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최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48]

2018.06.22GQ

<프로듀스 48>은 반일 감정과 여성 혐오를 바탕으로 ‘어그로’를 끌기 위해 만들어진 최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새로 방송을 시작한 Mnet <프로듀스 48>은 이전 시즌의 연장선에 있다. 96명 중 12명 만이 데뷔할 수 있는 시스템, 연습생들을 둘러싼 비인격적인 평가와 노골적인 성 상품화가 프로그램의 기본 뼈대다. <프로듀스 101> 시즌 1 당시 “남자들을 위한 건전한 야동을 만들고 싶었다”는 한동철 국장의 발언이 비판 받았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쇄신의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이제는 시청자들도 다 알만큼 공식으로 자리 잡은 요소들을 충실히 재현할 뿐이다. 여전히 연습생들은 교복 같은 의상을 입은 채 시청자들을 국민 프로듀서라 부르며 “잘 부탁 드립니다”라고 허리 숙여 인사한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핵심이 출연자들 간의 외모 비교와 품평임을 놓치지 않는다. 순위가 쓰인 의자에 각자 자유롭게 앉는 첫 장면에서, 누군가 등장할 때마다 연습생들은 다리 길이부터 얼굴 크기, 생김새 등을 낱낱이 평가하거나 자신과 비교하는 발언을 한다. 카메라는 그 모습과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담는다. 이 밖에 기획사나 연습생들 사이의 계급과 서열, 연습생들의 나이 강조, 눈물과 함께 사연을 들려주는 방식 등 <프로듀스 48>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돌아왔다.

어쩌면 앞 시즌들보다 훨씬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는 이번 시즌만의 특징은 방송 전부터 온갖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모닝구 무스메 이후 일본의 국민 아이돌이라 불리는 AKB48 사단이 출연한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보이콧 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는 세 번째 시즌이라는 다소 식상한 컴백을 오히려 화제로 만들어냈다.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라는 유구한 경쟁 구도, 케이팝이 한국의 가장 유명한 수출품이 된 현재 상황은 사람들을 끓어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연에서 AKB48이 전범기가 그려진 의상을 입었으므로 우익이다, 우수한 케이팝 아이돌의 수준이 제이팝 아이돌만큼 끌어내려 질 것이다, 제이팝이 케이팝을 먹으려고 한다, 선정적이고 유아적인 일본 아이돌의 특징이 한국에도 침투할 것이다 등등. 애초에 <프로듀스> 시리즈가 국민 투표를 통해 센터를 정하는 AKB48 시스템과 상당 부분 유사하며, 한국과 일본이 걸 그룹, 또는 여성에 대한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는 듯 보였다.

이런 반응들을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이라고 웃어넘길 수 없는 건, 실제로 프로그램이 이러한 반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스 48> 첫 회에서 가장 강조된 부분은 한국 연습생들과 일본 멤버들 간의 퍼포먼스 실력 차이였다. 한국 연습생들이 흔들리지 않는 음정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칼군무’를 맞추고 완벽한 표정으로 무대를 꾸미는 장면 사이사이로 “망했다”, “일본으로 돌아가자”, “실력이 달라”라는 일본 멤버들의 멘트가 삽입됐다. 일본 멤버들이 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는 멘토들의 표정이나, “일본에서는 칼군무 이런 건 중요하지 않은가요?”라는 안무가 배윤정의 질문 또한 실력 있는 한국 연습생 대 형편 없는 일본 멤버들이라는 구도를 강화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 프로그램은 ‘걸 그룹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일본 멤버들의 입을 빌려 들려주기도 한다. “우리는 춤이나 노래를 보여준다기보다 ‘즐겁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일이잖아.” “맞아. 우리는 그런 엔터테이너로서 모습이 중요하니까 춤이나 노래를 못해도 인기 있는 사람은 있고 문화가 다른 거야.” 뒤이어 야마다 노에처럼 에너지 넘치고 잘 웃고 귀여운 이미지의 멤버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런 연출은 교묘하게 몇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본에서는 애교 있게 구는 것이 아이돌의 최고 덕목이며, 이는 한국 아이돌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애교 따위가 아니라 실력을 중시하는 케이팝이 훨씬 더 우월하다. 하지만 역시 걸 그룹이라면 춤과 노래는 좀 부족해도 귀여운 외모와 웃는 표정과 넘치는 끼로 보는 이들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프로듀스 48>은 한국 대 일본의 경쟁 구도로 방송을 끌어가되 어느 한쪽의 방식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걸 그룹이라면 실력과 외모와 사랑스러운 태도를 모두 겸비해야 사람들에게 선택 받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라고 선언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 그룹이 트와이스며, <프로듀스 48>과 묶여 가장 자주 언급되는 아이돌 역시 트와이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단지 일본 멤버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노래 가사,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로 묘사되는 ‘예쁜’ 걸 그룹이라는 정체성, 애교에 가까운 안무, 그렇지만 부족하지 않은 춤과 노래 실력 등은 사람들이 지금 걸 그룹에게 원하는 모습이자 <프로듀스 48>이 제시하는 걸 그룹의 이상향이다. 이는 곧, 걸 그룹에게 가해지는 평가와 압박이 매우 혹독하며 촘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듀스 48>이 방영된 이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스포츠 혹은 오락이 유행하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는 한국 멤버와 일본 멤버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출연자들을 넘어 아예 일본 여성과 한국 여성의 얼굴, 몸매 차이를 언급하는 글들도 적지 않다. 방송 관련 기사 아래에는 여전히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본 멤버들에게 심한 욕설을 하거나 제이팝이 케이팝을 망친다고 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반일 감정과 여성 혐오. <프로듀스 48>은 그동안 한국에서 공공연하게 그리고 폭넓게 이어져 왔던 이 두 가지 스포츠를 대놓고 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판을 깔았다. 일부에서 우려했듯 일본 아이돌의 단점이 일방적으로 한국 아이돌 시스템에 스며드는 게 아니라 양국 아이돌 산업, 그리고 각 사회가 원래 품고 있던 나쁜 지점들이 만나 부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케이팝과 제이팝, Mnet은 물론 관련된 기획사들까지 그 어느 쪽도 손해 보는 시합이 아니다. 오로지 출연자들에게만 사상 최악의 가혹할 게임이 시작됐다.

 

    에디터
    글 / 황효진(칼럼니스트)
    사진
    Mnet <프로듀스 48>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