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어떤 타자가 좋은 타자일까?

2018.05.29GQ

말하자면 스윙은 모든 것이 하나의 점으로 완벽하게 만나는 순간이다. 모두 스윙하지만 전부 다른 야구, 골프, 탁구, 테니스의 이상을 들여다봤다.

“야구는 세게 때려서 멀리 보내면 되는 거 아냐?” 한 야구 문외한이 물었다. 타격 전문가 SBS 이종열 해설위원에 따르면 맞다. “공이 내야수를 빠져나가면 출루하는 게 야구잖아요. 그러니까 공을 멀리 치거나 빠르게 내보낼 수 있으면 좋은 타자가 맞죠.” ‘상황에 맞는 타격’이란 말이 있지만, 10번 중 3번만 쳐도 ‘수위 타자’라 불리는, 실패 위에 쌓아 올린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사실 타자가 통제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예컨대 날아오는 공을 타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히트앤드런 작전이 나와서 밀어치는 것, 플라이를 날리거나 땅볼을 때리는 것 정도? 코치들이 뭐라고 하느냐면요. 눈에 보이는 대로 치라고 해요. 예전에는 배트를 짧게 잡고 치는 타자들이 있었지만, 이제 아무리 체구가 작은 타자들도 그렇게 안 잡아요. 정확하게 치는 것보단 자신이 가진 힘을 최대한 쓰는 게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확률이 더 높다는 상식이 자리 잡은 거예요.” 야구는 변화하는 공을 ‘스윙’하는 스포츠고, 구름에 이름을 붙이듯이 확률을 통해 아주 조금 성공을 가시화해왔다.

하지만 인간에게 숫자는 단지 숫자에 그치지 않고 믿음으로 이어졌다. 누군가가 야구에 다르게 접근하고 그러면서 성적까지 안 좋다면 확률이 낮은 쪽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2016년 한화에서 방출되고 같은 해 넥센에 입단한 김태완이 한 예다. 김태완은 2008~2009시즌 2년 동안 리그 전체 3위에 해당하는 4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년간 얻은 총 122개의 볼넷도 리그 전체 5위의 기록이다. 공익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2013년 구단에 돌아온 후 여러 감독과 코치가 그의 타격 자세를 교정하려 했다. 그 자세로는 시합에 나갈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방망이 끝이 투수를 향해서는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스윙’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종열 위원은 근본적으로 “타격 자세는 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우리 얼굴이 모두 다르듯이, 신체조건이 다 다른데 하나의 타격 자세가 있을 수 있을까요? 파워포지션에서는 모든 타자가 비슷한 위치에 배트가 가요. 예비 동작은 프로 선수라는 위치로 증명한 그 자세가,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그 자세가 맞는 거예요.” 약점이 없는 타자는 없다. 김태완처럼 극단적인 크로스 스텝을 쓰는 선수는 몸 쪽 공을 못 친다고 숫자는 말하지만, 그는 “몸 쪽 공도 충분히 센터 우중간으로 보낸다”. 야구의 숫자는, 스윙이 어렵다면 그것을 더욱 어렵게 그러나 정밀하게 분석하는 한 방편이다. 이 세밀한 접근은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흥미롭지만, 야구의 스윙이 ‘공치기’라는 단순한 사실을 종종 잊게 만든다.

“대부분의 경우 투수의 실투, 그러니까 가운데로 몰린 공을 치는 거예요. 스트라이크 존의 모서리에 걸치는 공은 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쳐도 정면으로 가거든요. 여기에서 일본, 한국과 미국의 연습 방법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일본과 한국은 옆에서 누가 던져주는 공을 쳐요. 하지만 미국은 혼자서 티 바에 공을 올려놓고 치죠. 타자가 가장 잘 칠 수 있는 코스와 높이에서 연습하는 거예요.” 이것은 단점을 극복하느냐, 장점을 극대화하느냐라는 중대한 관점의 차이다. 어느 쪽이 보다 효과적인지는 현대 야구의 역사가 증명하는 중이다. 지금의 야구는 ‘어퍼스윙’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1970년에 집필한 <타격의 과학>에서 이미 ‘어퍼스윙’을 주장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운스윙’이 주를 이뤘다. 선을 때리느냐 점을 때리느냐의 차이로 바꿔서 설명하면 좋겠다. 점을 때려야 하는 다운스윙에 비해 선을 때리는 어퍼스윙에서 히팅 포인트가 좀 더 많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배터박스에 서는 위치, 배트의 무게와 길이, 동체 시력 등 다양한 면에서 야구의 스윙은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있고, 야구가 스포츠가 아니라 게임이라고 평가 받는 것도 이 때문이지만, 역설적으로 최신 과학을 동원해도 무엇 하나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야구가 스포츠라는 방증이다. 야구의 스윙은 지면 발력에서 시작되는 힘을 관절을 따라 배트까지 전달하는 과정이다. 팔목 힘은 막 야구를 시작했다면 몰라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근육량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은 엉덩이부터 복근으로 이어지는 코어 근육을 잘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타자에게는 두 가지 타이밍이 있는데, 하나는 발부터 배트까지 힘을 싣는 타이밍이고 또 하나는 투수가 던진 공에 배트를 맞추는 타이밍이다. 정타로 맞은 공은 천천히 스윙한 듯한 착시를 준다. 배트에 스쳐 맞은 공은 속도가 줄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툭 친 것 같은데 멀리 나가는 공은 힘과 타이밍이 아주 잘 맞은 결과다. 단순히 체격이 크고 힘이 세면 좋은 타자가 될 확률이 높지만, 그 힘을 전달하는 능력과 타이밍을 잡아내는 능력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누가 가르칠 수 없는 본능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종열 해설위원에게 혹시 ‘희생 번트’도 스윙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오히려 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번트는 90퍼센트 이상 성공해야 잘한다고 말하거든요. 1루수와 3루수가 전진수비 하고 있으면 심적 부담도 상당하고요. ‘스윗 스폿’에 정확히 맞추면 안 되고 그 위나 아래를 맞혀야 하는데 이게 더 어려울 수 있죠.” 정확히 맞춰야 하지만 확률은 낮은 것과 정확하게 맞추지는 않아도 되지만 확률은 높아야 하는 것, 둘 중 어떤 게 더 어려울까. 테드 윌리엄스는 “수천 번 되풀이해 말하지만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서 야구공을 때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고 말했다. 야구의 스윙은 가능성이 아주 작더라도, 그것이 설사 당장 자신을 희생하는 일일지라도 일단 시도하라고 말한다.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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