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소녀는 자란다

2018.07.13GQ

수지, 아이유, 설현, 아이린, 모든 여성 아이돌에겐 자신의 목소리가 있다. 이제 그들이 입을 열고 있다.

얼마 전, 수지와 아이유를 두고 말이 많았다. 거대 엔터테인먼트의 장에서 사건과 사고는 언제나 끊이지 않지만, 이들을 둘러싼 최근의 설왕설래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차마 고백하지 못한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그리고 막무가내로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던 소녀들. 그런 이들이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은연중에 혹은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주체가 됐다. 그리고 새로운 행보를 내디딜 때마다 격렬한 찬반이 오가는 것이다.

수지는 한 피팅 모델에게 누드를 강요했다는 비공개 촬영회와 관련해 청와대 온라인 국민청원에 참여하며 지지의사를 밝혔고, 이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언급된 스튜디오는 자신들은 그때의 불법 촬영과 상관없다며 소송을 예고했다. 반면 아이유는 어린 여성을 무려 스무 살 차이 나는 남성과 특별한 관계로 그리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로 논란에 휩싸였다. 방영 중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랑보다는 사람이 느껴지는 드라마라고 판단했다”고 직접 의견을 피력했지만, 중년 남성과 어린 여성을 짝으로 내세우는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제작되는 와중 그 말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당장 거의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여성이 대부분인 ‘여초’에서는 수지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한편 아이유에게는 비판을 쏟아냈다. 극명한 엇갈림은 미성년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던 한 두 해 전 상황과 비교된다. 화보집 <SUZY? SUZY>에서 수지는 하필 이발소에서 동화책을 읽었고, 아이유는 자작곡 <스물셋> 뮤직비디오에서 마침 젖병을 빨다가 가슴에 우유를 쏟았다. 이것이 불법 성매매 업장과 유사 성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였다.

논의를 진전시키기에 앞서, 우선 당대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유력한 형식인 걸그룹 혹은 소녀 아이돌 자체에 이미 이런 모순이 내장되어 있음을 말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설명해보면, 소녀는 성인이 되기 전인 청소년, 그중 여자아이만을 지칭하는 찰나의 존재 형식이다. 나이와 성차가 동시에 작동하는 흔치 않은 명칭이면서, 소년과 달리 소녀는 성애적으로 주목받는다. 성년이 되기 직전의 문턱에 있는 소녀의 섹슈얼리티는 강력히 금지되고, 때론 그렇기에 더욱 위반하고픈 어떤 것이 된다. 그래서 아무런 성적 표지를 드러내지 않아도, 여성을 성적 존재로만 바라보는 남성중심 체제에서 소녀는 성애의 대상이 된다. 걸그룹에게 짧은 교복치마를, 체육복을, 심지어 턱받이까지 받치게 하는 걸그룹 전성시대는 소녀를 성애적으로 소비하는 공고한 구조 위에 자리한다.

이런 모순이 내장된 구조 속에서, 국민첫사랑 내지는 국민 여동생으로 호명되며 등장한 수지와 아이유가 이제 벌써 20대 초중반이다. 그들은 10여 년 동안 가수이자 배우로, 그리고 아티스트로 활동해왔지만 아직 ‘국민 여동생’ 신드롬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고, 소녀의 한계 속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오며 또래 중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성인 여성의 이미지로 전환할 때 어떤 전략을 취하느냐다. 여기에서 둘의 행보는 갈린다. 먼저 수지는 자신에게 부여된 소녀 이미지를 껴안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하는 듯하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그리고 여성 직업인으로, 최근 그가 맡는 배역들은 비교적 무리 없이 또래 여성들의 생애를 따라가고 있다. 그는 항상 고난 속에서도 사랑을 쟁취해내는 캔디형 인물로 분한다. 이때 전술한 화보집 사건은 그저 한때의 실수, 잘못된 선택으로 여겨진다.

