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커플이 함께 사는 방법

사랑하는 사람과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것이 현재의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올해로 3년째 동거 중이다. 다시 말해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 사이다. 그는 창가 쪽, 나는 책장 쪽에서 잔다. 둘 다 둔감한 피부를 가진 덕에 같은 스킨케어 제품을 쓴다. 그래서 게이 커플의 집 치고 화장대는 의외로 단출하다. 우리 키는 170 중후반, 몸무게는 50킬로 후반, 발 사이즈는 250으로 같아 옷, 신발, 모자도 공유한다. 언젠가부터 쇼핑할 때 서로의 의견을 미리 묻는 게 자연스럽다. 세밀한 취향은 다르지만 벽에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붙이거나 계절마다 커튼을 교체할 때에도 상대방을 배려하려 노력한다. 베란다에 텃밭과 화분을 가꾸거나 화병의 꽃을 고르는 건 나의 몫이다. 그릇이나 침대 시트를 고르는 건 그의 몫이다. 이렇듯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에서 시작해 다양한 삶의 연결고리들이 만나는 과정이다. 삶은 살아가는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완성된다. 그러한 삶의 계보를 함께 만들어 가는 동반자는 나의 생애를 구성하는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를 통해서 알게 된 우리는 커뮤니티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자연스레 키워갔다. 나는 당시 이제 막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었고, 그는 김해에서 올라온 풋내기 NGO 활동가였다. 여느 커플처럼 나는 그가 당시 살던 자취집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그의 좁은 방에 내 책, 옷가지 등 짐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이후 대학 졸업과 취업을 하고 이럴 바에는 같이 살자고 툭 제안한 건 내 쪽이었다. 연하 남자친구의 당당함에 당황한 건 인생을 4년 더 살아본 그 사람이었다. 때문에 ‘이 사람과 과연 같이 살 수 있을까?’, ‘살다가 헤어지면 어떡하지?’ 등의 현실적인 고뇌 역시 그의 몫이었다. 사랑에 눈이 먼 내겐 그런 고민이 단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으니. 게이들에게 동거란 이성애자 커플의 동거보다 온전히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파트너의 집에 자연스레 머무는 경우는 많지만 삶을 합치기까지 결정하고, 유지해나가기 쉽지 않은 조건들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이성애 결혼과 가족 중심 규범이 주류를 형성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동거’라는 독립적 삶의 모델을 꿈꾸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정상 가족’ 사회의 주류 미디어나 학교, 직장에선 다양한 삶에 대한 상상력은 커녕 편견과 혐오를 부추긴다. 이성애자 커플이 동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가 사회의 부정적 낙인 때문이라면, 동성애자 커플은 아우팅 위험이라는 개인적 이유와, 두 사람을 보호해줄 사회적인 장치가 없다는 이유가 혼재돼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은 일종의 선언과도 같아서 사회의 인정과 지지가 필요하지만, 동성 커플에겐 사회적 버팀목이 부재한다. 대신 우리가 동거를 실천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굳건한 소수자 커뮤니티였다. 다행히 우리는 커밍아웃을 하고 사회적 기반을 가진 커플들을 보면서 연애를 했다. 우리가 ‘언니’라고 부른 그분들은 우리의 동거를 축하하며 TV, 전자레인지, 다리미 등 각종 ‘혼수’를 장만해줬다. 앞으로 살아갈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축하와 응원의 취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조금은 뻔뻔하게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동거는 이렇게 어려웠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먼저 같이 살 집을 구했다. 서로의 직장에서 가까워야 하며, 게이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종로, 이태원과 접근성도 좋아야 했다. 처음에 집을 보러 다닐때, 어느 집주인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젊은 총각 둘이 같이 산다니 듬직하다며 반갑게 맞이해주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가진 건 보증금 5백만원이 전부였고, 다행히 서울에서 집값이 싼 편인 서대문구 홍은동에 깨끗하고 조용한 월셋집을 구했다. 대학을 끼고 있고, 근거리에 전통시장, 체육센터, 동사무소, 도서관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언제든 달릴 수 있는 홍제천이 집 앞에 있고, 소박한 식당과 카페도 있어 2인 가구가 살기엔 적당한 동네라고 판단했다. 처음 1년은 이케아에서 산 가구를 조립하고, 베란다에서 키운 채소로 요리를 해먹는 일들이 즐거웠다. 주말엔 친구들과 저녁 파티를 열고 그럴싸한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전시했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이 도시에서 비밀스런 삶을 살며 소박한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찬 시간들을 보냈다. 인생에 몇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그 신혼의 즐거움에 빠진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파트너의 치료가 시급한 순간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절망감과 무력함. 