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에서 찾은 ‘흔적 음식’

예산에서는 어느 곳을 툭 쳐도 긴 흔적이 묻어난다. 음식도 유행과는 동떨어진 채, 흔적만이 진하게 남았다.

검은 그릇 위는 도토리떡, 오른쪽 손잡이가 있는 냄비 속은 삭힌 김치 들깨탕, 면이 들어간 접시는 어죽.

모양새는 시래깃국 같은데 마치 삭힌 홍어의 싸한 느낌도 나고 묵은지의 깊은 맛도 났다. 국에 들어간 이 김치를 예산에선 ‘삭힌 김치’라고 부른다.

“엄마 이건 무슨 국이야?”, “오늘 진미국 끓였단다.”, “뭘로 만들었는데?”, “시래기 넣고 지졌지.”

어느 날인지 기억을 짚을 순 없지만, 이런 대화가 밥상에서 오갔던 장면이 생각난다. 아주 어릴 적이었겠지. 난 엄마의 ‘시래기’를 ‘쓰레기’라고 알아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우리 집이 많이 가난해졌구나. 얼마나 어려우면 엄마가 쓰레기로 국을 끓일까?’라고 생각하며 ‘자꾸 물어보면 엄마가 곤란해할 테니 아무 말 없이 맛있게 먹는 척 하자’ 라고 속으로 되뇌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커가며 엄마가 끓인 국 안의 채소가 무청시래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된장을 넣고 끓인 뒤 들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시래기가 들어간 국을 ‘진미국’이라 불렀다. 요즘은 팔십이 넘어 거동이 불편한 엄마에게 가끔 “엄마가 만들어준 진미국 먹고 싶다, 쓰레기 들어간 거 있잖아”라고 너스레 떨며 말해보곤 한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시래기 넣어 푹 끓인 국에 어쩜 이렇게 예쁜 이름을 붙여놓았을까? 옛 어른들의 센스에 은근한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진미의 한자는 분명 깊은 맛의 진미珍味였을 것이다. 레스토랑 가이드 웹진 <다이어리 알>을 운영하며, 혹은 그저 살아가며 ‘진미’란 이름을 쓴 식당 간판을 종종 본다. 그러나 더 이상 ‘진미’ 란 단어를 봐도 감동은커녕 오히려 식상해서 존재감조차 느낄 수 없는 이름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얼마 전 예산에서 제대로 된 ‘진미’를 만났다. 나에겐 엄마의 ‘진미’나 진배없는 뜨거움이었다. 산자락과 텃밭에 둘러싸인 음식점 ‘토담골’ 주인장인 김형애 씨는 예산 토박이가 아니다. 그는 10여 년 전 예산에 귀농한 타지인이다. 그가 어느 날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이 들기름을 넣고 달달 볶다 뜨물을 부어 끓였다는 국을 맛보게 되면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양새는 시래깃국 같은데 마치 삭힌 홍어의 싸한 느낌도 나고 묵은지의 깊은 맛도 났다. 국에 들어간 이 김치를 ‘삭힌 김치’라고 부르는데, 이 맛이 하도 신기하여 할머니들을 졸라 만드는 법을 적극 배우게 되었다. 소위 음식 전수를 받은 것이다. 삭힌 김치는 김장 후 허드레 김치에 새우젓을 넣어 만드는데, 그 김치를 금이 간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그러면 김칫국물이 항아리의 깨진 틈으로 아주 조금씩 새어 나가면서 서서히 발효가 되는 것이다. 문득 충남의 내륙 한가운데 있는 예산에서 새우젓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옛날엔 구만리 포구까지 새우젓을 실은 배가 들어왔고 그날은 마을의 장정들이 가서 새우젓을 사왔다고 한다. 그 말에 끄덕이다가 또 궁금해진 부분은 바로 깨진 항아리다. 선조 중 누군가 김치를 담가 우연히 금이 간 항아리에 넣었는데, 그 익은 맛이 일반 항아리에서 발효된 것과는 달리 싸한 시원함이 생겼으리라 추측해본다. 그 시원함을 처음 발견했을 때 얼마나 놀라웠을까? 이 김치를 예산 사람들은 물론이고 예산 군청에서는 ‘홍어 맛 김치’ 또는 ‘삭힌 김치’라 부른다. 생긴 건 평범한 젖은 시래기 형상이지만 국물이 빠지는 깨진 독에서 발효된 원리와 독특성 때문에 몇 년 전 ‘맛의 방주(국제기구인 슬로푸드 국제본부가 진행하고 있는 전통 음식과 문화 보전 프로젝트)’에까지 등재되었다. 삭힌 김치의 어원은 마을회관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위에 또 어머니로 계속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오늘날 예산의 삭힌 김치는 발전시킨 것은 토박이가 아닌 외부 귀농인이었다. 신기한 맛과 발효 방식에 매료되어 식당 메뉴로 굳힌 것이다. 삭힌 김치로 만든 음식을 열광하며 먹는 사람들 또한 나 같은 외지인이 더 많다.

