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참견 예능, 어떻게 생각하세요?

2018.03.23GQ

<윤식당>부터 <전지적 참견 시점>까지 일반인 출연 예능이 인기다. 예능은 타인의 생활을 누구나 들여다보고 참견할 권리를 발명했다.

요즘 TV는 뭐든 관찰한다. 연예인들이 혼자 사는 모습을, 외국인들이 한국을 관광하는 모습을, 일반인들이 ‘썸’ 타는 모습을 관찰한다. 카메라를 여러 대 돌리고,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하는 장면을 찍고, 그걸 잘라 방송을 만든다. 이경규가 일찍이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가 될 거라고 장담 했듯, 보는 입장에서는 이게 예능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때도 많다. 특히 그렇게 보이게끔 하는 치트키가 있다. JTBC <효리네 민박>에 묵으러 온 손님들, tvN <윤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요리와 한국, 때로는 자신들에 대해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외국인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다. 전문방송인이 아닌 출연자의 존재는 시청자로 하여금 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짜인 각본에 따른 연출이 아니라 ‘진짜’라고 믿게 만든다. 정작 현장에서는 카메라 수십 대가 돌아가고 스태프 몇 십 명이 대기 중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로.

물론 일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최근에 생긴 유행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MBC <느낌표>나 KBS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방송이 있었고, 몇 년 전만 해도 SBS <짝>이 있었다. 이런저런 오디션 프로그램도 큰 틀에서는 일반인 예능으로 분류된다. 현재 방송 중인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역시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다만 지금처럼 TV 프로그램의 절반이 일반인 출연자를 컨셉트로 내세운 경우는 없었다. 연예인의 가족으로서, 손님으로서, ‘짝짓기’나 고민 상담의 주인공으로서 일반인들은 여기저기 등장한다. 채널을 아무리 돌려봐도 그렇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기존 예능에 질린 시청자들의 진정성 추구다. 사람들은 이제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연예인보다 자신과 비슷한 일반인의 삶, 혹은 반응을 더 궁금해 한다. 그게 어떤 면에서든 진짜에 더 가깝다는 판단일 것이다. 방송사로서도 손해 볼 건 없다. 일반인의 출연료는 연예인보다 낮고, 방송을 만드는 이들은 언제나 새 얼굴을 원하니까. 방송 출연에 거리낌이 없는 일반인도 예전보다 늘었다. 당장 페이스북과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열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셀러브리티’ 혹은 ‘인플루언서’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잔뜩이다. 트렌드의 중심이 웹으로 옮겨온 지는 오래고, 덩치 크고 변화에 느린 방송사들이 트렌드를 따라잡는 시늉이라도 하려면 일반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방송이 만들어지는 시대, 일반인들은 그렇게 예능의 필수요소가 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관찰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말이라도 보태고 싶어 한다. 상징적이었던 사건 하나. 작년 연말 SBS는 연예대상 사상 최고로 파격적인 선택을 했는데, <미운 우리 새끼>의 어머니들에게 대상을 안긴 일이었다. 일반인에게 대상을 준 것이 적절했냐는 비판이 즉시 일었지만, 따지고 보면 거의 유일하게 시대정신을 반영한 상처럼 보였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연예인들은 실제 생활을 공개하고, 가족의 이름으로 등장한 일반인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마디씩 한다. 관찰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중년의 남성이라는 사실은 상관없다는 듯.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들의 리액션은 연예인들보다 훨씬 솔직하고 과격하다. SBS의 연예 대상은 마치 시청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여러분들이 예능을 보면서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이분들은 이것을 잘하셨기에 대상을 드립니다.’

‘이것’을 정확한 단어로 바꾸면 ‘참견’이다. 다른 예능이 <미운 우리 새끼>로부터 배운 건, 시청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참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TV를 보며 집에서나 개인 SNS에서나 하는 이야기를 아예 방송에서 판을 깔고 한다. 패널들은 시청자를 대신해 스튜디오에 앉아 타인의 삶에 어떤 식으로 참견하면 되는지 가이드를 제시한다. 얼마 전 방송을 시작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은 패널들이 출연자들을 관찰하며 무언가 한마디씩 하는 프로그램이다. 0.1초만에 지나가는 이영자 매니저의 표정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유병재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심리 전문가까지 동원해 분석한다. 무려 ‘러브라인 추리게임’이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채널 A <하트시그널>은 참견을 제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반인 남녀가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썸’을 타고, 패널들은 스튜디오에 앉아 영상을 보며 출연자들의 표정 하나,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참견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출연자들이 어떤 상태인지, 누구에게 관심이 있는지 패널들의 추측과 분석이 해설처럼 따라붙는다.

관찰이 대세인 예능의 한쪽은 관음과 오지랖으로 굴러가는 중이다. TV를 보는 동안 훈수 두고 평가하고 유추하기야말로 한국의 오랜 스포츠였다지만, 이것이야말로 예능의 원동력이었다지만, 시청자들 스스로 참견하는 것과 방송에서 참견을 조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누군가의 모습을 나노 단위로 쪼개어 관찰하며 한 마디씩 하는 지금의 예능, 좀 징그럽진 않나? 그 대상에 대해 일반인과 연예인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화면 속 상황은 점점 더 리얼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예능은 타인의 생활을, 연애를, 결혼을 누구나 들여다보고 참견할 권리를 발명했고, 이것은 점점 더 평범한 오락이 되어가고 있다.

    에디터
    글 / 황효진(칼럼니스트)
    사진
    MBC <전지적 참견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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