만약 정말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같이 살면서 가장 두려운 일이 뭐야?” 그는 “만약 자기가 아플 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독히도 더웠던 지난여름, 내가 조깅을 하러 나가 자정이 가깝도록 집에 도착하지 않은 날이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전화를 집어든 찰나 책상 위에 놓인 나의 전화기를 보았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거추장스럽다며 전화기를 집에 두고 나간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생각하다 마음속에 불안이 엄습해왔다고 한다. ‘만에 하나 그가 조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디선가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실려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내게 닥친 불의의 사고보다 생사의 기로에 선 파트너의 치료가 시급한 순간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절망감과 무력함에서 기인하는 불안이었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듯 혈연과 결혼, 입양으로 맺어지지 않은 소위 정상 가족의 범주를 벗어난 관계에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상상에 불안과 무기력 그리고 절망을 느낄 것이다.

한편 지금 살고 있는 집에 그와 나는 각각 단독 세대주로 등록되어있다. 두 세대가 한 집에 살고 있는 형태다. 혈연관계가 아니니 사실혼 관계여도 행정상으로는 남남이다. 현재 직장을 그만둔 상태인 내 의료 보험료는 세대주인 내가 개인적으로 부담한다. 만약 우리가 법적 부부였다면 그가 내 부양자가 되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조금씩 바뀌면서 사회의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2030 청년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의 가장 큰 불확실성은 주거 문제다. 동성애자 커플은 정부의 주택 지원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금융권의 각종 대출 서비스 등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약자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마련된 복지 정책에서도 항상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합법적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은 철저히 이성혼 가정 중심이다. 우리 같은 동성 파트너는 물론, 비혼주의자나 부모나 배우자에게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 역시 의료나 교육, 대출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완전한 개인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삶의 초행길은 낯설기만 한 상황의 연속이다. 우리의 약속은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손톱은 화장실에서 깎기, 수건을 갤 때 1/3로 접기, 야식은 꼭 같이 먹기, 매해 여름 해운대에 가기. 재작년 여름 해운대에 갔을 때는 그의 부모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돼지국밥에 소주를 마시게 됐다. 만나기 전 서로가 “괜찮겠어?”라고 물어보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난 게 처음이라 부담스러웠지만, 그의 부모님도 아들의 남자친구를 소개받는 건 처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간단한 호구조사와 어색한 대화의 시간 그리고 몇 잔의 술이 오갔다. 그날은 모두에게 기념할 만한 날이었기에 홍조 띤 얼굴로 넷이서 해운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살면서 처음 경험해보는 종류의 책임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나와 그는 여전히 서로의 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지치고 고된 상황 속에서도 상대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잠든 도시의 창에 평등하게 쏟아지는 달빛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언젠가 우리는 애인을 넘어 가족이 되고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한국 사회의 동시대 담론들의 여러 교집합을 공유하고 있다. 성소수자고, 법적 보호 바깥에 있는 가족의 형태로 살고 있으며, 현재 청년 실업자다. 결혼, 육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삼포 세대다. 그 속에서 놓칠 수 없는 삶의 목표는 더욱 또렷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것이 현재의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성 간의 혼인으로 맺어져 혈연관계로 형성된 집단. 가족의 이 관습적 정의는 곧 바뀌거나 대체될지도 모른다. 비혼과 졸혼을 선언하는 사람들, 동거를 택한 연인들,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들, 법적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성소수자 연인들, 연인 관계가 아니지만 가족이 된 사람들, 서로 모르지만 함께 사는 하우스 메이트들, 완전히 새로운 가족 모델을 찾는 폴리아모리스트들. 2018년, <GQ>는 가족은 무엇인지, 함께 하지만 또 가족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