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속 미래의 가능성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에 머무르지 않는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언서가 지금 열린다.

2016년 가을 아침, 부다페스트의 휑덩그렁한 방음 스튜디오에서 해리슨 포드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아주 중요한 조우의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회색 버튼다운 셔츠에 짙은 색 진을 입었고 그만의 찡그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30년도 더 지나 릭 데커드 역을 다시 맡았다.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술을 들이키는, 리들리 감독이 1982년에 발표한 <블레이드 러너>의 바로 그 경찰.

올해 일흔다섯 살인 그는 요 몇 년간 촬영 현장에서 이런저런 부상을 입었다. 돌이켜보면 밀레니엄 팰콘이 다리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의 무덤 같은 데커드의 아파트 공간을 달리며 그는 조금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늑대를 닮은 개가 함께 뛰고 있는 가운데, 어깨를 힘차게 들썩였다. 오늘의 장면에서 데커드는 K라는 이름의 특수 요원(라이언 고슬링)과 맞닥뜨린다. K는 조직적이다 못해 로봇 같은 움직임으로 데커드의 아파트 대리석 벽을 부수고 들어왔다. 벽 부수기로 유명한 광고 속의 쿨에이드맨보다 더 날씬하고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고슬링이 벽을 부수고 들어올 때마다 번번이 개가 놀라 카메라 밖으로 도망쳤고, 프랑스계 캐나다인 감독 드니 빌뇌브는 “컷!”을 외쳤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줄거리는 <스타 워즈>의 재촬영에나 딸려올 법한 보안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K가 왜 멀쩡한 문을 놔두고 벽을 부수고 들어오는지 정확히 헤아리기 어렵다. (이 촬영장의 취재 승인을 얻는 데는 전편에 등장하는 보이트 캄프 테스트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이 촬영장에 들어온 미국인 저널리스트는 내가 유일했다.) 어쨌든 밝힐 수 있는몇 가지 세부사항은 있다. 2019년의 로스앤젤리스에서는 데커드가 두들겨 맞아 멍든 채로 끝났다. 2049년에는 그런 데커드를 고슬링이 소속된 로스앤젤리스 경찰이 추적 중이다.(아마도 로빈 라이트가 연기하는 K의 상관이 명령을 내렸겠지만 영화 관계자 중 아무도 확답을 주지 않았다.) 새로운 리플리컨트(영화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도 등장한다. 정체가 불분명한 발명가 월리스(자레드 레토)가 심복인 러브(실비아 훅스)의 도움을 받아 제작했다. 아무리 공손하게 묻고 또 물어도 제작팀이 말해준 정보는 이게 전부다. “제가 연기를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인지조차 모르겠다니까요.” 고슬링이 웃으면서 말했다.

포드가 세트를 거듭 뛰어다니고 고슬링이 계속해서 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가운데 빌뇌브는 촬영을 위해 지어놓은 아파트 밖에 서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는 걸 알려주는 헝클어진 머리 차림이었다. 촬영에 만족하면 그는 진한 퀘벡 주의 억양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아아아주’를 세 번, 이를테면 ‘아아아주, 아아아주, 아아아주 좋아요’라고 말하면 촬영에 만족한다는 의미예요”라고 고슬링은 말했다.) 마침내 개가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추자 빌뇌브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행복한 듯 끄덕였다 “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 좋아.”

