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름보다 겨울이 좋은 남자들

2018.01.15이재위

이번 겨울은 유독 더 춥다고? 이 남자들처럼 겨울을 지내보자.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은 남자들을 소개한다.

빙벽 등반. 김우경 (29세)

1. 빙벽 등반을 시작한 계기는? 여자친구와 함께할 취미를 찾다가 2013년부터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 암벽 등반은 재미 있고 적성에도 잘 맞았지만 추운 겨울에는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겨울에 얼어붙은 폭포를 오르는 빙벽 등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당시에 학생이던 나는 아이스 바일, 빙벽화, 각종 확보 장치 등 고가의 빙벽 등반 장비를 구입할 형편이 못됐다. 약 2년 전, 등반 장비를 수입하는 회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빙벽 등반을 시작했다.

2. 가장 좋아하는 빙벽 등반 장소는? 설악산의 잦은바위골은 높이가 1백 미터에 이르는 폭포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깊은 계곡을 따라 2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무릎보다 높이 쌓인 눈을 밀어내며 등산을 해야 하고, 아직 얼지 않은 계곡에 발을 잘못 디디면 물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렵게 폭포 앞에 도착하면 그 웅장한 모습에 매료된다. 특히 1백 미터나 되는 얼음 폭포에 매달려서 바라보는 바위 능선은 지금껏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3.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하산했을 때 기쁘다. 자연은 예측할 수 없는 세계이고, 등반은 언제나 큰 위험을 안고 있는 활동이다. 등반 전날, 짐을 챙기고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이 마냥 설레고 즐겁지만은 않다. 최근에 여자친구와 단 둘이 팀을 이뤄 잦은바위골 등반에 성공했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안도감과 성취감이 몰려왔다. 군대에서 전역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배가 엄청나게 고팠다.

4. 빙벽 등반을 할 때 반드시 챙기는 물건은? 첫 월급을 받아 구입한 블랙다이아몬드의 ‘퓨얼’ 아이스 바일이다. 학생 때 선망하던 브랜드의 장비를 내 손에 쥐게 됐을 때 떨리던 기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빙벽 등반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 아이스 바일만을 사용하고 있다.

5.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꼭 가보고 싶은 장소는? 설악산의 토왕성 폭포는 자연 폭포 중 아시아 최대 높이인 3백50미터를 자랑한다. 이 폭포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고 한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기슭에서는 길을 잃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올 겨울이 지나기 전에 토왕성 폭포 등반에 도전해 보고 싶다.

6. 빙벽 등반을 하면서 생긴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이제 막 빙벽 등반을 시작했을 무렵이다. 강원도 원주의 인공 빙벽인 ‘판대 빙장’에서 등반을 하고 있을 때 진로 상에 있던 얼음 더미가 녹아서 무너져 내렸다. 10분만 일찍 등반을 시작했다면 그 얼음 더미로 인해 위험한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최소한 일주일 전부터 빙벽 대상지의 기온을 확인한다.

 

겨울 서핑. 이정웅 (29세)

1. 겨울 서핑을 시작한 계기는? 서핑은 전역 후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스포츠였다. 2013년 여름, 태안 만리포 해변에서 서핑에 입문했다. 그 해, 우리나라에서 서핑의 최적기는 겨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곧장 서핑보드와 겨울 장비를 구입했다. 그리고 포항 신항만 근처에 월셋방을 얻어 본격적인 겨울 서핑을 시작했다. 포항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기 때문에 점심에 잠깐 낮잠을 자는 시간 빼고는 줄곧 서핑만 했다.

2. 가장 좋아하는 겨울 서핑 포인트는? 처음 겨울 서핑을 시작한 포항 신항만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신항만은 겨울철에 힘이 좋고 깨끗한 파도가 들어온다. 고성이나 양양보다 더 아래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보니 비교적 따뜻한 날씨 속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또한 포항은 대게, 과메기, 물회 등 먹거리 천국이다. 신항만 서핑 포인트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해변과 가까워질수록 부분적으로 암초가 있다. 해변 방향으로 나올 때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3.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서핑을 하다 보면 마주 오는 파도에 휘말려서 세탁기 속 빨래들처럼 구르는 때가 있다. 물 밖으로 다시 머리를 쳐들고 바다를 향해 팔을 저어 갈 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강해졌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시원하다. 목욕탕 온탕에 오래 앉아 있다가 냉탕으로 뛰어들 때의 상쾌한 기분과 비슷하다.

4. 겨울 서핑을 할 때 반드시 챙기는 물건은? 바셀린. 춥고 건조한 겨울엔 피부가 약해지고 쉽게 트기 마련이다. 서핑 전에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부분에 바셀린을 발라 피부를 보호한다. 또한 두꺼운 동계 웻수트를 입을 때 손과 발에 바셀린을 바르면 비교적 쉽게 입을 수 있다

5.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꼭 가보고 싶은 장소는? 몇 해 전, 유튜브를 통해 북한에서도 서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계적인 서핑 포인트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훌륭한 파도가 들어올 거라고 확신한다. 가끔 차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서핑 포인트를 찾아 다닐 때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해변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새로운 서핑 포인트를 찾아 다니며 여행을 하고 싶다.

6. 겨울 서핑을 하면서 생긴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작년 겨울에 친구들과 만리포로 서핑을 하러 갔다. 하필 그날은 만리포의 하나뿐인 서핑숍이 휴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샤워였다. 당일치기 여행인데 숙소를 빌리기는 부담스러워 2리터 짜리 보온병 두 개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서 갔다. 해가 질 때까지 서핑을 즐긴 뒤 보온병에 담긴 물로 샤워를 했다. 다신 반복하고 싶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다.

