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밤 중의 김심야

2018.02.21나지언

한밤 중에 혼돈에 가득 차 있는 래퍼 김심야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가벼운 사람이고 돈을 벌고 싶고 힙해지고 싶다고 했다.

흰색 티셔츠는 리복 x 카시나, 점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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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음악 듣고 있나? 요즘 랩은 잘 안 듣고 빅 데이터(Big Data) 같은 얼터너티브 댄스 음악을 듣는다. 최근 들었던 것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클래런스 클래리티(Clarence Clarity)다. 클래런스 클래리티는 좀 더 신나는 하우 투 드레스 웰(How to Dress Well) 같은 느낌이라 좋다. 랩은 듣기 싫다.

왜 랩이 듣기 싫나? 나도 랩을 하고 있지만 음악 장르 중에서 가장 깊이가 없는 게 랩 같다. 역사도 너무 짧고 장르 자체도 샘플 기반이 많다 보니 옛날 랩 음악을 공부해보려고 해도 다 거기서 거기다. 5~6년 들으면 알 거 다 알게 되는 장르인 것 같다. 재즈나 블루스를 기반으로 랩은 하지만 랩을 기반으로 한 재즈나 블루스는 없지 않나. 랩은 인터넷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장르다. 재미가 없다.

그게 힙합의 미학 아닌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민주적이고 비트와 랩으로 이뤄진 단순한 구성이 이 장르의 매력 아닌가?
내 취향의 문제다. <시네도키, 뉴욕>이나 <더 랍스터>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집중을 안 하거나 멍 때리고 보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영화들이다.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다. 듣고 있어도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랩에서는 전달력이 중요한 요소라는 선입견이 있다. 사람들은 가사 전달이 잘 되는 걸 실력으로 생각한다. 내 마음대로 만들고 싶어도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가사를 못 쓴다’ 같은 말에 영향을 받게 되더라.

XXX의 <KYOMI> 앨범에 대한 평을 말하는 건가? 맞다. <Moonshine> 앨범이나 곧 나올 XXX 1집 <Language>의 가사는 내 기준에서는 멍청한 가사다. 너무 단도직입적이다. 가사가 적으면 적을수록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데 한국에서의 랩은 꼭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 가사를 알아듣게 써야 하고 꼭 라임을 맞춰야 하고 거짓말을 하면 안되고 자기가 보고 아는 것만 써야 하고 등등. 그런 한계를 자꾸 만드는 것 같다. 랩을 들어보면 자기 상황에 대해 쓰거나 자기가 되고 싶은 상황에 대해 쓰거나, 그 두 가지 중 하나다. 그림을 똑같이 그리는 사람만 있고 추상적으로 그리는 사람은 없다.

<KYOMI>의 가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와 캐릭터를 창조하는 식으로 쓴 건가? 맞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건 금요일 저녁 9시에 시작해서 토요일 아침에 끝나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사람이 보내는 그 시간을 11개의 순간으로 나눠서 사진을 찍는다고 가정하고 그 각각의 순간을 곡으로 만든 거다. 그 사진 하나하나가 노래 하나하나인 셈이다.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총체적으로 말도 안 되는 앨범이 나왔다(웃음). 그래도 당시 프랭크 형 비트가 앞서가는 스타일이어서 주목은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런 평 때문에 <Moonshine> 앨범에서 자기 고백적인 스타일로 랩 형식을 바꾼 건가? 심지어 ‘manual’이란 곡에서는 힙합 신 전체를 강도 높은 수위로 비판했다. 그 앨범을 만드는 캠프 자체가 스트레스가 많고 피곤했다. 너무 만들기 싫어서 그랬다. 대충 써서 이 가사로 음반을 내던지 마음에 안 들면 내지 말던지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었다. 음악 시장이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던 건, 사람들의 반응을 가장 많이 끌어낸 프로젝트가 그 ‘manual’이란 곡과 <Moonshine> 앨범이었다. 희한하게도 그 둘 다 너무 하기 싫은 상황에서 막 쓴 가사들이다. ‘manual’도 <Moonshine> 앨범 작업 중 만들어야 했던 곡이라 너무 하기 싫어서 아무거나 평소에 하던 생각 쓴 거였다.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하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 말에 따라 쓴 거다. 인터뷰든 일상생활에서든 진짜 생각하는 것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게 욕을 먹을 일이어도 그냥 한다. 속여서 다르게 얘기했다가 들켜서 욕 먹느니 그냥 이야기하고 욕 먹는 게 나으니까.

