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가면 어디서 무얼 마셔야 할까?

칵테일이 가장 활발하게 변하는 동네, 바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동네. ‘르 챔버’의 박성민 바텐더가 런던의 지금을 마시고 왔다.

고든스 와인바 Gordon’s Wine Bar 아주 새롭지도 않고, 트렌디하지도 않지만 런던에 갈 때마다 들르는 와인 바. 템스강 근처인 데다 관광 명소와 가까워 여행 계획을 짤 때 한 자리 우겨 넣기도 좋다. 런던에서 만난 바텐더가 꼭 한 번 가보라고 알려준 곳인데, 바텐더들도 관심이 있어 하는 셰리 와인을 원 없이 경험해볼 수 있다. 최근 런던에서 셰리로 만든 칵테일을 꽤 많이 접했는데, 곧 서울에서도 셰리 칵테일이 크게 유행할 것 같다. 이 집 내부는 정말 허름하다 못해 청소를 하긴 하는 걸까 의심될 정도인데, 1890년에 창고였던 자리에서 시작한 와인바니 그저 ‘콘셉트’는 아니다. 진짜 런던의 노동자 계층이 찾던, 땀 냄새나는 술집이었음에 틀림없다. 런던 칵테일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빠뜨리지 않는 곳이 사보이 호텔의 ‘어메리칸 바’인데, 상류층이 찾는 화려한 그 바에 먼저 들렀다가 이곳을 찾는 것도 재미있는 대비가 될 것 같다. 47 Villiers St gordonswinebar.com

 

블라인드 피그 Blind Pig 2014년 문을 연 스피크이지 바. 어느 도시에나 있는 흔한 이름의 바인 데다가 인테리어도 독특할 것이 없는데 런던의 칵테일은 이 정도라는 걸 보여주는 듯 뭘 시켜도 안정된 수준의 술이 나온다. 3년 전과 비교하면 칵테일의 전반적인 알코올 도수가 좀 낮아졌는데, 런던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의외로 일찍 문을 닫는 런던 바들 사이에서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이곳은 2차, 3차 장소로 찾기 좋다. 트렌드를 연구하느라 런던을 찾는 게 아니라, 그저 좋은 친구랑 편하게 술 한잔 하러 간다면, 이 집을 가장 먼저 찾을 것 같다. 58 Poland St socialeatinghouse.com

 

미스터 포그스 진 팔러 Mr Fogg’s Gin Parlour 아마도 지금 런던에서 가장 ‘핫’한 바. 세 번째 방문했을 때 겨우 자리를 하나 얻었을 정도로 손님으로 넘쳐 난다. 그럼에도 이 바에서 일하는 모든 스태프는 유머와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 이 바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좀 낮은, 편안한 칵테일을 주로 낸다. 2층, 창문이 큰 찻집처럼 꾸민 외관이나 바텐더들의 유니폼이 환상적인 분위기여서 칵테일은 그냥 멋만 부린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진 Gin’에 집중한 메뉴판을 보면 그런 걱정은 사라진다. 진에 어울리는 차와 허브류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칵테일도 흥미로웠다. 칵테일의 마무리 격인 레몬 제스트를 뿌리고 그걸 잔에 넣는 모습을 손님 앞에서 보여주는 바가 런던에서 거의 없었는데, 이곳에선 그 과정을 세심하게 진행했다. 1 New Row mr-foggs.com

 

깁슨 Gibson 런던의 독보적인 바텐더 마리안 베케의 공간이다. 학구적이면서 창의적인 걸로는 지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바텐더로, 개인적으로 이 바텐더에게 많은 충격과 영향을 받았다. 이곳에 가면 아주 바쁜 날이 아니고는 거의 대부분의 칵테일을 그가 직접 만들어 서브한다. 메뉴판만 보면 “재료를 이렇게 조합해도 괜찮아?”, “이렇게 독특하게 만들면 맛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항상 불러일으키는 곳은 이 곳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도 런던에서 가장 앞서 있다. 그리고 10석 규모의 이 작은 곳에서 음식 페어링까지 선보인다. 이전 마리안 베케의 바에 비해서 음식과 칵테일의 조화가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다. 44 Old St thegibsonbar.london

