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MAMA]는 어그로 장인?

2018.01.17GQ

올해도 <MAMA>를 봤다. 작년보다 말할 거리가 늘었다.

Mnet의 음악 시상식 <MAMA>를 매년 본방송으로 보는 이유는 절반쯤은 욕하기 위해서다. 정확히는 욕하는 사람들의 ‘드립’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다. 박진영이 건반을 발로 치던 그 기괴한 순간, 지인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그 반응들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절반의 이유는 그래도 <MAMA>에는 종종 인상적인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욕을 하다가도 2012년 빅뱅이 대형 해골 앞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시상식을 휩쓸었을 때, 지난해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눈을 가리고 춤을 추면서 그 순간 케이팝에서 가장 뜨거운 팀이 방탄소년단이라는 것을 증명할 때, 왜 <MAMA>를 욕하면서도 봐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MAMA>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던 입장에서, 이 시상식에 바라는 것도 이런 순간들이었다. 그래도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반영돼서 그해에 어떤 현상을 일으킨 중요 뮤지션들이 무대에 오르길 바랐다. 그리고 시상식 결과와 별개로 어쨌든 화려하고 그럴듯한 시상식을 원했다.

올해도 <MAMA>는 이른바 ‘어그로’를 끄는 데는 국가대표급 능력을 보여줬다. 어느 정도였냐면, 올 한 해 동안 트위터 이용자들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가장 많이 트윗한 키워드가 ‘MAMA’였다. 음악 시상식이 천만 영화 <택시 운전사>보다 더 많이 언급됐다는 의미다. 물론 <MAMA>에 대해 욕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그룹 AKB48이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 1 출연자들과 함께 일본 노래를 부른 뒤, 두 브랜드의 합작을 알리는 <프로듀스 48> 예고가 뜨는 순간 어떤 반응이 나왔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Mnet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는 워너원의 멤버 강다니엘의 표정을 담았다. Mnet의 <프로듀스 101>이 시청자들 속을 태우면서도 어쨌든 보게 만든 것처럼, <MAMA>는 누구든 도저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던진다. 이쯤 되면 ‘어그로’를 예술로 끌어올린 ‘어그로 장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그로’ 능력이 나날이 발전하는 반면, 올해의 MAMA 무대는 내 눈에게 미안한 순간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가수가 분명히 무대에 올라서 노래도 하고 춤도 췄는데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세븐틴이 보아의 ‘넘버 1’을 리메이크한 무대에서는 세븐틴 멤버보다 특정 관객의 얼굴이 더 많이 비쳤다. 처음엔 세븐틴이  <MAMA> 연출자에게 미움 산 일이 있나 했다. 하지만 계속 보니 그냥 시상식 전체가 그랬다. Mnet이 제작한 ‘아이돌 학교’를 통해 데뷔한 걸그룹 프로미스의 후렴구 안무를 전부 먼 하늘에서 잡아주는 것을 보니, 그냥 촬영과 편집을 망친 것 같다. 선미와 태민을 한 무대에 올리는 숨막히는 기획을 하고서도 두 사람이 각자의 노래를 같이 부르는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딱히 그 이상을 보여줄 역량이 안 되는 듯하다. 워너원의 무대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 비슷한 뭔가가 강다니엘 뒤에 등장해 저래야 <MAMA>지 싶은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래도 방탄소년단의 엔딩 무대는 화려한 스케일과 치열한 퍼포먼스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았다. 한국의 시상식에서 그만큼 큰 규모의 마술과 땀을 뻘뻘 흘리며 랩을 하고 춤을 추는 무대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드문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팀을 풀샷으로 보여줘야 할지, 멤버를 클로즈업해야 할지, 관객들의 호응을 보여줘야 할지 우왕좌왕하다 결국 멀리서 관객석과 팀을 동시에 보여주는 편집은 변하지 않았다.

