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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R8이 슈퍼카인가?

2018.01.25이재현

터보 전성시대에 배짱 좋게 자연흡기 5.2리터 엔진을 얹었다. 성능과 디자인 모두 차지하려는 아우디 R8은 욕심조차 근사해 보였다.

‘R8이 슈퍼카인가?’라는 명제는 1세대가 출시되었을 때부터 꼬리표처럼 R8에 붙어 다녔다. 슈퍼카를 정의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당돌한 디자인과 미드십 엔진 레이아웃은 슈퍼카를 자처하던 차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나 2세대가 나왔다. 아우디의 집안 사정으로 국내 데뷔는 조금 늦었지만, 10기통 엔진이 내뱉는 배기음이 풍악을 울리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차에도 성격이 있다면 R8은 분명 다혈질이다. 낮은 엔진 회전 구간에서, 특히 주행 모드를 컴포트 모드에 두면 얌전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정속으로 주행하면 10개의 실런더 중에서 5개만 박동하며 연료 소모를 줄이고, 바텀 플랫 스티어링 휠을 잡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노는 느낌은 아우디 TT와도 비슷하다. 조금 수줍어 보이는 성향은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 엔진이 공기를 더욱 힘껏 빨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돌변한다. 시트 바로 뒤에 있는 엔진이 운전자의 고막을 포위하며 맹렬한 기세로 네 바퀴를 모두 굴린다. 다이내믹 모드로 달리면 엔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8250 rpm에서 터져 나오는 최고출력 610마력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작정하고 한번 달려보자며 운전자를 채근한다. 터보로는 절대 모방할 수 없는 배기음과 타코미터의 바늘이 10에 거의 근접할 때까지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는 경험은 고출력 자연흡기 엔진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과격하고도 저돌적인 엔진을 노련하게 조련한다. 패들 시프트를 이리저리 당기며 강제로 변속해도 뜸 들이지 않는다. 코너에서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다. 후륜 조향 기능이 없어도 저속과 고속을 따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코너를 돈다. 카본 리어윙으로 생긴 다운포스는 타이어를 짓눌러 접지력을 높인다. 어떤 코스에서도 예측한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쉽게 운전할 수 있다. 격하게 달리는 게 특기인 차지만, 마그네틱 서스펜션이 미세한 진동을 걸러내 오랜 시간 운전해도 피곤하지 않다. 승차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고급 세단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차의 성향을 고려하면 선물 같은 승차감이다.

그렇다고 R8이 빠르기만 한 무책임한 차는 아니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가 원하는 만큼 정확히 차를 멈춰 세운다. R8의 최고출력이 100마력 높다고 가정해도 충분할 제동력이다. 급하게 브레이크페달을 밟는다고 해서 앞바퀴가 틀어지며 갑자기 주행 방향을 바꾸는 법도 없다.

얼마 전 2020년에 R8이 단종될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판매가 부진하고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함께 쓰는 람보르기니 우라칸이 풀체인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아우디가 엄청난 판매 대수를 목표로 R8을 개발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우디는 기술력을 과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브랜드다. 오래전부터 각종 레이싱 대회에 출전했고,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의 성능을 증명하려고 눈 덮인 스키점프대를 오르기도 했다. R8의 개발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건 아닌지.

만약 R8을 단종한다면 아우디는 분명 그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다시 기술력을 자랑할 것이다. 시대 흐름상 이미 개발한 R8-e트론을 뛰어넘는 전기차 혹은 포르쉐 918 스파이더처럼 하이브리드 슈퍼카가 될 가능성이 높다. R8이 아우디가 만든 최초이자 마지막 미드십 내연기관 차로 남는 것이다. 슈퍼카라는 수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 아닌가?

크기 ― L4425 × W1940 × H1250mm
휠베이스 ― 2650mm
무게 ― 1690kg
엔진형식 ― V10 가솔린
배기량 ― 5204cc
변속기 ― 7단 자동(DCT)
서스펜션 ― (앞), (뒤) 모두 더블위시본
타이어 ― (앞)245/30 R20, (뒤)305/30 R20
구동방식 ― AWD
0 → 100km/h ― 3.2초
최고출력 ― 610마력
최대토크 ― 57.1kg·m
복합연비 ― 6.5km/l
CO₂ 배출량 ― 270g/km
가격 ― 2억 4천9백만원

    에디터
    이재현
    포토그래퍼
    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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