배우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지 않는다면 껌을 씹고 턱수염을 냉정하게 쓰다듬는 등 차분한 감독이지만, 빌뇌브는 한참 동안 이 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장면에 신경써왔다. 그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액션 장면이 너무 시끄럽거나 대담하지 않기를,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마블 영화 같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에 “<블레이드 러너>와 최대한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요. 더 단순하고 참혹한 액션이죠”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전편이 큰 인기를 누렸고 관객이 오염과 부패로 얼룩진 이 근미래의 풍경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몰렸다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았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할리우드에서 굉장히 드문 속편이 될 것이다. 처음 나왔을 때 인기를 얻기는커녕 이해조차 받지 못한 영화의 속편을 1천7백 억이나 들여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과정을 더더욱 헤아리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10월에, 35년 만에 개봉하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심지어 전편보다도 더 어두운 미래관을 보여줄 거라고 장담한다는 사실이다. 1982년 발표 당시 관람객은 물론 비평가들의 혹평을 이끌어냈던 디스토피아적 미래주의 펑크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킬 예정이다. 전편이 그려낸 광경을 이해하는데 이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다면, 훨씬 더 악화된 상황을 그리는 빌뇌브의 신작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과거에 집착하지 않노라고, 리들리 스콧은 몇번이나 강조했다. 드디어 <블레이드 러너>가 제대로 평가받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그저 삐딱한 눈빛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상관 안 해요”라고 답한다. 잠깐, 정말입니까? “그럼요, 상관 안 한다니까요. 2주일 뒤 로마에서 촬영에 들어가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노란색 연무에 뒤덮인 고층 건물,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는 엘리스 프레슬리,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바다까지, 아무도 믿지 않을 것들을 보았다. 그 모두는 빗속에서 흘리는 눈물처럼 모두 곧 사라져 버렸다. 한편 오리지널 블레이드 러너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는 광경도 목도했다.

올해 일흔아홉 살인 스콧은 지난 40년 동안 가장 선구적인 공상과학영화 감독이었다. 어느 봄날 로스앤젤리스에서 그는,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셔츠와 바지 차림으로 소파의 한쪽 끝에 앉아 친근하고도 활동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취재를 얼른 해치웁시다’라는 분위기는 내비쳤지만. 그리고 비록 과거를 돌아보고 싶지 않다고 말은 했지만, 그는 제작의 어려움 속에서도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온 장본인이다. 성난 자본가, 지친 제작진, 힘을 빼는 끝없는 제작 지연 등의 불행한 일화가 끝도 없어, 세 시간 반짜리 다큐멘터리는 물론 책 한 권도 꽉 채울 수 있을 지경이다.

영화 밖 전설은 1977년에 시작됐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배우 햄프턴 팬처가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 꾸는가?>의 영화화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안드로이드를 추적하다가 역시나 안드로이드인 레이첼과 사랑에 빠지는 형사 데커드의 이야기를 다루는, 충격적인 발상으로 가득한 데다 편집증을 부추기는 소설이었다. 영화가 재현했듯, 인간이 원치 않는 과업을 맡기기 위해 엄청난 재력의 기업이 개발한 안드로이드가 그 중심이다. 윌리엄 S. 버로우스의 고전에서 ‘블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을 따오고 우주 배경 유령의 집 같은 영화 <에이리언>을 막 흥행시킨 스콧과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길고 살벌한 과정을 거쳐 2019년의 생명을 개념화하는 시도가 담긴 초고를 썼다. “공상과학물은 아주 특별한 공연장이에요.” 스콧이 말한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극장이며 상자죠. 하지만 손을 대기 전에 가이드 라인과 규칙을 정해놓아야 해요. 안 그러면 나중에 말이 안 되거든요.”

팬처와 각본의 방향을 놓고 수많은 갈등을 겪은 뒤, 스콧은 (이후 <용서받지 못한 자>와 의 각본을 쓴) 데이비드 피플즈에게 마무리를 요청한다. 1981년 포드를 데커드 역에, 숀 영을 레이첼 역에 기용해 드디어 촬영에 돌입하지만, 영국인인 스콧은 미국인 촬영진은 물론, 소문에 따르면 포드와도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2007년의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댄저러스 데이즈>에서 한 프로듀서는 끊임 없는 촬영 지연에 포드가 “성질을 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콧은 소문만큼 그와 포드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부정한다. “아, 우리 둘 사이는 괜찮았다니까요! 촬영 기간 동안 포드와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곤 했어요.”

