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매혹적인 백 가지와 치명적인 한 가지

그 한 가지 때문에 발리 이민을 포기했지만, 어디에서 살고 싶냐는 비현실적인 질문에는 여전히 발리라고 답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지구상 어디에서 살고 싶냐고? 내 대답은 인도네시아의 발리. 틈틈이 여행하며 이십 몇년쯤 지나고 보면 그동안 돌아본 세상에 대해 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게 된다. 그중 하나는 인도네시아가 동남아시아에서 단연 가장 흥미로운 목적지라는 것. 그리고 발리는 가난한 자유주의자의 지상 낙원이라는 것. 인도네시아는 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여행지다. 지리적, 생태적, 문화적으로 그렇다. 한 방향으로 이렇게까지 길게 걸쳐 있는 나라는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와 같은 거대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고 그중에서도 인프라와 치안이 이 정도 되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수마트라의 서쪽 끝에서 파푸아의 동쪽 끝에 이르기까지, 드넓고 다채롭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땅이다. 활화산과 산호초가 있고, 호랑이와 코뿔소가 아직도 살고 있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베트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모험의 나라. 열대라 항상 여름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바깥세상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친다고 해도 여기는 언제나 여름. 아예 여기를 집으로 삼으면 어떨까? 얼어죽을 일 없고 굶어죽을 일 없는 다정한 이 땅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은 심심하고 재미없고 모든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인도네시아는 그렇지 않다.

발리는 다채롭고 재미난 섬이다. 흰 연기를 무럭무럭 뿜어내는 활화산이 있고, 사화산의 분화구에 생긴 맑은 호수가 있고, 동서남북에 바다가 있다. 하얀색 노란색 갈색 검은색, 각각의 모래 색깔도 다르다. 연푸른 열대 바다에 다이빙, 만타레이와 함께 헤엄치다가도 이불 덮고 자야 하는 서늘한 산마을까지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다. 인구 구성은 또 어떤가. 토종 민족인 발리인들, 자바에서 넘어온 기타 인도네시아인들, 가깝다는 이유로 늘 많이 오는 호주인, 뉴질랜드인, 과거 이 땅을 점령했던 영국인과 홀랜드인, 다른 유럽인들, 소문 듣고 찾아 온 미국인들, 일본인과 한국인에 이어서 관광객의 대세가 되어버린 중국인과 러시아 관광객들까지, 세상의 모든 나라 국민들이 섬의 일정 지분을 차지하고 사이좋게 바글거리는 느낌이다. 워낙 외국인이 많으니 이들이 입던 벗던 어떻게 하고 다니던 상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지 지퍼 열렸다고, ‘부라자’ 끈 보인다고, 살며시 다가와 귀띔하는 서울의 삶과는 자유도 자체가 다르다.

충분한 일조량과 강수량 덕분에 모든 게 풍요롭다. 세상에서 가장 기름진 땅 한 조각 같다. 시장에는 열대 과일이 넘쳐나고 논과 밭에는 시선을 두는 곳마다 갖가지 곡식과 채소가 자라고 있다. 4면이 바다라 해산물이 풍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북반구의 아시아와 남반구의 신대륙을 잇는 문화의 교차로인 만큼 서양 문물의 세례도 적당히 받아 필요한 건 뭐든 쉽게 구할 수 있다. 황금의 나무라고 불리우는 티크와 질 좋은 대리석, 기타 원자재들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인건비까지 저렴하니 자연스럽게 건축이 발달, 다른 동남아와는 차원이 다르게 건물들과 인테리어의 수준이 높다. 음식도 훌륭하다. 외국인 인구 비율이 높으니 먹고 싶은 것은 뭐든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종류의 식당이 존재하지만 현지 음식인 인도네시아의 파당푸드Masakan Padang가 고추를 많이 써 상당히 매운데, 매운 음식에 이미 중독된 한국인에게는 커다란 장점이다.

발리의 물가는 저렴하다. 생활 물가가 서울에 육박할 지경이 된 방콕이나 이미 능가해버린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훨씬 저렴하니 주머니 가벼운 외국인이 정착을 생각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그것이 바로 20세기 중반 이래 그렇게도 많은 이방인이 세계 각지에서 이 조그만 섬을 찾아와 아직도 떠나지 않고 북적대는 이유일 것이다. 예술가로, 서핑과 다이빙 강사로, 식당과 카페 주인으로, 숙소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착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익히는 것이 당면 과제다.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인도네시아의 여러 민족을 하나로 묶기 위해 고안된 바하사인도네시아는 다행히도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 중 하나다. 인터넷에서 인도네시아어 학습 페이지를 몇 개 찾아서 공부, 생활하기에 별 불편함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젠 정말 집에서보다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게 편안하고 편리하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단 한 가지를 빼고는.

발리 북부 로비나의 평화로운 바닷가, 야자나무 그늘 아래 반 벌거벗고 누워 코코넛주스를 빨던 어느 날, 문득 이 땅을 고향으로 삼기 위한 마지막 조건을 시험하고 싶어졌다. 해변 옆 돌고래 모양의 기념물 아래에서 영업하는 박소 장수 마데 영감을 찾아갔다. 오가며 자주 사먹은 터라 내 존재를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팍(Pak: 아저씨의 존칭), 슬라맛시앙Selamat Siang(굿애프터눈)! 아파 카바르Apa Kapar(어떻게 지내세요)?”, “카바르 바익Kabar Baik! (잘 지내지!)” 다정한 인사가 오가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박소 한 그릇에 얼마예요?” “1만 루피아.” 뻔히 알면서 뭘 새삼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영감이 대꾸한다. “아니, 나 같은 외국인에게 부르는 값 말고 원래는 얼마씩 받냐구요. 그러니까 현지인들에게 말이에요.”, “똑같아. 한 그릇에 1만 루피아.”

