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살고 싶은 이유

대한민국의 경계를 벗어나 비로소 마주한 진짜 삶.

“인자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밝게 자랐습니다.” 지독하게 평범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만큼은 절대 써서는 안 될 문구지만 안타깝게도 난 저 문장과 다르지 않게 살았다. 실제로 난 주류인 적 없다. 주류가 되지 못한 비주류는 아니고, 나면서부터 B급을 지향했다. 아니, 실은 어떤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비주류 인간’이라는 말에 누군가는 동정할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 같은 인간은 삶을 그다지 고달프게 생각지 않는다. 보통의 인간치고 감각이 섬세해 회색빛 세상에도 감탄할 일 투성이다. 덕분에 삶은 꽤 버틸 만하다. 비주류 인간은 대체로 안위한다. 큰 욕심 부리기보단 지금에 만족한다. 태어난 이 땅에 그대로 붙어사는 것쯤 아무렇지 않았다. 어딜 가든 마음먹기 나름이고, 마음먹는 일은 순전히 내 소관이다.

스무 살이 되었던 해, 그러니까 21세기로 막 접어들 때 한국에선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야”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화가 나 있었다.(화는 최근까지 이어졌었다.) 심연에 감춰둔 분노의 밑창까지 박박 긁어 억지로 게워내듯 화를 쏟아냈다. 그 시대 언저리에 알던 J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늘 화가 난 얼굴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수재였던 J는 키도 크고 인물까지 좋아 전형적인 ‘엄친아’로 불렸다. 법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에 로스쿨이 설치되자 자리를 옮겨 학업을 이어나갔다. 20년 넘도록 한 번도 공부를 쉰 적 없지만 그가 쏟아 부은 시간 하나만으로는 로스쿨에서 세 학기를 넘기기 힘들었다. 작은 가구점을 하던 부모는 아들의 학비를 대느라 꽤 많은 빚을 졌다. “지긋지긋해.” 공부를 위해 빚을 져야 하는 이 시대 이 나라가 기형이란다. 그는 연거푸 입에 익지도 않은 욕을 섞어가며 말했다. 대단한 스펙을 지닌 그가 세상 앞에 잔뜩 움츠린 등을 내보이니 어쩐지 측은했다. 그의 미간에 혹독한 삶의 흔적이 새겨졌다. 흔적은 한동안 사라질 줄 몰랐다.

1년 후, 그는 힘겹게 돈을 모아 싱가포르로 유학을 떠났다. 출국을 앞두고 그와 조찬을 나눴다. 식기가 덜그럭대는 소리만 우리 둘 사이를 메웠다. 왜 싱가포르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다만 할 수만 있다면 돌아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조금 옅어진 그의 미간 주름에 한편으론 안도했다. 난 J의 등을 한 번 더 도닥였지만 J를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가 떠나도 한국엔 수많은 J가 남아 있다. 조국을 떠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며 분노하는 수많은 J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분노가 왜 생겼는지,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 없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을 그저 동정했다.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회인이 되었다. 내 어머니의 기도 덕인지, 단순히 운이었는지 모르지만 줄도 백도 없는 내가 치열한 취업 전선에서 보란 듯 승기를 거머쥐었다. ‘고 스펙’ 사회에 흔치 않은 ‘노 스펙’으로 취업문을 통과했다. 대전 촌년이 그렇게 서울로 왔다. 주변인으로 살던 외지인은 서울 한복판에 발을 딛자 주류 인간이 됐다고 생각했다. 내게 서울의 의미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었다. 세상과 그 중심에 대한 기대감은 이스트 먹은 빵 반죽처럼 부풀었다.

