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잡지는 새로워

전문지의 영역에 속하던 인문 잡지가 바뀌고 있다. <뉴필로소퍼>, <핑거프린트>, <우먼카인드> 3개 매체의 편집장에게 그 변화에 대해 물었다.

종이 잡지의 위기가 가시화된 지금, 왜 잡지였나?

― <뉴필로소퍼>를 창간한 바다출판사는 인문·철학 / 문화예술 / 과학의 큰 카테고리를 가지고 출판 활동을 하고 있다. 2015년 과학 잡지 <스켑틱>을 창간해 지금까지 13호를 발행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처음에는 모험적인 시도였지만 <스켑틱>이 나름의 성과를 내면서 내부에서 과학과 인문을 포괄하는 다양한 잡지를 출간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두 해 전부터 여러 나라의 잡지를 검토했다. 그렇게 <우먼카인드>, <뉴필로소퍼>를 찾았고, 1년의 준비를 거쳐 2017년 11월 <우먼카인드>, 2018년 1월 <뉴필로소퍼>를 창간했다. 장동석(<뉴필로소퍼> 편집장)

― 어떤 사건이나 일에는 복합적인 이유, 동기가 작용한다. 일상의 사물을 주제로 하는 전시든, 글이든, 책이든 뭐든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한 3~4년 전에 불쑥 생각했고, 이왕이면 한 명보다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약 1 년 전 문화 콘텐츠에 관심을 가진 한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책보다는 온라인과 외부 제휴가 열려 있는 미디어 콘텐츠의 형태로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박경린(<핑거프린트> 편집장)

각각 여성, 철학, 사물에 대해, 기존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잡지로서의 접근을 보여준다. 어떤 독자를 상정했나?

― 기존 학술지나 문예지의 경우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독자다. 반면 <뉴필로소퍼>는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독자를 제한하지 않는다. 철학을 공부한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귀 기울일 수 있다. 장동석

― 인문학이라고 하면 거창할 수 있지만 자신의 철학, 습관, 애착이 담긴 물건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리를 즐겨 쓰는 사람이 거기에 특히 어울리는 펜을 쓰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너무 사소해서 이야기하기 어렵고, 딱히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게 하나는 있다. 그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박경린

― 20대에서 40대까지 ‘여성의 자아, 정체성, 그리고 여성의 삶’에 관한 이슈와 논의에 관심이 있는 눈 밝은 여성 독자를 지향한다. 나희영(<우먼카인드> 편집장)

단행본만큼의 깊이와 주제의식을 간결한 편집으로 보여주는 잡지. 새로운 인문잡지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로부터는 살짝 벗어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잡지에 동시대를 반영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 있나?

― <뉴필로소퍼> 한국판이 표방한 슬로건은 “매일매일의 삶을 성찰하는 생활 철학 잡지”다. 그런 점에서 동시대의 철학을 다양한 방식, 즉 인터뷰, 만화, 사진, 그림, 인포그래픽 등의 형태로 보여주고자 한다. <뉴필로소퍼> 호주판은 이를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고 표현한다. 요약하면 <뉴필로소퍼>는 인류 역사 이래 축적된 웅숭깊은 철학을 “보다 충실한 삶으로 살아 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잡지다. 철학과 그것을 살아내는 방식과 노력은 항상 동시대적이라고 믿는다. 장동석

― ‘동시대’라고 하지만 사람마다 시간을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층위는 다르다. 최신 기기와 트렌드에 민감한 얼리어답터가 구제 옷을 즐겨 입을 수 있다. <핑거프린트>는 ‘우리가 사는 바로 지금’을 향한다. 사물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지금을 생각해보는 것.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취향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동시대적이다. 박경린

― <우먼카인드>는 지금까지 두 권이 나왔는데, 창간호에서는 여성적 삶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모티베이션의 비밀을 다루었고, 2호에서는 여성으로서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고 자기 긍정감을 가지는 방법을 다루었다. 충분히 현재적 시점에서 함께 생각해볼 만한 주제였다. <우먼카인드>는 시사 문제나 국내 정치 이슈에 방향성을 둔 잡지가 아니라 문화, 인문학적 이슈를 논의하는 데 중점을 둔 잡지다. 나희영

<뉴필로소퍼>와 <우먼카인드>는 라이선스지다. 해외 기사와 국내 기사를 어떤 식으로 조화시킬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공히 ‘한국화’하는 것, 한국 잡지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진 않다. 번역 이상의 ‘한국화’에 대한 잡지로서의 관점이나 실천이 있을까?