1982년 6월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했지만 포드의 <스타워즈> 파워와 스콧의 <에이리언>이 빚은 공신력으로도 이 영화를 흥행시킬 수는 없었다. 햇빛도 고요함도 없는, 칙칙하고 재미없는 미래와 문자 그대로 눈알이 튀어나오는 폭력이 넘쳐나는 장면에 대부분의 관람객은 <블레이드 러너>를 외면했다. 대신 둥근 달이 매혹적인 < E.T. >나 <스타트렉 2‐칸의 분노>를 여름 흥행작으로 선택했다.(개봉 주에 블레이드 러너는 고작 6백15만 달러를 벌어들여, 이미 한달 가까이 상영 중이었던 <록키 3>를 간신히 앞질렀다.) 심지어 영화를 본 사람들조차 영화 속 미래에 학을 뗐다. “모두 멋진 우주복을 입고 반짝이는 우주선을 타며 섹시함을 과시하는 <플래시 고든> 같은 영화는 아니었으니까요”라고 미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미치오 카쿠가 설명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류는 부적응자 이고 로봇은 악행을 저지르죠. 그 설정에 관객이 충격을 받은 거예요.”

당시 발표된 다른 공상과학물과 달리 <블레이드 러너>는 비교적 근미래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충격이 더 컸다. 스타트렉이나 에이리언 시리즈처럼 몇 세기 뒤에 벌어지는 우주 탐사나 모험도 아니고, 관객이 생애에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미국의 현실 가운데 한 갈래를 지구를 배경으로 다룬 작품이었다.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기술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따라서 미래는 더더욱 실감났으며 결과적으로 더 무서웠다. “오랫동안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 영화예요”라고 십대 시절 캐나다의 고향집에서 전편을 본 고슬링이 말한다. “너무나도 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미래니까요.”

개봉 직후 영화는 빠르게 자취를 감췄지만, 스콧은 영화관 개봉 이후 다시 주목받는 일각수처럼 드문 상황에 딱히 놀라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얼마나 특별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어요.” 개봉 후 몇 년 뒤 팬처가 뉴욕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발을 들였을 때, 점원이 그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블레이드 러너> 팬클럽이 있어요! 35mm 영사본을 사서 매달 새로운 장소를 대관해 상영회를 열죠’라고 말해줬어요.”

늦은 밤의 상영, 가정용 비디오 발매와 함께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 세계에 매혹되었다. 숨 막힐 것 같은 도시 환경, 상처 받은 영혼의 룻거 하우어가 빗속에서 흩뿌리는 대사들. 그가 맡은 리플리컨트 악당 로이배티는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삶에 슬퍼하면서 말한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믿지도 못할 것들을 보았지….” 그리고 직설적이지 않은 영화의 스토리텔링과 흐릿한 장르의 경계로, <블레이드 러너>는 볼 때마다 다른 영화 같다는 인상을 준다. 탐정 영화 같기도, 액션 영화 같기도, 심지어 애정물 같기도 한 데다가 세 장르의 분위기를 동시에 풍긴다. “저는 인간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애정물로 봤죠”라고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처음 영화를 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출연자 훅스는 말한다. “그리고 삶의 주권을 찾으려는 이야기로도 보았고요.”

“공상과학의 힘이라면, 살아보지 않고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죠.” 라이언 고슬링

바글거리는 시가지, 혼돈한 문화가 빼곡한 스카이라인, 잠재적으로 해로운 신기술을 한데 아우르는 스콧의 ‘테크노 누아르 이야기’는 새 세대 감독들에게 <블레이드 러너>처럼 보이는, 세련되고 근엄한 미래의 비전을 그리도록 자극했다. 그 가운데 대다수는 실제로 <블레이드 러너>처럼 보였다. 그 축축한 미학을 <매트릭스>, <카우보이 비밥>, <아키라>, <제5원소> 등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한편 <바이오쇼크>나 <퍼펙트 다크> 같은 비디오 게임의 시각 언어 또한 상당부분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차용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처음에는 <블레이드 러너>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놀랐죠. 하지만 비가 내리는 장면을 계속 보자 짜증이 났어요”라고 스콧은 말한다.

