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 5

이 글을 읽을 때 함께하면 좋을 것.

Double Espresso Chiaro – Nespresso
Al Hambra Espresso Cup & Sauer – Konitz

어딜 좀 가려고 짐을 챙겼는데 크지도 않은 더플백이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두꺼운 단편집 세 권과 여러 병의 향수, 홀에 모래가 잔뜩 낀 스피커와 첫날 저녁을 위한 뚱뚱한 샴페인이 있어 그나마 여행자의 며칠치 가방 꼴로는 겨우 만들었다. 뭐가 이렇게 없나 살펴보니 옷이 없었다. 신발도 변변치 않고 액세서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가방이 하도 텅 비어서 머리를 넣고 뭔가 말하면 메아리가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럼 도대체 뭘 넣었지? 면 티셔츠 몇 벌, 비슷한 색깔의 진 두어 개, 끝단을 싹둑 자른 반바지, 추운 밤을 대비한 크루넥 니트, 점잖은 식당에 갈 때 입을 (구겨져도 괜찮은) 재킷 한 벌. 신발은 곰팡이 색 첼시 부츠와 솔리드 에스파드류. 그리고 검은색 사각 선글라스 하나. 이것도 없으면 거지 꼴을 면하지 못할 정도의 단출한 옷을 보니, 여행 일정에 맞춰 요일별로 착장을 맞추고 어울리는 액세서리까지 정교한 ‘페어링’을 하던, 마침내 필연적인 별명 ‘오버차지’로 불리던 날들이 새삼 멀다. 어느 날, 매끈하고 말쑥하게 입는 게 싫어졌다. 서서히 조금씩이 아니고 갑자기 확. 어떤 번개나 돌풍, 따귀도 그처럼 갑작스러울 수는 없다. 그러니 싫증이라기보다는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결심을 한 후, 폴 뉴먼처럼 턱시도에 불을 지르는 대신 좀 더 사회적인 방법으로 옷을 처분했다. 사이즈가 맞는 친구에게 기꺼이(는 아니고 보답으로 뭐라도 주길 바라면서)주거나 헐값에 팔거나, 더러는 버렸다. 옷장에는 고민 없이 자주 꺼내 입는 옷, 굉장히 비싼 옷, 사연이 있는 옷, 그래서 차마 남에게 주거나 버릴 수 없는 옷만 남았다. 옷을 줄이니 사는 게 간편해지고 전보다 한결 행복해졌다고 초연한 척 말하려는 건 아니다. 또한, 지구인으로 40년 넘게 살았고 그중 하이 패션의 한복판에서 22년을 보냈지만 패션이 싫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최신 유행쯤은 가뿐한 패션 종사자보다는 해변에서 만난 방랑자처럼 입고 싶을 뿐. 일부러 찢거나 구겨서 낡아 보이게 하는 건 유치하고, 남이 입던 빈티지는 의심이 많아 싫고, 그러다 보니 입는 옷만 계절도 별 상관없이 줄곧 입게 됐다. 다행히 한창 옷을 사들일 때 비싼 값을 치르고 산 좋은 것들이라 모진 세탁에도 형태가 무너지거나 맥없이 망가지지 않았다. 그제와 어제가 비슷하고 오늘과 내일도 크게 다를 리 없으니 우디 앨런이 울고 갈 일률적 스타일링의 대가가 되려나 싶지만, 그런 의도나 계산은 없다. 짝을 맞추느라 허비하는 무수한 시간을 반성하라며 짝짝이 양말을 과시하던 호크니 같은 새침함도 아니다. 잘 차려입는 것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게 좋아졌고, 스타일을 만드는 여러 요소 중에서 옷의 기여도가 가장 떨어지길 바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이 생겼다. 옷은 낡은 걸로 대충 입었는데 무척 좋은 향기가 나거나 걸음걸이가 아주 예쁘거나, 싸고 맛있는 와인 리스트를 많이 알고 여러 도시의 아름다운 호텔을 계절마다 가본 사람. 아무 거나 주워 입어도 운명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사람. 가끔 친구들이 매번 비슷한 옷을 입고 낡은 것만 고집하는 룩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묻는다. 그럴 땐 ‘프랑스 뉴웨이브와 런던 스윙을 섞은 스타일’을 실험 중이라거나 ‘만성적 모순에 시달리는 피로한 편집장 룩’이라고 농담을 한다. 제대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거칠지만 고상하고, 매혹적으로 지저분하고, 수수하지만 기품 있으며, 우아하게 남루한 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