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도시는?

언젠가 가서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해 생각했다. 죽기 전에는….

일본 | 삿포로 일본이야 늘 여행하고 싶은 나라지만, 가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땐 잠시 머뭇거렸다. 마음이 저릿하도록 더 간절해져서.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알고 있는 건 건네고 전해 들은 정보가 전부지만, 삿포로가 내게 딱 떨어지는 도시라는 확신이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삿포로 맥주와 해산물은 말할 것도 없고, 니카 위스키 마스코트가 랜드마크로 등극한 도시라니. 게다가 삿포로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가성비’가 프랑스 리옹의 뺨을 후려칠 정도다. 요리의 수준도 프랑스 어디에 견주어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미쉐린 스타를 달고 있는 곳은 물론이고, 골목 안 작디작은 레스토랑까지, 기나긴 코스를 마치고 나면 기본 이상의 감탄을 뿜을 수밖에 없다. 이런 도시에 가서 살려고 그동안 ‘르 꼬르동 블루’ 요리 수업을 들었나? 설레발로 탭댄스를 밟는 기분이지만, 삿포로에서 산다면 프렌치 요리책과 수업 교재를 모두 싸들고 갈 테다. 단 하나 걸리는 점은 추위인데, 진득한 위스키와 귀여운 비니가 있다면 견뎌볼 만할 것 같다. 로얄살루트 30년의 특별 에디션으로 제작된 도자기 플라스크, 믿어도 좋을 만큼 따뜻한 파타고니아의 비니를 꼭 챙겨 가겠다. 손기은

 

자메이카 | 킹스턴 어려서부터 총소리 나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다녀서 뛰어난 육상 선수가 많다는 농담이 다큐멘터리 <자메이카 선수들은 왜 빠른가>에 등장한다. 목숨을 걸고 킹스턴에 가고 싶지도 않고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갈 수 없었고 가지 않았더라도 살아본 것처럼 내밀한 건 신기한 일이다. 이집트에 가보지 않고 로제타석만으로 상형문자를 해석한 샹폴리옹의 사례는 좀 거창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막이다. 60년대 초~70년대 말 유행한 자메이카의 대중음악을 사랑한다. 가난하지만 긍정적이고 역사적이지만 진보적이었던 그 음악 환경에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 시절 그곳의 공기와 냄새를 맡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게 있다는 말은 사실인데, 왜 그런 류의 얘기는 꼭 나이 든 사람만 입 밖으로 꺼내는지는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갈 수 없었고 가지 않더라도, 자메이카 멋쟁이가 신는 클락스(사진은 자메이카 에디션 발매 기념으로 나온 리틀 존의 ‘Clarks Booty’ 10인치 싱글)를 신고, 라스타파리안 색깔(빨노초)의 카시오 시계를 차며, 잡지 <어른의 과학>에서 부록으로 제공한 (캐리비언 제도의 개량 악기)미니 스틸팬을 조립한다. 정우영

 

스페인 | 코르도바 여기 아닌 어딘가에서 산다면 발밑에 뜨겁고 두터운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 뿌리를 내리면 그곳에 영영 살 수 있을 것만 같이. 하늘이 파랗고 흙이 붉은 안달루시아에서는 올리브 나무가 된 것처럼 단단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거기 가면 루이스 브뉘엘도, 살바도르 달리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도 있을 것만 같다. 초현실주의 그림과 영화, 원초적인 에너지로 들끓고 있는 1920년대 안달루시아를 사랑하지만 그라나다가 아니라 코르도바를 꼽은 이유는 로르카의 시 때문이다. “검은 조랑말, 큰 달/…/길을 알아도 나는 코르도바에 가지 못하리.”(‘기수의 노래’ 중) 시인이 가지 못할 생의 벽지로 품은 코르도바는 로마인과 무어인의 지배를 받아 한때 융성했지만 쇠락한 도시다. 스페인에서 가장 큰 이슬람 모스크를 성당으로 쓸 만큼 긴 역사가 뒤섞인 이 도시에선 지나간 회한도, 생에 대한 의지도 같은 이름이 된다. 이곳에선 할 수 있는 한 가볍고 싶다. 좋은 잠옷, 좋은 향기, 시집 한 권이면 된다. 라펠라의 파자마를 입고, 정향과 계피의 맵고 쌉쌀한 냄새와 단단한 오렌지 풋내가 올라오는 씨흐크루동의 나자레스에 불을 붙인 뒤, 불빛에 의지해 로르카 시집 <강의 백일몽>을 읽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이예지

 

오스트리아 | 인스부르크 보통 지형적으로 오스트리아를 동유럽으로 구분하지만, 서편 끝자락에 있는 인스부르크까지 동유럽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냥 12만 명이 알프스를 끼고 사는 조용한 도시 정도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듯 하다. 애니메이션은 <겨울왕국>, 겨울 스포츠는 인스부르크다. 작은 도시가 동계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했을 정도니까. 매일 아침 무간지옥 같은 출근길과 겨울이면 방구석에서 고구마나 쪄먹던 싱거운 인생을 인스부르크에선 바꿀 수 있으리라고 갈망했다. 딱 세 가지만 챙기면 된다. 같은 맥주라도 수출용은 맛이 다르다는데, 오스트리아의 맥주 에델바이스를 한 병 사간다. 새 인생을 자축하는 의식처럼 현지의 맛과 차이를 느껴본다. 경사가 급한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려면 용기만 필요한 게 아니다. 큰맘 먹고 결정한 이민 생활을 병원에서 하지 않으려면 알피나의 스키 헬멧도 필요하다. 또한 짧은 영어로 우물쭈물대다간 영원히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모국어인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 책상에서 염불 외듯 하는 공부보단 만화책을 보는 게 효과적이었다. 긴 비행 시간을 심심치 않게 해줄 <드래곤볼> 독일어판을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펼치련다.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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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Eat, Drink,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