 최근에도 했어요. 2주 전에요.” 코웰은 ‘Sign of the Times’을 듣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제가 자랑스럽다고도 했고요. 예전에도 그런 말은 들었지만, 이번엔 ‘사장님이 전화하셨다’ 같은 기분이 들진 않았어요.” 그는 내게도 새 노래를 들려주려고 안달이었지만, 그전에 나는 왜 그토록 솔로를 하고 싶었는지 알고 싶었다. “어떤 순간,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정말 개인적인 노래를 만들었을 때 그걸 밴드에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원 디렉션 시절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10분 이상 얘기하는 걸 보기 어렵다. “이젠 정말 솔직해지고 싶었어요. 가사를 바꾸고 싶지도 않았고요. 이 앨범을 준비한 시간은 제가 보낸 최고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굉장히 예민해지고 상처받기 쉬웠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앨범에 대해 얘기하자면, 60년대와 70년대의 록, 사이키델릭 사운드, 심지어 얼터너티브 컨트리와 글램 록까지 깊이 고민한 흔적이 있다. 요컨대 원 디렉션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그는 지난여름 자메이카의 한 스튜디오에서 앨범 대부분을 직접 녹음했다. 1970년대의 미국 싱어송라이터 해리 닐슨, 플리트우드 맥,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등 아버지가 들었던 음악과, 노라 존스나 샤니아 트웨인 등 어머니가 듣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요즘 유행과 어울리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스타일스는 당장 유행을 타는 팝과는 확실히 거리를 둔 음악을 만들었다.

몇 곡은 이미 클래식처럼 들릴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가사는 대부분 섹스, 그리움, 상처 등으로 얼룩져 있는데,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로 읽히기도 한다. 앨범의 마지막 곡은 ‘From the Dining Table’인데 이렇게 시작된다. “호텔 방에서 혼자 깨어났어. 혼자 놀고(played with myself),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다시 잠을 청하고, 정오엔 술에 취해, 이렇게 내 자신이 별볼일 없게 느껴진 적은 없었어요.” 몇 달 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 여자가 이번 앨범의 큰 부분을 차지했어요. 때로는 그저 그녀의 모자를 기울이기도 하지만, 어쩔 때는 그냥 모자 하나를 선물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들만을 위해서 준비했다는 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라고 말했고 그 발언은 팬들과 언론 사이에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앨범 전체가 켄달 제너를 향한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스타일스는 켄달 제너와 몇 년 동안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는데, 이번 기회에 루머를 바로잡을 의향이었을까? “이 앨범은 한 사람과의 로맨스에 대해 얘기한 게 아니에요. 사실 누구보다 제 자신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해되기도 하는 게, 그의 연애사는 언제나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 테일러 스위프트와 데이트를 즐기며 공원을 거니는 사진은 주요 언론을 장식했다. 그들은 곧 헤어졌지만, 대중은 그 관계에 쉽게 매료되곤 했다.

“연애라는 게 어차피 힘들잖아요. 항상 어떤 게 옳은 건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일주일 정도면 이게 어떤 건지 알아, 라고 말할 수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너무 어리기도 했고요. 당연히 혼란스러웠어요. 경험이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전의 경험을 거울 삼아 지금은 연애를 피하고 있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이제는 대중의 눈을 피해 조용히 만나는 쪽을 선택하게 된 걸까. “연애로부터 벗어난 지 꽤 된 거 같아요. 왜냐하면 지난 몇 달간은 앨범 준비로 정말 바빴고, 많은 일을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거의 정신을 놓아버렸으니 새로운 연애는 생각지도 못했죠.” 그럼 이제까지 얼마나 많이 사랑에 빠져봤을까? “모르겠어요. 그걸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대답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그렇죠?” 무슨 소리, 결국 알 수 있지 않나? 정말 일어나기만 한다면. “그거야, 사람들이 말하기에 달렸죠.” 그는 어색하게 웃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분홍색 휴대전화를 슬쩍 집어들었다. “음, 다른 노래도 들어보실래요?”

