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빛난 11명의 여성 캐릭터

가뭄이었다. 여성을 이름 없이 소모한 남초 영화들이 2017년을 점령했다. 그러나 그 척박한 땅에도 꼿꼿이 고개를 든 여성 캐릭터들이 있었다. 평론가, 칼럼니스트, 제작자, 감독 등 11명의 필자가 이들을 올해의 여성 캐릭터로 호명했다.

 

<밤치기> 가영 

‘밤치기’는 점찍어 둔 남자를 유혹하려는 하룻밤의 계획을 뜻하는 말로, 가영(정가영)이 혼자 지어낸 단어다. 아는 오빠의 친구인 진혁(박종환)에게 반한 가영은 시나리오 취재를 핑계로 약속을 잡는다. 둘은 식당에서 룸 카페로, 다시 노래방으로 차수를 변경하며 섹스와 연애에 관한 문답을 이어간다. 진혁에게는 이미 애인이 있지만 가영은 밑져야 본전이라고 여긴다. 입장은 절박할지 몰라도 가영은 절대 순진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려고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는 진혁의 질문에 대한 가영의 답은 <배틀 로얄>이다. <밤치기>의 가영은, 여성도 단순한 끌림과 성적인 동기로 남자를 욕망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한국영화가 얼마나 완강히 외면해왔는지 깨닫게 한다. 자위 패턴부터 시작되는 가영의 질문 세례는 남성들이 영화 안팎에서 행하는 흔한 성희롱의 등가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연하의 여성인 가영이 사회적 권력이나 물리적 힘에서 진혁보다 우위가 아님을 고려해야 한다. 가영이 가진 유일한 권력은 문답을 주도하는 질문자의 그것이다. 정가영 감독이 “재미있고 편리해서” 전작 장단편에서도 직접 연기한 가영은, 솔직하고 독창적 연애담을 만들려는 90년대생 여성 감독의 궁리에서 자연 발생한 캐릭터로 보인다. 적극적인 가영을 존중하며 꿋꿋이 성실한 대화를 이어가는 진혁 역시 일찍이 보지 못했던 맑고 반듯한 한국 남성 캐릭터다.

한 마디: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 한 핏줄 캐릭터: 영화 <아는 여자>의 한이연(이나영)은 이웃의 평범한 야구선수 동치성(정재영)을 10년동안 바라보며 남자의 동선 언저리를 맴돈다. 그러나 결국 ‘예쁘고 착한 스토커’ 이연은 여성의 욕망보다 남성 판타지에 봉사한다. 반면 가영은 먼저 구애하는 여성에게 남자들이 느끼는 반감을 매력으로 달래주지 않는다. 그는 누가 봐도 좋아할 만한 남자에게, 정면으로 나는 어떠냐고 묻는 보통 여자다.  김혜리 (<씨네21> 기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천인숙 

