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10년

2018.06.10GQ

이틀 동안 지켜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10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 전야.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의 에르메네질도 제냐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렸다. 2018 버전의 제냐 토이즈 컬렉션 ‘펠레 테스타’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펠레 테스타는 소재의 이름이다. 가느다란 가죽 줄을 엮어 마치 라피아처럼 보이는 신개념 가죽. 지난해 처음 나온 제냐 토이즈 컬렉션도 펠레 테스타로 만들었다. 올해 달라진 점은 직조 패턴. 브랜드의 레디 투 웨어 론칭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1968년의 헤링본 패턴을 본떴다. 거대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놓인 새 컬렉션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점잖은 색의 요가 매트, 축구공, 애완견 리쉬, 프리미엄 오디오 메이커인 마스터 & 다이나믹과 함께 만든 턴테이블과 헤드폰. 한쪽 벽엔 알타이 갤러리와 협업한 대형 태피스트리가 걸렸다. 알타이 갤러리는 유목 문화의 섬유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아틀리에다. 아티스틱 디렉터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는 이 물건을 매우 흡족하게 바라보며 고대 사하라 매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낙타 가죽으로 만든 실과 미뇽 가죽으로 만든 실을 교차한 수공예 태피스트리라니! 호화로운 저녁의 정점이었다.

이튿날,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고향 트리베로에 갔다. 공기 좋고, 물 맑은 트리베로의 산 중턱에 까사 제냐와 울 공장이 있다. 까사 제냐에서는 레디 투 웨어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이탈리아 남자들(Uomini All’Italiana) 1968>이 열리고 있었다. 테마는 제냐의 레디 투 웨어 초창기 10년(1968~1978). 브랜드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손녀인 안나 제냐가 직접 투어에 참여해 열정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전시에 담긴 10년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원단 메이커로 이미 성공한 제냐 일가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기성복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GR22, GR33, GR44, 세 가지 타입의 수트. 22는 젊고 슬림한 실루엣이며 44는 박시하고 남성적인 스타일, 33은 절충형으로 셋 중 가장 잘 팔렸다. 이때부터 제냐는 기성 수트를 좀 더 세분화하는 데 집중한다. 기본을 두고 고객의 체형에 따라 조금씩 바꾸는 방법을 연구한 것. 또한 <TOP> 매거진을 창간해 매 시즌 새로운 원단과 스타일을 선보이며 이탤리언의 멋을 전파했다. 첫 번째 기성복 공장을 세우고, 에밀리오 푸치와 협업한 레디 투 웨어 컬렉션을 소개한 것 역시 그 시기. 한편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당시 원단과 수트, 팬츠, 니트 웨어에 각기 다른 브랜드 이름을 붙였는데, 1978년 모든 레이블을 ‘에르메네질도 제냐’로 통합한다. 여기까지가 전시의 스토리다. 베뉴엔 제냐의 초창기 수트 프로토타입 세 벌과 <TOP> 매거진 아카이브, 1970년대의 재단 기구들, 당시 제작한 빈티지 원단, 에밀리오 푸치가 디자인한 제냐의 레디 투 웨어 피스, 브랜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온갖 흑백 사진 등이 전시됐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지금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500여 곳의 매장을 운영한다. 또한 밀라노 남성 패션 위크의 핵심 브랜드로 성장했다. 10년 동안의 변화가 없었더라면 이 모든 게 가능했을까? 멀리 보는 리더, 유연한 전략이란 얼마나 값진가. 전시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에디터
    안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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