― <뉴필로소퍼>는 2013년 호주에서 창간된 계간 철학·인문학 잡지다. 호주판을 근간으로 한국판을 만든다. 호주판 역시 하나의 주제로 잡지 전체를 구성한다. 하지만 한국판의 경우 내용의 치밀함을 더하기 위해 한국판 편집자들이 전체 구성을 다시 짠다. 한국 독자들은 기승전결 식의 구조에 익숙해서 평면적 구성을 취하는 호주판을 다소 어려워할 수 있다. 한국 필자들의 원고는 빈자리를 채우는 것에서 나아가 각각의 주제가 갖는 한국적 맥락을 조명하는 역할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필자들의 글이 훨씬 더 주제에 적합하다. 장동석

― <우먼카인드>는 콘텐츠의 70퍼센트는 호주판을 따르고, 나머지 30퍼센트는 국내 여성 필자들의 원고를 싣는다. 매호 그들의 의미 있는 목소리가 모이는 하나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아직 두 권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동안 참여해준 김하나 작가, 이다혜 작가, 송아람 만화가, 박선영 기자의 글은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앞으로 나올 <우먼카인드>에도 계속해서 여성 필자들의 의미 있는 목소리를 담을 것이다. 그 목소리가 조금씩 반경을 넓혀가며 퍼지기를 바란다. 나희영

요즘 잡지와 다르게 글의 비중이 높다. 요즘 잡지가 글을 줄이는 배경에는 아무도 안 읽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좀 더 읽힐 수 있는 글을 싣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나?

― 책을 꾸준히 사는 독자층, 읽는 즐거움을 즐기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 초기이다 보니 여러 경로로 독자들에 대한 피드백을 꾸준히 받고 있다. 생각보다 놀란 게 책의 모든 페이지에 줄을 치면서 읽고 감상을 이야기해준 독자가 있었고, 10명에게 물어보면 10명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페이지가 달랐다. 재미있으면 읽는다. 박경린

― 바다출판사에서 내는 <스켑틱>, <우먼카인드>, <뉴필로소퍼>는 모두 단행본의 성격을 가졌다. 잡지는 정기간행물이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단점이 있다. 그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지금이 아닌 나중에도 독자들이 찾아서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월호를 계속해서 중쇄하는 게 목표다. ‘읽힐 수 있는 글’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누가’ 했을 때 적확하고 효과적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완성도는 독자들이 바로 알아보는 부분이다. 글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편집 디자인의 조화도 중요하다. 나희영

<뉴필로소퍼>와 <우먼카인드>의 경우, 이미지에 대해서는 주로 본지의 것을 사용하면서,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이미지 창작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 막 2호를 출간한 상황이라, 당분간은 안정적인 출간이 목표다. 일단 잡지가 한국 시장에 안착하고 독자들에게 평가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것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는 로드맵이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콘텐츠의 비중을 얼마나 늘리느냐와도 연관된 문제인데, 빠르면 3호부터 호주판의 고정 꼭지를 한국 상황에 맞춰서 진행해보려고 한다. 우리 이미지의 창작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장동석

<핑거프린트>의 대표적인 사진과 레이아웃 원칙이 있을까.
― 필름카메라로 촬영한다. 필름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거나, 외부에서 이미지를 받아야 할 때도 있지만 원칙은 그렇다. 디자인은 오디너리피플에서 맡고 있다. 잘하는 팀이고 여러 작업을 함께해와서 디자이너의 제안을 거의 수용하며 진행했다. 디자이너들은 점점 작은 글씨를 선호하는 추세인데 글이 많아서 다른 잡지들보다 폰트를 상대적으로 키워야하는, 이런 부분이었다. 박경린

이 잡지가 앞으로 절대 하지 않을 일이 있다면?
― 불편부당할 것이다. 다양성을 보여주다 보면 어느 한 편을 들게 마련인데, 그보다는 다양성에 기반한 새로운 생각의 못자리이고자 한다. 장동석

― 절대 하지 않을 일은 없다. 재미있는 일,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은 다 해보고 싶다. 박경린

― 광고를 싣지 않는다.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독자의 구매와 참여로 생명력을 키워가려고 한다. 나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