 

셔츠는 캡틴 선샤인 by 1LDK, 코듀로이 재킷은 아나크로놈 by 오쿠스, 팬츠는 셔터 by 올스트롱, 운동화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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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 탄생한 역사, 힙합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기인해서 보면 힙합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 자체가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오히려 그런 단순한 작법이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는 더 좋은 결과물을 내는 건 아닐까?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해보긴 했다. 내 기준에서는 <KYOMI> 가사가 진짜 잘 쓴 건데 한국 시장에서 랩 가사를 보는 기준이 다르더라. 그 반응을 보고 창작 욕구가 많이 떨어졌다. 의도를 어렵게 숨기고 세부적으로 계산해서 음악을 만들어도 그냥 휘갈긴 것보다 별로이면 그냥 휘갈기는 게 낫지 않나. 유명한 사람 비트 받아서 거기에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쓰면 이게 음악인 건가? 왜 그걸 더 좋아하는 걸까? <KYOMI>에서 내가 썼던 작법이 시장에 맞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네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그땐 멋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신경 안 썼는데 이게 일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이해는 한다. 사실 ‘manual’이나 <Moonshine> 앨범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까 반항아가 됐다. 뭐, 그것도 나의 한 부분이긴 하겠지만.

요즘 듣는 음악도 그렇고 힙스터가 되고 싶은 건가? 그렇다. 난 그냥 세련된 사람의 이미지이고 싶었다. 멋있고 싶고 힙한 사람이고 싶었다.

피곤한 상황 때문에 보여주기 싫은 자신의 모습이 나온 건가? 그런 것 같다. 엄청나게 욕을 먹을 얘기겠지만 난 예술이 별 거 없다고 생각한다. 모방이 없으면 예술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난 감각만 믿는 사람이다. 내 감각만 믿고 내가 멋있다고 예쁘다고 느끼면 어떻게든 그걸 가져오는 식으로 작업한다. 난 가벼운 사람이다. 예술 자체가 수박 겉핥기라고 생각하고 음악도 수박 겉핥기로 한다. 김광석을 되게 좋아하는데 김광석의 1,2집 앨범 제목이 <김광석 1>, <김광석 2Nd>다. 그래서 이번 XXX 1집 앨범 제목도 <1집>으로 하자 싶었다. 이건 ‘간지’라고. 근데 회사에서 별로라고 해서 곡 제목 중 하나인 <Language>로 가게 된 거다. 내가 한 모든 것들이 이런 식이다. 깊이 생각해서 나온 게 아니라 순발력으로, 이게 멋있는 거다라는 그때 그때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나온 거다. 클래런스 클래리티도 그래서 좋아하는 거고.

‘간지’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건가? 힙한 건 사람들이 안 하는 걸 하는 거다. 그렇게 음악을 했다. XXX 곡 만들 때도 프랭크 형이랑 항상 했던 얘기가 “이건 우리가 처음 할 걸? 아무도 이건 안 할 걸.” 이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래서 <Moonshine> 앨범은 너무 하기 싫었다. 너무 진부하고 모든 래퍼가 다들 한번씩은 했던 얘기인데 이걸 내가 왜 굳이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난 힙스터인데.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과 될 수 있는 사람이 다를 수도 있는 것 같다. 난 힙스터고 회사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 <Moonshine> 같은 래퍼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반대로 내가 <Moonshine> 같은 사람이었던 걸 수도 있다. 회사가 나를 정확하게 본 걸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알면 알수록 나는 <Moonshine> 같은 사람이구나 싶다. 어디 술자리 같은 데 가면 분위기 다 깨는 사람이고. 아, 난 이런 사람인데 힙하고 싶었구나. 힙하고 싶고 멋있고 싶고 인기가 많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막상 음악을 하니 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러니 음악이 더 하기가 싫더라.

 

