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자가 뽑은 최고의 남자 캐릭터

2018.03.16이재위

때때로 작품 속 가공의 캐릭터는 실제 사람보다 배울 점이 많다. 여자가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에서 뽑은 최고의 남자 캐릭터는 누구일까?

1.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맥스 로켓탄 

정의감 넘치는 히어로, 차갑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남자, 능력 있는 남자…. 어느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골라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이런 남자들은 많다. 말 없는 남자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정확하게는 말이 없고, 여성의 말을 가로막지 않으며 귀 기울일 줄 아는 남자. 그런 남자는 현실에서도 픽션에서도 드무니까.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맥스는 과묵하고, 퓨리오사의 명령을 잘 따르고, 끝까지 여성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리드하려 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들에게 지분거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한 일을 생색내기는커녕 시타델을 탈환한 퓨리오사 일행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다 사라질 뿐이다.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안다는 건 남자에게 너무나 중요한 미덕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어디선가 김숙이 했던 말처럼 “남자가 좀 생글생글 웃어야” 더 호감이 간다. 잘 웃기까지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황효진 (칼럼니스트)

 

2. 영화 <플립>의 브라이스 로스키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당돌함을 잃지 않는 소녀 줄리 베이커에 반해 로스키는 소극적이고 자신의 마음조차 잘 모르며 심지어 ‘엄마 뒤로 숨는’ 지질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소년은 자신과 정반대인 여성을 통해 성장한다. 여자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이 그 시작이다. 다른 아이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줄리에게 질투를 느낄 때, 로스키는 자신을 향한 그녀의 웃음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다. 또한 그의 사랑을 방해하는 아버지, 학교, 줄리를 험담하는 친구들을 꺾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토라진 줄리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나무를 정원에 심는다. 다 큰 어른도 상대방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헤아리기 어렵다. 줄리의 마음을 읽고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린 이 소년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남자로 느껴졌다. 더불어 엔딩 장면에서 로스키의 아름다운 미소, 체크 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의 조합은 또 얼마나 멋진지. 한 가지 아쉬운 점. 줄리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때 답답했다. 여성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로스키가 안타까웠다. – 최현진 (동화 작가)

 

3.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쓰레기는 성나정과 남매처럼 가까운 사이다. 평소에 쓰레기는 나정을 놀리고 싸움을 걸기도 하지만 그녀가 외롭고 지쳤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주는 존재다. 쓰레기는 허구한 날 체육복 차림에 만화책을 좋아하는 백수 건달 스타일인 데다 상한 우유를 맛있다고 마실 만큼 둔감하다. 그 흔한 극장에도 가본 적이 없고,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가수 015B도 모르는 유행에 뒤처진 사람이다. 심지어 무뚝뚝하고 눈치도 없다. 하지만 그에겐 또래 남자들에게 보이는 가식이 없다. 그 대신 천진한 웃음과 솔직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가졌다. 제3화의 에피소드 중 혼자 산책을 하는 나정을 발견한 쓰레기가 차를 세우고 겉옷을 벗어주는 장면에선 츤데레 같은 다정함도 느껴진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가볍게 행동하는 남자보단, 말 한 마디에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쓰레기가 백 번 낫다. 한 가지 아쉬운 점. 눈치는 좀 있었으면 좋겠다. 쓰레기는 간혹 쓸데없이 솔직해서 여자를 아프게 한다. – 한여름 (방송 작가)

 

