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불후의 명곡]의 주입식 감동

2018.01.22GQ

7년째 매주 탄생 가능한 전설에 대하여.

KBS2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는 2012년 4월 7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무한도전>이 없는 사이 토요일 저녁 예능의 왕좌를 차지했다. <불후의 명곡>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MBC <나는 가수다>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기획된 아류였다. 2011년 6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지금의 틀과 콘셉트를 갖추고 단독 편성되기 전 <자유선언 토요일>의 한 코너로 소박하게 시작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계급장 떼고 가창 경연을 펼치는 내용이었는데, 마침 그해 3월 시작한 이소라, 김건모 등등 유명 가수들이 노래 대결을 벌이는 가창 예능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류에 편승해 탄생한 예능이 이제 곧 7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 KBS 예능국 특유의 아류 양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심지어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근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불후의 명곡>이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주말 저녁 집 안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불후의 명곡”이라는 데 있다. 만약 <가요무대> 시간으로 자리를 옮긴다면 이 프로그램에 전혀 불만이 없다. 사랑과 행복과 평온으로 가득해야 할 주말 저녁,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즐기는 단란한 가정의 배경음악이 이래서는 안 된다.

1인 가구가 늘고 세대 간의 대화가 점점 단절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살가운 가족들에게 토요일 저녁만큼 평화로운 시간은 없다. 일주일간 각자의 삶을 살아온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교류하는 시간이고 가족 간의 정서적 대류가 일어나는 자리다. 가족이 함께 TV를 보면서 보내는 주말 저녁 시간은 훗날 가족과 평온의 이미지로 각인될 것이고, 이 체화된 경험과 감각이 자녀들에게 취향과 행복의 자양분으로 스며들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소중한 주말 저녁의 가정을 책임지는 장수 예능이지만, <불후의 명곡>에 대해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은 정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설’, ‘전율’, ‘소름’, ‘레전드’ 등의 단어와 과잉된 감정이 만나 눈물과 감동의 결로 현상을 맺는데, 마치 인쇄기로 찍어내듯, 나오는 사람의 이름만 달라질뿐 매주 똑같은 이야기다. 최근 신중현 편에 등장한 “데뷔 60주년을 맞은 전설”, “신중현의 명곡들이 다시 태어납니다” 라는 자막이나 “대한민국 밴드의 자존심”이라며 “대한민국 록 음악의 대부”라고 말한 부활 김태원의 말에 매주 주어와 숫자만 바꾸면 된다.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정동하, 알리는 이곳의 지존이고 김태우, 손승연, 홍경민, 임태경, 에일리 등도 서브 MC인 정재형, 문희준만큼이나 익숙한 얼굴이다. 일상성을 탐닉하는 관찰형 예능이 득세한 지금, 이보다 틀에 박힌 예능도 찾기 힘들다. 그러니까 어느 날 좋았다거나 언제 특별히 나빴다고 말하기가 불가능하다. 시청률은 곧잘 나오기에 종영될 일도 없고, 빤한 찬양 외에는 딱히 할 말도 없기에, 비평의 영역 바깥에서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이다.

문제는 <불후의 명곡>이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주말 저녁 집 안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불후의 명곡 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주말 저녁의 프로그램, 즉 가족의 문화유산으로 삼기에 <불후의 명곡>은 심히 촌스럽다. 이 프로그램을 시대정신이라거나 당대의 보편적인 정서 혹은 재미라고 하는 건 국가 경쟁력까지 숙고해볼 문제다. 취향의 다양성은 인정해야겠지만 상식적인 수준이 있다.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청소년과 어린이의 음악적 취향과 감수성이 6년째 들어온 경연용 열창에 영향 받지 않았을지, 사자 우리에 생닭을 넣어주고서 야성이라고 구경하는 수준의 감동에 익숙해지지 않았을지 어쩌다 이 쇼를 마주칠 때마다 생각한다.

이쪽 업계를 개척한 <나는 가수다>가 잉태한 두 가지 폐단이 있다. 한 가지는 가창 예능을 장르화했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낯간지러운 레전드 스토리텔링이다. <불후의 명곡>은 제목부터 그 영향권 아래 있는 데다, 음악적 측면에서도 <나는 가수다>가 사라진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 그것을 답습하고 있다.

가창 예능은 말 그대로 노래를 통해 감동과 재미를 만들어야 한다. 왕좌에 앉은 시청자들이 노래를 평가하는 재미가 결부되어 있고, 일반적인 노래 감상과도 다른 영역이다. 공개 코미디의 문법을 근간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에너지와 분위기를 전달하는 연출이 입시 미술 양식처럼 자리 잡았다. 뮤지컬처럼 과잉된 감정을 드러내고 고음역대를 뽐낼 수 있는 극적인 편곡과 가창력을 고집하면서 감동을 강조, 혹은 강요하는 방식이다. 서바이벌 쇼를 통해 1차적으로 학습된 가창 예능의 양식이지만, 스케일이 큰 편곡, 과거를 전설화하는 추억 스토리텔링, 스타일보다는 풍부한 성량과 고음을 내지르는 가창 방식은 새로운 버전의 <열린 음악회>다. 청중과 패널들은 감동에 북받쳐 말문이 막힌 채 엄지를 치켜들고, 전설이 또 다른 전설을 물고 늘어지는 걸 보다 보면 다른 의미로 말문이 막힌다.

흘러간 가요들이 경연곡으로 활발히 리메이크되면서, 7080세대의 전유물 이상의 스토리를 품은 전설로 포장돼 젊은 세대에게 제공됐다. 2013년, 조용필의 ‘바운스’에 대한 젊은 세대의 환호는 괜한 게 아니었다. 케이팝의 전 세계적인 성취를 통해 가요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옛 가요에 대한 관심까지 동시에 환기됐다. 레전드 스토리텔링이 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옛 가요와 가수가 속속 재조명되고, 가창력이 뛰어난 이들이 공연할 예능 무대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오래, 자주, 똑같은 강도와 방식으로 전설이 강림하다 보니 잊힌 명곡의 재발견은 식상한 감동이자 작위적인 신파가 됐다. 똑같은 방식으로 감동을 주조하는 노래와 레전드 스토리텔링이 노래와 무대의 전부라고 하는 듯한 ‘주입식 감동’이랄까?

오늘날 예능은 여러 장르와의 이종교배를 통해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창 예능만큼은, 음악의 즐거움을 축소시키고, 예술을 기술적으로 접근하고 서열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위 개개인의 ‘바이브’가 생겨날 틈도 없이, 획일적인 가창력의 기준과 계산된 감동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동시대적이지 않은지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변화해야 한다. 다 차치하고, 평온한 주말 저녁을 위해서라도.

“본방 사수”라는 말도 사어가 됐다. TV는 동시대에 뒤처졌다. 한국 사회에서 TV는 여전히 가장 영향력이 큰 매체지만 동시대 감각에 무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책임감마저 없어 보인다. “욕하면서도 본다”라는 전혀 달콤하지 않은 말에 취해 있어도 좋은 걸까? 끌 때 끄더라도 욕 한마디는 시원하게 해야겠다.

    에디터
    글 / 김교석(TV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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