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남자도 예민해져야 한다

“생리 중에 섹스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단지 그 하나의 답으로 끝나선 안 되는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 “너 지금 생리하냐?”는 질문이 아니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라는 토로다. 생리와 예민함을 등가로 두고 말하는 것인데, 사실 생리에 대해 아는 한국 남자는 ‘예민’을 한자로 쓸 수 있는 한국 남자보다 적을 것이다. 성교육 시간에 들은 월경 주기나 외우고 있을까.

의학용어로 등재된 단어는 ‘월경’이지만 달마다 반복되는 여성의 생리 현상으로서, 생리라는 표현이 관용적으로 더 자주 쓰인다. 임신 시 태반을 받치기 위해 자궁 내벽이 두꺼워졌다가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궁 속막이 벗겨지면서 혈액과 조직, 난자가 자궁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보통 사춘기에 시작해 평균 28일의 간격으로 4~6일간 지속되는 과정이 50세 전후까지 반복된다.

하지만 “2차 성징 이후 남자의 얼굴과 목 주변에 나는 털”이라는 수염에 대한 설명이 어떤 남자는 매일 면도해야 하고 어떤 남자는 평생 면도라고는 모르고 사는 것을 말해주지 않듯이 생리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리는 개별적이다. 다만 수염은 관리하거나 극복할 수 있지만 생리는 그럴 수 없으며, 수염은 온전히 자신에게 한정된 문제지만 생리는 관계의 문제로 비약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평생 생리통이라고는 모르고 지낸 여자 A는 말했다. “그래서 생리 중에 섹스하는 게 별로 문제가 안 돼.” 단지 수건을 깔거나 침대 시트를 바꿔야 하는 “귀찮은 문제”일 뿐이라고. 오히려 문제는 남자의 태도였다. 피를 보고 기겁을 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었다. “나 여기서 못 잘 것 같아”라고 말하고 도망간 남자도 있었다. 상대의 반응이 워낙 격렬하다 보니 왠지 위축되고 미안해졌는데. 이게 미안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A는 되물었다.

여자는 피와 함께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건이나 사고라기보다 재채기에 가깝다. 보는 입장에서는 괴상하고 끔찍해 보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겐 사소하고 뜬금없지만 저항할 수 없는 일이다. 여자 B는 몇 달에 걸쳐 생리불순을 겪은 적도 있고 한 달 내내 생리한 적도 있으며 생리통으로 자주 지독하게 고생하는 쪽인데도, 생리에서 오는 고통보다는 부자유와 불편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생리대의 이물감, 산화된 피와 단백질의 냄새, 어디를 가든 따라오는 혈액 양과 옷에 대한 걱정, 언젠가 생겼던 외음부의 발진 등등이 그를 괴롭힌다. 여자 B는 생리가 끝난 직후에만 관계를 가진다고 말했다.

생리 중에 섹스한 경험 중 열에 아홉도 그렇다. 콘돔을 안 하고 피임 걱정도 없이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남녀가 평화롭게 합의 볼 수 있는 시기다. 여자 B 역시 같은 이유로 생리가 끝난 직후 가지는 관계는 편안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리가 그렇듯 그 제약(없는 상황)이 중요한 것이지 그때 더욱 특별한 쾌락을 느낀 적은 없다. 꽤 난감한 경험도 있었다.

생리가 끝난 줄 알고 섹스를 시작했는데 곧바로 피가 쏟아졌다. 피가 섞여 나오면서 안쪽이 뻑뻑해졌고, 남자는 피가 나오는 줄도 모른채 열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생채기가 생긴 것 같고, 그곳이 아파왔지만 살살 하자고 돌려서 말해도 남자는 금세 못 들은 것처럼 본래대로 돌아왔다.

생리는 공포영화처럼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끝나는 시점도 그렇지만 쏟아지고 나서야 자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생리에 관한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확실히 생리대 광고 속 산뜻한 이미지보다는 영화 <에이리언>에서 인간을 숙주로 삼는 외계 생명체에 가깝다.

생리가 ‘자연적’이라는 말은 가혹하다. 자연은 인간적인 예의를 갖추기 귀찮을 때 써먹는 말이 아니다. 남자도 예민해져야 한다. ‘예민銳敏’은 날카로울 예와 민첩할 민 자를 쓴다. 남자의 날카롭고 민첩한 감각은 즐길 때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괴롭고 힘들 때도 요구된다. 생리를 이해하는 것은 그를 더욱 잘 이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