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성악가 정일헌 “오페라 배우라고 불러주세요”

2018.05.04손기은

성악가 정일헌은 ‘오페라 가수’라는 말보다 ‘오페라 배우’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Left 베이지색 수트, 드레익스. 흰색 테리 폴로 셔츠, 피델리 for 드레익스. 검은색 스웨이트 호스빗 로퍼, 카르미나 by 유니페어.

베이지색 수트, 드레익스. 흰색 테리 폴로 셔츠, 피델리 for 드레익스. 검은색 스웨이트 호스빗 로퍼, 카르미나 by 유니페어.

 

 

회색 재킷, 베스트, 링 재킷, 벨트, 모두 바버. 시계, 해밀턴. 흰색 티셔츠, 피그벨 by 오쿠스. 흰색 팬츠,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패턴 스카프, 드레익스. 흰색 스니커즈, 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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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색 수트, 드레익스. 흰색 테리 폴로 셔츠, 피델리 for 드레익스. 검은색 스웨이트 호스빗 로퍼, 카르미나 by 유니페어.

사진 속 정일헌은 성악가보단 배우 같습니다. 성악가는 풍채가 있을 거다, 살집이 있을 거다 생각하는데, 요즘은 외형적인 모습에 굉장히 신경을 씁니다. 외국에서 특히 더 그런 추세고요. 노래하는 데 방해 되지 않는 선에서 체중 관리를 하는 거죠. ‘배 나온 성악가’라는 생각도 곧 바뀔 것 같아요.

체형과 소리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이 있나요? 노래는 호흡인데, 호흡이 좋으려면 호흡 통이 커야 하고, 큰 호흡을 잘 받칠 수 있는 근육들도 잘 잡혀야 해요. 수영하는 사람이 폐가 크고 어깨가 넓은 것처럼, 성악가는 배가 나올 수밖에 없죠. 살이 좀 찌면 편하고 풍성한 소리가 납니다. 무대 위에서 멋있게 보이면서도 노래도 잘 나오는 ‘배의 느낌’을 다들 찾으려고 하죠.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쪽인가요, 환영하는 쪽인가요? 전 굉장히 좋게 봅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오페라 팬과도 더 현실적으로 소통할 수 있고요.

지난해 연말, 국립오페라단에서 <라보엠>을 공연했을 때 무대 위 매끈한 정일헌에게 확실히 눈이 갔습니다. 귀는 물론이고요. 올해 5월에 선보일 <카르멘>의 에스카미요도 기대됩니다. 늘 같은 아리아와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 반복해서 서지만, 그것이 오페라의 매력이기도 하겠지요? 그렇죠. 저도 국내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2012년 <카르멘> 무대에서 보여준 제 목소리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기쁜 일 슬픈 일 다 겪으면서 6년이 지난 지금의 목소리는 또 다를 거라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무대에선 다른 모습이 나올 것 같고, 목소리도 더 잘 익었을 것 같고요.

기술도 아니고, 단련도 아니고, 음색은 또 다른 차원의 예술이네요. 고뇌하고, 외로움도 느끼고, 시련도 겪고,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인생이 천천히 변하는 것처럼 목소리도 변해요. 그렇게 인생이 쌓인 목소리로 부른 노래에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요. 모든 형태의 예술은 정말이지 하아…, 단기간에 완성되는 게 없어요. 게다가 목소리는 꾸준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더 그래요. 술 담배 하지 않아야 하고, 매운 음식도 조심해야 하고, 잠도 잘 자야 하고, 말도 많이 하면 안 돼요. 이 모든 걸 일상생활에서 몸에 밸 수 있게 계속 지켜야 해요.

해병대 출신이던데, 그곳이라면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곳이 아닌가요? 원래 운동을 좋아했고, 어릴 때부터 특전사가 되고 싶었어요. 결국 해병대를 가게 됐고요. 해병대에서 목을 지키려고, 악을 지를 때 성악적인 발성으로 “예에. 그렇습니다아~” 대답했어요. 그런데 해병대는 그걸 용납하지 않던데요. 하지만 저도 내 몸 상하게 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죠. 결국 기합 받고 그랬어요. 목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때운 거죠. 하하.

뮌헨 국립음대에서 유학하고 2009년부터 드레스덴 국립극장에서 주역으로 노래했습니다. 문화의 중심에 오페라가 있는 유럽에서의 경험은 얼마나 달콤했나요? 국내에선 오페라 마니아층이 한정적인데 유럽에선 1년 내내 오페라 공연이 열리잖아요. 독일에선 중심가를 지나가다가 저를 알아본 사람이 사인을 요청한 적도 있어요. 다섯 시간짜리 바그너 오페라를 할 땐 관객석의 정말 연세가 많은 할아버지가 꼬부라진 자세로 끝까지 관람하는 걸 보고 감동을 받은 적도 있고요.

그럼에도 한국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력하게 들 때도 있었겠죠? 외국에서 공연하면 되게 외로워요. 세계 10대 오페라 극장으로 꼽히는 명성 있는 극장이었는데도 단원들 중 저 혼자 동양 사람이었어요. 그 화려하고 세계적인 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이 끝나도 집으로 가는 길은 늘 혼자였어요. 빵 하나 사 먹고 집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다 한국에서 좋은 기회가 생겨 2012년 데뷔 무대에 섰는데, 긴장도 더 되고 정말 좋았어요.

