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을 위한 [믹스나인]

시청자의 눈치조차 보지 않는 계급의식의 천박함.

YG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양현석 회장이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한동철 PD가 연출하는, 연습생 혹은 데뷔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JTBC <믹스나인>을 설명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들었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은 드디어 (부정적인 의미에서)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양현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06년 <리얼 다큐 빅뱅>이라는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로 빅뱅 멤버들을 선발했고, Mnet <WIN>과 <MIX&MATCH>를 통해 위너와 iKON을 뽑았으며, 시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SBS <K팝 스타>의 심사위원석을 지키며 이하이와 악동뮤지션 등을 YG로 영입했을 정도로 오디션 프로그램 마니아에 가까운 사람이다. 한동철 PD는? Mnet 출신으로 <프로듀스 101>을 비롯해 <언프리티 랩스타>와 <쇼 미 더 머니> 등을 연출했으며, 한 인터뷰에서 <프로듀스 101>에 대해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서바이벌 리얼리티 오디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두 중년 남성이, <믹스나인>으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지금이야 출연자들의 무대 위주로 진행되지만, 사실 <믹스나인>의 포인트는 YG의 수장 양현석이 무려 직접 중소기획사들을 돌아다니며 연습생 혹은 데뷔를 했지만 뜨지 못한 아이돌들을 평가한다는 데 있었다. 기획사들을 돌아다니는 과정 중간중간 육체적으로 지치지만 너무나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기에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듯한 양현석의 모습이 등장한다. 몇십 개의 기획사를 돌며 단체 심사, 개별 심사까지 해야 하니 체력이 달리는 건 당연하겠지만, 일단 누구도 그에게 강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야말로 권한을 가진 본인이 선택한 일이며, 데뷔의 갈림길에 서서 혹독한 평가를 당해야 하는 출연자들보다 힘들 리는 없다.

YG의 대표로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제작자로서, 혹은 이들을 데뷔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손으로서, <믹스나인>의 주요 출연자로서 양현석은 말한다. 씨클라운이라는 팀으로 데뷔했다 현재 작곡가 신사동호랭이가 이끄는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는 이재준에게, “(골치 아프다는 듯 깊은 한숨을 쉬며) 돌아갈 길이 없어. 어디로 갈 거야, 만약에 여기서 떨어지면?6년 동안 뭐 했어?” A100 기획사 소속 어린 여자 연습생들의 무대를 넋 나간 표정으로 보고 난 후, “진짜 나 이런 적 처음이야. 다른 기획사에서 여자 그룹을 많이 봤는데 이렇지 않았는데 왜 그렇죠? YG 가수들은 왜 나한테 저런 거 안 해주지?” 리얼 걸 프로젝트라는 걸 그룹을 보고, “저는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귀여운 애들이 있네요. (일본 출신 멤버에게) 유키카 너무 귀여워. 푹 빠졌어, 나.” 마지막으로, 코코소리로 데뷔했다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간 스물여덟 김소리에게. “아이돌을 하기에는 나이가… 은퇴할 나이인 것 같은데? 그럼 이 나이 동안 뭐 한 거예요?”

40대 중년 남성이 십 대에서 이십 대 초반의 여자아이들이 짧은 옷을 입고 춤추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좋아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은 정상적인가? 심지어 그것이 방송을 통해 꾸준히 노출되는 것은 어떤가? 심사위원의 위치에 있다면 누군가를 인신공격해도 되는가? 데뷔할 수만 있다면,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룰 방법이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인신공격 당하는 수모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인가? <믹스나인>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아마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아주 자세하게 보여준다.

