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식감을 자극하는 요소들

2018.02.01GQ

그림처럼 아름다운 요리의 세부를 가리키며 ‘이건 무엇?’, ‘저건 무엇?’ 웅얼거리던 시간은 끝났다. 요리 대장정에서 셰프의 마지막 손길은 식감을 자극하는 다음 요소들에 머문다.

Gel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통해 액체를 고체화한 것을 겔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젤라틴이나 한천을 이용해 단단하게 굳힌 형태가 주를 이루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틀에 넣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액체에 넣고 굳혀 모양도 질감도 다양한 편이다. 주로 한천이나 알긴산 나트륨을 이용하는데, 한천의 경우 저온의 유기용매를 이용해 겔화를 유도하고 알긴산 나트륨의 경우 칼슘 용액(염화칼슘, 젖산칼슘)을 이용한다. 베이스가 되는 액체에 겔을 만들 용액을 넣으면 바로 표면이 굳기 시작한다. 오래 담가둘수록 안쪽까지 굳기 때문에 이 시간을 조절해 내부의 질감을 결정할 수 있다. 주사기나 소스 통에 용액을 넣은 후 베이스 액체에 떨어뜨려 만든 작은 구형의 겔을 ‘캐비아’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원하는 맛, 향, 질감에 따라 응용과 변형도 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맛과 향을 작은 구슬 안에 담을 수 있는 마법 같은 기술이다.

Chef’s Comment 현상욱 | 한남동 ‘DOTZ’ ‘DOTZ’에서는 리치와 라즈베리, 장미의 맛을 한데 느낄 수 있는 디저트 이스파한을 만들고 있다. 보관이 쉽고 식감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겔의 장점을 이용해 리치를 구형 겔로 만들었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맛과 식감, 씹는 순간 터져 나오는 진한 맛. 단순해 보이는 겔이 만드는 예상치 못한 질감은 손님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분리된 여러 가지 맛을 원하는 포인트에 맞춰 등장하게 할 수도 있다.

 

Foam 폼은 거품기나 블렌더를 이용해 액체 속에 기체를 불어넣은 것이다. 보통 액체는 이 과정을 거치면 거품이 쉽게 터지고 분리돼 다른 요소의 도움을 받는다. 과거에는 주로 달걀을 이용했지만, 현재는 다양한 식용 계면활성제를 사용한다. 젤라틴, 잔탄검 등의 계면활성제는 액체의 표면 장력을 낮추어 폼의 형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 어떤 제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질감과 거품 크기에 차이가 생긴다. 이토록 섬세하고 연약한 폼은 액체라기보다는 공기의 맛을 경험하는 것에 가깝다. 입 안에 닿는 순간 얇은 막이 터지며 음식의 질감과 대비를 이룬다. 동시에 표면적이 넓어져 그릇 위에 앰프를 올린 듯 맛과 향이 증폭된다. 한 스푼의 거품이 그릇 위에 오르면 모두의 마음이 아슬아슬해진다. 쉽게 꺼지기 때문에 요리할 때도 가장 마지막 단계에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현대 과학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가장 좋은 방법은 거품이 꺼지기 전에 재빠르게 테이블로 내보내는 것이다. 레스토랑 홀 직원들에겐 늘 007에 버금가는 미션이다.

Chef’s Comment 강민구 | 논현동 ‘밍글스’ 폼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기존 액체 대비 부피가 많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같은 양이라도 넓게 펼 수 있어 주재료와 소스의 균형을 맞추기가 수월하고 맛의 층위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폼의 또 다른 역할은 가림막이다.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 위해 가리고 싶은 부재료 위에 폼을 얹기도 한다. 입 안에서 폼이 걷히며 비로소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게 된다.

 

Tuile 음식을 만들 때 맛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질감이다. 한 접시 안에서 수많은 종류의 질감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에 셰프의 역량이 드러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 그런 점에서 폼만큼이나 아찔한 모양새를 가진 튀일은 맛, 향, 질감을 모두 조절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다. 튀일은 프랑스의 전통 디저트인 웨이퍼가 그 기원이라고 알려져 있고, 맛과 형태도 다양해 아몬드나 피스타치오 등이 들어가는 불투명한 과자부터 치즈를 이용해 짭조름한 레이스도 있다. 공통점은 모두 얇고 바삭하다는 것. 재료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 모든 코스에 이용된다. 레스토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얇고 구멍이 많은 튀일은 물과 밀가루, 식용유를 정해진 비율로 섞은 후 팬에서 얇게 부쳐낸다. 갓 만들어진 튀일은 모양을 쉽게 바꿀 수 있어 구부리거나 접기도 한다. 어렵고 생소한 테크닉인 듯하지만 요즘 자주 보이는 ‘날개 교자’와 비슷한 방법이라 생각하면 튀일과 심리적 거리를 조금 줄일 수 있다.

Chef’s Comment 김진래 | 장충동 ‘서울다이닝’ 튀일은 맛, 모양, 식감을 모두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부드럽게 조리한 생선에 바삭한 껍질의 식감을 더하고 싶을 때, 다양한 모양의 가니시를 만들고 싶을 때는 역시 튀일만 한 것이 없다. 밀가루, 버터, 달걀을 이용한 튀일 베이스에 주재료와 어울리는 맛을 첨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버섯 가루로 튀일을 만들면 그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리면서 기존의 식재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식감을 더할 수 있다.

 

Emulsion 오랜 기억 속 학창 시절의 과학 시간을 떠올려보자. 물과 기름을 섞는 것을 유화라고 배운다. 보통 과학 시간에 배운 단어는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유화만큼은 다르다. 파인다이닝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에멀션’이 바로 그 유화를 이용한 고전적인 테크닉이다. 에멀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물을 베이스로 하는 것과 오일을 베이스로 하는 것. 물을 베이스로 하는 대표적인 소스가 마요네즈, 오일을 베이스로 하는 대표적인 소스가 올리브유에 발사믹 비니거를 넣은 비네그레트다. 마요네즈 계열의 경우 물과 기름이 잘 섞이지 않기 때문에 모노글리세라이드와 레시틴 등의 유화제를 사용한다. 물과 기름, 유화제를 모두 넣고 원하는 농도가 맞춰질 때까지 충분히 휘젓는다. 겉보기에는 완전히 섞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수만, 수억 개로 부서진 오일 또는 물이 각각 다른 성질의 액체 속에 분산되어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불투명한 색과 점도가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의소스가 탄생한다.

Chef’s Comment 장진모 | 셰프 에멀션의 가장 큰 포인트는 풍부한 바디감이다. 두꺼운 질감은 입 안에 오래 남아 삼킨 후에도 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게 한다. 동시에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세련된 산미는 쉽게 질리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멀션은 비네그레트다. 특히 저지방 비네그레트는 식사의 시작을 여는데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에디터
    프리랜서 에디터 / 김나영
    포토그래퍼
    이현석
    푸드 스타일리스트
    장진모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