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해외에서 더 인기인 ‘세이수미’

2018.06.15GQ

세이수미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의 인디 록 밴드다. 소속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의 대표 김민규가 한국 인디 밴드 사상 전례 없는 ‘지금’이 가능하기까지의 세이수미를 돌아봤다.

“Indie pop darlings from Busan”, 세이수미를 소개한 해외 매체의 기사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문구였다. 언제 봤지? 1998년 벨앤세바스찬 2집의 리뷰? 아니면 동향의 카메라 옵스큐라가 데뷔 앨범을 발표했을 때? 애정이 듬뿍 담긴 이런 표현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싶었는데 세이수미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보다니 좀 뭉클했다. <Paste> 매거진은 “The best pure indie-pop record of 2018 (so far) is not from Brooklyn or Glasgow or Melbourne or Olympia but Busan, South Korea”라고 썼다.

처음 한국의 인디 레이블 일렉트릭뮤즈와 세이수미는 느슨하게 만났다. 2014년 여름 부산역 부근에서 첫 미팅을 하고 같은 해 9월 1집 <We’ve Sobered Up>을 발매했다. 이듬해 여름 EP <Big Summer Night>을 낼 때까지도 그랬다. 부산대 부근 펍에서 공연하고 주기적으로 서울에 올라와 30~4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드러머 세민이 다쳐서 병원에 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 심각하지 않을 거란 예상과 달리 세민은 여러 번의 수술 이후 세미코마 상태에 빠졌다. 부산 록 페스티벌이 코앞이었다.

해외에서 연락이 온 것도 이맘때다. 영국의 인디 레이블 댐나블리 Damnably에서 유튜브를 통해 세이수미를 봤다고 했다. 기존 음반의 영국 발매와 투어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 모여 상의했다. 결심이 서기까지 힘들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려해야 할 것도, 맘에 걸리는 것도 많았다. 다행히 댐나블리는 우리의 사정을 이해했고, 투어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일본 밴드 오토보케 비버 Otoboke Beaver의 서포터로 투어를 했다. 투어 전에 레코드 스토어 데이 한정반 7인치 EP <Semin>과 1집과 EP의 합본 컴필레이션 <Say Sue Me>를 발매했다. 2017년 5월 1일 런던의 ‘The 100 Club’에서 시작해 포커스 웨일즈 페스티벌로 마무리된 투어를 통해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댐나블리와의 협업도 좋았다. 지속적인 해외 활동을 계획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드럼 멤버를 구하고 2집을 계획했다. 녹음, 믹싱 등이 진행되는 사이 댐나블리와 2집 발매 이후를 준비했다. 투어를 위해 유럽 부킹 에이전시와 계약하고, 프로모션을 위해 PR 에이전시를 구했다. 일렉트릭 뮤즈가 세이수미의 한국 레이블이자 매니지먼트 역할을 맡고, 댐나블리는 인터내셔널 레이블 역할을 맡았다. 영미권에서는 국내와 달리 발매 이전 프로모션에 집중했다. 아트워크, 마스터 등 발매/프로모션에 필요한 자료를 적어도 3개월 전에 완료해야 했다. 영국 레이블, 미국 PR 에이전시, 독일 부킹 에이전시, 한국 레이블이 웹에 모여 시차를 극복하며 협업했다. 모니터용 가믹스를 공유하면서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댐나블리와 PR 담당자는 세이수미의 음악 스타일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이들의 백그라운드에서 홍보 포인트를 짚어냈다.

세이수미의 서프 성향이 가미된 인디록은 부산의 해변과 중첩되었고, 초등학교 동창으로 어릴 적 밴드를 함께 시작한 병규와 재영, 세민과 함께한 시절이 담긴 노래들 그리고 수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가사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들은 로컬의 정서와 로큰롤이 만나 변주된 지점을 흥미롭게 여겼다. 스토리텔링에 꽤 큰 비중을 뒀다. 보도자료에 2집 타이틀 ‘Where We Were Together’가 함유하는 의미를 충분히 담으려 했다. ‘Old Town’이 첫 싱글로 꼽힌 것도 이런 이유였다. 그러던 중 댐나블리에서 SXSW 참여를 제안했다. 영국/유럽 투어에 앞서 SXSW에 나가면 2집 프로모션에 효과적일 거란 판단이었다. 고전 로큰롤 넘버를 세이수미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레코드스토어데이 한정반도 계획했다.

