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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속편은 왜 이럴까?

2018.09.09GQ

<인크레더블2>,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고스트 버스터즈>, 할리우드 시리즈의 우주가 넓어지는 게 못마땅한 이들이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젤까?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전편을 쓸 때 계획에 없었던 작품을 돈이나 인기 때문에 쓰게 되면 그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미였을 거다. 처음부터 시리즈로 기획한 작품이라도 창작자의 밑천이 떨어지면 수준이 떨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전해오는 말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틀리는 경우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등장해 조금 민망할 지경이다. 다들 <오디세이아>가 <일리아드>보다 좋다고 하니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인기는 전편 <톰 소여의 모험>을 능가한다. 스타워즈 시리즈 중 ‘제국의 역습’이 ‘새로운 희망’에 비해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오늘 할 이야기는 성공하는 속편의 법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특정 시기에 특정 장르에서 발생하는 시대적인 현상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특정 시기는 지금, 그러니까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로 이어지는 때다. 특정 장르는 SF다. 장르를 조금 넓히면 ‘Speculative Fiction’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우주를 다루는 이야기들이 있다. 완전히 다른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도 있고 (<스타워즈> 시리즈, 톨킨의 ‘미들어스’ 시리즈가 그렇다), 우리 세계와 이어지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도 있으며 (<스타 트렉>이 그랬다.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당시엔 미래여서 미래사에 포함시켰던 시대 일부가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와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평행우주를 다루는 이야기도 있다. (요새 나오는 마블 영화들이 그렇다.) 이들 중 인기를 얻은 몇몇 이야기는 수십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는 이야기의 역사에서 보았을 때 특별히 긴 시간은 아니다. 그리스 신화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는 몇백, 몇천 년에 걸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명백한 차이가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세계는 무서울 정도로 빨리 변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와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소비하던 사람들에게 몇백, 몇천 년 전의 과거는 그들이 사는 ‘지금’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시대였다. 하지만 우리는 10년만 지나도 세상이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언급된 세계들은 현대나 미래, 또는 우리에게 미래처럼 보이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변화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변화 역시 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니, 이미 다들 그러고 있다. 10년 전부터 나오고 있는 <아이언 맨> 시리즈를 보라. 이 영화에서 다루는 기술은 코믹스 시리즈가 시작된 1960년대에 비해 몇십 배는 향상되었다. 그 동안 과학기술이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발전에 따라 과학적 상상력도 발전했기 때문이다. 우린 여전히 아이언 맨 수트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지만, 반세기 전보다 재미있고 발전된 기능을 상상할 수 있고 그것은 영화에 반영된다. 이게 불만이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불만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이 강화복 수트를 입고 싸우는 영웅의 자리를 MIT 학생인 리리 윌리엄스에게 물려줄 때 일어난다. 인기 있는 캐릭터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거나 여러 사람이 같은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건 흔한 일이다. 문제는 자리를 물려주었다는 게 아니라 그 후계자가 열다섯 살의 흑인여성이라는 데 있다. 많은 독자들은 정치적 공정성의 압력 때문에 시리즈가 정체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웅의 자리를 같은 성, 같은 인종에게만 물려주어야 한다는 법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리리 윌리엄스에 대한 반발은 영화판에서 일어나는 역풍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다. 최근 가장 큰 역풍에 말려든 작품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다. 수많은 <스타워즈> 팬들은 이 영화가 여성 주인공들을 부각시키고 남자들을 뒤로 밀어내면서 그들이 사랑했던 <스타워즈> 세계를 망쳤다고 우긴다. 그들은 불평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긴다. 이 영화에 출연한 여자 배우들의 SNS에 욕설을 퍼붓는 건 그중 하나일 뿐이다. 어이가 없는 것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할리우드 역사상 11위에 들 정도로 히트한 영화이고 평론가와 관객의 평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오직 자신이 열성팬이라고 주장하는 소수의 난동이다. 이곳이 자기들만의 놀이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한 무리의 남자들 말이다.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40년 동안 사랑을 받았던 백인 남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라스트 제다이>의 흥행을 넘어서야 했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영화를 제대로 보긴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할리우드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최근 공격을 받은 영화는 <인크레더블 2>인데, 비슷한 부류의 팬들은 이 영화가 집안의 엄마인 엘라스티 걸의 활약을 부각시키고 남편인 미스터 인크레더블을 전업주부로 박아놓은 것이 영 불만이었나 보다. 정작 영화를 보면 어이가 없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건 아니고 결말도 거기에 맞추어져 있긴 한데, 그보다는 가족주의가 더 강하다. 게다가 정작 그들이 분노하는 설정은, 보수적인 결말로 비난 받은 마이클 키튼 주연의 1980년대 코미디 영화 <미스터 맘>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건 그냥 엄살이다. 물론, <인크레더블 2>는 <스타워즈: 라스트제다이>와 마찬가지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 현상이 여성과 연결되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인종 문제와 연결되었을 때는 역풍이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없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흑인 남성 캐릭터 핀은 아시아계 여성 로즈만큼 큰 반발은 불러오지 않았다. 자칭 팬덤이 불평하는 건 핀의 남성성이 위축되는 것이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 초반에 주인공 마이클 버넘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것도 이 캐릭터가 흑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인종의 남자들은 이 팬덤이 당연시하는 남성 주도 세계의 ‘정상성’을 심각하게 깨지 않는다. 여자들이 들어오는 것이 문제다. 이는 익숙한 순서다. 미국에서 백인 여성보다 먼저 선거권을 쟁취한 건 흑인 남성이었다.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블랙 팬서>의 역풍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흑인 남성이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오리지널 캐릭터였기 때문이고, <고스트 버스터즈>의 리부트 시리즈가 끔찍한 역풍에 시달린 건 원래 주인공이었던 남자들을 밀어내고 여자들이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나 <인크레더블 2>에는 이것도 먹히지 않는다. <스타워즈>의 세계가 남성주도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속편의 스토리가 <인크레더블> 시리즈 캐릭터의 균형을 망치는가?

결국 이건 창작자와 일부 팬덤의 대결이다. 창작자들은 새로운 시도와 다양성을 원한다. 페미니즘과 인종 문제를 떠나 새로운 재료로 작업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더 재미있으며, 이들로 작업을 하면 그들이 참여하는 우주도 더 그럴싸해지고 입체적이 된다. 새 팬들을 끌어모으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백인 남성 집단은 고인 물이며 레드 오션이다. 팬덤을 넓히려면 그들 바깥을 보아야 한다. 여성을 겨냥하는 건 숫자를 생각해도 그냥 상식적이다. 정치적 공정성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수익과 연결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할리우드가 백인 남성 집단을 떠나 다양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건 이 방향으로 가면 돈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칭 팬들은 이를 거부한다. <스타워즈>와 같은 허구의 세계는 그들이 안락한 도피를 위해 머물렀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들 세계가 실제 세계를 따라 변해가며 그 안락함을 빼앗아가는 걸 원치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정체이며 반혁명이다. 너무 뻔해서 설명도 민망한 일이다.

앞으로도 영화계는 비슷비슷한 반발과 계속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창작자들이, 자칭 일부 팬들이 요구하는 정체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창작의 즐거움과 자본주의가 가리키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글 / 듀나(영화평론가)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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