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사랑한 남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기예르모 델 토로가 인간 아닌 존재에게 바치는 연가다.

“넌 저것이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신의 형상대로 창조됐어. 저게 신의 형상으로 보이진 않잖아?” 백인, 남성, 연구소 책임자가 수조 안의 괴생명체를 보며 말한다. “아마 당신보다는 나를 닮았겠지.” 흑인, 여성, 청소부에게 말이다. 신, 인간, 괴물의 삼단논법. 나와 닮지 않았기 때문에 저것은 괴물이다. 신의 모습을 백인 남성으로 재현하는 기득권의 오만이 괴물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성별, 인종, 장애 유무, 성적 지향, 기득권의 울타리 밖에선 얼마든지 괴물이 된다. “나도 그 사람처럼 말을 못 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괴물과 사랑에 빠진, 말을 못 하는 장애를 지닌 청소부 여성은 괴물을 구해내기 위해 호소한다. 저것과 닮은 나도 괴물입니다. 나를 괴물의 위치로 끌어내린다. 타자로 환원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 당해본 이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정상성에 기준이란 게 있다면, 남과는 다르단 이유만으로 누구든 얼마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는걸. 트럼프 집권 이후 소수자 배척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세상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모든 ‘인간 아닌 존재’에 바치는 지고한 고백이나 다를 바 없다.

언제나 관습적인 기준에서의 아름다움과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들에 깊은 애정을 기울여온 기예르모 델 토로는 본래 어둠에서 난 것들에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멕시코의 어둡고 축축한 지하도를 놀이터 삼아 해머 영화사가 제작한 공포영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각종 만화에 푹 빠져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한동안 특수분장 감독으로 일하다 <크로노스>로 칸 영화제 비평가상을 받은 후 연출에 매진했다. 고향 멕시코와 미국 할리우드를 오간 필모그라피는 폭넓지만 환상 속 피조물들에 대한 애정은 한결같았다. 어둠 속에서도 남들이 보지 못한 자국을 읽어내는 감식안을 지닌 그에게 환상은 온기를 지닌 것이다. <악마의 등뼈>의 소년 유령은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나타나며, <판의 미로>의 판은 소녀를 파시스트의 잔혹한 현실에서 황금빛 공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자신의 두 뿔을 꺾고 정의의 사도가 된 <헬보이>는 말할 것도 없다. “넌 아름다운 괴물이야. 난 너 같은 애가 여기에 많았으면 해….” 헬보이가 붉고 우람한 등짝을 훤히 내놓고 샤워할 때 흘러나온 노래는 괴물 같은 존재들에 대한 그의 찬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델 토로는 “진짜 무서운 건 유령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해왔다. “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상상력으로 버텨냈다. 나에게 상상은 도피가 아닌 진실과 관계 맺는 방식”이란 말대로, 그의 주인공들은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통해 현실과 대적한다. 그가 괴물과 유령을 경유해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됨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뭘까? 인류의 기원? 탄생의 비밀? 아니, 그건 인간의 선택이다.”(<헬보이> 중) 이 작품 또한 인물들이 선택을 통해 자신이 궁극적으로 인간인지, 괴물인지를 드러내는 영화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부터 골든글로브 감독상, 미국 감독조합상에 이어 오스카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이 점쳐지는 등, 델 토로에게 줄줄이 상을 안겨주고 있는 이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 세계관의 집대성인 까닭은 이것이 다름 아닌 본격적인 멜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가 구애해온 환상 속 존재들이 이번엔 직설적으로 멜로의 대상이자 당사자가 된다. 나아가 등 여태까지 이종간의 로맨스에서 넘어갔던 부분까지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한다. <인어공주>처럼 미녀의 얼굴에 하반신만 물고기인 것도 아니고, <킹콩>처럼 익숙한 유인원의 얼굴도 아닌 양서류의 무정한 눈, 끈끈한 비늘을 지닌 괴생명체는 어쩌면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적절하지 않아보이지만, 델 토로는 타협하지 않고 사랑을 밀어붙이고, 성애의 장면도 대담하게 묘사한다. 그렇지만 그로테스크하거나 불쾌하지 않다. 델 토로의 애정 가득한 시선이 엘라이자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느 이종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여성을 괴물의 보호와 사랑을 받는 수동적인 상대로 묘사한 것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여성은 괴물의 사랑을 쟁취하고 만끽하고자 하는 주인공이다. 진정한 괴물 애호가인 그가 괴물이 아닌 괴물을 사랑하는 엘라이자에 자신을 투영했을 것은 자못 자명해보이므로, 모든 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인간이 한 가지 모습이 아니듯, 사랑에도 고정된 형태가 없다. 그에게 사랑은 흐르는 것, 자신을 흘려보내는 것, 흘러넘치는 것, 그저 생긴 모양 대로 감싸 안는 것이다. <판의 미로>의 오필리아가 어깨에 달의 표식을 지니고 있듯, 엘라이자는 목에 아가미 모양 흉터를 가지고 있다. 괴물을 뭍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인간이 물로 간다. 지극한 윤리고 더없는 로맨스다. 이종의 존재가 함께 추는 춤, 이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