 

겨울 하이킹. 김민환 (34세)

1. 겨울 하이킹을 시작한 계기는? 약 7년 전 겨울, 노고단에서 출발해 천왕봉까지 오르는 2박3일 지리산 종주에 도전했다. 그때 마침 많은 눈이 내렸는데, 사람 키보다 더 높이 쌓인 눈을 난생 처음 보았다.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로 눈이 많이 온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환경에서도 산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2. 가장 좋아하는 겨울 하이킹 장소는? 강원도 평창의 선자령이다. 우리나라의 산은 대개 등산로의 경사가 가파르고 수목으로 둘러 쌓여 있다. 그러나 선자령은 제주도의 오름처럼 경사가 완만하고 너른 평원도 있다. 따라서 주변 환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만, 능선에는 바람이 매우 사납게 불기 때문에 기능성이 좋은 바람막이를 꼭 갖춰 입어야 한다.

3.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여름 산은 벌레가 하루 종일 울고, 동물들도 기민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겨울 산에는 종종 완벽한 고요함 속에 놓이는 순간이 있다. 최근에는 선자령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하산하는 길에 그런 경험을 했다. 3면이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서 있었는데 바람의 흐름만 이따금 느껴질 정도로 조용했다.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순간이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4. 겨울 하이킹을 할 때 반드시 챙기는 물건은? 마운틴로버의 ‘푸드 쿨러’에 김밥, 빵, 캔 맥주 등을 보관한다. 쿨러는 여름에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겨울에도 꼭 필요하다. 하이킹을 막 시작했을 무렵, 배낭에 고기를 넣어서 겨울 산에 올라갔다가 꽁꽁 어는 바람에 먹지도 못하고 가지고 내려온 기억이 있다. 그 이후부터는 꼭 쿨러를 챙긴다.

5.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꼭 가보고 싶은 장소는? 2년 전 여름에 일본의 중앙 알프스를 다녀왔다. 원래는 2박3일 동안 걷고 야영하는 일정이었지만, 날씨가 너무 궂어서 이튿날에 산을 내려와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 왜 ‘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산세가 깊고 아름다웠다. 언젠가 겨울의 일본 북 알프스에도 가보고 싶다.

6. 겨울 하이킹을 하면서 생긴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선자령에서 야영을 한 다음날, 밤새 내린 눈에 텐트의 절반 이상이 뒤덮여 있었다. 특히 조그만 텐트에서 혼자 잠을 잔 친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해 끙끙댔다. 눈 더미가 텐트의 출입구를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친구가 도와 달라고 소리 치는 상황이 재미 있어서, 웃으면서 지켜보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때의 일로 친구에게 욕을 먹는다.

 

빙어 낚시. 임준일 (36세)

1. 빙어 낚시를 시작한 계기는? 오래 전부터 루어 낚시가 취미였다. 야생 연어, 송어 등을 잡기 위해 강원도의 크고 작은 계류를 찾아 여행했다. 그러나 나는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어서 강원도로 낚시를 떠나려면 6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한다. 어느 날, 전북 순창군의 잘 알려지지 않은 호수를 발견한 뒤로는 겨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아 빙어 낚시를 즐기고 있다.

2. 가장 좋아하는 빙어 낚시 장소는? 약 4년 전 여름, 낚시 포인트를 찾아서 순창군 일대를 여행하고 있었다. 인터넷 위성 사진과 GPS로 길을 찾다가 해발 5백 미터 산중턱에 위치한 호수에 다다랐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5미터쯤 되는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수영을 해서 들어가 보니 작은 물고기들이 많았다. 그 해 겨울부터 이곳에서 빙어 낚시를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 말고는 찾는 사람이 없는 오지라서 정확한 지명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

3.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빙어 대신 갈겨니나 피라미 같은 물고기가 종종 올라오면 작은 행운을 손에 넣은 기분이다. 또 날이 풀렸다 추워지면서 얼음이 어는 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그 소리의 웅장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얼음이 깨지는 소리인 줄 알고 무서웠지만, 지금은 안전하다는 걸 알기에 느긋하게 귀를 기울여 본다.

4. 빙어 낚시를 할 때 반드시 챙기는 물건은? 빅토리 캠프의 소형 화목 난로인 ‘미니 디디’를 애용한다. 열 효율이 높아서 텐트 안을 금새 훈훈하게 해주는 반면 수납 크기는 한 손에 들릴 정도로 작다. 차가운 얼음판 위에서도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는 운치 있는 방법이다.

5.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꼭 가보고 싶은 장소는? 우리나라에 내가 알고 있는 비밀 호수보다 더 좋은 빙어 낚시 장소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일본 북해도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곤들매기 낚시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곳의 계류를 따라 하이킹을 하면서 루어 낚시를 즐겨 보고 싶다.

6. 빙어 낚시를 하면서 생긴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여느 때처럼 사진 속 호수에 텐트와 화목 난로를 설치하고 빙어 낚시를 했다. 그런데 급한 일이 생겨서 장비를 챙길 겨를도 없이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다른 불상사까지 겹치면서 한 달 동안 호수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얼음이 녹아서 텐트가 물에 빠져 있을 거라고 체념하며 호수를 찾았는데 놀랍게도 그대로였다. 호수를 둘러싼 산자락 여기저기에 꽃이 핀 초봄이었다. 전라도 지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얼음이 녹지 않는 호수는 없을 거다.

    에디터
    이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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