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개를 기를 수 있을까?

네 발 달린 충실한 친구가 곁을 지키는 외로운 남자의 이미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다. 책임감, 너그러움, 감수성, 부성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없는 사랑, 부서지기 쉬운 신체를 다루는 능력, 가죽으로 만든 사물을 배척하는 박애…. 여자들은 오직 개만이 남자에게서 끄집어내는 페르소나에 이끌린다. 위험하도록 매력적인 남자의 문신은 그 사람에 대한 피상성만 건드리지만 필라 브라질레이로와의 친분은 그의 영혼까지 읽게 해주니까. 하지만 나는 가로등에 흐릿하게 붙은 강아지 실종 전단지를 보며 애완동물을 잃어버린 고통을 짐작만 할 뿐이다. 동정심 없는 세상과 야멸찬 인간.

애초에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나의 공식 전기 작가로 삼아도 될 만큼 나를 잘 이해해주는 개가 있을까? 어떤 개가 누워 있고만 싶은 나를 일어나게 해줄까? 그러나 종일 문 안에서 내가 퇴근하기만 기다리고, 세상을 향해 내가 관심 받아 마땅한 자라고 외치는 존재는 상상으로도 감당이 안 된다. 게다가 개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공간에서 일일 여행을 해야 하는데 출장 갈 땐 누구에게 맡기나? 행여 전염성 강한 기관지염에 걸려 밖에 일절 못 나가면 신경 쇠약 안 걸리려나? 동네 민원 들어오도록 짖고 친구의 하복부를 물어뜯는 반사회적 특성은 어떻게 진정시키지? 악수하거나 하이파이브 하기가 해부학적으로 어려운 개들이 침 한 양동이 매달고 내 엉덩이에 코를 부비면? 개들은 특히 친숙한 소리에 반응할 텐데 내가 짜증 내면 더 우울해하겠지? 결국 나보다 더 외로운 척하겠지? 하지만, 이기적이지만, 털복숭이 개가 얼굴을 핥는 건 알약으로 세로토닌을 추출할 때나 알코올 기운으로 고조될 때보다 자극적이다. 게다가 개는 웬만해선 내 결점을 지적하거나 처세 좀 잘하라고 재촉하는 법이 없다.

친구가 우리 집에 데리고 온 래브라도 레트리버는, 개를 기르는 데 사이즈가 문제 될까, 하는 쟁점을 만들었다. 순한 데다 느긋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대형견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꼼짝없이 반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부푼 동물적 교감에도 불구하고 래브라도 추종자들에겐 약간의 테스토스테론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무렵, 반은 도베르만, 반은 셰퍼드의 피가 흐르는 마초 수컷과 친한 사이가 되었는데, 하도 기운이 뻗쳐 개 끈을 쥔 15분 동안 헝겊처럼 끌려다녔다. 돼지 크기의 푸들은 양귀비 뺨을 후려칠 교태가 영 부담스러웠다. 개로 태어난다면 저 개다, 싶은 러셀 테리어는 체구에 비해 생식기가 커서인지 다른 종의 개 꼬리를 쫓느라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흥분할 때조차 건들건들 걷는 달마시안은 작은 개들 귀만 씹어댔다. 얼굴 가로 길이가 더 긴 퍼그는 육포에 스물네 시간 얼굴을 처박는 주제에 교만하기 짝이 없었다. 알래스칸 맬러뮤트는 주인의 인기를 가로채지 않으면서 군중을 어떻게 기쁘게 만드는지 알았지만, 심심해지면 뜻밖의 공격성을 드러냈다.

