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그래도 카세트를 갖고싶어

EDITOR’S LETTER – 그래도 카세트를 갖고싶어

2018-01-23T10:38:31+00:00 |ENTERTAINMENT|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고, 차를 몰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쇼핑을 하고, 빨래를 개고, 술을 마시고, 고양이를 먹이고, 섹스를 한다. 내 말은, 말은 더 이상 우리의 유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녹음된 음악이 포르노보다 더한 침투력으로 생활의 전 영역을 점거했기 때문에. 이어폰을 꽂은 채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에디터들은 100년 전,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음악가를 찾아가야 했다는 걸 알까. 그땐 음악을 듣는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조선에서야 장터 한가운데나 심산유곡, 고관대작들의 사랑채였으나 서양은 심포니 홀, 오페라 하우스, 댄스 홀, 리사이틀 룸, 길모퉁이…, 다채롭긴했다. 어차피 레코드가 생기기 전인 건 다 같았지만.

CD나 LP, 카세트테이프는 재생 장비를 규정하되 형식은 기계적으로만 중요한 게 아니다. 박물관에서 축음기 앞을 서성거릴 때 토마스 알바 에디슨이 만든 스탠더드 축음기는 얼얼하도록 아름다웠다. 황홀한 오크 무늬, 견고한 크랭크, 고깔 모양 스피커, 단단한 실린더, 나선형의 활기는 소리의 충실성에 대한 헌신이며 복음이었다. 나는 음악 자체보다 기기가 더 좋았다. 카세트 데크, 워크맨, 휴대용 카세트 라디오는 테이프가 필요하다는 걸 빼곤 다 좋았다. 독수리표 카세트를 광고하는 소녀 모델의 짙은 눈썹, 신묘한 물성을 뿜어내는 산요 스테레오 카세트의 분리형 직육면체 스피커. 여기에 기묘한 CM송이 이어진다. 이 시간이 지나면은 또 올까 너무나 안타까워 그래도 카세트를 갖고 싶어 대우 더블데크 카세트.

턴테이블은 웬만한 집에선 웬만큼 구비한 장비였다. 어떤 음악광은 16·33·45·78-rpm, 4종류 스피드로 턴테이블을 세팅한다지만 실제로 16-rpm을 본 적은 없다. 그냥, 턴테이블 표면이 긁히는 게 싫어서 예쁜 천이나 담요, 플라스틱 먼지 덮개, 티셔츠로 덮어버리던 소동만 생각난다. 음표가 눈처럼 내려앉던 덮개의 반짝임은 맨날 그 위에 올려놓던 맥주 캔과 교만하게 뛰어오르던 고양이 때문에 흠집만 잔뜩 났지.

덧붙여, LP의 표지 그래픽은 늘 조잡하게 뭉개져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는 물성 자체로도 완전히 불만족스러웠다. 카세트테이프의 압착된 비닐 포장을 벗기자마자 플라스틱 패널이 바닥에 떨어진 건 폴드 구멍이 너무 깊게 파여서였을 것이다. CD 플레이어가 특별히 깨끗한 사운드를 구현 했다지만 CD 케이스는 늘 고장 났다. 그 이전에 싱글 기기와 교환식 중 어느 걸 고르냐는 것부터 문제였다. 교환식은 한 번에 CD 다섯 장을 넣을 수 있다는 건데, 음악을 다섯 시간 들으면 행복할까? 누가 그렇게 오래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나? 다섯 시간 내내 섹스하는 절륜 남녀라면야 플레이어를 반복 설정하겠지만.

세계의 병맥줏집이며 빌리어드 클럽에서 왕왕 보이다 본능적으로 소멸된 주크박스는 처음부터 논쟁적이었다. 미국 술집에서 생음악을 연주했던 건 레코드를 틀면 가난한 음악가들이 먹고살 수 없어서였다지. 사운드의 질이 여전히 강렬한 관심사인지는 모르지만, CD 대 LP 논쟁은 어차피 철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따뜻한 음색 대 차가운 음색, 디지털 대 아날로그, 점선 대 실선. 실제적인 기준에서 보면 복고적인 LP 수집가든 역사에 무지한 CD 지지자든, CD가 더 편하고 비쌌다는 사실엔 꼼짝할 수 없다. 그것 외에 다른 논쟁들은 적대적인 척해도 다 패션이고 향수고 정치며 가식일 뿐이었다. 이젠 CD도 아웃. 웃음이 나온다. CD 플레이어도 이렇게 골동품이 될 걸 뭐가 그렇게 갖고 싶었나. 하지만 과거가 되지 않는 지금의 것이 어디 있나. 이때 또 다른 진실은 빈티지가 신상품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기술이 언제나 실용에 기여하진 않는다. 사용자들은 클라우드로 삼투압처럼 빨려들어가는 음악을 카세트 트레이로 스트리밍한다. 일부는 다운 받을 수 있지만, 다운로드가 잦은 어떤 것은 돈을 내면 골든 앨범이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렇게 각각의 행위에 맞는 특정 음악 목록을 가질 것이다. 어떤 노래, 어떤 앨범, 어떤 콘서트를 고전으로 여기는지는 서로 다르다. 우주에서 무엇을 고를지 아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으니까. 이 세상 모든게 사라져도 음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니, 침몰하면서까지 연주한 타이타닉 밴드 마스터의 비범한 친절은 그렇게 인생의 다른 것을 보여주었다….

