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맥캘란의 증류소는 놀이공원이다?

2018.07.07GQ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언덕에 생전 처음 보는 위스키 증류소가 거대한 문을 열어젖혔다.

맥캘란의 상징인 작은 크기의 증류기. 새 증류소에서는 세 종류의 증류기가 원을 이루고 있다.

맥캘란은 세계 최고의 싱글 몰트위스키인가? 맥캘란은 가장 많이 팔리는 싱글 몰트위스키인가? 가위로 자르듯 선명하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지만 다음 명제엔 주저할 것 없다. ‘맥캘란은 가장 근사하고 스펙터클한 증류소를 보유한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다.’ 지난 5월 22일 처음 공개된 맥캘란의 새로운 영지 Estate는 놀이공원이다. 위스키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이 구불구불한 건축물 앞에서 디즈니랜드의 성을 본 듯 설렐 것이다. 맥캘란은 새 건물을 세우는 데 약 2천억원을, 말그대로 쏟아 부었다. 6년 전 원액 생산량을 늘릴 필요성을 느꼈고, 새로운 증류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착공은 4년 전. 연간 생산량이 3배로 는다는 효용가치는 표면적이다. 증류소에 들어서면 숫자보다 압도적인 게 쏟아진다.

총 8백40개가 넘는 맥캘란 병으로 장식한 한쪽 벽면은 맥캘란의 아카이브 공간이다. 올드 보틀부터 시작해 3백 개가 넘는 서로 다른 진짜 맥캘란으로 제대로 구색을 갖췄다. 미술관처럼 근사한 굿즈 코너를 지나면 그 위쪽에는 시음 공간인 바가 새 둥지처럼 숨어 있다. 6백 종류의 맥캘란을 시음할 수 있는 거대한 바 앞에서 맥캘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켄 그리어가 말한다. “면세점 시음 테이블이나 그저 그런 라운지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 썼어요. 지하엔 VIP들이 주문 생산한 위스키 오크통이 그림처럼 걸린 프라이빗 다이닝 룸도 있습니다.” 이곳에 부엌도 있다는 건가? “1층엔 캐주얼한 레스토랑이 들어설 예정이에요. 엘 세예 데칸 로카의 로카 형제가 도와주기로 했죠. 제 오랜 친구들이에요. 맥캘란의 핵심인 스페인 셰리 오크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산세바스티안에 있는 엘 세예 데칸 로카는 수년간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 1위를 지켜온 어마어마한 레스토랑이다. 떨어진 턱을 받치며 올려다본 천장은 목재 합판을 이어 붙인 복잡한 형태임에도 고래 뱃속처럼 살아 있는 기운을 풍겼다. 이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들의 공모를 통해 완성했다. 건축가 그레이엄 스터크는 ‘증류소’라는 생소한 환경 때문에 온갖 고민을 숙성시켜야 했다.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다루는 공간이라 방재 관련 제약도 아주 많고, 쉴 새 없이 증류소를 드나드는 몰트 트럭 및 운송 트럭을 어떻게 이 건축물 안에 흐르게 할지 가장 고민했어요. 그 답은 반지하에 만든 200미터짜리 입출고장이에요.”

 

새 증류소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압도적인 아카이브.

프라이빗 다이닝 룸. 오크통에 VIP가 따로 주문한 위스키가 실제로 숙성될 예정이다.

레이엄 스터크가 디자인한 새 증류소의 외관. 유리 밖을 쳐다보면 이스터 엘키스 하우스가 정면으로 보인다.

