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프림이 빠진 10억 달러짜리 모순

한 투자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슈프림은 이제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벤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하지만 10억 달러의 부자 회사가 과연 스트리트 문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여기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슈프림은 십대 청소년들에게 40달러짜리 티셔츠를 판매하는 브랜드라는 것과 슈프림이라는 브랜드의 투자 가치는 약 10억 달러에 달한다는 것. 전자는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슈프림은 1994년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슈프림의 위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루이 비통과의 협업은 꿈도 꾸기 어려웠고, 많은 브랜드들로부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몇몇 브랜드와는 크고 작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의 슈프림은 완전히 다른 브랜드가 됐다. 최근, <WWD>는 슈프림의 자산 가치를 짐작할 수 있는 소식 한 토막을 전했다. 글로벌 투자 그룹 칼라일이 슈프림의 브랜드 가치를 약 10억 달러(1조 1천억원)로 평가하고, 지분 50%를 사들였다는 내용이다. 곧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투자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이 거래가 대체 슈프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돈이 브랜드를 망쳐 놓는 건 아닐까? 청소년들이 추종하는 스트리트 브랜드가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10억 달러가 과연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체감하기 위해, 지난 패션 산업에서 벌어진 일들을 하나둘씩 살펴봤다. 우선 <월 스트리트 저널>의 ‘10억 달러 클럽’에 속한 기업의 목록을 확인해봤다. 2017년 9월 기준, 10 ~ 11억 달러의 자산 가치 그룹에 속한 기업은 총 1백68개. 슈프림의 기업 가치는 안경으로 혁신을 이룬 기업 와비 파커, 세계 최초의 음악 식별 서비스 샤잠 그리고 파티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기업인 이벤트브라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스트리트 컬처 기반의 작은 패션 브랜드가 과연 어떻게 세계 제일의 벤처 기업들과 견줄 수 있게 됐을까?

지금 슈프림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엄청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매주 발매하는 옷과 액세서리는 온라인 중고 시장을 통해 원래 가격의 몇 배에 팔려나간다. 하지만 슈프림은 전 세계에 오직 11곳의 오프라인 매장과 1곳의 온라인 매장만을 운영한다. 하지만 이 12곳의 매장에서 약 10억 달러의 매출을 낸다는 건 여전히 불가해한 일이다. 안경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워비 파커는 10억 달러 브랜드 추정 가치를 통해 약 1억 달러(1천1백억원)의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했고, 이들은 그 수익을 곧바로 소매점 확장에 사용했다. 2011년 마이클 코어스는 약 25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했다. 이는 카일리 그룹이 산 슈프림의 지분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며, 미국 액세서리 산업의 약 25퍼센트를 차지하는 규모다. 슈프림에 대한 거대한 투자는, 다가올 생산 산업에 거는 카일리 그룹의 도박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카일리 그룹은 현재 슈프림이 가진 패션 산업에서의 영향력을 더 확장시키거나, 혹은 슈프림을 남성 패션 분야의 마이클 코어스로 만드는 등의 계획 정도는 이미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칼라일 그룹의 경영진이라면, 이 투자 소식이 반가울 것이고, 당신이 슈프림의 골수팬이라면 이 소식에 우려가 앞설 것이다. 지금까지 슈프림은 재고의 최소화 전략으로 천천히 브랜드를 키워나갔다. 그 전략으로 인해, 한정판 제품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가며 경쟁을 하는 ‘슈프림 현상’을 만들어냈고 이는 슈프림의 가치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슈프림의 이와 같은 재고 최소화 전략이 계속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칼라일 그룹은 슈프림의 가치 평가와 투자에 만족할 만한 매출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슈프림이 현재 정확히 얼마만큼의 수익을 내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WWD>는 슈프림에 대한 카일리 그룹의 투자가 “연간 약 1억 달러를 사업 확장에 사용할 것” 이라는 슈프림의 확고한 사업 계획에 기초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슈프림은 사업 확장에 힘을 내고 있다. 슈프림의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는 슈프림이 더 이상 구하기 어려운 브랜드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한 몇 가지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첫 움직임이 중국에서 벌어질 거라고 예상한다. 마치 일본에만 6곳의 매장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5억 달러에 달하는 카일리 그룹의 돈은 슈프림이 독자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매장 확장의 문제에 분명한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슈프림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브랜드의 덩치를 키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칼라일 같은 거대 투자그룹은 유별난 브랜드의 삐딱한 시선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참고로 칼라일 그룹이 투자한 브랜드 목록은 던킨, 닥터페퍼 스내플 그룹, 골든 구스처럼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대중적인 제품의 브랜드들이다. 누구나 소유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성공을 일군 브랜드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슈프림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브랜드의 대명사다. 지금까지 카일리 그룹과 함께한 브랜드들과 슈프림은 근본적인 소비 성격부터 다르다.

슈프림은 사업을 키우되, 지금의 브랜드를 있게끔 한 팬들과의 ‘신뢰’는 깨트리지 않을 예정이다. 우선 슈프림은 소호 매장 등에서의 공급을 크게 늘려, 슈프림을 원하는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슈프림’. 흥미롭게도 슈프림의 모순은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만약 슈프림이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브랜드라면, 10억 달러의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수많은 슈프림의 팬들과 잠재적 팬들은 그때도 슈프림의 제품에 열광할까? 한정적인 수량의 판매로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만든 슈프림의 향후 행보는 수많은 여타 브랜드의 연구 자료로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슈프림은 어떻게든 이 모순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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