고백하건대, 처음 봤을 때는 두 남자의 미친 사랑에 허덕이느라 다른 곳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N번째 봤을 때야 비로소 천인숙(전혜진)의 존재에 안도했다. 그의 악행엔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다. 기존 한국영화의 악당은 남녀를 불문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면죄부가 주어지곤 했다. 특히 여성 악당의 동기는 가족 혹은 자식을 구하거나 그들을 위한 복수인 경우가 흔했다. 마치 여성은 가족 구성원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행위나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다는 듯이. 그러나 천인숙은 다르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움직인다. 마약 소탕을 향한 경찰로서의 목표 의식만 남은 천인숙은 부하의 죽음도, 인륜을 거스르는 은폐도 모두 연료로 태워버리며 폭주한다. 가부장 중심의 사회에서 악녀들에게 주렁주렁 매달렸던 불필요한 추를 떼어낸 그의 업무 수행은 거침없다. 과거 한재호(설경구)와의 인연에서 비롯된 원한일 수도 있다는 설정을 최종 단계에서 빼버린 변성현 감독의 선택이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여성도 스스로 원하면 악하고, 일그러지고, 음모를 꾸밀 수 있다. 여성을 욕망이 제거된 무해한 이미지로 소비하려는 대중문화에서 천인숙은 악녀라고 불리는 야욕에 충실한 여성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한 마디: “이런 개 같은 일에는 당하는 놈이 잘못하는 거고, 그게 나쁜 거야. 어설픈 죄책감 같은 건 애초에 키우지 마.” 한 핏줄 캐릭터: 멀리 과거로 갈 필요도 없다. 여성 캐릭터의 지분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영화에서 악당은 더더욱 여성에게 자리를 내어주길 거부했다. 악녀라는 이름을 줬더라도 영화 <악녀>의 숙희(김옥빈)나 <미옥>의 현정(김혜수)처럼 모성애를 내세운 경우가 태반. 그러나 철저한 직업의식을 엔진으로 장착한 천인숙은 비록 많이 늦었지만 여성 빌런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아이 캔 스피크> 나옥분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나옥분’이라는 제목으로 불려도 무방할 이야기다. 봉원시장 나옥분 할매는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구청에 수십 년간 수많은 민원을 넣었다. 사람들을 나무라고 간섭하고 무엇보다 살뜰히 챙기며 이웃과 함께 사는 삶을 온전히 실천하는 ‘오지라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였음은 60년간 꽁꽁 숨기고 살아온 외로운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형언할 수 없이 아픈 과거를 자신의 입으로 증명하는 미 의회 청문회 장면은 이 영화를 함께 만든 사람임에도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자신의 상처 입은 육체를 드러내 증명하고 형형한 눈빛과 또렷한 말로 고발한다. 폭력과 아픔을 전시하는 영화적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고 행동하는 주체적 여성을 온전히 그렸다는 데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강지연 여성 제작자의 기획, 유승희 여성 작가의 시나리오가 김현석 감독의 각색과 연출로 구체적 생기를 얻었고, 나문희 배우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된 결과다. “엄마, 죽을 때까지 꽁꽁 숨기고 살라고 했는데…. 엄마랑 그렇게 굳게 약속했는데…. 이제 엄마랑 한 약속 못 지켜…. 아니, 안 지킬라구. 돌아가신 엄마보다 정심이가…, 정심이보다 내가…, 더 중하니께.”

숨겨온 과거를 밝히고자 결심한 후 나옥분이 엄마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며 운다. 원래 모두 8컷으로 나눠 촬영하기로 계획한 이 장면은 결국 원 신 원 컷으로 관객에게 보여졌다. 절절한 대사 컷은 바스트 컷으로, 마지막 컷은 롱 숏으로, 이런 계획들을 버리고 나옥분의 오열을 한 컷으로 버티며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으로 완성한 것이다. 카메라의 적극적 개입과 감정의 과잉을 버린 영화적 태도인 셈이다. 후반 작업 중, 이 장면에 감성적 음악을 깔아보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음악도 빼버렸다. 어린 옥분과 정심이 위안소에서 자살 시도 후 껴안고 슬픔을 나누는 장면에 들어가는 음악도 원래의 계획보다 자제해 비중을 줄였다. 그 고통과 아픔이 자칫 정서적 과잉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는 조심스런 마음이었다. 두 장면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은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제작자, 편집감독, 음악감독, 사운드 슈퍼바이저 등 함께한 이들의 시선과 태도가 여일했다는 것이다. 인물을 영화적으로 배려하며 섬세하게 그려내려 노력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옥분의 상대역이자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박민재 역의 이제훈 배우의 연기도 나옥분의 조력자로, 이웃으로, 유사가족의 역할로 조응하며 여성 캐릭터를 빛나게 했음은 물론이다.

