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살면 어떨까?

완성된 도시에서 생각해본 좋은 어른.

“여기가 뮌헨이야?” 공항 버스를 탄 지 30분쯤 지났을 때 아내가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 구글 지도로 확인을 하면서도 확신 없이 답했다. 일반적인 유명 도시 여행의 시작은 바다 여행과 별 차이가 없다. 감탄사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창밖으로 바다가 처음 보이는 순간 “와 바다다!”라는 말을 내뱉는 것처럼, 유명 도시들은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도 그곳에 들어 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첫 풍경이 있다. 휑한 풍경을 지나 빠르게 달리다 드문드문 주택가가 보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풍경의 밀도가 높아진다. “와 도쿄다!”, “와 파리다!”, “와 베를린이다!” 하지만 뮌헨은 달랐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도 미심쩍었다. 여기는 버스 터미널이 외곽에 있나? 외곽이라도 중심부는 아직 안 지났나 봐? 10분 전에 멋있어 보이는 IBM 건물을 지나긴 했지만 거긴 분명 시내는 아닌 것 같았는데? 호텔로 가는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고층 건물도, 넓은 도로도, 유럽 특유의 거대하고 오래된 석조 건물 무리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복장도 뭐랄까…, 좋게 말해 얌전해 보이기만 했다. 뮌헨에 간 이유는 좋아하는 선배가 “네가 좋아할 거야”라는 말을 한 것 외에는 없었다. 일단 예약부터 하고 조사하다 조금 지루한 도시가 아닐까 걱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 여행했던 도시들은 모두 흔히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이미지의 도시들이라, 쾌락의 냄새가 없는 느릿한 공기는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뮌헨에 압도당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압도당했던 도시는 도쿄였다. 도시에서 온 사람도 도시를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 처음 도쿄에 갔을 때 마치 고층 빌딩에 익숙지 않은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강렬한 위축감만은 기억하고 있다. 서울 사람은 아니어도 서울에서 살만큼 살았는데… 같은 유치한 생각도 했다. 매일 모든 가게가 닫을 때까지, 더 걷지 못할 때까지 쏘다녔다. 도쿄타워나 신주쿠 공원 같은 곳은 언제나 갈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 찾는 건 뭐든 다 있었고, 조금 더 노력하면 찾던 것보다 더 좋은데 미처 몰랐던 것까지 찾을 수 있었다. 그게 책이든 음반이든 옷이든 소품이든 전자제품이든 식재료든 공간의 콘셉트든 뭐든. 돈은 항상 부족했고 가방은 금방 가득 찼다. 대신 어떤 분야에 마음껏 빠져들어도 고립되거나 허기지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마음만은 편했다. 그런 가게가 잘된다는 건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거니까. 나보다 더한 사람도 여기저기 보이니 탐닉에 대한 죄책감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게 이렇게 흔한 거였어, 라는 데서 오는 허탈함과 자극도 즐거웠다. 이후 좋아했던 모든 도시는 결국 근본적으로 도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재미있고 뭐가 있을지 궁금하고 어떤 종류의 열기가 넘치는 곳. 거기 산다면 뭐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을 주는 곳. 그래서 젊은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곳. 하지만 한 번도 도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혹시 모를까 싶어 늘 숙소는 각 업체에서 조사하는 ‘살고 싶은 도시 랭킹’ 순위 상위권이면서 너무 붐비지는 않는 동네로 잡았다. 산겐자야, 에비스, 나카메구로, 시모키타자와, 후타코타마가와… 역시나 2~3년 정도 머무른다면 모를까 평생을 상상하면 좀 숨이 막혔다.

뮌헨에 압도당한 이유는 도쿄와 정반대였다. 같은 나라 도시 중 베를린과도 정반대였다. 그동안 좋아했던 도시들은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미완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영원히 미완성일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다. 뮌헨은 완성된 도시였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데서 오는 안정감. 공공재들이 고급으로 가득 차면 이렇구나, 라는 데서 오는 낯섦. 어릴 때 듣고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던 것과 가장 비슷한 곳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 셋 다 굉장히 좋은 호텔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도시 전체가 (몇 번 안 가본) 5성급 호텔 같다고 표현하면 좀 천박할까. 뮌헨에선 평소처럼 원하던 물건과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게 어색하게 다가왔다. 초반 며칠 빼고는 지도에 표시해둔 식당들도 가지 않았다. 여기는 아무도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완성되었으니까. 완성된 사람들은 좋아하는 뭔가가 새로 나왔을 때만 찾는다. 남들이 나 같지 않으니 흥이 덜 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아직 그럴 수 있는 도시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게 어떤 상태인지 잘 몰라 어색했을 뿐이다. 그들처럼 공원 잔디밭에 누워 봤다. 불편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연스러움이란 유지하기 가장 힘든 자세다” 같은 말이 떠올랐다. 얼마나 잔디밭에 누워야 저렇게 숙련된 모습을 할 수 있을까. 미완성 도시의 젊은이들처럼 약간 폼을 잡고 눕는 건 어렵지 않은데 말이다. 일어나며, 처음으로 ‘정말 여기 살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도시에서 살면 ‘즐겁게 사는 사람’ 보다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뭐가 좋고 뭐가 맛있고 뭐가 싸고 좋고 어디 집값이 올랐는지 보다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사는가 같은, 지금 한국에서는 더 이상 하기 힘든 생각도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의 재미있는 도시는 흐름이 변하는 게 아니라 정체성이 변한다. 이런 표현도 과분하다. 이름과 공간과 수요만 남고 1회용 도시로 바뀐다. 거기엔 어른도 없고 젊은이도 없다.

