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부산, 교토, 상하이의 여름밤

2017.08.18장우철

상하이의 밤이 연하도록 무르다면 부산의 밤은 장어처럼 미끄러진다. 부산의 밤이 거칠다면 교토의 밤은 짙어서 그만 어두운 줄도 모르고 스밀 참이다. 여행지의 밤은 낯선 힘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야경’보다 더 섬세한 것을 찾고 싶어한다. 상하이와 교토와 부산에서 세 번의 여름밤을 보냈다.

부산 낮이나 밤이나 부산은 한사코 힘이 세다. 대충 그런가 보다 넘어가는 법이 없이,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똑바로 묻고 대답하길 원한다. 그런데 부산역에서 해운대로 가는 길은 몇 가지나 될까. 오늘도 택시기사는 당신이 선택한 이 길이야말로 최단 코스임을 자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산과 바다 사이 몰리듯이 꽉 채워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여행자가 크게 숨을 쉴 때가 있다. 바로 긴 다리를 건널 때다. 특히 깊은 밤에 그렇다. 해운대에서 대연동으로 넘어가며 광안대교 상판을 달릴 때, 왼쪽으로 보이는 광안리의 불빛을 배경으로 어쩐지 오늘 밤 태풍이 와도 좋을 거라고 상상해보는 일. 안개비가 하얗게 쏟아지는데, 차창 밖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택시기사가 속도를 슬쩍 낮추며 백미러로 눈인사를 한다.

TIP 혼자만의 밤길 해운대에서 택시를 타고 광안대교를 넘는다. 그러고는 대연동에서 차를 돌려 다시 광안대교를 넘는다. 원하는 만큼 반복한다.

 

교토 교토의 밤엔 소량의 빛이 눈동자처럼 깜박인다. 가로등, 간판, 신호등, 자동차와 자전거, 혹은 고양이의 눈이나 촛불 같은 것들. 그것을 제외한 모두는 깊이를 잴 수 없도록 검다. 가만 보면 교토에선 소리도 꼭 그만큼만 들려오는 듯하다. 각자 힘주어 주장하지 않는 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알아서 구분되는 소리들. 이를테면 보행 신호등이 켜졌을 때 나는 뻐꾸기 소리 같은 것, MK 택시의 하트무늬 등이 켜지고 꺼지는 리듬 같은 것. 그러다 신발을 벗어두고 다다미가 깔린 방으로 들어서면 ‘쨍’하도록 한 번은 밝은 불을 켠다. 모든 게 분명해지는 그 시간을 뒤로 문밖의 밤은 계속 짙어진다.

TIP 혼자만의 밤길 숙소가 어디든 그곳을 나와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수로가 있다면 벗 삼기에 물소리만 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에이칸도 젠린지’에서 히가시야마 고등학교를 지나 ‘난젠지’에 이르는 길은 언제라도 누군가의 오래된 친구가 되어준다.

 

상하이 상하이의 야경이라면 대번 동방명주 우뚝하니 으리으리한 와이탄 풍경을 떠올리지만, 그건 ‘관광객’의 과제 같은 것일 뿐이기도 해서, 산책가에게라면 역시 귀뚜라미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여린 길이 제격이다. ‘프렌치 컨세션’ 지역은 그런 상하이를 느끼기에 과연 어울린다. 가로등은 노랗고, 빽빽하도록 잔가지를 키운 가로수는 그 빛을 잘게 부수어 놓는다. 그리고 마치 수묵화를 그리듯 그림자를 남긴다. 누구나 알 듯이 상하이는 습하다. 하지만 낮처럼 줄줄 흐르지 않고 밤에는 송글송글 맺히듯이 땀이 난다. 그걸 몇 번의 부채질로 식히는 맛, 그럴 때 상하이의 밤은 노랗게 무르고 연하게 노랗다.

TIP 혼자만의 밤길 조촐한 찻집 ‘송팡 메종 드 떼’에서 가벼이 찻잔을 비운 후든, 흥겨운 ‘바오뤄’에서 두둑하게 배를 채운 후든, 상하이 도서관을 목적지 삼아 그저 걷는다.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면, 도서관 옆 만두 가게 ‘이리빠오즈’에 들른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장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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