한 마디: “잊으면 내가 지는 거니께.” 한 핏 줄 캐릭터: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에린 브로코비치(줄리아 로버츠). 실화의 주인공이자 평범한 사람이었고, 주변 사람의 편견이 있었으나 이겨냈으며, 누구보다 용감했다는 점에서 나옥분을 닮았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꿈의 제인> 제인

 23년 전, 모스크바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거기엔 원체 숫기도 없는 데다가 대인 관계에 별 관심 없는 나와는 달리 붙임성도 좋고 선배들에게도 참 잘하는 아이가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그 친구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었는데, 춥고 황량한 타지에서 왕따를 당하니 좀 슬펐지만 그걸 누구한테 하소연하면 뭐 하나 싶어 그냥 혼자 조용히 지냈다. 어느 날, 한 여자 선배가 여자 동기, 후배들만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가봤자 왕따일 텐데 참석한 이유는 긴 겨울의 모스크바를 내내 혼자 보내는 일도 정말 우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주도하는 분위기에는 끝내 섞일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밥상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레라이스가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어떻게 해야 사람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르겠어”라던 소현을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그 겨울의 모스크바 유학생 파티에서 이름도 얼굴도 기억에 없는 호스트 선배는 내게 제인 같았다. 그 선배는 내 아픔을 오래전부터 쭉 보아온 것이 확실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역시 내 아픔에 별 관심 없었지만, 나는 그저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됐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자”고 말하는 제인은 그런 점에서 내게 올해의 여성 캐릭터이자, 올해의 인물이다. “힘내”라는 말이나 “네 옆에 내가 있어” 같은 상투적인 표현보다 “이런 개 같은 인생, 혼자 살아 뭐 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라든가,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라는 제인식의 위로가 더 마음을 울리니 말이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프링글스를 와작 씹으며 당당하게 걷는 제인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총체적으로 조화롭지 않은 치장과 걸음걸이를 하고서, 끝까지 단아한 손동작을 유지하던 제인을.

한 마디: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 오래 살자.” 한 핏줄 캐릭터: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영화 <숏 버스>의 트렌스젠더 왕언니. 제인과 비슷한 색깔의 위안을 준다. 이경미 (영화감독)

 

<더 킹> 안희연 

적어도, 한국영화에선 보지 못한 캐릭터다. 패권주의, 약육강식, 권력에 대한 얄팍한 야욕과 더 얄팍한 배신…. 으레 한국 남자들이 떼로 등장하는 마초적 질서의 영화에서 여성은 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마담이거나 순진무구한 누이였을 따름이었으니 말이다. <더 킹>에서는 체스판 아래 놓인 스낵이 아닌 판 위의 플레이어로서 여성이 등장한다. 안희연 검사(김소진)는 언뜻 주류세계의 남자들과 비슷한 문법을 구사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오늘 신문 보셨어요? 캬, 재미있는 거 났던데. 보실래요?” 능글맞고 여유로운 사투리 억양으로 태수(조인성)에게 신문을 건네는 척 슬쩍 빼고, 픽 웃으며 다시 준다. 서열 정리의 기본은 사소한 장난으로도 바보된 느낌을 주는 것. 기어오를라 치면 “반말 섞어 하지 말고. 내 니보다 선배잖아”라며 대놓고 기를 꺾는 건 물론이다. 패닉 상태로 ‘말리면 안된다. 만만해 보이면 끝난다’를 되뇌던 태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제일 남자답고 무식한 짓을 한다. 옷을 벗어제끼고 문자 그대로 남근을 들이대는 것. 그러나 안희연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의 신체를 품평의 대상으로 대번에 끌어내린다. 그러나 단순히 남성을 기선 제압하는 센 캐릭터로만 그를 설명할 순 없다. 안희연이 박태수와 한강식을 치고 왕좌에 오르려는 욕망으로 움직이는 인물이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겠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안희연 검사는 자기 일에 대한 건강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 “자존심 잠깐이다. 촌스럽게 그딴 건 버리자”며 권력과 자본과 영합해 출세가도를 달리던 한강식 무리와, “쪽팔려서 검사 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안희연 검사의 목적이 같을 수 없는 이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방법론일 뿐. 마지막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를 설파하는 한강식을 딱한 눈으로 보는 안희연 검사의 표정이란, 한국의 모든 시대착오적 마초 영화와 ‘개저씨’들에게 보내고 싶은 시선 그 자체다.

