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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이 [비밀의 숲] [라이프]에서 이룬 성과

2018.09.07GQ

이수연이 고작 두 편의 드라마 <비밀의 숲>, <라이프>에서 이뤄낸 성취는 놀랍다.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의 시작이다.

시체가 던져진다. 고위직 중년 남성의 갑작스러운 죽음. 한국의 고위직 중년 남성이란, 돈과 권력의 힘을 잘 알고 있고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간직한 존재다. 다시 말해 온갖 추문과 비행과 비리를 내·외부로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었을 존재. 그의 죽음 자체가 이후의 연쇄적인 폭로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이수연의 드라마 <비밀의 숲>과 <라이프> 둘 다 1회부터 시한폭탄 같은 중년 남성의 시체를 던지며 시작한다.

이수연 작가는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구조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미스터리의 독자, 관객, 시청자는 초반부터 참을성 없이 범죄가 터지기를 기다린다. 펑! 누군가가 죽고, 그를 죽이고 싶어 했을 만한 수많은 용의자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탐정은 독자,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 대단원의 무대를 준비하며 끈기 있는 탐문을 계속한다. 그 과정에서 긴장이 한순간이라도 풀어지면 안 되기에 수수께끼는 감질나게 하나씩 나오고, 죽은 이와 그를 둘러싼 이들 사이의 얼키고설킨 관계가 슬그머니 풀려나오는 과정에서 단 하나의 진실이 떠오른다. 즉, 사람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이를테면 <비밀의 숲>의 3회 엔딩 신이 안겨준 충격. 살해당한 박무성(엄효섭)이 죽기 전날 밤 심하게 다투었다는 ‘누군가’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의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전까지 아예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타입의 인물, 즉 젊고 여리게만 보이던 여성이 등장하던 순간의 충격은 거의 쾌감에 가까웠다. 심지어 ‘탐정’ 역할을 하던 주인공 검사 황시목의 경우에도, 드라마 중반까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도, 분명 박무성 살인 사건의 용의자였다.

<비밀의 숲> 1회부터 터뜨린 질문 ‘누가 박무성을 죽였는가?’는 16부작 전체를 관통하면서, 박무성의 죽음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이것을 생전의 그와 상부상조하던 검찰의 온갖 비리를 날려버릴 기회로 삼은 치밀한 ‘기획자’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미스터리 구조는 <라이프>에서 그대로 되풀이되는 듯하다가 영리하게 변형된다. 또다시 중년 남자가 죽었다. 상국대학병원 원장 이보훈(천호진)이다. 인망이 높고 의사로서의 능력도 두루 인정받은 이였지만, 이보훈의 수상쩍은 죽음 전후로 그가 어쩌면 ‘내가 알던 그런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그의 예전 행적에 얽힌 병원의 비밀들이 하나씩 터져나온다. 다만 2회 이후로는 ‘이보훈은 자살했나 아니면 살해되었나?’라는 질문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아마도 드라마 후반부에 다시 한 번 부각될 것 같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막으려 했던 병원 영리화 작업이 숨가쁘게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의료계라는 폐쇄적인 전문가 세계로 뛰어든 외부 인물 구승효(조승우)가 불러온 충격파는 여러 의사로 하여금 각자의 비밀을 서둘러 은폐하게 만들었다. <비밀의 숲>이 박무성의 시체가 던진 질문, ‘누가 박무성을 죽였는가’가 ‘왜 박무성을 죽였는가’로 연결되며 정통적인 미스터리 수수께끼 풀이 방식을 따랐다면, <라이프>는 이보훈의 시체를 통해 ‘그는 왜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탐정은 시체와 그를 둘러싼 이들의 과거 행적을 쫓는 게 아니라, 그 시체가 속했던 세계의 변화를 뒤쫓아야 한다. ‘왜’라는 질문의 답이 좀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꼭 사람을 죽여야만 범죄는 아니다. 이수연의 드라마는 그렇게 시체와 함께 시작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끔찍한 (살인이 아닌) 범죄들을 연달아 터뜨리며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또한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 각각의 동기와 꿍꿍이가 그냥 스쳐 가는 것이 아니라 다 이유와 맥락을 가진다.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봐야 한다.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과 한여진(배두나)처럼, <라이프>의 예진우(이동욱)와 구승효처럼.

