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바꾼 지방시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새로운 시선으로 지방시를 바꿔놨다. 은밀하고 섬세하게 변한 지방시의 2018년 봄여름 컬렉션.

지방시의 모든 게 달라졌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지방시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면서부터다. 늘 하루의 마지막에 열렸던 지방시 패션쇼는, 이제 그날의 가장 이른 시간표에 이름을 올렸다. 덕분에 지방시 로고가 새겨진 종이컵에 담긴 모닝커피를 대접 받았고 만나는 사람에겐 어제 저녁에 간 레스토랑에 대해 얘기했다. 밤 열 시는 돼야 슬슬 흥이 오르던 지방시 ‘애프터’ 파티는, ‘애프터눈 티’ 파티로 이름을 바꾸고 밤 열 시에 사람들을 맨정신으로 돌려보냈다. 이쯤 되면 달라도 너무 달라진 거다. 사실 지방시의 변화는 이미 이른 가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과의 작업으로 완성한 이미지는 은밀하고 세심한 클레어의 새로운 지방시를 암시했다. 이전의 전투적이고 파워풀한 지방시는 없었다. 그리고 클레어는 2018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그 이미지를 실현했다. 클레어의 여성복은 잘 알지만 남성복은 모르기에 당연히 남자 옷에 대한 우려를 가진 채 쇼를 지켜봤다. 그녀의 첫 지방시 쇼에는 줄리안 무어, 페드로 알모도바르, 루니 마라, 이동욱 등의 셀러브리티들이 초대됐다.

늦게 도착한 케이트 블란쳇이 자리에 앉자 쇼가 시작됐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등장하는 이 쇼에서 클레어는 성별을 초월한 매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파리, 연인, 밀회. 클레어가 외치던 유혹과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요소였다. 실제로 쇼는 남성과 여성의 매력을 적절한 비율로 구성했다. 낮의 여자와 남자가 한 차례 지나고 이번엔 밤의 남자에 이어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등장했다. 지방시에 오자마자 아카이브에 들렀다던 클레어는 위베르 드 지방시가 좋아했던 블랙, 네이비, 화이트 컬러를 주로 사용했다.

여기에 유혹을 위한 컬러인 버밀리온 레드를 더했다. 스포이드에 물감을 넣어 물에 똑 떨어뜨린 듯한 레드 드레스는 매니시한 취향의 여자에게도 매혹적으로 다가왔고, 첫 남자 모델이 입은 빨간 바지는 오히려 단조로워 평상복으로도 추천할 만했다. 남성복에 대한 에디터의 우려는 절도 있게 재단된 어깨선과 호수의 물결처럼 조용하고 유연한 실루엣이 합쳐진 수트로 사라졌다. 과장되지 않은 수트와 호흡을 맞춘 실크 셔츠는 흩날리는 꽃잎처럼 로맨틱했고, 가죽 블루종과 PVC 코트는 비 온 뒤의 아스팔트처럼 거칠게 반짝였다.

1961년 지방시 컬렉션에서 힌트를 얻은 클로버 프린트와 고양이가 할퀸 듯한 형태의 프린트,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입술 프린트는 단조를 장조로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실험적인 액세서리, 잠수함 같은 스니커즈 없이 그렇게 지방시 쇼가 끝났다. 클레어의 쇼를 보고 이전의 지방시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 출발이 좋은 걸까? 아무튼, 아주 많이 달라진 지방시가 이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