제작발표회에서 양현석은 이렇게 말했다.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음악 방송 뿐인데 음악 방송 시청률이 저조하고 거기에 나온다고 해도 유명해지지 않는다. <믹스나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분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생할 수 있는 기회 아닐까 싶다.” 방송국의 권력은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약해졌고, 음악 프로그램의 위상은 더더욱 예전 같지 않다. 나는 늘 <프로듀스 101>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권력을 되찾아오기 위한 방송국들의 마지막 발버둥 같은 게 아닐까 의심해왔는데, Mnet이나 KBS, SBS 등의 방송국이 하는 일을 YG가 할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선언해버린 양현석 을 보며 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계급도를 드러나지 않게 포장하고, 존엄성을 갖추려는 최소한의 제스처를 했다면 <믹스나인>에는 그마저도 없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결국 계급도다. 당연히 YG엔터테인먼트의 회장 양현석이 계급도의 맨 꼭대기에 있다. 모든 기획사를 돌며 출연자들을 심사하고 평가할 수 있는 위치. 그 아래에는 중소기획사 대표들이 있다. 한 회사의 대표이지만 양현석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고, 양현석이 연습생들을, 더 나아가 자신의 회사를 구원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양현석과 썩 좋은 관계가 아니라고 알려진 프로듀서 용감한형제조차도 회생을 위해 <믹스나인>에 출연했고, 양현석은 용감한형제의 회사 건물과 차를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자신이 더 높은 사람임을 끊임없이 어필했다. 대표들 아래에는 연습생들이 있다. 양현석 대표의 눈에 띄어 데뷔라는 목표에 손이라도 뻗어볼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다시 데뷔조-연습생조-아예 선발되지도 못한 연습생들이라는 계급으로 나뉜다.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러한 계급도를 드러나지 않게 포장하거나, 존엄성을 갖추려는 최소한의 제스처 – 정말로 제스처에 불과할지라도 – 를 했다면 <믹스나인>에는 그마저도 없다. 가령 <프로듀스 101>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장치를 두고 적어도 시청자가 아이돌 제작에 참여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믹스나인>과 비슷한 시기에 방영을 시작한 KBS <더 유닛>은 재미와는 별개로 심사위원들과 출연자들이 진정성 넘치는 멘토-멘티의 관계로 엮이는 것처럼 포장했다.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들을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서바이벌 리얼리티 오디션이라는 형식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며 그 약점을 가리려는 시도라도 했다는 얘기다.

반면 <믹스나인>은 ‘나쁜 거 아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태도로 일관한다. 노골적인 여성 상품화, 계급 나누기, 그리고 이 모든 요소를 통해 프로그램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이돌 산업의 맨 위에 있는 존재가 양현석이라는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 추이를 살펴보면 첫 회 1.7퍼센트(TNMS 기준)에서 시작해 잠깐 2퍼센트대까지 올라갔다 다시 1.2퍼센트대에서 맴도는 중이다. 부진한 이유가 단지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 때문일까? <믹스나인>은 양현석 개인의 욕망이 아주 투명하게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며, 여기서 아무리 시청자 투표라는 장치를 뒤늦게 마련한다고 해도 그 어떤 시청자든 자신을 ‘국민 프로듀서’의 자리에 위치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칠게 말해 <믹스나인>은 양현석의, 양현석에 의한, 양현석을 위해 준비된 쇼일 뿐이다.

양현석이 2014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했던 말을 종종 떠올린다. “여러분들은 내가 돈이 많아서 부럽냐. 내가 몇천 억이 있어서 부러워하냐. 하지만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젊음이다. 전 재산 다 내놓고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난 바꾼다. 그만큼 여러분들이 가진 젊음은 너무나 많은 기회와 도전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21세기라 해도 인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는 걸 알면서 청춘과 돈을 기꺼이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공허하다. 본인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채 다음 세대에게는 젊음만을 밑천 삼아 무한 경쟁에 자신을 내던지라는, 전형적인 꼰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돌 연습생처럼 약하고 절박한 사람들의 꿈을 볼모 삼아,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믹스나인>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실은 문제 제공자에 가까움에도 혼란스러운 산업의 구원자를 자처하는 것은 더더욱 기만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더 이상 ‘길티플레저’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는 것,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 그걸<믹스나인>에서 배웠다. 물론, 더 볼 생각은 없다.

“본방 사수”라는 말도 사어가 됐다. TV는 동시대에 뒤처졌다. 한국 사회에서 TV는 여전히 가장 영향력이 큰 매체지만 동시대 감각에 무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책임감마저 없어 보인다. “욕하면서도 본다”라는 전혀 달콤하지 않은 말에 취해 있어도 좋은 걸까? 끌 때 끄더라도 욕 한마디는 시원하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