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먼트 밸리>를 한번 해봤더니

세상엔 소음이 가득하다. 스마트폰 하나만 갖고 있어도 각종 SNS를 비롯한 어플이 시도 때도 없이 알람을 울려대는데, 거기에 모바일 게임까지 깔아서 그 성가심에 보탬을 해야 할까? 게다가 게임이란 인터페이스에 적응해 숙련 과정을 거친 뒤 ‘렙업’에 따른 보상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구조 아니던가. 현실에도 성취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인데 게임을 하면서도 열을 올리고 싶진 않았다. 나는 모바일 게임에 회의적이었고 그 흔한 애니팡 한번 깔아본 적 없었다. 그런 내가 심지어 유료 게임인 <모뉴먼트 밸리>를 하게 된 건 순전히 지인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임이 아냐. 다운해줄 테니 선물 받은 셈 치고 해봐.” 어거지로 게임을 받은 나는 귀찮은 기색을 숨길 수 없었지만, 막상 플레이를 시작하자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첫눈에 나를 사로잡은 건 그래픽이었다. 선명한 색과 정교하게 설계된 미로는 생생한 몽상처럼 움직였다. 미로는 초현실주의 화가 에셔의 그림처럼 착시를 기반으로 한 메커니즘이었다. 돌리다 보면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되는 순간이 있었고, 이어질 수 없는 안과 밖이 이어졌다. 차원이나 중력의 법칙은 이 작은 세계 안에선 무의미했다. 반면 캐릭터는 아주 단순하고 단출했다. ‘아이다’라는 세모와 동그라미로 만들어진 주인공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엔 다른 재주가 없다. 유저는 레버를 돌리고 블록을 맞춰 아이다가 나아갈 길을 찾아줘야 했는데, 조작법은 게임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도 쉬웠다. 큐브를 맞추듯 보이는 대로 돌리면 돌아갔고 두드리면 나아갔다. 시간제한도, 불시에 공격해 죽이는 적도, 불필요한 대화도 없었다. 그저 이 외로운 주인공은 미로를 하염없이 헤매면 됐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적도 소음도 목표도 없는 고요한 세계, 심미적으로 충족되는 공간에서 마음껏 방황할 수 있다는 것. 게임의 난이도는 높지 않아 직관적인 판단만으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래픽을 즐기기 위해 했던 스테이지를 또 하곤 했다. 별다른 멜로디 없이 은은하게 울리는 배경음악을 들으며 레버를 돌리는 일은 멍하니 머리를 비우고 집중하기에 최적이었다. 스테이지별로 한두 문장으로 구성된 최소한의 스토리텔링은 단순하지만 시적 은유 같았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 아이다를 기다린다”로 시작해 “여행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운명이 아닌 것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간다”까지 잠언서의 구절 같은 문장들.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면 어쩐지 나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게임의 배경은 어딜까. 먼 과거? 미래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아이다는 왜 고행의 길을 가는가? 멸망한 세계의 바리데기처럼 산 넘고 물 건너 무엇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 요컨대 이 게임은 아이다의 오디세이였다. 아이다는 고독한 플레이어지만, 단 한번 ‘토템’이라는 조력자를 얻게 된다. 토템은 아이다가 갈 수 없는 곳을 대신 가주거나 아이다를 데려다주는 구조물인데, 눈이 달려 있어 은근한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폭풍우 치는 어두운 바다의 풍랑 속에서 토템과 작별할 때는 어쩐지 너무나 슬픈 기분에 젖고 말았다. 마지막 의미심장한 엔딩을 맞을 땐 이 이야기가 결국은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울적하기까지 했다.

엔딩을 본 <모뉴먼트 밸리>를 하릴없이 반복하던 나는 또 다른 예쁘고 고요한 그래픽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었다. 검색어, 그래픽이 예쁜 게임. <탭탭 피쉬: 어비스리움>은 좋은 대안이었다. 어비스리움은 액정이 수족관이 되는 게임이었다. 어떤 조작법도 없이 그저 반복적으로 탭을 하기만 하면 ‘생명력’이 생산됐고, 그에 따라 산호나 열대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산호초를 심고 물고기를 풀어놓은 뒤 멍하니 그것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임이었다. 열대어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유연하고 불연속적으로 움직였고, 한 마리를 지정하면 그것의 움직임을 다양한 앵글로 따라갈 수 있었다. 그 우아한 지느러미며 하늘하늘한 꼬리를 보고 있자면, 어릴 적 다마고치에서 키우던 전자 애완동물처럼 애착이 생겼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어(愛魚)는 보라색 줄무늬와 셰이프가 예쁜 임페리얼 엔젤로, 우울할 때면 보고 있는 것만으로 꽤 많은 위로를 주었다. 이 게임은 서사나 스테이지가 없는 대신 더 많은 아이템으로 수족관을 꾸미라는 무언의 강요를 했고, 혹등고래나 돌고래 같이 희귀한 아이템을 위해선 터무니없이 많은 탭 수와 더 터무니없는 ‘현질’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물고기 수를 더 늘리는 것은 포기했다. 그렇다고 이 게임을 그만뒀냐면, 그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멀리서 들려오는 혹등고래의 울음소리, 수중에서 솟아오르는 먹먹한 물방울 소리가 들려오는 배경음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좇는다. 그러면 잠이 잘 온다.

밀도 높고 자극적이고 복잡한 게임들 가운데서 어떻게 <모뉴먼트 밸리>와 <탭탭 피쉬: 어비스리움>은 충성스러운 유저들을 확보하고 있는가?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소음 없는 나만의 스노볼 안에 잠기고 싶을 때, 이 두 게임은 최적의 컨디션을 제공한다. 적을 없애거나 ‘렙업’에 목숨 걸 필요 없는 다정한 친구들이 거기에 있다. 또한 두 게임은 모두 플레이 도중 카메라로 게임 화면을 캡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걸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도 있다. 아름다운 순간을 누리는 동시에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엔 <모뉴먼트 밸리 2>가 출시되었고, 거기엔 아이다 대신 엄마와 딸이 있다. 유저는 두 플레이어를 같이 움직여야 한다. 단순한 게임은 조금 더 복잡해졌고 조금 더 늦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고요한 세계 속에 있다. 긴 지문과 대사, 복잡한 공략, 현란한 시각 효과에 길들여진 이 시대, 어떤 고요함은 위로가 된다. 미로의 계곡과 깊은 바닷속을 손 안의 액정 안으로 불러내고 싶은 이유다.

저 광고 뭘까 하면 모바일 게임 광고다. 휴대전화를 가로로 들었다 하면 여지없이 모바일 게임이다. 에디터가 하루의 한 뭉텅이를 잘라내 한 달간 모바일 게임에 몰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