커스텀 메이드 수트는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신발은 로커.
커스텀 메이드 수트는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신발은 로커.

스타일스는 언제나 뭇 여성들에게 매력을 전하는 남자다. 그의 친누나이자 테크놀로지 관련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 젬마 스타일스는 최근 잡지 < Another Man >에 해리가 일곱 살일 때 함께 사이프러스에서 보낸 가족 휴가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수영장 주변으로 해리보다 세 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까지 구경을 왔어요.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탔을 땐, 수많은 여자가 해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죠.”

그와 젬마는 첼셔에서 자랐다. 그들의 부모가 이혼했을 때 해리는 일곱 살이었다. 해리의 어머니는 펍의 매니저였고, 4년간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그후 어머니는 재혼을 했지만 줄곧 해리와는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그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한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어요. 두 분의 사랑과 관심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는 지금도 어머니와 자주 통화한다. “주위의 친구들이 항상 말해줘요. ‘네 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셔’라고요. 어머니는 제가 항상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듯이 가르치지 않으셨어요. 자라면서 부모와 서로의 생각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근데 어머니와 저는 항상 이야기를 나눴어요. 서로를 향한 대화와 사랑이 넘쳤어요.”

열네 살 때부터 동네 빵집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매주 토요일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그는 언젠가 물리치료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진행한 워크숍에 참여해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는데 누군가 저에게 그런 직업군은 없다면서 다른 걸 고르라 했어요. 솔직히 그때 조금 당황했죠.” 학교 친구들과 ‘화이트 에스키모’라는 그룹을 결성해 오디션에 참가한 적도 있다. “그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지금도 기억나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저를 지켜봐주고 반겨주던 그 순간이 항상 마음에 남아 있어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은 정말 너무 좋죠.” 오는 9월에 시작되는 석 달 동안의 월드 투어로 그의 스케줄은 이미 꽉 찬 상태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덩케르크>가 개봉한다. 그도 아직 마지막 편집본은 본 적이 없어서, 영국 군인으로 분한 그의 역할이 영화에서 얼마만큼의 분량을 차지하는지 모른다. 첫 영화를 찍은 배우로서 그는 어떤 모습을 각인시켰을까. 그런가 하면 그가 믹 재거의 전기영화에 주인공으로 낙점됐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이번 앨범에 포착된 모습에서 양성적이며 날것처럼 날뛰는 70년대 믹 재거의 모습이 떠오르긴 한다. “솔직히 그런 영화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어요. 그런 계획이 애초에 있었다는 것조차 의문이예요.”

트위터에 3천만 명, 인스타그램에 2천만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는 유명세에 비해 그는 소셜 미디어에서 놀랄 만큼 조용한 편이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만약 누군가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는데 열 명 중 세 명이 정말 멋진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나머지 사람이 서로 흉을 보거나 비아냥거리며 말하길 좋아한다면 굳이 갈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는 어쩐지 진지하게 힘주어 설명하려는 듯했다. 원 디렉션 시절의 어리고 철없는 모습으로 가득한 인터넷 영상을 떠올리건대, 그는 어느새 훌쩍 자라 진중하고 현명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보낸 3시간 내내, 나는 그에게서 일말의 악의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술도 거의 즐기지 않는다. “지난 2년간 투어를 다니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한다든가 아니면 그저 할 일을 하는 일과가 제게 더 유익하고 즐겁다는 걸 깨달았어요. 뭔가 힘든 스케줄이 있는 날도, 혹은 그 전날도 저는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가끔 한 잔 정도 마시지만, 그 후엔 대부분 마시지 않아요.” 이제는 그와 헤어질 시간, 그가 전날 밤 자신에게 보낸 해야 할 일 목록에 이 인터뷰 말고 뭐가 있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제 머리 자르러 가요.” 그가 싱글벙글 웃었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