1월말 리드 싱글 ‘Old Town’의 프리미어가 결정됐다. 2월 7일 웹진 <Sterogum>에서 트랙 리뷰와 함께 ‘Old Town’을 선공개했다. <Pitchfork>에 트랙 리뷰가 실렸다. NPR이 SXSW 참여 아티스트 중 주목할 만한 100팀을 선정하는 ‘The Austin 100’에 소개했다. 3월 13일에는 미국의 UPROXX에서 두 번째 싱글 ‘B Lover’를 프리미어 공개했다. 엘튼 존 경이 진행하는 애플뮤직의 비트 라디오 <Rocker Hour>에서 직접 세이수미를 소개하는 즐거운 해프닝도 있었다. 프로모션이 진행되는 동안 우린 SXSW를 위해 오스틴에 갔다. 현장에 가니 우리가 조금은 알려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의 쇼케이스를 했고 다행히 세 번 모두 좋은 분위기에서 공연을 마쳤다. 항공, 숙박을 비롯해 많은 부분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해주었다. 프라이빗 파티에서 만난 스피디 오티즈 Speedy Ortiz가 우리 곡 중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고 해 깜짝 놀랐다.

한국에 돌아온 날 <Billboard> 지에서 세 번째 싱글 ‘어떤 꿈 After Falling Asleep’의 프리미어를 공개했다. <Sterogum>에서 트랙 리뷰를 싣고, <Elle> 매거진에서 4월의 곡으로 ‘Old Town’을 선정했다. 시애틀의 라디오 KEXP에서 ‘Coming to the End’ 프리미어를 공개했을 때는 정말 기분이 뿌듯했다. 발매하기도 전에 밴드캠프 예약만으로 바이닐 500장 초도가 다 나갔다. 곧바로 재판에 들어갔다. 재판의 바이닐 알판 색을 고르며 이래도 되나 싶은 기분이었다.

3개월여의 프로모션을 전개하고 4월 13일, 드디어 2집 <Where We Were Together>를 발매했다. 홍대 벨로주에서 발매 공연을 했다. 다음 날 세이수미 멤버들은 5주간의 ‘Busan Calling Tour’를 위해 영국으로 출발했다. 투어가 시작되고 <Pitchfork>, <Paste>, <Stereogum>, <Independent>, <Interview Magazine>, <Daily Bandcamp> 등에 리뷰, 인터뷰가 연달아 나왔다. 올뮤직 가이드에 바이오그래피와 리뷰가 오른 걸 보니 우리가 제법 뭔가를 하고 있구나 싶어 뿌듯했다. BBC, KEXP, WFMU, Amzing Radio 등에서도 우리 노래가 방송됐다. 4월 21일 레코드스토어데이 한정반 <It’s Just A Short Walk!>가 발매됐다. 같은 날 노팅엄 러프 트레이드에서 쇼케이스를 했다. BBC 라디오에도 출연했다. 2집 바이닐은 재판도 거의 동나서 3판을 찍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2집과 레코드스토어데이 한정반이 나란히 밴드캠프 얼터너티브 판매 차트 상위에 올랐다. 일본에서 라이선스 제안이 오고,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 호주 등에서 투어 제안이 왔다. 부킹 에이전시가 이제 가을 투어를 준비하자고 했다. 미국 에이전시를 알아보고 있으니 내년 봄엔 미국 투어가 좋겠다고 했다.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장기적인 계획을 고민하다가 해외에서는 왜 세이수미를 매력적으로 보는 걸까, 어떤 환경, 조건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걸까 생각해봤다. 겸손하게 이야기하면 운이 좋아서, 때가 맞아서다. 하지만 해외 시장을 두드리는 많은 비영미권 아티스트 중 유독 세이수미가 주목받는 것은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해외 매체들이 공통적으로 흥미로워하는 점은 자신들이 놓치고 있던 ‘인디팝’의 정수가 한국하고도 부산이란 지역에서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꼼수 없이 여러 음악적 영향을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면서 공감을 만들어내는 점도 높이 샀다. 여기에 세이수미의 백그라운드와 캐릭터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지 파트너와 함께 일을 만들어간 점도 주요했다. 그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우리끼리였으면 미처 꺼내지 못했을 세이수미의 매력이 끄집어져나왔다. 영미권 청자들을 위한 초점을 잡는 데도 수월했다. 그리고 한국 인디 신이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외 음악 시장을 두드린 경험 그리고 아시아의 역동성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시기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케이팝 덕분에 한국 음악이 알려진 것도 도움이 되었다. 해외 팬의 일부는 케이팝 팬이기도 했다.

매일 투어를 위해 이동 중인 세이수미 멤버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너무 들뜨지도 우리의 성과를 과소평가하지도 말자고 했다. 우리가 에너지를 가지고 움직이면 비즈니스의 성과는 자연히 따라올 테고, 성적표는 나중에 확인하자 싶었다. 2집 프로모션 자료를 위해 세이수미가 보내온 글 중 가슴에 새긴 부분이 있다. 우린 “우리가 함께 있던 곳”을 되뇌이며 지금 함께 있다. 글 / 김민규(레이블 일렉트릭 뮤즈 대표)

    에디터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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