터틀넥은 헤리티지 플로스, 점퍼는 우주만물, 벨벳 팬츠는 가쿠로 by 에이트디비젼, 운동화는 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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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지러운 고민이 <Moonshine> 앨범에 엉켜 있다. 돈을 벌긴 해야 하는데 남이 하는 음악은 하고 싶지 않고 억지로 쓰는 이런 가사도 너무 싫고 등등의 혼란이 다 담겨 있다. 그걸 그냥 드러내자고 생각한 건가? 진짜 래퍼, 가짜 래퍼, 진짜 예술, 가짜 예술? 그런 게 어디 있나 싶다. 진짜 예술과 가짜 예술이 뭔지 모르겠다. 오로지 내 감각을 믿고 이건 진짜야 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가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럼 진짜와 가짜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그럼 차라리 내가 원하는 걸 이루자. 내가 지금 원하는 건 돈이니까 그러면 돈이 되는 음악을 하자, 그런 거다. 돈을 버는 게 중요할까, 내 세계를 계속 가져가는 게 중요할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거다. 전자를 고르고 나서 생긴 답답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앨범 전체를 돈이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지금 머릿속의 제일 중요한 화두가 돈인 건가? 맞다. 돈이 나를 엄청나게 지배하고 있다. 이런 얘긴 좀 그렇지만, 집안 사정이 힘들어졌다. 반 강제적으로 가장이 됐다. 아직도 생각이 어리다. XXX의 <KYOMI> 앨범 내고 집과 차를 다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성숙하지 않은 생각이지만 그랬다. 왜 대학생 아르바이트 뛰는 거랑 벌이가 비슷하지? 그럼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못 버니까 안 할래, 이런 게 사실 성숙하지 않은 생각이긴 하다.

돈을 벌고 싶으면 ‘manual’같은 곡을 쓸 게 아니라 <Show Me The Money>에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자존심이 세고 고집도 세고 하기 싫은 것도 많다.

 

터틀넥은 리복 x 카시나, 팬츠는 화이트 마운티니어링 by 에이트디비젼, 모자는 우주만물, 운동화는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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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ro’라는 곡에서 ‘내가 설 곳이 줄고 징그러운 걸 낸다면 그만한 명분을 가지고 올게’라고 말했다. 그건 무슨 말인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방송 매체나 대중성에 대해서 욕을 하면서 사실은 거기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을 비꼰 거다. ‘내가 설 곳이 줄고 징그러운 걸 낸다면 그만한 명분을 가지고 올게’라는 건 그들이 보통 그렇게 말한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내가 혹시라도 잘 안돼서 징그러운 걸 해야 되면 그땐 내가 이 사람들처럼 명분을 들고 오겠다는 얘기다. 즉, 난 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앨범 자체가 굉장히 씁쓸하다. 여기서 가장 ‘간지’ 나는 건 직업이 바뀌는 거다. 갑자기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면 그게 진짜 최고 ‘간지’라고 생각한다(웃음).

그래서 가사에서 변호사를 언급한 건가? 맞다.

랩을 하면서 돈도 벌고 힙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나? 당신이 보기에 멋있는 예술가, 힙한 예술가는 누군가?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제이 지처럼 되고 싶다. 제이 지는 2013년 <Magna Carta Holy Grail> 앨범 때부터 힙해진 것 같다. 제이 지는 뮤직비디오에서 보기가 힘들다. 굳이 본인이 나올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멋있다. 티셔츠에 청바지 말고 다른 거 입은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 것도 멋있다. 이번 <4:44> 앨범은 가사를 신경 써서 쓰는 사람에게는 지침서와 같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멈블 래퍼’에게 지고 있는 ‘컨셔스 래퍼’에게 마치 한줄기 빛처럼 ‘이게 가사를 신경 쓰는 사람들의 다음 단계다, 이걸 참조해라’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제이 지라서 그렇겠지만. 엄청 힙한 거다.

제이 지가 아니어도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진 않나? 그렇다. 진짜 실력자라면 어떤 음악을 해도 아이돌과 맞먹을 정도로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힙하기 때문에 대중들이 나를 몰라줘’라는 건 이제 말이 안 되는 시대다. 음악을 못해서 대중들이 모르는 거다. 결국 진짜 좋은 음악은 대중들이 알 수 밖에 없다. 자기 음악이 유명하지 않으면 그건 대중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을 해야 한다.

그럼 본인은 실력이 부족한 건가? 그렇다.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은 시장 상황이 어떻든 그걸 뚫고 더 멋있는 앨범을 들고 나온다. 알아듣지 못하는 음악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 그런 경지 말이다. 이 생각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3년 정도.

시대와 장르를 불문,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실력으로 시장의 한계를 뚫고 나온 뮤지션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혁오? <무한도전>에서 한 음악 듣고 깡이 있구나 생각했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나왔던 사람 중에서 가장 타협하지 않고 자기 색깔 잃지 않고 음악 한 것 같다. 컨트리 음악을 하는데 좋고 멋있더라. 하이그라운드 들어가면 또 바뀔 줄 알았는데 꾸준히 자기가 하던 음악 하고 발전하는 것 같다.

이 인터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하다. 있는 그대로 써달라. 모순 그대로.

흰색 티셔츠는 리복 x 카시나, 점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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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나지언
    포토그래퍼
    김연제
    스타일리스트
    김예진
    메이크업
    박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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