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맛집은 어떻게 떠오르나

먹는 방송, 먹는 잡지, 먹는 랭킹, 먹는 여행….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일본인들이 내 마음 속 진짜 맛집으로 인정하는 곳은 따로 있다.

집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나는 전에 살았던 동네의 술집들을 마치 도장 격파하듯 다 다녀본 적이 있다. 평범한 도쿄 주택가에 술집이 있어 봐야 얼마나 되겠나 싶었지만 뜻밖에 많았다. 비싼 곳도 있었봤고 서서 마시는 저렴한 곳도 많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선술집처럼 주인이 손님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하는 곳도 있었고, 안주를 낼 때 안주 이름을 말해주는 정도 외의 말은 일절 하지 않는 주인이 있던 술집도 기억난다. 손님들조차 스마트폰을 보거나 문고판 책을 읽고 있을 정도였다. 지금 사는 동네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로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다 보면 다양하고 꽤 많은 요릿집과 술집이 있고 그곳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북적거린다.

가벼운 차림으로 집에서 나와 천천히 걸어서 10분, 조금 더 걸어서 30분 거리에 아끼는 술집 두 군데가 있다. 한 곳은 상점가 한가운데 있는 시끌벅적한 야키토리 가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은 차분한 분위기의 가벼운 일본 요리가 나오는 술집이다. 걸쭉한 목소리로 손님들의 주문을 외치는 야키토리 가게의 주인은 언제나 불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고, 홀을 부지런히 누비는 스태프들은 늘 웃고 있다. 혼자 온 다른 손님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면 이젠 내 얼굴을 익힌 아주머니가 따뜻한 손수건을 내주면서 “어서 오세요. 오늘도 병맥주? 삿포로?”라고 묻는다. “네! 부탁합니다!” “B4번에 삿포로 1병!”이라고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외치면 고기를 굽던 주인은 “감사합니다!”라고 답을 한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술집의 풍경 중 하나다. 미리 준비해둔 ‘오늘의 요리’들이 큰 그릇에 담긴 채 놓여 있는 카운터 자리에서 열심히 요리를 담아내는 기모노를 입은 주인의 바쁜 손놀림을 볼 수 있는 요릿집은 언제나 만석임에도 늘 차분하다. 가끔 여럿이 온 손님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어깨너머로 들려오긴 하지만, 주문한 요리들을 입에 넣고 차분한 목소리로 ‘맛있다’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묻혀 사라진다. 맥주를 마시고 요리를 먹는 동안 가게에는 계속해서 예약 전화들이 오고 꽤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빈자리 예약을 위해 연락처를 남기고 간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곳이 유명한 맛집이라는 생각에 내 가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엔 옅은 우쭐함이 번지곤 한다. 일본의 한적하고 작은 동네에도 가게들이 평균 이상의 맛을 낸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다. 물론 본전 생각이 날 정도로 실패한 적도 있긴 하지만 평균치 이상의 맛을 내는 곳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들을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찾아오고 그 곳은 유명해진다.