제작진 탓은 아니다. 애초에 <MAMA>에서 좋은 무대가 나오는 것 자체가 제작진이 영혼을 갈아 넣은 결과라고 할 만하다. 한국의 음악 시상식은 생각대로 멋지게 치르기 어렵다. 그해 가장 인기 있는 팀, 좋은 성적을 올린 팀들만 일찌감치 섭외해서 준비하면 멋진 시상식을 치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럴리가. 우선 인기 팀을 가진 회사들은 종종 다른 가수들의 출연은 물론 많은 시간까지 요구한다. 이제 막 데뷔한 팀이 시상식 엔딩무대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가져간다면 이유가 뭘까? 아마 그 엔딩 무대의 가수와 같은 기획사이기 때문일 거다. 반대로 인기 팀이 하나뿐이라면, 여럿인 팀보다 발언권이 줄어들기도 한다. 여기에 공연장을 채워줄 인기 팀들의 팬덤도 두루두루 신경 써야 한다. 무대 순서와 러닝타임, 시상식 결과 하나하나에 온갖 이해관계가 걸리다보니 시상식 개최 며칠 전까지 출연진이 확정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지상파 방송사가 한때 연말 음악 시상식을 아예 없애버린 배경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엔딩 무대를 누가 하느냐는 것만 해도 이런 정치 싸움이 없는데, 수상자를 정하는 과정은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는가. 야심 찬 기획들을 준비하며 호기롭게 시상식을 진행하던 PD가 윗선들의 ‘업무 협조 지시’에 따라 본인 의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시상식을 연출하는 과정을 지켜본 적도 있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없는 무대가 엔딩이 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인기 팀을 보유한 대형 기획사가 아닌 회사의 가수들은 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에는 왜 그래미 어워드가 없는가, 라는 의문은 부질없다. <MAMA>는 바로 그 “아시아의 그래미”를 목표로 하는 시상식이다.

<MAMA>는 누구든 도저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던진다. 이쯤 되면 어그로를 예술로 끌어올린 어그로 장인 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제작진으로서는 다른 시상식보다 일거리가 2배, 아니 4배나 그 이상 늘어나는 것과 같다. 아시아의 그래미라는 명분으로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이라, 그냥 인기 팀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 있는 팀을 섭외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해외로 데려가야 한다. 그런데 올해는 시상식 장소가 일본, 홍콩, 베트남 세 곳으로 늘어났다. 시상식 무대도 나눠야 하고, 나라별로 초대할 해외 연예인 섭외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들에게 주는 온갖 희한한 상 이름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부문을 시상해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제대로 된 무대를 기대하기보다 시상식이 제대로 진행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어그로’는 그대로인데 시상식의 완성도는 하락했다. 그간 쌓아온 Mnet의 노하우 “욕하면서 본다”가 시청자의 욕으로 관심을 끌다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 어쩔 수 없이 보게 했다면, 올해 <MAMA>는 욕만 하면서 보다 “아, 방탄소년단”이었다. 의문이 생기는것은 당연하다. 굳이 아시아의 그래미를 만들어야 할까. 물론 그럴 필요는 없다. 돈이 안 된다면. 아시아의 그래미를 만들겠다는 것은 Mnet의 모회사인 CJ가 “문화를 만드는 일은 CJ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광고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걸 믿으면 안 된다.