그러다 얼마 전, 지방 사는 일흔 되신 할머니가 집에서 기르던 풍산개에게 습격당했다는 기사를 보고 쇼크를 받았다. 풍산개는 충성심 강하고 영리하다 하지 않았나? 동시에 몇 해 전 미국 온타리오주에서 세 살 남자애를 공격한 핏불 테리어 생각이 났다. 그때 사건 발생 5일 뒤, 핏불 테리어 사육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사실 핏불 테리어가 위험하다는 건 흔한 소리였다. 다른 개들에게 싸움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핏불 테리어는 자극이 없어도 대뜸 달려들어선 완전히 지칠 때까지 싸운다. 적이 몸을 한껏 낮춰 패배 신호를 보내면 아예 배를 갈라놓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레이트 데인과 티베탄 마스티프, 로트와일러도 못지 않게 공격적이라고 알려졌다. 넓은 붓으로 물감을 듬성듬성 칠한 듯한 일반화는 뭐든 결정해야 하는 삶의 피할 수 없는 기준이 되었다. 즉, 핏불 테리어가 위험하단 말은 지나치게 일반화된 것이다. 자동차 보험사가 젊은 사람에게 더 비싼 보험료를 책정하는 것(거친 노인 운전자를 더 많이 보았다), 의사들이 과체중의 중년에게 콜레스트롤을 경고하는 것(그래 보이나 심장 튼튼한 사람도 많다)도 마찬가지. 어떤 개가 물지 누가 심장병에 걸릴지 누가 차사고를 낼지 모르니 다들 일반화를 통해서만 예측할 뿐이다.

일반화는 다시 말해 고정관념. 남자들은 동네 형 얘기하듯 마피아를 입에 담지만 어떻게 생겼는진 하나도 모른다. 마피아에 대한 지식은 거의 <대부>에서 얻는데, 콜리오네가 남자 중 말론 브란도는 아일랜드계 프랑스인, 제임스 칸은 유태인, 알파치노와 존 카제일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대체 그중 누가 가장 ‘마피아스럽’게 생겼다는 거지? 구체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필연적이나 위험천만하고, 각각의 일반화를 거치기 위해 버릴 요소와 남길 요소를 선택하는 일은 이렇게나 복잡하다. 요는 범주와 분류의 문제. 일반화란 행동이나 성향 따라 나눈 기준에 사람을 맞추는 것인데, 중년 남자는 심장 발병률이 높고 어린 남자는 운전을 잘 못한다는 분류가 제대로 먹히려면, 일반화하려는 범주를 정확히 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핏불 테리어는 단일종이 아니다. ‘핏불’ 아메리칸 스태포드샤이어 테리어, 스태포드샤이어 불 테리어,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같은 유사종을 한데 아우른다. 모두 몸통은 각지고, 주둥이는 짧고, 털은 매끄러운데, 금지법에 따르면 핏불 테리어와 닮은 어떤 개도 기를 수 없다. 다부진 테리어를 핏불로 규정하는 게 일반화라면, 위험한 개는 모두 핏불을 닮았다는 건 일반화에 대한 일반화. 일반적이지 않은 성향을 일반화하고 그걸 또다시 일반화한 것이다. 한편, 세월따라 인기 있는 개의 종이 달라지자 공격적인 개의 종도 바뀌었다. 그러니까 핏불 테리어를 둘러싼 문제가 늘어난다면 단지 숫자가 늘어났다는 뜻일지 모른다. ‘위험한 개’란 잘못된 상호작용과 얽힌 잘못된 개, 잘못된 상황, 잘못된 환경, 잘못된 주인이라는 경고들의 총합인 것이다.

개를 끌어안는 문제가 이렇게 복잡한 건가. 모든 복잡한 문제를 뒤쫓는 더 복잡한 문제들은 다른 트라우마들에 대한 재연 같다. 때로 개 한 마리는 몇십 년 전을 거슬러 뒤죽박죽된 형제의 갈등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는 포기하고 고양이를 찾기로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늘 사랑을 원하는 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엔 해줄 게 참 적겠지. 자기 삶을 살아야 하니까. 근데 이런 추측 역시 내가 빌려온 일반화인 거군. 결국 나에게 필요한 건 모든 인간의 삶은 동물에게 괴로움을 안긴다는 심각한 각성뿐인가. 내가 좋은 가장이 되지 못하리라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반려견의 반려가 될 자신도 자격도 없는 인생이 새삼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