한 마디: “쪽팔려서 검사하겠습니까.” 한 핏 줄 캐릭터: 미드 <데미지> 패티 휴즈. 로펌 대표 변호사로 대기업의 비리와 악행을 파헤쳐 피해 보상액을 받아내는 그의 강단과 집요함이 닮았다. 하지만, 유머와 비아냥에 대해선 안희연 검사가 한 수 위다. 에디터 / 이예지

 

<옥자> 옥자와 미자 

<옥자>는 봉준호가 만든 거대 괴물 영화로, 한 가지 면에서 이 장르의 다른 영화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 영화에 나오는 슈퍼 돼지는 암컷이다. 이상할 정도로 이야기꾼들은 암컷 동물들, 특히 괴물들을 상상하는 데 애를 먹는다. 예외가 있다면 <쥬라기 공원> 정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질주하는 티라노 사우르스가 암컷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티라노 사우르스는 암컷이 수컷보다 더 컸지만 이 당연한 정보 역시 사람들 머릿속엔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옥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암컷이다. 이것만으로도 <옥자>는 거대 괴물 영화에서 특이한 존재가 된다. 옥자의 인간 파트너 미자도 여자아이다. 이 경우는 암컷 괴물만큼 이상하지는 않다. 오리지널 <킹콩>의 여자 주인공 앤 대로우가 꽤 눈에 띄는 선례를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자>는 미녀와 야수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의 주인공 미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굳이 여성성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옥자와 미자는 반려동물과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으로 묶여 있으며 그들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미자의 캐릭터에서 중요한 건 이 아이가 굳이 여자아이일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여자아이이며 영화도 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이 영화의 악당인 미란도 자매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뒤집어엎는 괴물과, 그 괴물의 친구인 주인공과, 그들을 괴롭히는 악당 모두가 그냥 이유 없이 여자인 것이다. 물론 일단 이렇게 설정해놓으면 이에 맞는 설정들과 해석들이 따라오긴 한다. 모성애라거나, 성폭행이라거나. 하지만 역시 이들의 가장 큰 미덕은 그냥 이유 없이 당연하게 여자와 암컷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 옥자야! 한 핏줄 캐릭터: 미자는 영화 <킹콩>의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의 직계 혈통이다. 하지만 이 아이의 가장 가까운 직계 가족은 아마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일 것이다. 미자가 옥자를 구하기 위해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 이 시리즈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듀나 (영화 칼럼니스트)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끼고 주택 담보 대출 문서에 사인하는 여배우의 모습을 한국영화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족의 임플란트 시술 할인을 위해 치과에서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여배우의 모습은 더더욱.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배우가 있다”던 영화 <여배우들>의 말처럼, ’여배우’라는 단어는 대개 일상적이지 않은 모든 존재의 합이었다. 아름답고, 화려하며, 예민하고, 도도한. <여배우는 오늘도>의 주인공 ‘소리’는 편견과 환상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있던 ‘여배우’라는 존재를 현실의 영역으로 소환했다는 점에서 기억해야 할 올해의 여성 캐릭터다. 무례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어도 웃으며 넘겨야 하는 공인으로서의 애환과 매력적인 역할이 들어오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중견 배우로서의 초조함, 여배우와 더불어 누군가의 엄마, 며느리, 딸, 아내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여성의 고충이 데뷔 18년 차 배우, 문소리라는 필터를 거쳐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특히 높이 평가해야 할 점은 ‘소리’를 연기한 문소리의 용기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여배우는 오늘도>와 같은 영화에서,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는 영화적 풍자와 재미를 위해 연출한 장면을 관객이 진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문소리는 기꺼이 이 모험을 감수하고 나아가 즐기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의 성취가 더욱 반가운 이유는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의 삶을 재구성하는 여자 배우이자 감독이 등장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정체성을 탐구하는 여성 영화인의 존재란 얼마나 매력적이고 소중한가. <여배우는 오늘도>의 소리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에 대한 영화가 더 많아져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한 마디: (연기는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냐는 서영의 질문에 대한 소리의 대답) “뭘 어떻게 하면 잘해요. 그냥 될 때까지 하는 거지, 계속.” 한 핏줄 캐릭터: <여배우들>의 여섯 여배우,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중 그 누구라도. 잘 알려진 여배우가 자신의 삶을 소재로 연기한다는 설정은 <여배우들>이 먼저였다. 하지만 전자가 셀러브리티로서 그녀들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반면, <여배우는 오늘도>는 카메라와 조명이 돌아가지 않는 일상 속 여배우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보다 정제되지 않은, 여배우의 민낯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영엽 (<씨네21> 기자)

