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평택항의 ‘자동차 화물선’

2018.02.27이재현

한국 땅 밟은 자동차 중에서 평택 바닷바람 한번 맞아보지 않은 차는 드물다.

웅장한 선박이 수평선을 가리며 아산만으로 뱃머리를 튼다. 떠다니는 건축물에 가깝다고 하는 편이 나을 크기의 화물선이다. 비틀어진 해안선 사이를 지나 항구에 도착한 배는 부두에 몸을 바싹 붙이고 닻을 내린다. 수천여 대의 자동차가 쏟아져 나온다. 하선보다 상륙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과정이 벌어지는 평택항의 일상이다. 사실 평택항의 공식 명칭은 평택·당진항이다. 충청남도 당진시와 바다를 두고 마주 보고 있지만 서해대교로 연결되어 있고, 항만의 경계도 두 행정구역에 걸쳐 있어 항구 이름에 당진을 붙이는 것이 타당하다. 원래 평택항은 작은 어선이 오가던 어촌이었다. 경기 서남부 지역의 산업단지가 발달하면서 수출입을 소화할 수 있는 항구가 필요하자 1986년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했다. 인천항보다 가깝고,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 내륙 지방까지 운송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항구 평균 수심이 14미터에 달해 대형 화물선도 안정적으로 정박할 수 있다. 조수 간만의 차는 8미터(인천항 25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아산만 깊숙한 곳에 들어앉아 폭풍으로 인한 피해도 상대적으로 적다. 부산항과 인천항 등 다른 국제무역항에 비해 개항이 늦었지만, 지리적 이점 때문에 규모가 점점 커졌다. 1989년 기아자동차가 평택항 바로 북쪽에 있는 화성에 공장을 세우고, 1996년에는 현대자동차가 평택항과 방조제로 연결된 아산에 공장을 설립했다. 두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소화하며 자연스레 자동차 수출항이 되었다. 2천년대에 들어서자 단내 맡은 개미 떼처럼 국내로 수입되는 차도 늘었다. 평택항은 넓은 야적장을 갖춘 자동차 전용 부두와 주변 시설을 자랑하며 더 많은 브랜드를 불러 모았다. 다른 항구보다 화물 입출항료와 야적장 사용료도 저렴했다. 수입차 브랜드는 아예 평택항 인근에 PDI 센터(차량 인도 전 사전 검사소)를 세워 수입 절차와 품질 검사를 한 번에 해결하고 전국에 자동차를 보내기 시작했다. 2017년, 전국 31개 무역항 중에서 평택항의 전체 화물 처리량은 5번째지만, 자동차 처리량만큼은 가장 많았다. 유럽차, 미국차, 일본차 그리고 한국차. 태어난 곳은 달라도 전입과 전출 신고를 하는 곳은 결국 경기도 평택이다.

 

수출 브랜드 국내에 공장을 둔 제조사 중에서 기아와 현대, 쌍용, 타타대우까지 총 4개 브랜드가 평택에서 수출한다. 통계가 집계된 2017년 1월부터 11월까지 평택항에서 나간 이들의 차는 66만 7천3백21대. 약 86퍼센트가 화성에 공장이 있는 기아에서 생산한 자동차였다. 현대는 아산 공장에서 생산한 일부 모델을 평택항을 통해 수출한다.

수입 승용차 브랜드 닛산의 인피니티, 토요타의 렉서스처럼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합치면 평택항으로 들어오는 수입 승용차 브랜드는 28개다. 지난해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중국산 북기은상과 미국산 테슬라처럼 비교적 최근에 국내에 들어온 브랜드도 평택항을 사용한다. 카마로 SS 등 일부 모델을 수입해 판매하는 쉐보레 역시 평택항에서 차를 내린다. 반면 가격이 비싸고 판매량이 적은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애스턴마틴, 맥라렌은 주로 항공편으로 수입하고, 로터스는 컨테이너에 실려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평택항 수입량 2017년 1월부터 11월까지 평택항으로 들어온 수입차는 24만 7천6백89대였다. 2009년 2만 2천2백18대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수입차 총 판매량이 23만 3천88대였던 것을 고려하면 수입차 중에서 평택항을 거치지 않은 차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 화물선 자동차 전용 화물선은 PCTC(Pure Car and Truck Carrier)라고 한다. 선박 내부에 12층에서 15층에 이르는 주차 공간이 있는데, 5만 톤급 화물선 기준으로 소형차 약 6천 대를 실을 수 있다. 부두 길이에 따라 댈 수 있는 배의 크기도 다르다. 1번 부두에는 5만 톤급 화물선 1대를, 2번과 3번 부두에는 5만 톤급 2대를 동시에 댈 수 있다. 4번과 5번 부두에는 5만 톤급 1대와 3만 톤급 1대가 정박할 공간이 있다.