다만 마케팅 측면에서의 진실은 있다. Mnet은 매년 몇 차례씩 케이팝 팀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에서 합동 공연을 여는 <KCON>을 진행 중이다. 그만큼 해외 시장 진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 인기 높은 팀들의 <KCON> 출연을 위해 다양한 설득 작업을 펼치기도 한다. <MAMA>는 <KCON>의 확장판이자 종합판이다. 평소에는 나눠서 나오던 인기 팀들이 한꺼번에 나온다. <MAMA>에서 시상식은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해외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한국이 아닌 “아시아의”라는 명분을 찾는 이유다. 그래서 열린 지 10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딱히 다른 아시아 뮤지션들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다. 명분을 세울 적당한 상 몇 개만 마련하면 그뿐이다. 올해 시상식을 베트남, 일본, 홍콩으로 나눈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케이팝 시장이 다져진 일본, 홍콩으로 대표되는 중화권, 그 외 지역 등을 골고루 안배해 CJ E&M의 케이팝 공연을 홍보한 셈이다. 정말 ‘그래미’가 되고 싶다면 시상식을 세 곳으로 쪼개서 할 리가. 아시아를 도는 케이팝 시상식이 최소한의 권위라도 가지려면 뭔가 있어 보이는 틀을 갖출 필요가 있다. <MAMA>는 아시아의 그래미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마케팅에 필요한 시상식을 만든 뒤 그에 어울리는 명분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시상식을 통해 해외 시장을 노린다는 발상은 매년 똑같은 모습만 반복하는 다른 시상식들보다 야심이라도 있어 보이고, 해외 관객들을 만족시키다 보니 다른 시상식에 비해 공연에 신경 썼던 것도 사실이다. 국내 대부분의 음악 시상식이 이렇다 할 특색 없이 잊히는 데 반해 <MAMA>는 해외에서 열리는 화려한 공연 위주의 시상식이라는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어그로’를 끌어서라서 화제를 모으는 것도 시상식으로서는 나름의 능력일 수 있다. 결과가 어떠하든, 무슨 공연을 하든 주목받지 못하는 시상식은 존재 의의가 없다. 케이팝 아티스트들 사이에 개최지의 가수를 어색하게 끼워 넣고 의미를 알기 어려운 상을 주는 이상한 순간이 계속되기는 해도 <MAMA>의 정체성 중 하나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다. 어쨌건 보는 사람을 화나게 하면서도 퍼포먼스로 시선을 사로잡고, 결국 많은 시상식 중 <MAMA> 이야기만 유독 많이 나오는 것은 나름의 원천 기술이다.

그러나 올해의 <MAMA>는 마케팅에 대한 욕망이 <MAMA>가 아슬아슬하게 지켜온 시상식의 명분을 다 집어삼켰다. 3개국 개최는 시상식을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했고, 마비엔나 스노글로브 세계 최초로 스노글로브를 만든 오스트리아 브랜드로, 1900년부터 손바닥만 한 구슬 속에 눈 내리는 풍경을 빚어 넣었다. 아예 없는 것처럼 투명한 알프스 원천수가 판타지의 비밀이다. TWL 숍에서 예약 판매한다. 마케팅을 위해 벌린 무리한 판은 시상식의 수준을 순식간에 떨어뜨렸다. 시상식을 세 나라로 나누면서 오히려 <MAMA>가 그동안 얼마나 대책 없이 판을 벌려왔는지만 증명됐다. 시상식은 늘어났는데 그에 따른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곧바로 공연의 질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MAMA>의 공연을 준비해온 제작진의 영혼이 남아 있기는 할까. 그런 점에서 매우 한국적인 시상식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케이팝 팀으로 시작해 케이팝 팀으로 끝나는데 아시아의 시상식이고, 심사위원 투표와 팬덤 중심의 온라인 투표가 섞이고, 개최지가 세배로 늘어나도 어쨌건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끝내야 하고. 그런데 종종 괜찮은 무대가 나오고, 시청자들은 그 무대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올해는’에서 ‘올해도’를 말하다가도 어쨌건 <MAMA>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결국 내년에도 보긴 볼 거고. 하지만, 이젠 제발 자제 좀.

“본방 사수”라는 말도 사어가 됐다. TV는 동시대에 뒤처졌다. 한국 사회에서 TV는 여전히 가장 영향력이 큰 매체지만 동시대 감각에 무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책임감마저 없어 보인다. “욕하면서도 본다”라는 전혀 달콤하지 않은 말에 취해 있어도 좋은 걸까? 끌 때 끄더라도 욕 한마디는 시원하게 해야겠다.

    에디터
    글 / 강명석(대중문화웹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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