위대한 공상과학물은 다른 공상과학물을 통해 복제될 수밖에 없다. <스타워즈>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를 거치며 싸구려 엉터리 우주 이야기를 낳았다. <터미네이터>는 비디오 대여점 한 쪽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로봇 킬러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에이리언>은 배에 침투하는 괴물로 가득한 은하계 탄생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영향 뿐만 아니라 혜안 때문에 더 독보적이다. 홍콩의 국제무역센터 건물이나 막 완공된 로스앤젤레스 소재 윌셔 그랜드 타워의 빛나는 첨탑을, 맨해튼이나 도쿄의 중심가를, LED가 빛나는 비행선의 화면이나 하늘을 점령한 광고에 둘러싸인 풍경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우리가 집단적으로 ‘미래’라 여기는 개념을 자극하는 것들이고, 이 모든 디자인에서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을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블레이드 러너>는 세계의 면모와 우리의 시각을 바꿔 놓았죠”라고 윌리엄 깁슨은 말한다. 사이버 펑크의 대부인 이 소설가가 <블레이드 러너> 관람 도중 충격을 받고 상영관을 나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내 첫 소설이 담으려던 분위기를 떠다 놓은 듯한 시각적 요소에 놀랐어요.” 그 소설은 해커의 교과서 <뉴로맨서>다. 십년이 지나서야 그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그 영향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정한 고전이죠”라고 그는 오늘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 미래에 대한 문화적, 시각적 견본이 되었어요.”

<블레이드 러너>에서 아직도 가시지 않는 의문은 바로 데커드의 정체다. 그는 과연 리플리컨트였을까? 영화의 개봉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논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동안 스콧이 장면을 더해 원래 가졌던 시각을 다듬고 규명한 감독판이 이를 부추겨왔다. (‘맞다, 데커드는 레플리컨트다. 아마도’ 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점점 더 복잡해지는 존재론적 문제다. 인간을 인간이라 규정하는 가장 독특한 요소 또한 사실은 복제 가능한 데이터일 수 있다. 스스로의 기억에 관한 믿음조차도 말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모호한 영화죠. 데커드는 리플리컨트일까요 아닐까요? 그리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요?”라고 로봇 공학과 인공 지능에 대한 작품을 활발하게 써온 공상과학 소설가 매들린 애시비는 말한다. “인간의 정체성, 존재의 의미, 의미를 부여하는 기억에 따라 다르겠죠”라고 포드가 덧붙인다. “인간의 탄생, 혹은 제작에 대해 확고한 지식을 가진 이가 존재합니까?”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 덕분에 <블레이드 러너>는 따돌림을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바로 그 때문에 스콧은 오랫동안 전설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기를 바라왔다.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했죠”라고 그는 말한다.

2011년 초의 어느 밤, 1979년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에이리언 시리즈 영화인 <프로메테우스>의 촬영을 앞두고 있던 스콧은 프로듀서인 브로데릭 존슨, 앤드류 코소브와 함께 런던에서 세 시간 반짜리 식사 모임을 가진다. <블라인드 사이드>, <일라이>, <돌핀 테일> 같은 흥행작을 막 내놓은 그 둘의 회사 알콘 컴퍼니는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의 제작 권리를 손에 넣으려 일 년 동안 조용히 시도했다. 전편의 감독 또한 속편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있었을까? “‘이 자리를 35년 동안 기다려왔어요’라고 리들리는 말했죠.” 코소브는 회상한다.

얼마 뒤 브루클린 아파트에서 팬처는 전화를 받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었다. 둘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지만,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 프랜차이즈를 위해 팬처가 런던으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의향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 당신 드디어 바닥을 쳤구만”이라고 팬처가 그의 옛 싸움 상대에게 말을 던졌다. “그러자 스콧이 웃었습니다.” 운이 따르려니 팬처는 마침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K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단편을 쓰던 중이었다. 그 단편이 결국 트리트먼트에서 짧은 각본으로 승화해, 당시 주로 TV 작품으로 유명해진 각본가 마이클 그린에게 넘겨졌다. 마무리된 각본은 완전히 특급 비밀이라 마약 동물원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팬처가 즐겨 이야기하는, LSD를 흡입한 뒤 동물원에서 고릴라를 쳐다본 일화다. 각본의 초기 단계에서조차 스콧과 팬처는 K 요원 역으로 고슬링을 낙점해두었으며, 포드에게도 이 영화를 상기시키기 위해 각본 진전 상황을 공유했다. 2015년 인터뷰에서, 스콧은 처음 <블레이드 러너 2049> 이야길 꺼냈을 때 포드의 반응을 떠올렸다. “별론데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기억이 없는데요”라고 포드는 말한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기 전에 이야기를 꺼내서 기억 못 할 수도 있죠. 각본을 보고는 수긍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참여한 모두가 좀 걱정했어요.” 그린이 말했다. 그는 2017년 한 해 동안 <블레이드 러너 2049>뿐만 아니라 <로건>, <아메리칸 갓>, <에이리언: 커버넌트>,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까지 네 편의 큰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속편이라면 제대로 만들어야겠죠. 불이나 성냥을 가지고 장난치는 정도가 아니고요, 마당에서 M‐장갑차를 가지고 장난치는데 이미 엄지손가락은 날아간 상황인 거죠.”