이수연 드라마의 또 다른 핵심이라면 ‘일하는 사람’의 세부다. 그동안 무수한 한국 드라마/ 영화에 검사, 경찰, 의사, 간호사, 기업가가 등장했지만, 언제나 그들의 권력 혹은 그 직업군이 다루는 사건이 중심이었다. 대부분 그 직업군이 사건의 배경이자 도구였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하지만 이수연 드라마에서는 그들의 일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비밀의 숲>에서 검사가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수많은 종이를 넘기는 장면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사람들은 그 골무를 통해 종이에 손을 베었을 때의 그 화끈거리는 순간을, 수많은 문서를 다루는 직종에 근무하다 보면 늘 반창고를 상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문서 사이에서 누락된 단서를 찾아내고 그 안의 논리적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사실상 그것이 검사라는 직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상기한다. 혹은 <라이프>에서 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예진우나 흉부외과 센터장 주경문(유재명)이 환자의 몸에서 분출된 핏덩어리를 뒤집어쓴 채 피로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한 컷을 통해, 의사는 피투성이가 익숙한 직업이라는 걸 새삼 의식한다. 피투성이 의사. 살인범이 될 수도, 탐정이 될 수도 있는 의사. 사람을 죽이고 또 사람을 살리는 의사.

그리고 그 모든 세부가 시청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등장인물 모두, 간편하게 ‘감정이입’하기 힘든 대상들이며 선악으로 명쾌하게 갈릴 수 없다. <비밀의 숲>보다 <라이프>에서 그 점은 한층 두드러지는데, 여기에는 현재 한국 의료계의 쟁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지방 의료 시스템의 붕괴, 국립 의료원의 해체, 병원 영리화의 추구, 고된 만큼의 보상이 존재하지 않고 ‘사명감’만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현실,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의료 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병원 간의 날선 대립, 의료보험 제도의 맹점이 줄줄이 등장한다. 여기서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시청자의 암묵적인 당위는 맥없이 스러진다. 마흔도 안 된 나이에 물류회사의 강성 노조를 파괴한 기업인 구승효가 새롭게 병원의 사장으로 취임한 뒤 도덕적 당위성(의사들이 서울에만 있으려고 한다, 지방 의료가 무너지고 있는데 그곳에도 도움을 줘야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병원의 몇 개 국을 분리하겠다)을 내세우며 병원 영리화에 가속을 내자 의료진이 그에 반발해 파업을 결의할 때, 의사들의 격렬한 분노에 동의하다가도 “저 같은 놈이 우리 얘기를 이해나 할 수 있겠어?”라고 비웃는 다음 장면에서 다시 마음이 서늘해진다.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에서의 윤리 의식이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돼야 하는가. 전문가 지식의 경계선은 더 공고해져야 하는가.(분명, ‘공유’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나.) 사명감과 우월감 사이의 경계는 그렇게까지 뚜렷할까, 혹은 효율성과 사명감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일까. 구승효와 예진우가 각자의 방식으로 병원의 개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 처음에는 완전히 대립되는 듯 보이던 두 사람이 어떻게 합치점을 찾아갈지, 혹은 합치점을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 대립 지대에서 희미한 공통점을 찾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6회까지 방영된 시점에서 글을 쓴다.)

그래서 시청자는 지속적으로, 예진우와 구승효 어느 한쪽에 쉽게 이입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병원의 분열과 위기(혹은 종국에는 ‘이보훈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를 관찰할 것이다. 감정을 이입한다기보다 이성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상황. 이수연의 드라마를 보는 경험은 관찰과 고민의 연속이다. 다시 말해 그의 드라마는, 영상의 한 컷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들어갈 수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예를 들어 <라이프>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의 책상 위에 포착된 성폭력 방지와 노조 홍보에 관한 유인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일하는 후천적 장애인 예선우(이규형)를 노골적으로 훑어보며 조용한 폭력을 가하는 타인의 시선은 지금껏 다른 드라마에서 아예 배제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세부는 현실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픽션의 세계가 시침 뚝 떼고 진공 포장의 상태를 가장해왔던 것뿐이다. 수많은 TV 프로그램이 게으르게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한국에서, 이수연의 드라마는 한국 사람들이 잠깐 분개하고 쉽게 잊었던 수많은 뉴스를 상기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사회파 미스터리’로 불리는 장르가 성취한 지점에, 이수연은 단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가뿐하게 도달했다. 글 /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에디터
    정우영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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