일본인들의 식도락 애호도는 외국인인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방송의 식도락 관련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미스터 초밥왕>,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 등 만화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요즘도 일본인들이 얼마나 식도락에 심취해 있는가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곳은 서점이다. 서점의 정기간행물 코너에 가보면 패션지만큼이나 많은 잡지가 식도락 관련 잡지다. 20대 여성과 남성을 위한 식도락 잡지부터 중장년 주부들을 위한 식도락 무크지, 남성만을 위한 식도락 잡지 등 종류도 많을 뿐만아니라 하나하나 차원이 다른 엄청난 정보량을 자랑한다. 심지어 패션 잡지 < popeye >는 카레, 피자, 샌드위치 등을 주제로 삼거나 아예 맛집 정보 무크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일본의 대표 식도락 잡지인 < DANCYU >는 올해로 발간 27년을 맞이하는 저력의 식문화 잡지다. 매호 다른 주제를 정해 그 요리의 전국 맛집을 소개하고, 요리의 유래, 재료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유명한 요리 고수의 요리 방법 등 다양한 시각으로 만들어낸 놀라운 양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맹자의 “남자는 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어가자’로 바꿔 만들었다는 이름에서부터 그 각오를 볼 수 있지만, 이 잡지의 모토인 “음식이야말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이 단큐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식도락 정보는 잡지에서 그치지 않는다. TBS 방송의 <임금님의 브런치>는 1996년에 시작됐는데, 아직도 매회가 뜨겁다. 이 방송은 토요일 아침 9시 30부터 오후 2시까지 4시간 반에 걸쳐 식도락뿐만 아니라 연예가 소식, 부동산 소개 등 엔터테인먼트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것을 다뤄 시청률 또한 높다. 이 방송에 소개된 가게는 다음 날 재료가 떨어져서 영업을 할 수 없을 만큼 손님이 몰리고 가게 앞에 줄을 서는 손님들을 정리해주는 사람을 따로 고용할 정도다. 잡지에 <단큐>, 방송에 <임금님의 브런치>가 있다면 인터넷에는 ‘타베로그’가 있다. 2012년 전문 업체가 개입한 리뷰 조작 사건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긴 했지만, 일본인들에게 아직도 타베로그의 존재는 정말 막강하다. 잡지나 방송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방대한 식당 데이터베이스는 타베로그의 가장 큰 강점이다. 서서 먹는 80엔짜리 야키토리 가게부터 1인당 평균 예산 4만 엔을 제시하는 일본 전통 요릿집까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타베로그다. 게다가 매년 타베로그 최고의 맛집을 선정하는 ‘타베로그 베스트 레스토랑’은 올해부터 ‘타베로그 어워드’로 명칭을 바꿔 시상하고 있으며, 그 공신력을 인정받아 또 하나의 기준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내볼까? 최근의 일본, 특히 도쿄의 도심은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분위기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신주쿠의 ‘뉴오만 Newoman’, 긴자의 ‘긴자식스 Ginza Six’라는 매머드급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핫 플레이스로 단숨에 올라섰다. 매일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내국인들까지 엄청난 기세로 밀려들고 있는데 이런 쇼핑몰들이 들어설 때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어떤 패션 브랜드가 입점하느냐보다 어떤 디저트숍, 어떤 레스토랑이 들어오느냐를 궁금해하고 기대한다. 특히 뉴오만과 긴자식스가 문을 열 때, 레스토랑에 이목이 집중됐는데 콘셉트를 ‘어른(大人)을 위한 레스토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시작은 2016년 신주쿠 뉴오만이 먼저 했다. 일본에 처음으로 싱가포르의 ‘제니스 왕’과 LA의 ‘800디그리즈 나폴리탄 피자리아’, 뉴욕의 ‘로즈마리즈 도쿄’ 등을 상륙시키면서 ‘어른’들의 지갑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한 해 뒤인 올해, 긴자식스 역시 호주의 그릴 바 ‘루크 망간’과 영국의 ‘조스카페’의 일본 1호점 등 해외 유명 레스토랑과 디저트숍을 입점시켰고 더불어 긴자의 분위기에 걸맞은 일본의 에이징 미트 전문점 ‘긴자그릴’, 튀김 전문점인 ‘야마노우에긴자’ 등 타깃이 분명한 콘셉트로 지갑이 풍요로운 어른들을 노리고 있다. 잡지, 방송, 인터넷 매체들이 새로운 가게를 다 소개하기가 벅찰 정도로 도쿄 곳곳에는 화제가 되는 새로운 콘셉트의 ‘구루메 스폿’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2020년 도쿄 올림픽 전까지 이런 증가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이런 곳을 과연 맛집이라고 생각할까? 대답을 찾아보자면, ‘아니다’ 에 가깝다. 이런 맛집들의 수명은 사실 긴 편은 아니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해외 레스토랑의 경우 몇몇은 화려한 시작과 달리 1년 뒤 조용히 사라지거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곳들도 있다. 새로운 것에 엄청난 호기심을 보이는 것만큼이나 자신들의 애정을 주는 것에는 한없이 엄격한 사람들이 바로 일본인들이다. 특히 식도락에 깐깐한 일본인들이 나름 맛집이라고 정하는 기준에는 ‘정직’과 ‘근성’이 있다. 속이지 않는 재료와 정직한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고 꾸준하게 그것들을 지켜 나가는 것, 이것을 인정해주고 애정을 쏟고 꾸준한 방문과 장시간의 기다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구루메 스타일이다. 얼마 전 체육관 트레드밀에서 뛰다가 TV 프로그램의 ‘시타마치(서민 동네) 특집’을 봤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술집 같은 곳인데도 개점 2시간 전인 3시부터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줄을 서는 유명한 술집이 나왔다.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내는 해산물 요리가 일품인 곳인데 서민들도 즐겨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술과 음식이 저렴했다. 아예 작정하고 문고판 책이나 신문 등을 들고 와 줄을 선 사람,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선 사람도 많았다. 조금 먼 곳에서 온 지인들을 데리고 왔다는 깔끔한 차림의 중년 남성에게 이곳에 이렇게 일찍 온 이유를 물어보니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이랑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서”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고, 2시간을 기다려서 가게에 들어와 40분 만에 맥주 2병과 모둠회를 먹고 나가는 부부는, 이렇게 좋은 곳은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양보해야 한다며 웃으며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겨울에는 따뜻한 술을, 여름에는 절인 오이와 함께 맥주를 대접하는 술집 주인은 모든 손님에게 “언제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했다. 30년간 꾸준히 문을 열고 있는 이 집의 비결은 이런 겸손 위에 쌓아 올린 주인의 근성이 아닐까?

물론 나도 ‘맛집’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곳을 마음에 품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도쿄에 오면 데리고 가려고 목록을 만들어둔 곳들이다. 이름만 대면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그런 곳들은 아니지만, 마음의 위안을 얻을 정도로 감동했던 곳들이다. 너무 맛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이 맛을 꼭 함께 즐기겠다는 가벼운 각오를 한 곳들. 이런 리스트를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이를 잘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꽤 든든해지곤 한다.

마지막 주문 시간을 확인한 뒤 집을 나서, 맥주 한 병과 적당한 안주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맛집’이 있는 삶은 여유롭다. 그건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는 만족감 그 이상일 것이다. 술기운으로 조금은 뜨거워진 얼굴에 닿는 여름밤의 축축한 바람 또한 이런 곳들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나만의 즐거움이고.


일본에 대한 생각과 말과 행위에는 여전히 예민한 촉수가 도사리고 있다. 단순한 팩트일 뿐이라 해도, 가벼운 취향의 갈래라 해도, 거기엔 늘 개인적 입장과 맥락을 벗어난 것들이 고려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친일파’나 ‘한일전’ 같은 말이 여기에 조성해온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자칫 덫을 피하느라 중심을 잃는 경우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두루 경계하며, 우리는 여행, 아이돌, 쌀, 자동차, 맛집, 로봇, 애니메이션 등 요동치는 단서를 두고 일본의 지금을 불쑥 들여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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