그러던 가운데 제동이 걸렸다. 2014년, 다른 영화들 때문에 스콧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맡을 수 없었다. 수석 프로듀서가 된 그를 대신하기 위해 존슨과 코소브는 빌뇌브에게 연락했다. 당시만 해도 빌뇌브는 ‘유명 감독’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지 화면을 따로 저장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속이 미어질 만큼 비극적인 영화를 지난 십여 년간 끈질기게 만들어왔다. 2010년, 그해 가장 충격적이었던 드라마 <그을린 사랑>, 2013년의 납치 아동극 <프리즈너스>, 2015년의 거의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반 약물 전쟁 스릴러 <시카리오> 등. 폭력이라는 병원균이 인체 혹은 세계사로 파고들어 끔찍한 장기 영향을 미치고, 특히 그 대상이 되는 인물이 지속적으로 그 영향에 시달리는 작품들이었다.

“인간의 탄생, 혹은 제작에 대해 확고한 지식을 가진 이가 존재합니까?” 해리슨 포드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후보였던 흥행작 <컨택트>(문어 같은 외계인과 소통하는 언어학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빌뇌브는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공상과학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했다. <프리즈너스>를 제작한 코소브는 그 양면성이 <블레이드 러너 2049>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믿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언제나 공상과학 영화에 포함되지만 사실 누아르라고 생각해요.” 그가 말을 잇는다. “<프리즈너스>나 <시카리오>를 보면 빌뇌브보다 누아르를 잘 다루는 감독은 없죠.”

하지만 빌뇌브에게는 영화를 맡지 않을 몇몇 (완벽하게 인간적인) 핑계가 있었다. <시카리오>를 막 끝내고 <컨택트>의 촬영에 돌입하기 직전이었으므로 다른 영화를 금세 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가운데 하나인 <블레이드 러너>의 복잡한 세계를 끌어오는 건 “지독하게 나쁜 시도”가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제작자가 다른 영화에 맞춰 조정한 일정을 제안하자 위기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라면 저에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어야 맡는다’고 제게 말했죠.” 코소보는 회상한다.

나중에 스콧에게 그가 사랑하는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을 빌뇌브가 맡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했는지 물었다. “아뇨, 그렇지 않았어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요? “그래요. 하지만 내가 감독을 맡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니 방해만 되는 상황이고, 드니가 이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봐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영화가 나와 봐야 알겠습니다만”이라는 알듯 모를 듯한 말도 덧붙였다.

제작은 2016년 여름 부다페스트에서 시작해 거의 100일이 걸렸다. 캠퍼스 규모의 세트 10군데를 전부 쓰는 촬영이었다. 포드가 “빌어먹을 짓”이었다고 묘사해 뉴스거리가 된 전편의 제작과 달리, 빌뇌브의 현장은 신속하고도 분쟁 없이 돌아갔다. 적어도 직접 취재한 기간엔 그랬다. 고슬링이 개를 엄청나게 놀래킨 장면의 촬영에서조차도 포드는 정말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글쎄요, 그렇게 보였다면 아마도 정말 즐겼을 거예요”라고 그는 여전히 믿음직하고 멋있는, 채석장에서 돌 캐는 소리보다 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즐기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 쓴 적은 없으니까요.”

