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식

뉴욕의 한식

2018-09-06T14:12:49+00:00 |food|

‘한식세계화’라는 엄한 돈 잔치가 멈춘 지 5년째인 뉴욕. 이제야 한식이 활개를 폈다.

“야채하고 고기하고 8대 2 비율로. 우리가 말하는 황금비율이요. 맛도 맛이지만 건강에 좋다는 것을 자꾸 이렇게 얘기하면 좋지 않을까….” 2011년 9월,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는 뉴욕에서 한식 레스토랑 비즈니스 관련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한식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 내려온 한식세계화 사업에 대해 총평을 하자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다. 이명박 정부 때는 뉴욕에서 한식세계화 사업이 “잊을 만하면 들쑤시고 지나갔다”고 설명해도 될 수준으로 요란했다. 전 세계 미식 트렌드의 발상지인 뉴욕에서 한식 붐이 일기 시작하면 전 세계를 거저 얻는 셈이라는 판단이었을 테다.

요즘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조차 취재하지 않는 해묵은 ‘한식세계화’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2018년, 지금 뉴욕에 ‘한식세계화’가 그야말로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당시 뉴욕을 비롯한 해외 곳곳에서 집행한 한식 광고나, 맨해튼 ‘플래그십 한식당’ 프로젝트가 기여한 바는 물론 1퍼센트도 없다. 되레 방해가 됐다고 한 익명의 레스토랑 관계자는 “관제행사는 이제 믿고 거른다”고 할 정도다. 정부가 맨해튼에 플래그십 한식당을 연다는 것은 언뜻 좋은 계획인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후일담을 듣고 보면 안타깝다. 이 프로젝트 팀이 ‘도움’을 요청했던 맨해튼 한식당 업주들이 이 프로젝트를 ‘돈 많은 신생 경쟁 식당’으로 인식해 협업을 거절했거나, 이역만리에서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파이낸싱을 갓 마친 한식 레스토랑을 오픈 직전에 접촉해 ‘뒷북’을 제대로 쳤다는 등 부정적인 평판의 ‘카더라’들이 수집된다. 아무튼 예산으로 잡혀 있던 50억원은 아무도 받지 못했고,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 묻혀버렸다.

더 이상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의 망령이 떠돌지 않는 뉴욕은 요즘 3세대까지 진화하며 한식을 ‘세계화’하는 중이다. 뉴욕 한식의 1세대는 이민자들이 형성한 맨해튼 32번가의 케이타운에 있다. 90년대 한국 서울의 레플리카 같은 풍경에, 음식이 펼쳐진다. 2세대는 과도기다. 2011년 10월 뉴욕 한식당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 스타 레스토랑이 된 ‘단지 Danji’와 ‘한잔 hanjan’의 김훈이 셰프와 세계적인 스타 셰프 데이비드 챙이 쌍두마차가 되어 질주한 세대다. 김훈이 셰프는 서울의 동시대 한식을 뉴욕식으로 변형했고, 데이비드 챙 셰프는 한식 역시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음식 문화권의 한 분파로서 뉴욕 식문화에서 유용하고 ‘힙하게’ 쓰일 수 있음을 제시했다.

3세대의 스타트라인에는 2015년 로어이스트사이드에 문을 연 ‘오이지 Oiji’가 섰다. 2011년 문을 연 임정식 셰프의 ‘정식 JUNGSIK’은 유아독존으로 맨해튼에 나타나 훌쩍 앞서 3세대 뉴욕 한식 트랙을 달리고 있었던 개척자다. 정식 덕분에 오이지가 어렵지 않게 뉴욕에서 이해될 수 있었고, 잇따라 2016년 박정현 셰프의 ‘아토보이 Atoboy’, 2017년 ‘꽃 코리안 스테이크하우스 COTE Korean Steakhouse’가 3세대 뉴욕 한식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었다. 2018년엔 박정현 셰프가 더욱 업스케일된 레스토랑 ‘아토믹스 Atomix’까지 냈다.

물론 파인 다이닝 시장의 이들 외에도 한식은 고루 침투돼 있다. 첼시마켓의 푸드홀에 있는 ‘먹바 Mokba’는 일본 라멘과 한국 라면의 중간쯤 되는 맛을 구현하며 10달러 초반 가격대의 빠른 식사를 제공하고 있고, 최근 문을 연 ‘제주 누들 바 jeju noodle bar’에선 제주 고기국수보다는 일본 라멘에 가까운 한국식 트위스트의 복잡무쌍한 한식 국수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꼭 한식 분야에서만 한국인이 일하는 것도 아니다. 댄 바버 셰프의 출발점인 워싱턴 스퀘어 파크 ‘블루힐 Blue Hill’ 레스토랑의 와인 디렉터는 한인 이민 1.5세대다. ‘일레븐 매디슨 파크 Eleven Madison Park’를 방문하면 종종 “훈을 알아?”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데, 이 레스토랑 주방에서 경력을 쌓고 지금은 서울에서 활약 중인 송훈 셰프의 안부를 묻는 말이다. 지금 뉴욕에선 이름난 레스토랑 주방마다 매우 높은 확률로 한국인 요리사가 일하고 있고, 뉴욕 근처의 CIA 요리학교 유학파들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한식의 유전자를 내재한 채 최전선의 미식 레스토랑에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이를테면 ‘퍼세 Per se’에서 일하던 한국인 패스트리 셰프는 ‘스틱 위드 미 Stick With Me’라는 초콜릿 전문점을 내기도 했다.