 

오리올 Oriole 런던에서 데이트를 한다면, 이곳만큼 좋은 바가 없을 것 같다. 관광 명소처럼 유명해진 ‘나이트자’를 이끌었던 대표들이 만든 두 번째 바다. 오리올도 나이트자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나이트자’가 좀 지겨워졌다 느끼는 이들에겐 신선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실험성과 대중성을 적절히 배합했고 더 참신하고, 더 화려하고, 더 고급스러워졌다. 잘 다듬은 인테리어는 백 바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오픈 키친처럼 각종 허브나 스파이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에 걸맞게, 칵테일 중에서도 펀치 칵테일 메뉴가 꽤 탄탄했고, 유니폼을 잘 갖춰 입은 홀 직원의 서비스도 기품이 있었다. 육가공 공장 안쪽에 입구가 있어 자연스레 ‘스피크이지’ 효과가 난다. Smithfield Markets, E Poultry Ave oriolebar.com

 

터미니Termini 카페와 바가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모습을 런던에서 자주 본다. 이곳도 커피, 샌드위치, 칵테일이 균형 있게 돌아가는 공간이다. 밤이 되면 지하에 또 다른 공간이 열리지만, 낮에 가도 칵테일을 즐기기엔 무리가 없다. 특히 이곳의 칵테일은 지금 런던의 칵테일 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클래식에 집중하면서 사제락, 올드패션드 같은 도수가 높은 칵테일이 큰 축을 담당하던 시기를 지나고 이제는 마시기 쉽고 알코올 도수도 낮은 칵테일이 강세를 보이는 중이랄까? 베이스 술을 샴페인으로 쓰거나 칵테일을 셔벗으로 만드는 등, 베이스를 세게 표현하기보다는 여러 리큐르의 조화를 찾는 식으로 칵테일을 내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런던 칵테일’이다. 그렇다고 맹맹하거나 간단한 조합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4~5가지 재료를 조합해 풍성한 칵테일을 만들지만, 손님이 연거푸 두세 잔 마실 수 있을 만큼 가볍고 편하다. 이 집은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 왜 일찍 여는지 칵테일을 마셔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전 10시에도 편안한 그 맛! 7 Old Compton St bar-termini.com

Trend

런던의 칵테일 도수가 낮아지고 있다 작년과 비교해도 확실히 체감되는 변화다. 그윽하게 마시기보단 훌훌 마시는 쪽으로 칵테일이 변하고 있다. 이전엔 베이스 술을 충분히 사용해 칵테일의 중심을 잡고, 두세 가지 술을 섞어 묵직한 맛을 냈다면, 이젠 베이스 술을 좀 적게 써서 알코올 도수를 낮추려고 한다. 그래서 캐릭터가 강한, 독특한 베이스용 술을 찾는 데 관심이 집중된 모양새다. 리큐르와 베이스의 비율이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

런던의 바들이 작아지고 있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런던의 오너 바텐더들이 5~6석 규모, 심지어 2~3석 규모의 작은 바를 운영하는 걸 꽤 많이 봤다. 워낙 칵테일바의 경쟁이 치열한 도시라 규모를 줄여 좀 더 조용하고 안전하게 시작하려는 계산이다. 런던은 실력 좋은 바텐더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동네라 그만큼 낙오되는 바텐더도 많다.

TIP 런던이냐 뉴욕이냐 뉴욕의 바텐더들이 얼마나 빠르고 쾌활하게 칵테일을 내느냐에 집중한다면, 런던의 바텐더들은 얼마나 독특하고 화려하게 칵테일을 내느냐에 집중한다. 뉴욕의 바에선 문을 열기 전 음료를 미리 섞어두는 식으로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런던의 바에선 동선이나 배치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 시간을 줄이고자 한다. 뉴욕의 바는 한번 입소문을 타면 길게 명성이 이어지는 반면, 런던의 바는 부침이 심하다. 런던은 세계 각국의 바텐더들이 경쟁하는 곳인 만큼 바 문화가 좀 더 다채롭게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