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레드벨벳 슬기의 하고 싶은 말

2018.09.26GQ

슬기는 ‘진짜 멋있는 건 남을 쫓아가지 않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이보리 컬러의 시스루 니트 톱, 코스.

 

나일론 소재의 튜브톱, 스커트, 튤 원피스, 모두 프라다.

 

슬리브리스 니트 원피스, 자라. 실버 이어링, 알라인.

레드벨벳에서 슬기만 콕 집어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왜였을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큐여서….

좀 멋있달까요? 호들갑이나 조바심이 안 보이고 쉽게 휩쓸리지 않는 것도 같고요. 맡은 바 역할을 잘 해내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내 역할은 뭐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뭐지,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해서 제일 잘 표현하려는 건 뭐지, 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는데 그걸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그랬다면 성실하다고만 이야기했겠죠. 제가 모르는 저의 매력이 또 있을 순 있지만, 전 자기 맡은 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제일 멋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남들이 나한테 멋지다고 했을 때의 그 의미가 저는 이렇게 와 닿는 것 같고요.

지구를 통틀어 지금 슬기 눈에 제일 멋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엄마, 아빠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가수 한다고 했을 때 지원을 정말 아낌없이 해주셨고 오디션도 대신 신청해주셨어요. 도시락 막 싸서. 제가 연습 끝나고 집에 갈 때 엄마가 도시락을 항상 싸가지고 오셔서 입에 하나씩 넣어주시면서요. 저는 그렇게 연습생 생활을 7년 동안 했어요.

스포츠 스타의 부모님처럼요? 네. 초반에는 엄마 아빠가 너무 유난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나도 컸는데, 자꾸 이렇게 가다가 내가 사회 적응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고요. 요즘도 노래가 고민이라고 하면, 거의 보컬 강사님처럼 저한테 얘기를 해주시기도 해요. 그런데 이제는 저를 믿고 맡기세요. 힘들 때 부모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정도로 말씀하시죠.

슬기는 레드벨벳으로 활동하면서 뭐가 제일 변했어요? 정말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마인드를 어떻게 가지냐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게 저도 느껴져요. 순간순간의 멘탈에 의해서 많은 생각이 오가요. 요즘은 저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 모두가 그렇겠죠. 이런 부분에선 난 자신이 있어서 이렇게 보여줬다가도 어떤, 조금이라도 틀어진 부분에서는 자신이 없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또 난 왜 이러지 하면서 반성하고 다시 좋아지기도 하고. 그냥 이게 다 존재하는 거예요.

작은 면까지 대중에게 보여주는 직업이라 힘든 거죠. 네. 근데 그게 제가 힘을 얻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아이돌의 연습생 과정 중에 혹시 인터뷰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과정도 있나요? 아니요. 예전엔 인터뷰를 하면 질문을 먼저 보고 그 밑에다 답을 다 적었어요. 까먹을까 봐. 그런데 지금은, 평소에 생각을 해서 그런지 그런 과정 없이 제 생각이 잘 나오는 것 같아요. 활동 초기에는 아, 이건 논란이 될 수 있으니까 전형적인 말만 하자, 했었는데 지금은 저도 인터뷰하면서 아, 내가 평소에 이렇게 생각했었지, 할 때도 있어요. 순간순간의 기록 같아서 이런 인터뷰를 되게 좋아해요. 옛날엔 저도 많이 감췄죠, 나는 이 모습이 예쁠 것 같은데. 웃는 모습은 별로고. 아직도 조금 있어요, 내가 아직 다 공개하지 못한 모습들이 있긴 한데 애쓰고 가리지 않으려고요.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인터뷰하는 게 편안하게 느껴져요. 이렇게 자신을 다 드러내려고 하는데도 아직 슬기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아…. 하나 있다면, 저 그렇게 성실하진 않아요. 다만 벼락치기를 하더라도 어떻게든 해내는 게 제 스타일이긴 한데, 그 과정에서는 계속 밍기적거리고…. 정말이지 딱딱 계획 세워서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예능이든 특별 무대든 준비 하나는 확실히 하는 편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만들어요. 새벽까지 뭘 어떻게 하든요. 근데 그게 성실한 건 아니잖아요.

연습생 생활이 길었다는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 저를 보고 막 어휴 어떻게 그걸 견뎌냈어, 아유 힘들었겠다, 그렇게 안쓰럽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그 시절이 안쓰럽다 생각하지도 않고요.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연습생 3년 한 사람은 3년 나름의 힘듦이 있는 거죠. 만약 3년 연습생 한 사람이 나랑 함께 데뷔한다고 쳐요. 그러면 그 사람은 7년 연습한 저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은 7년 동안의 연습량을 3년간 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각자의 시간인 거죠. 만약 제가 3년 만에 데뷔했으면 지금보다 더 방황했을 거예요.