나를 예산에 빠져들게 한 건 삭힌 김치 한 포기만은 아니었다. 양반가에서 먹어왔다는, 소고기와 말린 대하를 넣어 만든 장을 두엄더미에 3~4일 발효시킨 뒤 보리밥에 비벼 먹었다는 ‘예산집장’, 며칠 물에 담가 떫은맛을 뺀 도토리알과 쌀을 섞어 만든 ‘도토리떡’ 등 여러 음식이 있다. 공통점은 모두 옛것을 살려 재해석하고 복원한 음식들이다. 이런 토종 음식의 중요성을 인지한 예산 사람들 중에 강희진·김영숙 부부가 있다. 이들은 아담한 ‘토종씨앗박물관’까지 만들었다. 삭힌 김치를 담글 때는 이파리가 성근 ‘구억배추’ 라는 토종 배추가 맞다는 둥 느린 듯한 말투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은근히 심지 굳은 충청도의 저력이 느껴진다. 토종씨앗박물관은 약 2천5백여 개의 토종 씨앗을 보유하고 있고 통상 1천3백여 개가 상시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서 하는 일의 대개가 사라져가는 씨앗을 찾아 보존하는 일이다. 예산의 또 다른 얼굴을 이곳에서 만난다.

예산이 품은 미식의 저력은 이렇게 은근하다. 맛의 근본을 파헤치게 만드는 예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미식 고수가 한 명 더 있다. 다름 아닌 조선 후기 대학자, 추사 김정희 선생다. 추사는 24세에 청나라에 넘어가 학문의 교류뿐 아니라 중국의 차에 눈을 떠서 돌아온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일생 동안 좋은 차에 대한 갈구와 음미를 글로 남겼다. 한편 여름 은어, 가을 전어, 사계절 장을 달리해서 먹은 흔적들을 그가 남긴 여러 편지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예산을 찾으면 바로 추사의 미식 행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추사가 태어났다는 추사 고택에 가봐도 젊은 날 청년 추사가 청나라에서 씨를 가져와 심었다는 늙은 백송만이 추사 시대 이후 흘렀을 시간을 무상하게 보여줄 뿐 그의 식욕까지는 잘 상상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택리지>에서는 살기 좋은 곳으로 예산, 당진, 서산, 홍성 등을 예로 들며 이 지역을 모아 ‘내포’라고 불렀다. 그리고 옛날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살던 시대는 예산이 충남의 중심 역할을 하여 서산, 태안 등지에서 한양에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러나 현재는 KTX와 같은 신문물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곳이 되어 예산 시민들은 발전은 없고 고요하기 짝이 없는 고장이 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예산이야말로 내포의 진정한 의미를 간직한 곳이 아닐까? 옛것을 부수거나 버리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예산에 갈 때마다 든다.

예산에는 유달리 유행 음식보다는 ‘흔적 음식’이 훨씬 많다. ‘딴산’이란 이름을 가진 예당저수지 인근엔 잡어로 끓인 ‘어죽’이 흔하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식량을 중간에서 착복해 식량이 부족해진 저수지 착공에 참여한 인부들이 인근 지역 주민의 어죽 끓이는 법을 배우고 먹으면서 예당 저수지의 역사와 함께 어죽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됐다. 그리고 예산 읍내에 가면 옛 제면 방식대로 건조해서 만드는 ‘쌍송국수’ 집을 비롯한 국수집들, 화려하지 않지만 얌전히 구워 나오는 갈비구이로 소복갈비, 삼우갈비 등의 고깃집 노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신기하게도 예산에 가면 옛것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음식을 접할 뿐 아니라 근래에 생긴 맛집에서도 시간을 지킨 것이나 다름없는 음식들을 먹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농가 맛집 ‘도랑골손맛’에서 가을이면 상에 올리는 배깍뚜기는 잊을 수가 없다.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나오는 배로 만든 깍두기와 집에서 만들어 먹어왔던 방식 그대로 차린 제철나물 밥상 앞에서는 여행이 아니라 시골 외갓집에 온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예산에서는 어느 곳을 툭 쳐도 긴 흔적이 묻어난다. 무엇을 살 건가에 대한 고민보다 무엇을 버릴까를 결정할 때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사람이라면 예산이란 곳에 분명 끌리고 말 것이다. 번쩍이는 새로운 것보다는 손때 묻거나 꼬리에 꼬리를 덧대며 이어온 이야기가 음식 속에도 그대로 발효되어 있는 곳이 예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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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Eat, Drink,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