 

<박열> 가네코 후미코 

첫 등장부터 대단히 파격적이다. 잡지에 발표된 박열의 시를 읽고 반한 후미코가 대뜸 찾아와 “동거합시다”라고 제안한다. 이토록 화끈한 로맨스를 보았나.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단순히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의열 투쟁을 조직하는 박열에게, 후미코는 “나도 아나키스트”라며 동지적 결합을 제안한다. 동거서약서를 내밀고 동지로 살아가던 후미코는 작전에 대해 숨긴 것을 알자, 박열의 뺨을 후려친다. 취조실에 끌려온 후미코는 박열의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으며, 오히려 자신이 박열을 사주했다고 자백한다. 예심판사 앞에서 천황제를 비판하며 대역 죄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적 존재로 간주되어왔던 여성의 자리를 거부하고, 국가 권력에 직접 맞서는 근대적 주체임을 선언하는 행위이다. 후미코는 불우한 가정사와 가난을 겪은 소녀다. 그는 자신의 불행이 자본주의, 국가 권력, 가부장제의 산물임을 깨닫고, 그 정점에 놓인 천황제와 싸우기로 결심한다. 어떻게 그는 일본인이라는 민족적 우월감에 빠지지 않고, 조선 민중들과 계급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미모와 재능을 자원 삼아 출세를 꿈꾸는 평범한 욕망의 길을 어떻게 따르지 않았을까. 영화는 후미코를 순애보적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사형선고를 앞둔 두 사람의 혼인신고나 마지막 사진을 찍는 장면 등에도 지나친 로맨티시즘을 끼얹지 않는다. 사모관대와 치마저고리를 입고 법정에 들어서는 두 사람을 비추는 순간에도 영화는 투쟁의 의미에 집중할 뿐, 이들에게 민족의식이나 혼인의 의미를 부과하지 않는다. 영화는 철저한 고증에 입각해 담백한 필치로 후미코를 그리면서, 근대적 자아를 지닌 오롯한 개인으로 묘사해낸다. 일본인 배우로 오인할 만한 최희서의 독보적 연기도 후미코를 아름다운 단독자로 그려내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한 마디: 동거서약의 첫 번째 조항, ‘운동할 땐 여성으로 보지 않는다’. 이는 후미코가 가부장제의 아내로 순종하거나, 낭만적 사랑의 연인으로 보호받으려 하지 않고, 대등한 사상의 동지로,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고자 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 핏줄 캐릭터: 가부장제에서 벗어난 근대적 여성이자, 국가와 직접 대면하는 주체로 <암살>의 안옥윤을 꼽을 수 있다. 안옥윤은 식민지 여성으로 총을 들고 독립운동에 나섰고, 후미코는 일제의 심장부에천황제를 내파하고자 사상투쟁에 나섰다. 둘 다 자신의 자리에서 세계의 모순과 직면한 가장 깨어있는 여성주체들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비밀의 숲> 영은수