입출고장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방문객을 휘어잡는 메인 어트렉션이 더 비현실적으로 빛난다. 증류기가 있는 공간은 실제로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곳이자, 윈도 디스플레이 역할도 하는 중심부다. ‘희한하리만치 작은 증류기’가 모토인 맥캘란답게 용도에 따라 목 길이가 다른 작은 증류기들이 동그랗게 원으로 무리지어 있다. 그런 무리가 총 3개다. 한복판에 서면 관현악단을 이끄는 지휘자가 된 듯하다. 실제로 증류소 곳곳에서 방문객을 이끄는 안내 직원의 일도 지휘에 가깝다. 작은 버튼을 누르면, 손잡이를 돌리면, 리모컨을 작동시키면, 이스터 엘키스 하우스가 솟아오르고 증류기가 반으로 갈라지고 오크통에 쓰는 나무 판자가 춤을 추고 빨간불 파란불이 건물 전체에 들어오고 위스키 한 방울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지을 때부터 투어 손님을 위한 어트렉션을 이곳저곳에 심었다. 방문객이 놀랐으면 하는 마음에, 기자들을 향해 “너무 자세히 촬영하진 말아주세요”라는 농담을 던진다. 맥캘란은 단단히 각오하고 이곳을 만들었다.

새 증류소는 정면에서 바라보면 북유럽 어디쯤 있는 박물관 같기도 하고 스페인의 와이너리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의외로 뒤통수를 바라보는 일이 좀 재미있다. 괴기할 정도로 울룩불룩해서 수십 년 전 참전했던 군인이 벗어둔 철모에 삐죽하게 풀이 난 형태 같기도 하고…. 새 증류소의 뒤통수와 맥캘란의 아이콘인 이스터 엘키스 하우스를 한눈에 두고 서면, 증류소 맞은편, 굴곡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딱딱한 형체로 버티고 선 새 숙성고도 함께 보인다. 온도차가 큰 건물 세 채가 기묘한 대비를 이룬다. “숙성고를 먼저 지어서 그런 것도 있을 거예요. 근데 혹시 증류소와 숙성고 사이에 있는 묘목들 봤어요? 이 나무가 다 자라면 숙성고를 가리는 역할을 할 거예요.” 켄 그리어가 집어내기 전에 촘촘히 심어둔 묘목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맥캘란은 20~30년 뒤를 바라보고 일찌감치 전력으로 달리는 중이다. 이미 앞서 있는데, 체력도 두둑하다. ‘맥캘란은 가장 근사하고 스펙터클한 증류소를 보유한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라는 명제는 이처럼 선연하다.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맥캘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켄 그리어와의 인터뷰.

다른 위스키 증류소 관계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차차 방문할 것 같은데, 아직 반응은 듣지 못했다. 맥캘란은 럭셔리 브랜드가 갖춰야 하는 전통적인 측면과 혁신의 측면을 모두 최고치로 보여주고자 하는 야심이 있다. 이 산업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모델이고자 한다. 다른 증류소가 우리와 함께 근사한 증류소를 만들어 위스키 산업의 관광을 끌어 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해보면 우린 늘 앞서 있었다. 포토그래피 시리즈부터 파인앤레어까지, 앞서가는 브랜드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따라 하긴 쉽지 않겠다. 엄청난 돈을 투자한 걸로 알고 있다. 향후 12년간, 약 7천억원을 더 투자할 생각이다. 새 증류소뿐만 아니라 병입 설비, 캐스크 등에도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좋은 전통, 탁월한 재료, 남다른 장인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한 투자다.

맥캘란은 얼마나 멀리 보고 달리나? 원액 측면에서 보면 30년 앞을 보고 준비 중이고, 증류소 부지 측면에서 보자면 50년 앞을 보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이건 완전히 장기 전략 비즈니스다. 새 증류소는 지을 때부터 똑같은 규모의 또 다른 증류소를 지어서 이어 붙일 수 있게 설계했다. 30년쯤 뒤엔 더 확장될 거다.

맥캘란은 그동안 브랜드를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를 정하고 이를 ‘6필러’라고 불러왔다. 이제 ‘7필러’라고 불러도 될까? 하하. 빌딩 자체가 7필러가 되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새 증류소의 2시간짜리 투어를 마치면 그동안 말로만 전하던 ‘6필러’에 생명을 부여했다고 느낄 것이다. 와 보면 안다. 무슨 말인지.

    에디터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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