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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셀비지 데님의 종말

2017.10.24GQ

미국산 셀비지 데님을 만들던 콘 밀스의 화이트 오크 공장이 문을 닫는다.

리바이스의 501은 청바지의 시작이자 상징 같은 존재다. 그리고 이 바지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데님을 만드는 곳이 바로 텍스타일 회사 콘 밀스의 화이트 오크 공장이었다.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의 그린스보로에 있는 화이트 오크 공장은 데님 전문 공장으로 1905년 문을 열었다. 이 공장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설비에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오픈 3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님을 생산하는 곳이 됐다.

리바이스는 1915년부터 콘 밀스의 화이트 오크 공장에서 나온 데님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922년 드디어 콘 밀스 데님으로 일원화했다. 이후 청바지는 광부와 카우보이의 작업복에서 젊음과 반항의 패션 아이템으로, 그리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복으로 성장했다.

큰 변화가 찾아온 건 1980년대다. 캘빈 클라인을 중심으로 부드러운 데님에 슬림한 핏, 페이딩이 된 청바지들이 크게 유행했고 리바이스도 수요에 맞춰 제품과 생산 라인을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오크 공장의 기계들은 80년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느리고 다루기도 까다로웠고, 그 기계가 만드는 셀비지 데님의 표면은 불규칙하고 거칠었다. 결국 화이트 오크 공장은 구형 데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리바이스 501의 셀비지 시대도 끝이 났다.

하지만 청바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입어온 많은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 옷이다. 새로 구입한 청바지의 색과 촉감, 페이딩 방식이 예전과 다르고 어딘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청바지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특성, 즉 불규칙한 원단과 거친 질감이 없어진 거다. 그들은 그 이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청바지 고유의 투박한 매력을 살린 레플리카 청바지가 등장했다.

프랑스와 일본 등에서 시작된 레플리카 청바지의 입지 사정은 일본 쪽이 더 좋았다. 일본에는 오랫동안 면화 생산을 해온 오카야마가 있었고 근처에 방직 공장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오사카에 둥지를 튼 청바지 브랜드들과 함께 구형 기계를 다루던 사람들을 다시 모아 셀비지 데님을 생산했고 이렇게 해서 카이하라, 쿠라보, 람푸야 등의 일본산 셀비지가 나오게 되었다.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레플리카 청바지는 이후 빈티지 방식으로 만든 오리지널 청바지로 나아갔고 어느덧 일본산 셀비지는 좋은 품질의 청바지를 만드는 데 있어 필수 재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바느질 방식, 사용하는 실, 버튼과 리벳 등을 만드는 방식 등도 하나의 표준이 됐다. 미국에서 시작된 미국의 옷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일본이 되어 버린 거다.

이에 대응해 리바이스도 복각 브랜드인 LVC를 런칭했고 화이트 오크 공장도 구형 기계로 다시 셀비지 데님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비록 화이트 오크 공장에서 다시 만들기 시작한 셀비지 데님이 과거에 생산했던 데님은커녕 일본산 셀비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미국산(Made in USA)’ 원조 데님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콘 밀스는 개인 업자들에게 원단을 소규모로도 판매했기 때문에 텔라슨, 3식스틴, 로그 테리토리, 노먼 러셀 등등 크고 작은 많은 브랜드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집에서 혼자 재봉틀로 만드는 핸드 크래프트 청바지, 모든 재료를 근처에서 수급한다는 라리 같은 로컬 청바지도 화이트 오크의 셀비지 데님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드레이퍼 X-3 셔틀 방직기로 만드는 화이트 오크의 셀비지 데님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콘 밀스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화이트 오크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콘 밀스의 셀비지 데님은 일본과 이탈리아, 터키 그리고 중국 등등에 밀려 매출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이제 미국산 셀비지 데님은 만나보기 힘들 듯하다. 제대로 만든 청바지를 만들고 싶다면 이제 미국이 아니라 일본의 오카야마를 찾아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

    에디터
    글 / 박세진(<패션 vs. 패션> 저자)
    사진
    트위터 @LEVIS, 인스타그램 @conede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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