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도시화

2017.09.05GQ

어느덧 사람들에게는 제이팝이라는 단어보다 시티팝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80년대에 일본에서 탄생하고 수년 전부터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 음악의 현재.

얼마 전 타츠로 야마시타의 음반 < Spacy > 를 선물 받았다. < Spacy >는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으로, ‘CD 시대’ 이전에 발매한 그의 70~80년대 엘피를 통틀어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작품이다.

지금 타츠로 야마시타는 시티팝의 대명사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그런데 < Spacy > 는 그의 다른 유명 음반들과 꽤 다르다. < For You >나 < Big Wave >가 도회적이고 느긋한 여름밤의 정서라면, < Spacy >에서는 흙냄새가 난다. ‘훵키’하고 ‘재지’한 게 아니라 훵크와 재즈를 연주한다. 핏대를 세우다 못해 흔들리는 보컬은 시티팝이란 팔자 좋은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 리듬은 보조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중심으로 육박한다.

그래서 히트하지 못했나? 덕분에 40년이 지난 지금은 없어 못 구하는 음반이 됐지만. < Spacy >를 ‘타츠로 야마시타의 젊음’이라 말 해보면 어떨까. 그 안엔 베이스를 친 (YMO의) 하루오미 호소노, 키보드를 맡은 류이치 사카 모토와 (저 유명한 < Awakening >의 주인공) 히로시 사토의 젊음도 담겨있다.

시티팝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유독 일본에서 즐겨 쓰는 ‘라이트 멜로우’ 란 용어와도 어느 정도 혼용된다. 시티팝은 상업적 필요에 의해 갑자기 생긴 말 같지만, 사실 오래 전부터 쓰이던 말이다. 타워레코드가 발간하는 무가지 < Bounce > 통권 243호(2003 년 5월호)에 따르면, “그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자동차 스테레오가 보급되기 시작한 80년대 초반”이라 쓰여 있다. 이것은 타츠로 야마시타가 1980년작 < Ride On Time >으로 본격적인 성공가도에 오른 시점과도 일치한다. 자동차 스테레오가 설치된 자가용을 타고 도시에서 해변으로 떠나며 듣는 음악. 시티팝의 보편적인 정서다. 자동차만 있으면 멀지 않은 바다에 닿을 수 있었고, 당시 일본엔 자동차를
살 수 있는 돈이 있었다.

< Spacy >의 당시 정가는 2천5백 엔(약 2만5천원)이다. 요즘 신보(CD)가 보통 1천5백~3천엔 사이니, 지금 기준으로도 싼 가격이 아니 다. 1981년, 일본의 1인당 GDP는 이미 1만 달러를 넘어섰고, 1987년엔 2만 달러를 넘으며 미국을 앞질렀다. 돈이 돌았고, 그 돈이 도는 도 시를 노래하는 음악가들과 그 돈을 들고 도시를 탈출하자는 음악가들이 공존했다. 호시절 중의 호시절. 도시의 밤에 더 가까운 음악과, 해변의 낮에 더 가까운 음악이 있지만 특별히 둘을 구분하진 않는다. 도쿄도 오사카도 바다가 있는 도시다.

일본 최대의 영자신문 < The Japan Times >에선 이미 2012년 그린 라인즈Greeen Linez의 데뷔 음반 발매를 두고 “시티팝 리바이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알려진 시티팝 가이드북 <재퍼니즈 시티팝 디스크 컬렉션>의 개정판이 나온 것 역시 2011년이라고 덧붙인다. (역시 기사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요코하마 밴드 히토미토이가 시티팝 명곡을 재해석한 음반 < Your Time >이 나온 해도 2012년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 시티팝의 지위는 어떤가? 2017년 1월, 오오타키 에이치의 < A Long Vacation >을 비롯해 수많은 시티팝 음반의 커버를 그린 히로시 나가이와 일본 문구 브랜드 델포닉스가 협업한 ‘Summer’ 컬렉션이 공개됐다. ‘레어’ 레코드로 악명을 떨치던 카오루 아키모토의 ‘Dress Down’, 타츠로 야마시타가 프로듀싱한 앤 루이스의 ‘Alone In The Dark’ 7인치 등이 재발매되는 사건도 있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당장 ‘핫’한 건 아니라 도, 여전히 시티팝이 유효하다는 증거다.