 거악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다. 그래서 종종 확증편향에 빠진다. 의욕이 넘친다. 하지만 미숙해서 주인공을 귀찮게 한다. <비밀의 숲>의 영은수(신혜선)는 성격으로나 작품 안에서의 위치로나, 여러모로 한국 드라마에 흔하게 등장하는 여성 민폐 캐릭터에 꼭 들어맞는다. 실제로 검사로서 처음 맡은 사건에서 그가 한 일은 누명을 쓴 살인 용의자를 감옥에 보냈다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것이었다. 심지어 뛰어난 수사 능력과 인간적인 공감 능력을 겸비하며 황시목과 함께 투톱을 이루는 한여진(배두나)이라는 멋진 여성 캐릭터가 꽉 찬 존재감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영은수의 자리는 협소해 보인다. 하지만 이수연 작가는 얼핏 익숙해 보이는 구도 안에서 영은수가 지닌 인간적 약점 안의 고결함을 드러낸다. 그는 이창준(유재명)의 범행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발할 만큼 무모하지만 법 바깥에서 정의를 찾지 않고, 특임 팀에서 배제되고 구박을 받는 와중에도 끝끝내 사건의 주요한 단서인 USB를 찾아 거악의 실체에 다가선다. 복수심 때문에 종종 흔들리고 실수하면서도 쉬운 길에 대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정의와 방법론적 윤리를 지켜나가는 그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굳건한 인물이었다. 그가 올해의 여성 캐릭터인 건, 단순히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를 벗어났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동안 비슷한 포지션에 놓인 여성 캐릭터들을 민폐라는 프레임으로 이해하던 과거의 관점을 재고하게 만들어준다. 그동안 나 역시 주인공, 정확히는 남자 주인공의 행보를 서사의 유일한 기준으로 잡고 그에 약간이라도 방해가 되는 모든 여성의 행동을 그 동기와는 상관없이 민폐로 해석하지 않았는가? 과연 그것은 온당한 접근인가? 모든 여성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과 완벽한 합을 이룰 수도 없으며 그럴 이유도 없다. 나는 그것을 영은수의 외로운 싸움과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배웠다. 

한 마디: “왜… 저는 안 돼요, 특임에?” (자신을 빼고 특임 팀을 꾸린 황시목에게 찾아와) 한 핏줄 캐릭터: <내성적인 보스>의 채로운(박혜수). 언니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에 의욕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면에서 흡사하지만, 주위에 대한 배려 없이 막무가내인 채로운과 비교해 영은수는 훨씬 사회화된 소통 능력을 보여준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품위 있는 그녀> 우아진

 드라마 제목이 <품위 있는 그녀>일 때 짐작할 수 있는 것.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여자는 없거나 거의 없게 되리라. 김희선의 극중 이름이 우아진이라는 것 역시 그렇다. 우아진은 승무원으로 경력을 쌓다가 대성펄프 둘째 아들과 결혼한 뒤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 이 드라마의 중심인물인 그녀는, 계급 상승을 향한 선명한 욕망을 이루어가는 사람으로 보이는 동시에 가장 크게 망할 것이 예고된 인물이다.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주인공을 연기해온 김희선이 쌓아온 커리어와 연기력으로 맞춤옷 같은 역할을 맡았다. <품위 있는 그녀>가 시작되자 특정 재벌 가문들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는 소문이 인기를 부채질했고, 이른바 강남 파워 블로거들 사이의 다툼에 관련된 비화도 이 드라마에 은근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망해도 3대는 끄떡 없을 재벌이나 콧대 높은 사모님이 망하는 이야기. 강남 학원가를 주름잡는 똑똑한 ‘헬리콥터맘’들 이야기는 또 어떤가. 드라마를 본다는 기분보다는 옆 테이블에서 숨죽일 노력도 하지 않고 떠드는 가십을 엿듣는 기분이랄까. 그 중심에 우아진이 있다. 그녀는 드라마 속 여성들이 선망하는 존재다. 시아버지에게는 아들인 남편보다 쓸모 있고, 자녀 교육에 대해서라면 어떤 쪽집게 강사보다 자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들인 여자들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아진이 딸의 미술 선생으로 들인 윤성희는 그녀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그녀가 고용에 찬성한 간병인 박복자는 시아버지를 유혹한다. <품위 있는 그녀>의 백미경 작가는 김희선에게 맞춰 우아진이라는 캐릭터를 썼다고 말하며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는 지점도 있다”라며 박복자마저 우아진을 동경하고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우아진이 우아함을 버리고 자기 선택으로 새로운 삶을 선택할 때, 나이 들면서 과거 작품들보다 진일보한 캐릭터를 능란하게 다루는 김희선이라는 배우에게 새삼 감탄하게 된다.