4. 영화 <빅>의 조쉬

열 세 살 소년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자, 다음날 아침에 그 아이는 서른 살 남자로 변한다. 바로 톰 행크스가 연기한 영화 <빅>의 조쉬다. 조쉬는 성인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생각과 마음은 열 세 살 소년이기 때문에 여자를 대하는 태도 역시 어린 아이 같다. 이를테면, 그는 밤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유혹하는 여자에게 “내가 위에 올라탈 거야”라고 받아 치고는 이층 침대의 위칸으로 뛰어오른 뒤 의기양양한 얼굴로 이불을 덮는다. 훤칠한 외모의 조쉬는 장난끼와 꾸밈없는 솔직함으로 중무장했다. 그 매력에 빠지면 하루 종일 조쉬를 업고 다녀도 힘든지 모를 거다. 요즘 남자들에게도 조쉬 같은 순진무구한 매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지 아쉬운 점. 귀여움이 필살기인만큼 먼저 뭔가를 제안하는 법이 없다. 순진무구하고 깜찍한 그의 매력에 홀딱 넘어갔던 여자도 나중엔 “언제까지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할 거니!”라고 외칠 것만 같다. – 이상희 (프리랜서 에디터)

 

5.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

강백호는 자신감 넘치는 트러블 메이커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사소한 모든 일에 심각한 남자보다는 강백호처럼 긍정의 힘이 넘치는 남자가 좋다. 그와는 하루 종일 시시콜콜한 내용에 대해 재미 있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강백호는 남들을 웃기는 데만 혈안인 남자들과는 다르다. 그는 자신이 목표로 한 것에 대해서는 전력을 다한다. <슬램덩크>의 수많은 남자 캐릭터 중에서도, 강백호만큼 승리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캐릭터는 없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남자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또한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채소연의 한 마디였다니,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그의 모습에 반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강백호는 장난기도 많고 산만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구박을 받는다. 조금만 덜 덜렁댔으면. – 심주연 (만화 출판사 편집자)

 

6.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고동만

요즘 남자들은 항상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다. 업무와 관련된 일정을 살피느라 주변 사람은 챙기지 않는다. 그리고 혹여 시간이 생기더라도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한다. 문제는, 이런 생활 태도를 연인 관계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몸 사리는 연애’를 하는 남자들을 더러 만난다. 반면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고동만은 요즘 보기 드문 뜨거운 남자다. 어떤 상황에서도 귀찮아 하거나, 몸을 사리는 법이 없다. 오랜 친구 사이인 최애라는 외롭거나 슬프거나 허전할 때 늘 고동만에게 전화를 거는데 그가 단 한 번도 내빼는 걸 본 적이 없다. 어떤 날은 태권도장 관장님 차를 몰고, 또 어떤 날은 터덜터덜 스쿠터를 타고, 그마저도 없으면 버스를 환승하고 걸어서라도 최애라에게 간다. 나를 필요로 하니까, 무조건 가는 거다. 무조건, 무조건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이렇게 24시간 풀가동할 수 있는 이유가 특별한 직업이 없어서라는 점이 약간 아쉽긴 하다. 뭐, 아직은 꿈을 찾아 돌격하는 중이니까 괜찮다. – 서동현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에디터)

 

7. 소설 <잠복>의 유키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 속의 형사들은 생각할 줄 안다. 도무지 생각이라곤 할 생각이 없는 군상들 틈에서 타인을 해하지 않고 자신이 행하는 일을 고심하는 남자들. <잠복>의 형사 유키는 살인범 이시이를 잡기 위해 옛 애인 사다코의 집 근처를 맴돈다. 인색한 남편의 후처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세 아이를 돌보며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사다코. 이웃들 말마따나 ‘밖에서 보기엔 은근한 가을 햇살처럼 평온한 가정의 풍경’이지만, 유키는 사다코가 남몰래 외롭고 무감한 삶을 견디고 있음을 직감한다. 속 깊은 표정의 이면을 읽는 것도, 애써 감춘 슬픔을 짐작하는 것도, 여성을 한낱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것도, 유키가 드물고 귀한 캐릭터인 까닭. 여자가 웃으면 그저 웃는구나 하고 마는 속 편한 남자들과는 다른 존재다. 한 가지 아쉬운 점. 유키는 사다코에게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기를 청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무해한 결말이 하필이면 불행하고 안전한 삶이라니, 유키에게 조금 실망한 대목이었다. – 유진목 (시인)

    에디터
    이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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