스케줄이 많아 ‘멘붕’이 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해야 할 일이 몰아칠 땐 어떻게 버텨요? 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인데, 이건 내 직업이니까요. 팬이나 스태프 같은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걸 놓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텨요. 그리고 제가 노력한 걸 알아봐주실 때, 그게 되게 기분이 좋아요. 그걸 위해서, 그것 때문에라도, 그걸 즐겨 하니까 대중 앞에 서는 가수가 됐겠죠?

데뷔 후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온 게 있나요? 음…. 아! 나를 아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게 만들자! 성향이 그래요. 어릴 때도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했고요. 모르는 사람은 날 싫어할 수 있죠. 그런데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남자는 생각을 계속 해왔어요. 누군가와 틀어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저는 사람 자체를 별로 싫어하지 않아요. 나를 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고 싶고요. 왜 싫어해? 흐흐.

데뷔 후 내려놓은 건요? 외모? 물론, 저는 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예쁨, 있잖아요. 그것에 신경을 별로 안 쓰려고요. 예쁜 것에 집중하지 말자.

아니, 뭐라고요? 볼수록 배우 이영애를 닮아서 계속 놀라고 있는 걸요? 계속 외모가 비춰지는 직업이라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근데 개성 시대잖아요. 저의 외모에서 자신 있는 부분은, 이목구비의 위치! 초반에는 저도 악플도 많이 받고, 진짜 외모 지적도 받고, 자존감도 낮아졌었죠. 근데 내려놨어요. <정글의 법칙>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쌩얼’ 다 공개하고요. 저는 욕심없이 내려놓은 사람이 멋있어 보이고 예쁘던데요.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더 매력 있고. 남을 쫓아가지 않는 게 훨씬 더 멋지고요.

 

슬리브리스 니트 원피스, 자라. 실버 이어링, 알라인.

 

슬리브리스 니트 원피스, 자라. 실버 이어링, 알라인.

 

새틴 소재의 점프수트는 보테가 베네타.

지금 슬기에게 딱 하나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요? 하고 싶은 말 바로 하는 것.

못 해요? 잘 못 해요. 그냥 제 생각을, 그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옛날부터 나는 좀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오늘처럼 이렇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또 이쪽 사람들은 되게 활발한 사람도 많다 보니까, 나는 거기에 비해서 한없이 초라하고, 이야기 재미있게 못 하면 분위기 망치는 것 같고요. 내가 분위기 어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 고민 없이 바로 하고 싶어요. 약간 텐션이 올라가는 술자리의 힘을 빌리면, 그걸 깰 수 있으니까 술을 마셔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능력 하나를 뺏어올 수 있다면요? 비욘세 그 자체요. 와, 저렇게 노래하고 춤추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정말 ‘탑’급이면 행복하겠다….

예전 인터뷰에서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진척 상황은 어때요? 이게 바로 제가 성실하지 못하다는 증거예요. 흐흐. 계획을 하나 하잖아요? 장기 계획이 돼요. 그건 언젠가 딱 보여줘야하는 목표 기간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코 앞의 데드라인이 없는 계획이면 위험하겠는데요? 네, 그런가봐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도 항상 시험도 벼락치기로 공부했어요. 그건 이유가 있어요. 연습생 생활하면서, 시험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은 딱 일주일밖에 없었어요. 그 기간만 회사를 안 가요, 그러면 그 기간동안 과외를 받고,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 거예요. 늘 이게 익숙해져서 목표를 정하고, 거기까지 딱 맞춰 도달해요.

그야말로 장기 중의 장기계획, 레드벨벳으로선요? 레드벨벳은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하는 그룹이잖아요. 행사에서 만약 ‘피카부’랑 ‘Power Up’이 겹쳐 있으면 무대 의상을 도대체 뭘 입어야 할지 힘들 정도로요. 그런데 그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Bad Boy’할 때 제가 언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런 춤을 추면서 세 보일 수 있겠어요. 독특한 사람들이 모여서 독특한 노래를 하고, 독특함을 표현하는 그룹인 것 같아요. 저도 정형화된 걸 좋아하지 않으니 회사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좋아요. 지금은 콘서트를 할 때 조금 의견을 내는 정도로 참여하고 있지만 레드벨벳의 방향성에 대해서 좀 더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제 점차 연차도 쌓이고, 우리 색깔이 뭔지 우리도 파악을 해가고 있으니까요.

그럼, 최근에 세운 초단기 계획 중 성취한 것 한 가지만 꼽아봐요. 요즘은 그냥 맛있는 것 먹으며 스트레스 푸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맛있는 것, 음식 그런 게 없었거든요. 이제 달라요. 그날 먹고 싶은 거 먹어봐야 돼요. 그래서 어제 곱창 먹었어요.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황혜정
    스타일리스트
    윤지빈
    헤어
    윤서하 at Soonsoo
    메이크업
    신경미 at Soo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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