긴장돼서 좋았다고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 약간 긴장되는 그 순간을 좋아해요. 한국에서 공연할 땐 함께 무대에 오르는 사람도, 관객도 모두 한국 사람이라서 마치 가족들 앞에서 노래할 때 유난히 더 떨리듯이 긴장이 더 되더라고요.

오페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오케스트라가 불협화음을 낼 때가 가장 짜릿해요. 그런 긴장을 즐기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또 좋은 순간이 하나 더 있어요. 무대에서 혼과 열정을 다 뽑아내고 내가 너덜너덜해지는 걸 느끼는 순간이에요. 물론 공연이 마음에 안 들면 커튼콜 때 인사도 쭈뼛쭈뼛하게 하게 되지만, 그래도 뭔가 이뤘다는 그 기분이 좋아요.

그럴 땐 뭘 해요? 잠이 안 와요. 밤 산책해요. 드레스덴 야경이 숨 막히게 좋았으니까요.

드레스덴 젬퍼오퍼 극장이야말로 숨 막히게 아름답던데요. 성악가들에게는 그곳이 할리우드고, 뉴욕 브로드웨이고, 파리 런웨이에요. 처음 그 극장에 들어섰을 때는 정말 아…. 나도 드디어 아….

게다가 젬퍼오퍼는 소리 좋기로 특히 유명한 극장입니다. 노래하기가 정말 편해요. 극장이 노래를 적당히 울려줘요. 소리가 잘 울리지 않는 곳에서 공연하는 오페라 배우는 오버하게 되고 그럼 목이 상하고, 관객들은 만족감이 덜하죠. .

인터뷰 초반부터 두 단어가 계속 맴도는데, 오페라 가수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오페라 배우라고 해야 할까요? 두 단어 모두 사용하긴 하지만 사실 ‘오페라 배우’라고 부르는 게 전 더 좋아요. 성악가는 가곡도 부르고, 콘서트도 하지만, 그중 오페라는 그야말로 종합 예술이에요. 영화배우처럼 디테일하게 연기를 해야 해요. 요즘은 DVD 촬영도 완전 클로즈업으로 해서 디테일한 감정선을 표현해야 해요.

연기에 몰입하면 소리 전달이 약해질까 봐 걱정하는 성악가도 많지 않나요? 많이 예민하죠. 사실 상대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아리아를 부르는데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고 관객석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노래하면 누가 봐도 어색하잖아요. 어느 땐 둘 다 관객석을 보고 마구 사랑한다고 노래할 때도 있어요. 물론 지휘자도 보고 음정 박자도 맞춰야 하지만 자연스럽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액팅 코치가 따로 있나요? 작품마다 다른데,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요. 성악가의 기본 연기력에 맡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전 연기에 대해 더 연구하는 분위기가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 연기가 자연스러우면 소리도 자유로워질 테니까요. 연극배우에게 많이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바리톤은 음색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조금 한정적입니다. 중후한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아버지 역할도 자주 하고요. 역할에 목마를 때도 있나요? 40대 초반인데, 바리톤치고는 젊은 편입니다. 이제 시작이죠. 20대 때는 바리톤 역할을 하면서 늙게 분장을 하곤 했는데, 스스로 연기에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어요. 정말 경험해본 역할을 진실되게 연기하고 싶은데…. 나이가 들면서 바리톤 역할이 이제서야 더 맞는 것 같아요.

여느 배우의 욕심과 똑같습니다. 드레스덴 극장 디렉터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극장에 오디션을 보러 오는 한국 사람들은 왜 항상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느냐고요. 아무래도 회사 면접 보듯이 윗사람한테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배우 오디션처럼 생각하면 그게 정말 좀 이상한 거죠. 하인 역할을 하면서 오디션을 보는데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노래를 부른다? 꼽추 역할을 원하는데 수트를 입고 온다? 전 디렉터의 말에 공감했어요. 기존 틀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필요해요.

뮌헨 음대에서 유학할 당시엔 ‘섹시 바리톤’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테너에게 더 어울리는 수식어 아닌가요? 이젠 그 별명이 좀 쑥스럽긴 하지만, 바리톤의 틀을 깨는 것 같아서 당시엔 정말 좋았어요. 뮌헨 음대에 입학 시험을 볼 당시 저를 눈여겨본 소프라노 교수님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시험장에서 나오는데 절 쫓아 나오더니 “다른 교수들도 다 너를 마음에 들어하지만 꼭 내 제자해”라고 복도에서 강력하게 이야기했어요. 학교생활 내내 그 교수님이 ‘섹시 바리톤’이라고 저를 온 동네에 소문을 내주셨어요. 음색이 남성적이면서도 구슬픈 구석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가곡에도 잘 어울리는 음색이에요. 주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독일에서도 한국 가곡 ‘청산에 살리라’를 부른 적이 있어요. 동료 중 한 명이 한국말을 모르는데도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해준 적도 있고요. 러시아 가곡을 부르면 또 러시아 가곡과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고 하고, 흐흐. 그래서 이번에 가곡 독창집을 내기로 했어요. 참, 6월에 대만에서 오페라 공연도 잡혔어요. 대만은 처음인데, 지난해 연말 국립오페라극장에서 했던 <라보엠> 마르첼로 역할입니다. 으, 긴장되고 좋네요.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곽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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