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사람 얼굴과 시계 얼굴

전에 임마누엘 칸트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시간 같은 건 없다’고 내가 먼저 말했지 싶다. 최소한 전우주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은. 시간이 존재하기 전, 손목시계 시장은 참 지리멸렬했는데, 150억 년이 지나 시계 수집이 취미에서 진지한 투자 전략으로 진화한 걸 보니 감회가 무척 새 롭다. 문득 내가 모은 시계가 얼만지 두근두근 계산해보았으나 바쉐론 콘스탄틴 250주년 기념 투르드릴이나 2002년 파네라이 한정판 정도가 없는 한 참으로 쓸데없는 짓이었구나.

시계의 가치도 여러 요소에 기초한다. 한정판 생산 시계나 제조 중단 된 것들은 종종 최고가를 휩쓴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또는 그 여파로 만든 시계는 블루칩. 그 시절 파텍 필립은 정말이지 즐거운 역설로 가득하다. 거의 생산되지 않은 덕에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다니. 1920년대 도자기 다이얼이나 초기 초박형 같은 특정 장르 또한 시계 수집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1930년대 초 최초의 방수 시계 롤렉스 오이스터, 높은 고도용으로 디자인된 IWC 플리거 크로노그래프 1939처럼 시계 제작 기술의 새 막을 연 모델 역시. 특정 행사나 유명인사의 이름 또한 시계의 존재감을 도약시킨다. 하지만 이젠 탐구욕도 식었고, 무엇보다 돈이 없다.

시계는 대부분 추나 평형 바퀴, 소리굽쇠, 진동하는 크리스털 같은 무엇이 스프링과 무게로 가한 동력의 횟수를 더함으로써 작동한다. 이 무엇인가가 특정 횟수를 반복하고 나면- 추는 1~2회, 평형 바퀴는 5~10회, 쿼츠 크리스털은 32,768회- 시계는 1초가 지났다고 외친다. 시계의 정확성은 진자 장치가 얼마나 균일하게 왕복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시계 가격과 꼭 비례하진 않는다. 콜로라도 미국표준기술연구소의 세슘 원자 시계는 1억 년에 1초 꼴로 틀린다. 8천원짜리 쿼츠가 한 달에 8초 늦을 때 8억짜리 기계적 경이는 8분 빨리 갈지 모른다. 즉, 틀리지 않는 시계는 없다. 그런데도 광고에 실리는 시계들의 10시 10분은 참 행복해 보인다. 문자판이 두 팔 벌려 만세 부르는 건 링컨과 케네디 암살 시각과 관련 있어서가 아니라 제조사 로고를 구성하는 데 이상적이기 때문이라지만.

시계 디테일은 혼란을 위해 디자인 되었다. 그런데 어떤 다이얼이 “나 항공기 함장이야!”하고 뻐길 때 브랜드 시그니처가 당장 드러난다. 제조사 이름이 다이얼에서 지워지면 상표를 구분하기 참 애매할 것이다. 브랜드 정체성은 케이스나 형태에 갇혀 있지만 시계 유리처럼 작은 요소에도 머문다. 사이클롭스 돋보기 날짜 창을 제외하고 롤렉스를 상상할 수 있을까. 기술과 재료는 외장을 두드러지게 개조하는 데 있어 더 기발한 조건을 제시한다. 마노, 공작석, 운석, 루비라이트, 칠보, 에나멜…. 재료의 범위는 상상력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다이얼과 메커니즘 사이의 선은 갈수록 희미해지다가 급기야 ‘시계학적인’ 물질이 아닌 지푸라기까지 페이스에 쓰였다. 쿼츠 위기로 시계공들이 고장난 용수철처럼 멈춰버렸을 때 스위스는 자책 말고 할 게 없었다. 그 위기를 겪은 보상으로 시간 기록업에 종사했던 나라는 이제 시계업에 골몰한다. 그 무딘 도시 바젤의 실험실에서 매년 기상천외한 시계들이 출품되니 로즈골드 베젤조차 평범한 축에 속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말하는 시계가 있었다. 향기를 뿜는 시계, 항말라리아 시계도 있었다. 그리고 바늘이 없는 아날로그 시계, 공기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시계, 아무것도 없는 페이스에 볼이 굴러다니다 수평으로 놓으면 지금 시각에 멈추는 시계, 형광 초록 물질이 움직이며 숫자를 표현하는 시계, 빌트인 드럼 세트와 키보드를 동원해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하는 시계…. 이 정도면 거의 컬트 아닌가. 몇 개의 서브 다이얼과 여분의 바늘과 달 형상이 작고 둥근 공간에 더해지다 종국엔 미로로 변해버리다니.

보석이 그냥 앉아서 뽐내고 있을 때 시계는 벌이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 1천7백28개 부품과 24개 바늘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파텍 필립 칼리버 89는 빨래는 못하지만 다른 일은 33가지나 한다. 2376년 크리스마스의 요일을 알아내고, 2천8백 개의 별이 수놓은 밤하늘 차트도 보여준다. 컴플리케이션은 기본적인 시간 기능 외에도 추가된 성능 모두를 뜻하니 일이 하도 많아 합병증 Complication에 걸린 걸까. 기온과 윤달과 춘분, 달의 위상과 주기와 시차까지 척척 내놓는 걸 보면 필시 지구가 멸망하는 시간까지 스스로를 리셋해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복잡한 구조와 사상을 지녔으니 뭐 그렇게까지 놀라진 않겠다.

그리고 투르비용. 19세기 시계공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발명했다는 이 장치는 너무 복잡해서 용도를 듣기도 전에 머리부터 아프다. 그는 중력이 포켓용 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시곗바늘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회전 케이지(뭐지?)로 탈진기(이건 또 뭐야?)와 밸런스 휠(아, 하나도 모르겠다)도 만들었다. 중력을 거뜬히 극복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그성능이 발현되는지 실제로 수행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용도나 필요와는 별개로 기본인 척 장착되는 건 투르비용을 자랑하려는 시계공들의 욕심 때문인가? 혜성처럼 나타난 그뢰벨 포지는 4개의 투르 비용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기술까지 개발했다! 100년 전 어느 난파선에서 발견된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의 현대 버전으로서. 시계 엔진의 사적인 부분을 가리지 않고 유리 엑스레이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도록 렌더링한 스켈레톤을 보면 좀 화가 난다. 돌아가는 내부 장치를 황홀하게 구경하다 말고 흠칫 하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들게 하니까.

어느 날, 살구만 한 검정 세라믹 시계를 보며 생각한다. 이건 영원이야. 영원을 구매하면 최대한 신과 가까워지겠지? 혹시 시계를 돌리면 인생을 되돌리게 될까?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 기억은 미래의 것이 될까? 근데 시계를 몇 분 앞으로 돌려놓고 지각하는 습관은 언제부터 시작됐지? 시간이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스와로브스키 보석 알이 내 주의를 끌고 싶은 듯 동그란 스크린 위에 미끄러지고, 나는 제임스 조이스를 떠올린다. 그는 다른 시각으로 설정된 시계 여러 개를 동시에 차는 걸 좋아했다지. 오히려 현재와 과거의 간격은 공간과 중력과 움직임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어디서?”와 “얼마나 빨리?”를 고려하지 않고는 “언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어쨌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선 시계를 가져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인생은 짧은데 걱정만 팽창한다. 만약 시공간 위에서 우주가 탁구공만 한 크기로 찌그러지는 때가 되면 영원한 달력이 탑재된 플래티넘 소티리오 불가리는 어떻게 하지? 진짜 그땐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