모든 사운드에는 기술적 통찰이 필요하다. 매킨토시 275 진공관 앰프를 몰고, 출력 변성기의 잠금장치를 떼어 60㎐/15ips로 캡스턴 모터를 돌리기에 충분한 120볼트를 주고, 주파수를 변동하고, 플레잉 잼이 꿈꾸는 국수 가락 같은 부분에 시작 신호를 보내면, 시대, 라인업, 세트 리스트, 사운드 시스템, 녹음 장치, 공연장에서의 위치, 녹음하는 사람의 소리에 대한 편견, 관리의 연속성, 도망가는 신시사이저가 위자보드처럼 소용돌이친다.

8트랙 테이프 플레이어가 사라진 건 레코드 음악 재생 도구의 역사에 큰 손실이라는 말은 키치적인 가치와 70년대에 대한 애착에서 나왔을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매물로 나온 8트랙 테이프 플레이어를 보고 흥분하는 건 서랍에 넣어둔 밀바를 드디어 재생할 수 있어서겠지. 부피가 커서인지, 주 릴 테이프에서 빈 릴 테이프로 옮기는 게 번거로워선지, 단순한 홈 엔터테인먼트라서였는지, 지금은 기피된 채 음향 기기 박물관에 멈춰 있는 릴투 릴 플레이어는 설핏 수사반장이나 FBI 비밀 요원의 아우라를 흘린다. 나도 가끔 수많은 아티스트의 스튜디오 세션과 콘서트를 녹음한, 릴 투 릴 멀티 트랙이 담긴 상자가 선반 가득한 온도 조절 격납고를 상상한다. 아무래도 <미션 임파서블>을 너무 열심히 봤나봐….

어렸을 땐 카세트테이프를 빌려서 들었다. 복사한 것의 복사한 것의 복사한 것을. 마음의 귀로 꿈틀거리며 듣는 동안 사람들이 어두운 시절 동안 보관해온 감흥을 나만의 뉘앙스로 채웠다. 오래된 테이프에선 젖소 농장의 맛처럼 부패된 음이 들렸다. 나는 다리가 세 개인 개를 사랑하는 것처럼 각각의 특징과 향과 테루아를 느꼈다. 일종의 공감각으로서 소리는 하나의 색채와 같았다. 또는 눈에 띄는 냄새 같았다. 진흙 같은 음질도 매력의 삐딱한 한 부분이 되었다. 멈춤, 정지, 빨리 감기, 되감기를 반복해 늘어진 세상은 더 조밀하고 더 과열돼 있었다. 음악에 근육이 붙고 이해가 늘면서 이제 어떤 노래는 내가 개입했다는 기분까지 든다.

누구는 어린 시절의 자기에게 코웃음 치지만 다른 어른은 사춘기 시절 좋아한 음악이야말로 평생 따라온다고 말한다. 나도 당시의 음들이 다 떠오른다. 심지어 크게 노래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추신 인생은 컬러풀하다. 모네에게 색채는 강박이자 기쁨인 동시에 고문이었지만, 예상 못한 어느 순간에 시간은 색채를 잃는다. 그리고 다시 블랙 에디션을 내놓는다. 네번째. 둘째 아이를 낳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든다. 유전자 변형 식품에 덜 당황하게 된 부모 같달까. 지지난번 호보다는 지난 호가 낫고, 지난 호보다는 지금 네 번째 것이 나아 보인다. 부모는 독백한다. 그때도 참 잘 만들었고, < GQ >는 여기까지 왔어. 그리고 지금 이 아이가 제일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