녹색 배경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입히는 꼼수 없이 전편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몇백만 달러 단위의 비용을 썼다. “천편일률적인 단순 작업 탓에 대부분의 공상과학 영화가 다 똑같아 보여요”라고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설명한다. “우리는 간절히 우리만의 세계를 창조해내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데커드의 아파트 창문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밖으로 보이는 안개 낀 고층 건물이 무대를 둘러싼 삽화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이에는 라스베이거스 분위기의 거대한 나이트클럽이 있고, 깃털로 치장한 쇼걸과 얼음에 재워둔 샴페인 병에 둘러싸여 날씬한 시절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흥얼거린다. 바깥에는 녹슨 대들보와 기름통이 작은 산처럼 쌓인 넓은 공터와 촬영진이 ‘스피너’ 몇 대를 호스로 씻어내리는 창고가 있다. 전편에서 데커드의 교통수단이었으며 속편에서 진화한, 곤충처럼 생긴 경찰차. “영화에 등장하는 차량은 윤곽이 뚜렷하고 각졌으며 섬해 보이도록 설정했어요”라고 스피너의 새로운 디자인을 굽어본 프로덕션 디자이너 데니스 개스너가 설명했다. 전편에 비해 환경은 물론 스타일 면에서도 더욱 거친 세상이니까요.”

빌뇌브의 전작에서는 바로 그 거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감독 자신조차 근원은 잘 모른다. 우연일지라도 영화는 일종의 패턴을 보여줄 수 있는데, 그에 대해 빌뇌브는 “저라는 사람과 분명히 관련이 있겠죠”라고 말한다. 아마도 “세상 속에서 충격적인 일을 겪는 ‘너드’가 바로 저라는 사람이니까요”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그는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그리는 우울한 미래에 빠져들었다.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의 희망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더 가까운 미래. 데커드가 <블레이드 러너>에서 쓰는 원시적인 영상전화기는 곧바로 현재의 페이스타임과 연결지을 수 있다. 인공 뱀이나 부엉이, 연구실에서 개량된 쥐, 전 세계로 퍼진 전투용 리플리컨트 혹은 군사용 로봇도 마찬가지다. 사실 전편은 가까운 미래의 초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의 끔찍한 삶에 대한 경고 또한 던졌다.

“제 삶에서 겪었던 유일한 폭력이라면 겨울일 거예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촬영이 끝나고 몇 달 뒤의 여름 오후, 큐브릭의 분위기를 풍기는 흰색의 로스앤젤레스 소재 소니 스튜디오 사무실에서 빌뇌브는 말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창문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어린 시절 겪은 혹독한 겨울을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예닐곱달 동안 눈이 내리면 퀘벡 교외의, 부엌 창문 너머 핵발전소가 보이는 부모님의 집에 처박혀 있었다. “날씨 덕분에 <블레이드 러너 2049>에 필요했던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어요.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전제를 잡고 새로운 로스앤젤레스를 세웠죠.”

가까이의 편집실에서 빌뇌브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을 잠깐 보여주는 뜻밖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피범벅이 된 K가 빼곡히 들어찬 저층 주택가를 지나 어렴풋이 보이는 로스앤젤레스 경찰청으로 향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경찰청에서 흰 방에 앉아 처음 보는 실세로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심문을 받은 뒤 눈 쌓인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들른다. 비록 화면이 작았지만 장면의 몰입감이 강하고 우아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영락없는 <블레이드 러너>였다.

“공상과학물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극장이며 상자죠. 하지만 손을 대기 전에 가이드라인과 규칙을 정해 놓아야 해요.” 리들리 스콧

생태계의 문제는 동물이 멸종되는 등, 전편의 설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경고는, 팬처의 말을 빌리자면 “관객들이 들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속삭임 수준”이다. 2049년의 로스엔젤레스는 갈수록 높아지는 해수면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거대한 장벽 ‘세풀베다’에 둘러싸여 있다. 가뭄부터 산불, 그리고 방파제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란까지,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지금 및 여기의 현실과 너무 가까워 보인다. 너무 가까운 나머지 가벼운 손길과는 거리가 먼 평판의 감독이 그리는 종말 직전 세계의 드라마를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회의적일 정도다.