한 마디: “남들을 무시하면서도 남들을 끝없이 의식해야했고 끝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행불행을 성적 매기곤 했지요.”
한 핏줄 캐릭터: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최연희. 사람 차별도 우아하게 표현하는 귀부인. 유호정이 연기한 최연희는 끝까지 틀 안에서 버티고, 마지막까지 전전긍긍한다. 우아진이 끝까지 ‘럭셔리’를 지키고자 했으면 어찌 되었을까. 그 답은 최연희와 비슷하지 않을까. 이다혜 (칼럼니스트)

 

<아이 캔 스피크> 시장 상인들 

<아이 캔 스피크>의 나옥분 할머니를 ‘올해의 여성 캐릭터’로 한정 짓기엔 남음이 있다. 그는 ‘올해의 캐릭터’로 꼽히는 편이 한결 합당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각종 영화상에서 배우 섹터만 성별을 구분하는 관행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 말이다. 이 영화의 시장 상인들이 여성 캐릭터로서 뜻깊은 이유는, 그들이 연대하는 방식이 80년대 남성적인 그것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때 그 시절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이 우리 주변엔 적지 않다. 수컷 침팬지 무리에서 종종 관찰되듯 그들은 패거리를 이룬 다음 따르지 않는 이에겐 유·무형의 폭력을 가하려는 습성이 여전하다. 영화의 외연으로 나아가자면, 짙은 남성성이 판치는 다수의 한국영화들은 2017년에도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활용하거나 폭력과 보호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함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지고 말았다. <아이 캔 스피크>의 여성 상인 들은 얼핏 파편화한 개인으로 보이지만 남성의 도움 하나 없이 잘도 살아가며 공감능력을 통해 느슨하게 연대한다. 자립한 개인들의 강요하지 않는 연대. 이것은 촛불 시민이 보여준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진주댁(염혜란)이 미 의회 증언을 앞둔 옥분 할머니를 위해 동료 상인들로부터 전달 받은 물건들을 꺼내놓는 장면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가 깊다. 상인들은 자신의 가게에서 취급하는 물품을 호기롭게 집어준 게 아니라, 굳이 옆 가게로 건너가 조심스레 의논한다. 그러고는 나직한 수다로 연대의 관계망을 넓혔을 것이다. 족발집 주인(이상희)은 달러로 바꾼 노잣돈을 말없이 가져다놓고는 멀찍이서 고개를 숙인다. 우리 주변에서는 충분히 만나볼 수 있는 따뜻한 자매애를 유독 한국영화 상영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이들 캐릭터를 한층 빛나게 한다.

한 마디: “이거는 횟집에서 준 사골이고, 이거는 건어물에서 준 한약, 내복 이거는 국숫집이고.” 한 핏줄 캐릭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의 선수들. 우승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대개의 스포츠 영화와 달리 각자의 사정으로 힘겨운 ‘아줌마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송형국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