그렇다고 뮌헨을 나이 든 사람들이 살기 좋은 한적한 도시로 분류할 수 있냐면 그건 아니다. 기존 대도시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다시 천박하게 5성급 호텔 비유를 하면, 완전함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완전함은 그 자체로 강한 에너지를 갖는다. 이 순환이 압도를 만든다. 대학과 예술학교 주변 학생들은 보호다운 보호를 받아서일까, 덜 찌들어 보였다. 도시의 유명 장소에는 관심이 없지만, 뮌헨에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영국 정원을 가로지르는 이자르강의 아이스바흐 지점에 있는 서핑 구역. 강의 유속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럼 더 빠르게 만들어서 인공 파도를 만든 다음 본격적으로 서핑을 하자’는 생각을 실현하는 건 ‘여름에 에어컨 세게 틀어놓고 두꺼운 이불 덮고 있으면 좋던데 계속 그러고 있자’와 비슷한, 지극히 인간적인 유희라는 점에서 개념적으로 열광했다. 막상 가보니 물살은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물은 깔끔 떠는 사람이라면 안 들어갈 만큼 더러워 보였다. 서퍼들은 정식 서핑복을 입고 줄을 서서 한 사람에 1분 이내로 서핑을 즐기다 알아서 나왔다. 한 사람이 나오면 줄의 다음 사람이 말없이 뛰어든다. ‘수로에서 서핑을 하는 나’에서 올 법한 민망함이나 열등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관광객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척 즐기며 차례를 지키며 원을 그렸다. 실제로 보고서는 ‘어떻게 이런 게 허용이 되지’라는 의아함이 생겼다. 어지간한 도시에서라면 분명 폐쇄되었을 것이다.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집단 행동은 도시에서는 제제 대상이니까. 궁금함에 돌아와 찾아보니 아이스바흐 지점에서는 1972년부터 서핑을 하기 시작했는데 공식적으로 승인이 된 건 2010년부터라고 한다. 무엇에 대한 승인이며 뒤늦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상대로 파도를 없애려는 정부의 움직임과 파도 보존을 지지하는 움직임 사이에서 (온라인) 충돌도 있긴 했다. 어쨌든 무려 40년을 넘긴 놀이고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숙련되고 경험이 풍부한 서퍼만 즐기라”는 경고판을 두는 정도의 조치만 취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위험해서 걱정은 되는데 젊은 애들이 그렇게 좋아하니 일단 둬야지’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조금 감동했다. 그런 어른들을 못 본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다. 아직 없애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걱정은 진짜다. 제제하는 것보다 걱정하며 지켜보는 게 훨씬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데서 살면 나도 그런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뮌헨은 한 번밖에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 배낭여행 1세대처럼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교적 자주 간 도쿄는 언젠가부터 단점이 더 많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살았던 도시들과 비교하면 뭐 때문에 뮌헨에서 살고 싶다고 느꼈는지, 그리고 살았던 도시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분명해진다. 내가 산 곳은 지난 16여 년간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두 지역이다. 홍대 인근과 제주시. 홍대 인근에선 서교동과 상수동과 연남동 순으로 10년, 제주시에서는 노형동에서 6년을 살았다. 대부분의 거주지가 그렇듯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해졌지만, 돌이켜보면 그 타의가 고마울 만큼 재미있게 살았다. 딱 변하기 전까지만. ‘그때가 좋았지’ 같은 얘기는 아니다. 도시는 항상 변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재미있다. 도쿄의 하라주쿠만 해도 10년 전과 지금은 딴판이다. 문제는 변화가 아니라, 무엇이 변하느냐다. 살던 곳을 떠날때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홍대는 프렌차이즈 가게들, 노형동은 집값이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라주쿠는 10년 전에는 펑크와 코스프레, 얼마 전에는 아메리칸 스타일과 놈코어라고 하면 얼마나 다른 성격의 변화인지 비교가 될까. 한국의 재미있는 도시들은 흐름이 변하는 게 아니라 정체성이 변한다. 이런 표현도 과분하다. 그냥 이름과 공간과 수요만 남고 1회용 도시로 바뀐다. 거기엔 어른도 없고 젊은이도 없다. 사고팔기 위한 공간과 사고파는 사람만 남고 공공을 위한 노력은 사라진다. 내 도시에 유대감을 느끼기 힘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집을 내 입맛에 맞게 정리한 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또 반쯤은 사실이다. 홍대 부근에서 10년쯤 살다가 ‘이런 곳’이 지겹다고 생각해서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서울대입구역 부근이었다. 3개월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집 밖으로 안 나가면 다 해결된다는 건 그때 배운 방법이다. 동시에, 그러면 어느 나라에서 살아도 상관없잖아 하는 자신감 비슷한 게 생겼다. 지금은 서울대입구역보다 더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살고 싶은 도시 말고 살고 있는 도시에서 더 이상 간다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곳이 없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좋아하는 프렌차이즈 가게가 생기면 좀 위로가 될까? 어찌됐든 내 집 값이 오르면 기분이 좋을까?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사는가? 뮌헨에 가면 정말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몸이 그렇듯 고향도 주어진다. 하지만 살아가고 싶은 도시는 선택할 수 있다. 이름을 바꾸듯 결단이 필요한 일만은 아니다. 부쩍 가까워진 세계 속에서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다만 살 수 없더라도 그곳이 얼마나 이상적인지 스스로 가늠해 나가다 보면, 지금 이곳에서는 불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만난다. 이달, < GQ >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이상적인 도시에 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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