게다가 영화가 개봉하는 2017년에는 무서운 일이 많았다. (물론 당신이 느끼는 것은 정반대일 수 있다.) 발달한 인공 지능, 유전 공학은 더 이상 순수한 허구가 아니다. 속편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기술을 중심에 놓고 다룬다. 한때 먼 훗날의 이야기 같았던 디스토피아에 매일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다. 빌뇌브의 속편이 그저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모험담일 수 없다는 의미다. 진짜 인류가 직면 할 수 있는 미래의 어두운 버전이다. “진짜 멀지
않았죠”라고 팬처는 그와 스콧, 그리고 필립 K.딕이 오래전에 그려낸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플리컨트는 분명히 등장할 겁니다.”

물론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전편의 실패를 겪지 않고 바로 성공할 만큼은 가까워졌다. 훌륭한 공상과학 작품은 언제나 현재에 대한 걱정을 상기시키는 미래의 풍경을 그려내며, 1982년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악몽과 같은 미래는 이제 갈수록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논쟁의 대상이다. 오늘날의 미국인은 1982년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수준으로 <블레이드 러너> 세계의 핵심에 자리 잡은 채 존재론적 고민에 깊이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더욱 심화된 <블레이드 러너 2049> 속 디스토피아는 전편과 달리 굉장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공상과학의 힘과 긍정적인 역할은, 살지 않고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죠.” 고슬링이 지혜로운 말을 덧붙였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혹성탈출: 종의 전쟁>, <로건> 등의 공상과학 블록버스터의 뒤를 이어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플래시 고든>이 그린 빛나는 운명은 신기
루였다는 확신이 더욱 가까워 보인다. 요즘의 인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즐기는 것 같고, 부분적으로 그와 비교하면 현재의 삶이 무료하기 때문일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배티의 대사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은 공상과학물 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나 굉장한 경험이다. 첫번째 영화와 마찬가지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보여주면서 우리가 믿고 싶지 않아 하는 것들을 마주보게 할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비인간적으로 보일지라도.

“날씨 덕분에 <블레이드 러너 2049>에 필요했던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어요.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전제를 잡고 새로운 로스앤젤레스를 세웠죠.” 드니 빌뇌브

 

2049의 장비 사전 소품 및 장비 전문가인 덕 하로커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드니 개스너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자동차, 총, 손톱 손질 도구에 대해 알려준다.

작살총 블레이드 러너 세계의 외곽에 사는 무법 약탈자들은 남의 물건을 가로채기 위해 작살 총을 쓴다. 고래잡이 작살의 영향을 받았지만 의도적으로 스팀펑크 분위기를 불어넣었노라고, 하로커는 말한다. “고물을 주워 무기를 만들어 쓰는 약탈자의 문화를 그리기 위해서죠. 많은 미래지향적인 영화에서 기술은 디지털의 혜택을 입어 발전하고 컴퓨터를 기반으로 삼지만 우리는 아날로그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K 요원의 블라스터 건 하로커는 전편에서 데커드가 쓴 겹총신의 디자인을 그대로 두면서 조금 다듬어 단발총으로 만들었다. 질감과 배기구, 윗면의 활척을 더했다.

 

스피너 2.0 세 바퀴 달린 비행 자동차는 미래적인 융합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신기술이죠”라고 개스너는 설명한다. “2049년에는 자동차를 굴릴 만한 화석연료나 태양열이 충분하지 않거든요.”

 

로스앤젤레스 경찰의 수갑 하로커와 그의 팀은 몇 가지 색을 시도한 뒤 현재의 노란색에 정착했다. “거칠고 창백한 경찰서에서는 노란색이 눈에 잘 띄니 범죄자를 구별하기가 쉽죠.”

 

데커드의 쌍안경 몇 킬로미터 떨어진 대상도 포착할 수 있는 현재의 군용 거리계를 작게 만든 뒤 빨간색으로 칠하고 적외선 야시경과 열 화상 측정 기능을 붙였다.

 

손톱 손질 세트 명목상으로는 (엄청난) 손톱 손질 세트로, 로봇이 수리하는 설정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 손톱 손질가(또는 로보터 기술자)는 광섬유 조명 덕분에, 레이저 칼을 움직여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작은 대상까지 손질한다.

 

기억의 구슬 이 구슬은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보이트 캄프 테스트 결과도 포함).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의 뇌처럼 기억력이 감퇴한다. “구슬이 오래되면 정보가 희미해지면서 읽기가 어려워집니다”라고 하로커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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