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주머니 속 농부 <타운스 테일>

2017.09.07손기은

모바일 게임은 늘 유저를 붙들어두고 싶어하고, 꽤나 노골적인 방법으로 미끼를 던진다. 뻔히 알면서도 덥석 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하던 게임에는 한 판, 두 판의 개념이 있어서 “엄마, 딱 다섯 판만 하고 끌게”가 가능했지만 이번엔 아니다. 20분 뒤에 완성되는 빵, 3분 뒤에 재배할 수 있는 밀, 1시간 40분 뒤에 완성되는 피자를 기다리며 늘 정신의 한 조각을 휴대전화 사이에 끼운 채 살아야 한다. 완료 시간이 제각각인 퀘스트가 수십 개 동시에 돌아가는터라 거의 하루 종일 게임을 붙잡고 계속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그게 재미라면 재미인 SNG 게임을 밤낮으로 해봤다.

SNG게임은 ‘소셜 네트워크 게임’이라는 좀 벙벙한 설명으로 불리는 게임의 한 분류다. 전략 게임이나 전투 게임이 아니라 나의 세계를 내가 원하는 만큼 만들고, 다른 유저들과 교류하면서 채우고 꾸미는 게임이다. <레알팜>, <놀러와 마이홈> 같은, ‘아기자기’하다고 설명할 수 있는 ‘팜류’ 게임들이 이 분류에 속한다. 그중 최근에 출시된 <타운스 테일>을 다운받아 시작했다. 농장 관리, 낚시 및 채집, 집 꾸미기, 옷 꾸미기 등이 주요 내용이다. 격파해야 할 적도 없고 오글거리는 명분이나 거대한 서사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머리를 굴려 문제를 푸는 것도 아니고 공간감이나 스릴을 즐기는 쪽도 아니라서 맘 편할 것 같았다.

대신 이 게임은 끝도 없는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시에 여러가지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빵 굽기, 설탕 만들기, 부엌에서 요리 하기 대장간에서 도구 만들기, 돼지 사료 주기,달걀 거두기, 가판대에서 물건 팔기, 옆 동네에서 들어온 주문 처리하기 등) 쉴 새 없이 설비를 가동하고 퀘스트가 완료된 것은 재빨리 거두어들여 버려지는 시간이 없도록 움직여야한다.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더 많은 부동산을 확보해서 더 많은 설비를 만들거나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그나마 있는 설비들의 쉬는 시간 없이 풀 가동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영글기까지 약 8시간이 걸리는 사과나무가 있다면 잠들기 전에 꼭 심어둬야 다음 날 애플파이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 애플파이를 만들기 위해선 밀가루 한 포대와 달걀 한 알이 필요하니까 잊지 말고 닭들에게 모이를 줘서 일어나면 달걀을 품고 있게 해야 하고, 제때 밀을 수확해서 제분 공장에서 밀가루 한 포대 실행을 해두어야 한다. 이런 식의 노동이 수십 개가 이어진다. 클릭 하나로 퀘스트를 처리하는 재미도 재미지만, 산적한 퀘스트 앞에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도 함께 떠오른다. 이 게임은 나에게 여가일까, 일과일까.

나에게 이 게임은 빨래통에 쌓인 빨래처럼, 미루어둔 설거지처럼 느껴진다. ‘오, 이런 것도 있어, 귀엽다’라는 건 처음 설비를 갖추었을 때 잠깐. 우유가 있어야 치즈를 만들 수 있고, 버터가 있어야 스테이크를 구울 수 있는 <타운 스테일> 속 퀘스트는 소름 돋을 정도로 일상에 가깝다. 먹이를 주지 않으면 다리의 힘이 풀려 풀쩍 누워버리는 닭을 보고 이건 그저 게임이다, 라고 마음먹기란 쉽지 않다. 가끔 넓게 펼쳐진 밭 앞에 나무로 만든 티테이블과 흔들 의자를 놓고 잠시 앉았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선선함이 있었지만, 이내 엉덩이를 들고 고추를 따러 가야 했다. 물론 번개 아이템이나 다이아몬드를 써서 노동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이웃 동네에 물건을 팔고 비싼 값을 받을 수도있다. 실제로 몇만 원을 들여 산 아이템으로 손 안 대고 코 풀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현질’로 시간을 건너뛰는 게 생각보다 쾌감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전전긍긍의 재미’마저 사라져버린달까? 나는 ‘이 많은 일들 언제 다 처리하냐’와 ‘이 와중에도 제대로 해내고 말겠어’가 충돌하는 노예형 모범생의 천성을 게임 속에서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마당에, 게임 속 내가 조금이라도 진일보하기 위해선 욕심이라도 충만해야 한다. 더 큰 땅을 일궈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예쁜 옷을 사 입고 패션 대회에 나가겠다는 욕망. 옆동네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재화를 교환하겠다는 의지. 글쎄…. 내가?

이 마감을 끝내면 어서 소젖을 짜러 가야한다. 옆으로 누워 기력을 잃은 돼지를 위해 옥수수, 양배추, 밀을 배합에 사료도 만들어야 한다. 진짜 나의 일상이 판타지처럼 극적이라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가 있는 기분이 드는 이 게임에 되려 빠져들지 모르겠지만, 애증 정도만으로도 이 게임을 현상 유지할 동력은 충분하다. 이걸 쓰는 순간 1시간 2분이 걸리는 조개구이가 완성되었다는 알림이 들어왔다. 이걸 빨리 꺼내야 관자구이를 시작할 수 있다.

저 광고 뭘까 하면 모바일 게임 광고다. 휴대전화를 가로로 들었다 하면 여지없이 모바일 게임이다. 에디터가 하루의 한 뭉텅이를 잘라내 한 달간 모바일 게임에 몰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에디터
    손기은
    일러스트레이터
    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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