동화 속 세상처럼, 바깥 세상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친다해도 여기는 언제나 여름. 발리는 모든 게 편안하고 편리하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단 한 가지를 빼고는.

진지한 그 얼굴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온다. 이게 한국 돈으로 1천 원이라구? 이 빠진 작은 그릇에 서너 젓가락이면 다 먹어 치울, 찝찔한 국물 조금이랑 전분이 반 넘게 섞인 고기완자 두어 개가 들어간 국수가 그 값이라고? 인도네시아는 여러모로 멋진 곳이지만 정직함이 장점인 나라는 결코 아니다. 현지 물가가 아주 싼 만큼 외국인들을 상대로 이중 가격을 받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발리인들의 교통수단인 베모만 해도 그렇다. 몇백 원도 안 하는 요금이 외국인에게는 열 배 이상 부풀려진다. 유명 관광지의 입장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백 원, 너희는 외국인이니까 3천원. 현지인들의 한 달 수입이 훌쩍 넘는 돈, 때로는 일 년 수입에 육박하는 돈을 하룻밤 숙박비로 쓸 수 있는 외국인들에게 재주껏 더 받아내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렇다면 좀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자라면 몰라도 이방인 신분을 벗고 이 나라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발리 이민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이 부분을 확실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뭐라고 비난하려는 게 아니니 솔직히 말해주세요. 1만 루피아면 나시짬뿌르도 사먹을 수 있는 돈인데 박소 한 그릇에 그 값이라니 말이 되나요. 저만 알고 있을 테니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동네 사람들에게는 얼마 받아요?” 나름 꽤 호의적인 사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터줏대감의 진실된 고백 한마디, 그와 내가 더 이상 남이 아니라는, 우리끼리 주고받는 다정하고 은근한 눈빛 딱 한 번만. “외국인인 저한테 1만 루피아면, 여기 사람들에겐 한 5천 루피아 받나요? 아님 4천?”,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마데 씨는 펄쩍 뛴다. “그런 거 아니야. 외국인에게든 현지인에게든 똑같이 만 루피라니까.”, “아 왜 이러세요. 빨리 말해줘요. 5천 루피아에요? 아니면 4천? 설마 3천?” 울그락푸르락하던 영감, 마침 지나가던 동네 청년 한 명을 불러세운다. 증인을 대겠다 이 말이렸다. “말 좀 해봐. 이 박소가 한 그릇에 얼마지?” 멀뚱하니 멈춰 서서 우리를 번갈아 보던 청년, 영감이 묻자 머뭇거린다. 난처한 얼굴로 대답하길, 1“만 루피아요….” “방금 그게 뭐예요! 그건 반칙이잖아요!” 내가 소리친다. 영감의 무시무시한 표정에 옴찔하는 청년의 겁먹은 얼굴을 포착했다. 두 사람 사이에 번개처럼 오간 은밀한 시선의 의미. 오로지 같은 편끼리 가능한 특유의 이심전심. 무서운 얼굴로 대답을 다그치는 동네 아저씨 앞에서 어린 청년이 어떻게 감히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을까. 외국인 여행객은 며칠 후 여길 떠나면 끝이지만 이웃 사람은 이사가기 전까지 영원히 봐야 한다. 서울이나 발리나 이사가 어디 그렇게 쉬운가.

“마데 씨, 지금 외국인에게 바가지 씌운다고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정말 너무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 저는 인도네시아를 오래 여행해서 여기 물가를 잘 알아요.” 나는 최대한 선량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저한테만 살짝 말해주세요. 1만 루피아면 나시고렝을 먹을 수도 있는데 누가 박소를 사먹나요. 소문내지 않고 저만 알고 있을게요.” 나는 애가 탔다.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실대로 말해주면 1만 루피아 드릴게요. 아니, 5만 루피아!” 마데 씨는 좋게 말하면 심지가 굳었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무지하게 독종이었다. 화난 얼굴로 입을 다문 채 끝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이민계획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집에서 속으며 살순 없다.

한국은 안 속이냐고? 물론 속인다. 수없이 속았고 앞으로도 물론 속고 살겠지. 그러나 인도네시아만큼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인으로 성형을 하고 완벽하게 언어를 마스터하면 모를까 외국인으로 사는 이상 언제까지고 사사건건 속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뿐만 아니라 시장 상인, 버스기사, 하다못해 단골로 가는 동네 국수 가게 주인에게까지. 그런 돈 얼마쯤 바가지 쓰는 것은 그냥 잊고 살면 안 되느냐고? 이건 단순히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다. 기분의 문제다. 영원한 외부자. 사실 기분만큼 중요한 게 이 세상에 또 있던가? 이국을 얼마나 오래 여행하든, 그 땅을 얼마나 사랑하든, 이방인의 몸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마지막 진실 한 조각. 그걸 잊고 살기엔 어떤 여행자는 속이 너무 좁다.


몸이 그렇듯 고향도 주어진다. 하지만 살아가고 싶은 도시는 선택할 수 있다. 이름을 바꾸듯 결단이 필요한 일만은 아니다. 부쩍 가까워진 세계 속에서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다만 살 수 없더라도 그곳이 얼마나 이상적인지 스스로 가늠해 나가다 보면, 지금 이곳에서는 불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만난다. 이달, < GQ >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이상적인 도시에 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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