반면 아이유는 보다 복잡하다. 그는 소녀라는 이미지의 안쪽에 도사린 성적인 함의를 태연히 들이밀면서 아이돌로서의 한계를 돌파해내고자 했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 욕망하게 하는 소녀의 섹슈얼리티를, 아이유는 승인하는 동시에 배반한다. <스물셋>에서 “영원한 아이로 남고 싶어요”라고 하다가 바로 “아니, 아니 물기 있는 여자가 될래요”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더욱 지탄의 대상이 됐던 노래 ‘Zeze’의 경우는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주인공의 이름을 차용했다. 이 멜로디 속 여성은 소년이라고 짐작되는 아이에게 뻔히 “나쁜 상상이 사랑스럽다”고 하면서 “하나뿐인 꽃을 꺾어라”고 도발한다. 아이유는 욕망의 대상이 되는 소녀를 기꺼이 연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 그를 뒤집어 소년을 욕망하는 여성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두 이성 간의 ‘소중한 관계’를 그렸을 뿐이라는 <나의 아저씨>를 둘러싼 입장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해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다른 전략을 취하는 수지와 아이유 모두 피해갈 수 없었던 ‘롤리타 콤플렉스’ 논란은 그들 개인의 선택보다도, 근본적으로 케이팝 산업에서 소녀라는 명명 자체에 내장된 아이러니 때문이다. 걸그룹 혹은 소녀 아이돌이 탈성애적이되 성애적이어야 한다는 이중의 메시지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밝고 건강한, 때로는 엉뚱한 소녀를 연기하며 성적인 메시지를 거의 은폐하는 수지의 전략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한편으론 주체적 욕망을 숨기는 ‘코르셋’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성적 주체화라는 측면에서 안전하지만, 기존 가부장적 남성주의를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 한편 독특하고 알 수 없는 소녀를 때때로 섹슈얼하게 연출하는 아이유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펼치며 어쩌면 ‘탈코르셋’하는 순간을 드러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한데,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측면에서는 수지의 민낯이나 털털한 모습이 ‘탈코르셋’의 사례로 판단될 수 있다. 반면 아이유는 성애화된 소녀 이미지를 당돌하게 되돌려주기도 하지만, 결국 남성중심 사회를 위무하는 ‘코르셋’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볼 것은, 여성 혐오가 단지 멸시뿐 아니라 숭배와 찬양까지를 포함하는 타자화의 전략임을 고려한다면, 남성중심 사회에서의 여성 주체화라는 것 자체가 언제나 논란과 경합의 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긴장을 견디기보다 배제를 신속하게 결정하고, 맥락을 읽기보다 기준을 세우는 데 급급하면, 새로운 해석의 지평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청순과 섹시의 전략을 취하는 여성 아이돌 중 어느 쪽이 성적 대상화의 대상 혹은 성적 주체화의 주체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이제 그들은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늘 화사하게 웃던 수지는 어느새 단호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분들의 마음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반대로 섹슈얼리티를 실험하는 방식으로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의 갱신을 도모했던 아이유도 때로는 물러서서 “포켓몬도 아니고 매년 진화하는 것은 무리예요”라고 깔깔 웃었다. 수지와 아이유뿐만이 아니다. 개인 SNS에서 몇몇 안티페미니스트로 보이는 인물들을 언팔로우하고 “평소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고 여러 의견을 들으려 한다”고 밝힌 설현, “소녀는 뭐든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는 휴대전화 케이스를 보여준 손나은, 대통령도 읽었다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아이린은 혹독한 비난에 처하지만, 여전히 변화하는 이 시대를 아랑곳 않고 걸어가고 있다.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설치고 떠들고 말하는 여성들이 대대적으로 등장했다. 이들 역시 수지와 아이유가 데뷔했을 그 즈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 탈정치 시대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주목받던 ‘촛불 소녀’의 후신이었다.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서 동세대의 여성들은 여성 아이돌들에게 억압에 연루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똑같은 속도와 모습은 아닐지라도, 이 메시지들은 분명히 수신되고 있다. 여성 아이돌의 자기 인식과 행보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그들은 각자 다를지라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순간적인 찬양과 비난보다도 긴 안목으로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본래 소녀는 아버지의 세계로 진입하지 않는 전복적 에너지로 가득한 존재다. 소녀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고, 더 강력한 여성으로 성장한다. 수많은 논란 속에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더라도 이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다시 만난 세계’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류진희 (<소녀들>, <양성평등에 반대하다> 공동 저자)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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