서울에서도 시티팝이 인기다. 작년 혹은 재작년부터 불이 붙어서, 지금이 활활 타오르는 절정으로 보인다. 시티팝을 주제로 한 파티 (Midnight City)와 시티팝 음반을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100 Vinyl)가 열리고, 2014년 말 시작한 “안 유명한 일본 음악(주로 시티팝)을 소개”하는 해적방송 쇼와구락부도 살롱 도쿄 에이티즈로 이름을 바꾸며 더욱 운영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물론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티팝을 즐기고 사랑해온 사람들일 것이다. 덕분에 좀 늦었을지라도, 서울도 동시대를 강타한 시티팝을 즐기고 있다.

동시대라 말하는 이유는, 시티팝에 대한 열기가 범세계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일본 바깥의 세계가 오히려 일본이 자연스럽게 시티팝을 다시 불러내고 소비하던 속도보다 단기간에 더 빠르게 일본 음악을 대하고 있어서다. 아주 간단하고 명확한 예로, 레코드 애호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네덜란드 레이블 러시 아워 레코딩스는 지난해 작정한 듯 일본의 시티팝 싱글을 연달아 발매했다. ‘RH-STORE JPN’이라는 새로운 시리즈로 에리 오노, 류리코 오가미, 료 가와사키, 미나코 요시다의 ‘레어’한 시티팝 곡들을 글로벌 마켓에 선보였다. 이미 어지간한 시티팝 음반은 널리 알려진 때, 러시 아워가 지금 세계 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준 것이다. 그런데 올해 RH-STORE JPN의 이름을 달고 나온 두 장의 카탈로그는 시티팝과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패기로 가득한 데뷔 음반에서 두 곡을 발췌한 싱글과 < Mystical Cosmic Vibration >라는 제목부터 난해한 페커Pecker의 1980년 덥 음반을 재발매했다.

‘라이트 멜로우’한 시티팝만이 일본의 호시절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시티팝을 듣다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류이치 사카모토, 하루 오미 호소노, 히로시 사토 같은 이름은 시티팝에 대한 관심을 결코 시티 팝에서 끝나게 하지 않는다. 일례로 히로시 사토의 < Awakening >은 훌륭한 시티팝 음반이지만, 그의 전작 < Time >과 < Orient >의 실험과 도전은 한가한 시티팝에 젖은 몸을 벌떡 일으키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이게 같은 음악가의 작품이라고? 이런 게 시티팝과 같은 시대에 나왔다고? 대체 그때 일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지? 통쾌한 충격과 혼란이 찾아오는 순간.

2015년 미국 레이블 팔토 플랫츠Palto Flats가 재발매한 뉴웨이브(라는 말로 담기에는 사실 좀 부족한) 밴드 머라이어의 < Utakata No Hibi >는 이런 인식 전환의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 Pitchfork >는 이 음반을 ‘Best New Reissue’로 뽑았고, 그해 연말 결산에서는 < FACT >를 비롯한 대부분의 음악전문 매체가 < Utakata No Hibi >를 ‘올해의 리이슈’로 선정했다.

팔토 플랫츠는 이 여세를 몰아 그보다 더 난해한 미도리 타카다의 < Through The Looking Glass >를 올해 성공적으로 재발매 했다. 코우스케 마인 퀸텟의 < Mine >, 마사루이마다 트리오의 < Green Caterpillar > 같은 일본의 재즈 음반도 올해 처음 재발매됐다. 레트레스 재즈 클럽이라는, 세계를 겨낭하는 것이 꽤 명백해 보이는 신생 레이블을 통해서다. 머라이어 열풍 이후, 머라이어의 중추인 야수 아키 시미즈의 전성기 솔로 음반 < Kakashi >는 일본 내 재발매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삭’ 사태를 빚었다. 그 수요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타츠로 야마시타를 < Spacy >로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 Spacy >를 듣고 나면 타츠로 야마시타도, 시티팝도, 일본 음악도 다르게 들린다. 물론 시티팝은 원래 있었던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여름이면 더욱 생각나고, 그런 ‘라이트 멜로우’한 즐거움을 거절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다만 지금이 시티팝의 시대인가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금 세계는 시티팝 너머로 향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생각과 말과 행위에는 여전히 예민한 촉수가 도사리고 있다. 단순한 팩트일 뿐이라 해도, 가벼운 취향의 갈래라 해도, 거기엔 늘 개인적 입장과 맥락을 벗어난 것들이 고려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친일파’나 ‘한일전’ 같은 말이 여기에 조성해온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자칫 덫을 피하느라 중심을 잃는 경우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두루 경계하며, 우리는 여행, 아이돌, 쌀, 자동차, 맛집, 로봇, 애니메이션 등 요동치는 단서를 두고 일본의 지금을 불쑥 들여다보기로 한다.

    에디터
    글 / 유지성('Playboy Korea' 부편집장)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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