버블 시대의 일본은 일식세계화를 성공시켰는데, 지금 뉴욕에 펼쳐진 한식의 풍경은 일식세계화의 과정을 꼭 빼닮았다. 긴자의 호화스러운 레스토랑이 버블의 한 상징이 되자 일본인들은 프랑스로 요리를 배우러 갔다. 그 일본인들이 요리 수업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가 재퍼니즈 프렌치라는 장르를 만들어냈고, 일부는 그곳에 남아 일식의 유전자를 교배시키거나 일식당을 열기도 했다. 음식 문화 사이에 물리적인 작용, 반작용과 화학적인 가역반응이 동시에 일어나 일식세계화가 성립된 것이다. 비단 일식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모든 음식 문화는 식재료와 조리법, 그리고 사람이 교류하며 섞이고 변화하고 발전해 나간다. 한식이 지금 뉴욕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같은 메커니즘으로 침투하고 교역하며 세계화되고 있다.

3세대 뉴욕의 한식은 어느 정도의 완성도일까. 지난봄 뉴욕에 머무는 동안 나는 운 좋게도 오이지와 아토보이, 아토믹스, 꽃 코리안 스테이크 하우스를 모두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1세대 한식이면서도 한식 트렌드 덕에 재조명되어 불현듯 주변 뉴요커들에게 한 번쯤 가볼 만한 퀵 바이트 식당이 된 케이타운의 한식 푸드코트 ‘우리집’도 참고로 맛을 봤다. 그곳은 80년대 한식의 입맛을 극히 열화된 버전으로 구현하는, 작지만 거대한 ‘김밥천국’이었다.

반면 3세대 한식 요리사들의 실력은 일정한 완성도를 각각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좀더 파인한 지역으로 자리를 옮길 계획을 갖고 있는 오이지는 서울의 모던 한식이 그렇듯 익숙한 한식을 새로운 요소를 차용해 해석하는 스타일을 보여줬다.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젊고 헐거운 분위기에 맞는 캐주얼한 공기와 잘 맞는 세팅 또한 노련했다. 아토보이는 반찬을 타파스 스타일로 풀어낸 콘셉트로 호평을 받은 곳이다. 서울에서보다는 과감하게 한식의 문법을 뉴욕에 이식시킨 관점을 갖고 있다. 창의의 관점에서는 더욱 자유로운 한식이며, 동시에 한식이 아니기도 한 독특한 캐릭터다. 아토믹스는 구태의연한 코스 구성을 박정현 셰프 방식으로 변형해 구이, 찜, 튀김 등 조리법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기준으로 코스를 짠 파인 다이닝이다. 꽃 코리안 스테이크하우스는 요즘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한우 오마카세와 뉴욕의 스테이크하우스를 이종교배했다. 순서대로 소고기 각 부위를 먹으면서 뉴욕 재료를 사용한 한식 반찬을 곁들인 서사 구성의 스테이크 하우스다.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불판에 구워 먹은 후 와규깍두기볶음밥이나 뜨끈한 잔치국수를 먹으며 끝내는 익숙한 한식 구성을 뉴욕식으로 풀었다.

이민자로서가 아니라 개척자로서 뉴욕에 도착한 이들 요리사들의 음식은 사실 한국과 한식, 그리고 한식세계화를 의식하지 않은 음식이다. 뉴욕에서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하면서 한국과 한식과 한식세계화에 발목 잡혀 있을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명확한 확신을 가진 엘리트 요리사들은 뉴욕의 다이너들과 전 세계에서 찾아드는 여행자들을 위한 자신의 음식, 단지 음식을 선보이는 사명에 집중한다. 그리고 뉴욕과 세계가 그에 응답해 뉴욕에서 한식은 그토록 매력적인 현상이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한식세계화가 되고야 만 것이다. 이 아이러니를 두고 지나간 일을 아쉬워할 순 없지만, 좀 더 현실적인 지원이 이들 요리사들에게, 그리고 이전 세대의 요리사들에게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서는 언제나 상대의 이야기부터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법이다. 한식세계화 사업이 뉴욕에 남긴 혼란은 전적으로 불통으로부터 야기됐다. 한식이 세계화되는 것을 지켜볼수록 그 기회비용이 못내 두고두고 아쉽다. 글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