온통 새하얀 정사각형 큐브 안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컴퓨터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나란히 앉아있었다. 서울에서 처음 마주한 현실이다. J와 같은 표정을 한 상사 앞에 설 때면 고요 속에 시계 소리만 들렸다. 째깍째깍하는 소리가 점점 커져 허공을 치면 나는 점점 작아져서 티끌과 다름없어졌다. 사무실에서는 포용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나마도 회사는 견딜 만했다. 비록 완전히 섞이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공동체에서 비롯되는 소속감은 나에게 큰 안정을 줬으니까. 한국 사회에서 외지인은 외계인이다. 단순히 서울 밖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다른 외계에서 온 사람이었다. 지력의 한계에 매 순간 부딪혔고, 조금 잘했다 싶어 으스댈라 치면 세상은 속박했다. 사회는 칭찬에 박하고, 잣대는 가혹했으며 취향은 무시됐다. 가치 중심적인 세상이지만 여기에 쓰인 가치는 내가 어릴 적부터 배워오던 것과는 달랐다. 이 분야에서 손꼽는 조직에 들어갔어도 나는 주류 인간이 되지 못했다. 일을 못 해서는 아니다. 다만 회사 내부에서 생기는 인간관계에서 세련미가 없었다. 여기서 말한 세련미가 한국 고유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룰 같은 거다. 아부와 아첨, 그에 따라오는 뇌물과 측근의 변절, 배신 같은 요소. 나는 그런 데 취미가 없었다. 소름 끼치게 싫어서라기보다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앞서 말한 요소들이 내가 동기들과 벌이는 경쟁에 영향을 미치리라 믿지 않았다. 물론 나의 오해고 착각이었지만. 아무튼 세상은 성골과 진골을 확실히 구별했고, 주류 인간들 사이에도 비주류는 존재했다.

그 분야에서 손꼽히는 조직에 들어갔어도 나는 주류 인간이 되지 못했다. 일을 못 해서는 아니다. 다만 회사
내부에서 생기는 인간관계에서 세련미가 없었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제야 불현듯 깨달은 건 아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늘 해오던 대로 나에게 집중했고 불편하면 귀를 닫았다. 자신을 잃지 않으려 나름의 방어선을 친 셈이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나도 어느새 세상의 기조에 휩쓸렸다. 불합리로 여기던 일들이 합리가 되고,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나로 인해 촉발됐다고 생각했다. 아부와 아첨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때에 따라 웃는 법을 배웠다. 이제야 알았지만 이것은 주류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발악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점점 꼬이고 말라비틀어졌다. 미처 거두지 못한 황태덕장의 썩은 생선처럼 군내가 나고 파리가 꼬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때처럼 완벽하고 절대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환멸을 느꼈다. 다 싫었다.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는 일도 지겨워졌고, 오히려 반문했다. ‘내가 뭘 잘못했어?’ 이때 내 앞으로 대통령이 지나갔다면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라고 했을거다. 일은커녕 세상의 모든 것이 더는 즐겁지 않았다. 영장류로서 삶을 영위하기보단 생명체로서 숨만 쉬었다.

J의 메일을 받은 건 이 무렵이다. 스팸함으로 직행해야 마땅할 만큼 따분하고 지루한 ‘Dear. yuri’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다. 멋이라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어서 과연 실용주의자의 전형인 J가 달았을 법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내용도 없이 사진 세 장뿐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싱가포르의 상징인 멀라이언을 배경으로 둔 채 밝게 웃고 있는 J의 모습이 담겼다. 촌스럽게도 두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고 있었다. 브이를 한팔에 빛이 번진 듯 배경과 경계가 희미했다. 두 번째는 크림색 아치형 건물 앞에 서서, 세 번째는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곳에서 한 묶음의 꼬치가 담긴 접시를 앞두고 찍었다. 마지막 사진에 그의 얼굴이 가장 크게 담겨 있어 좀 더 유심히 보았다. 배경이 어두워선지 화질이 아주 좋지 않았지만 미간에 찌푸린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주류 사회를 욕망하던 J는 서울과 비슷한 크기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한국을 떠나갈 때도, 메일에서도 왜 굳이 싱가포르여야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작지만 명성이 살아 있는 나라, 청렴한 공무원, 미래지향적인 도심과 휴양지가 공존하는 곳, 여러 민족이 섞여 다양한 색을 내는 나라라는 등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달랐다. 자신과 싱가포르가 닮아 그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짐작한다. 그는 이곳으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사진에서 발생한 빛 번짐 현상이 우연이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는 종종 가보지도 않은 싱가포르 거리를 걷는 꿈을 꾼다. 그리고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싱가포르로 떠날 때를 이야기한다. 지인이 있어도 한 줄 얘기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라니. 과연 비주류적 인간다운 소회다.

몸이 그렇듯 고향도 주어진다. 하지만 살아가고 싶은 도시는 선택할 수 있다. 이름을 바꾸듯 결단이 필요한 일만은 아니다. 부쩍 가까워진 세계 속에서 불가능은 없어 보인다. 다만 살 수 없더라도 그곳이 얼마나 이상적인지 스스로 가늠해 나가다 보면, 지금 이곳에서는 불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만난다. 이달, < GQ >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이상적인 도시에 관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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