간격 한 대라도 더 적재하기 위해 수출선 안에서는 주차 묘기가 벌어진다. 열 맞춰 세우는 차의 양옆 공간은 고작 10센티미터다.

 

물 건너온 덩어리들 승용차보다 덩치가 큰 트럭과 버스는 물론 농기계와 중장비 같은 상용차도 평택항을 찾는다. 만, 볼보, 벤츠, 이스즈에서 만드는 트럭과 농기계를 주로 만드는 존디어, 중장비로 유명한 캐터필러다. 일부 초대형 트럭은 반조립 상태로 들여와 평택항 인근에 있는 자사 PDI 센터에서 조립 및 품질 검사를 마친 후 구매자에게 바로 인도하기도 한다.

자동차 전용 부두 평택항은 양곡, 원자재, 시멘트 등 품목에 따라 부두의 용도를 나눈다. 그중 평택 쪽에 붙은 ‘동부두’의 1번부터 5번까지가 자동차 전용 부두인데, 화물선을 대는 선석과 임시로 차를 보관할 수 있는 야적장이 있다. 평택항 자동차 부두는 민간에서 투자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국가비귀속 부두’라고 한다. 1번 부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물류 회사가 개발해 2018년 2월부터 현대차 전용 부두로 사용한다. 1번 부두 개장으로 평택항은 연간 29만 대의 차를 더 처리할 수 있다. 2, 3번 부두는 평택국제자동차부두(PIRT)라는 업체가 운영한다. 국내외 브랜드의 물류 업무를 위탁 받아 수출입 과정을 대신하는데, 평택항으로 들어오는 수입차 물류는 모두 이 업체가 대행한다. 4번과 5번 부두는 기아자동차가 수출 부두로 사용한다.

5인 1조 수출되는 차가 화물선에 오를 때 보통 5대가 한 조를 이룬다. 앞선 4대는 수출하는 자동차고, 마지막 한 대는 선적을 마친 근로자들이 다시 배 밖으로 나올 때 타는 차다. 5대가 한 조인 이유는 마지막에 따르는 차가 5인승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처리량 평택항은 2010년부터 수출입, 환적 등을 포함해 자동차 처리량이 가장 많은 항구다. 2016년 기준 2위는 광양, 3위는 울산항이었다. 광양항은 광주에서 생산한 기아차와 전주에서 만든 현대 상용차를 수출하고, 울산항에서는 현대 울산공장에서 제조한 차를 주로 수출한다.

환적 평택항에서 자동차 수입과 수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평택항으로 온 차가 미국이나 유럽으로 나가는 화물선으로 갈아타기도 한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평택항에서 환적한 차는 33만 1천75대였다.

주차비 야적장에 자동차를 보관하는 비용은 자동차 대수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면적으로 계산한다. 땅의 포장 여부에 따라, 항구 한계선으로 구분하는 외항과 내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택항에서 가장 비싼 야적장 사용료는 한 달에 제곱미터당 4백20원이다. 요금은 평택 지방 해양 수산청에 낸다. 같은 조건일 때 울산, 광양항과 같은 금액이고 5백71원인 부산과 인천항보다 저렴하다. 주차된 자동차 사이의 빈 공간을 무시하고 계산하면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 한 대를 한 달 동안 평택항 야적장에 보관하는 비용은 약 3천9백원에 불과하다.

    에디터
    이재현
    포토그래퍼
    조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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