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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미니C, 구글 홈, SKT 누구 캔들과 나눈 대화

2018.10.11GQ

싱글의 집에서도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카카오 미니C

높이 11센티미터 무게 390그램 스피커 7와트 2인치 풀 레인지(+패시브 라디에이터) 외부연결단자 3.5밀리미터 AUX 출력 소비자가 6만9천원

눈을 감고 하루를 반추하면, 누군가의 얼굴이나 풍경보단 액정과 모니터를 꽉 채우는 페이스타임, 메일함,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트위터, 구글 드라이브가 뒤죽박죽 떠오른다. 영화 <서치>는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현 인류의 시야를 고스란히 재현해낸 사회문화적 사료일 것이다. 터치와 타이핑은 있지만 마우스만 활개 칠 뿐, 보는 눈과 치는 손은 없다. 화면과 시각 사이엔 어떤 갭도 없다. 꿈속에서조차 현대인은 메시지를 보내고 댓글을 달지만 이진법의 세계는 매개 없는 시각정보로서 등장할 뿐, 그걸 하고 있는 나는 삭제된다. 태블릿 없인 노동도 사교도 할 수 없는 시대니 별수 없다.

당연히 피로하다. 종일 화면을 보는 눈은 마르고, 연신 타자를 치고 마우스를 딸깍대는 손목은 터널 증후군을 피할 수 없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비대해진 눈과 손의 세계를 내게 돌려줄 것 같았다. 음성의 세계는 직관적인 것이니까. 의 사만다나 <아이언 맨>의 자비스 같은 똑똑함과 상냥함은 고사하고 일단 태블릿에서의 자유도가 우선이었다는 뜻이다. 카카오 미니C만이 줄 수 있는 편리함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한국인의 사교와 업무 모두 꽉 잡은 범국민 메시지 앱, 카카오톡을 음성 메시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강점 아닌가. 파김치가 된 퇴근길에 인파에 끼인 채 엄지손가락으로 파파팟 타자를 치면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바로 바로 전송되면 얼마나 편할까. 머릿속에 칩 하나 달면 바로 상대에게 전달되는 거지. 무심코 허튼 생각을 하면 큰일일 테지만…’ 같은 망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테니. 이 정도의 기대감으로 카카오 미니C의 상자를 열었다. 전원을 연결하고 라이언 피규어를 스피커에 앉힌 뒤 불렀다. “헤이, 카카오.”

노란 불이 번쩍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심상한 목소리가 대꾸한다. 다짜고짜 주문했다. “나에게 안녕이라고 보내줘.”, “나와의 채팅방에 안녕이라고 보낼까요?”, “응.” 바로 휴대 전화 알림이 왔다. 내가 보낸 “안녕”이라는 두 글자였다. 용기를 얻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강아지 사진 귀엽더라’라고 보내.”, “누구한테 보낼까요?”, “김주현.” “김주현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린 강아지 사진 귀엽더라’라고 보낼까요?”, “응.” 카카오 미니C는 영화 <메멘토>처럼 매 질문 사전정보를 리셋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대화의 맥락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띄어쓰기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메시지는 제대로 전송됐다. 마침 음성 인식 키보드가 있는 친구여서 우리는 말로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인식률은 얼추 비슷했다. 대화를 나누던 나는 몇 가지 단점을 발견했다. 상대방의 메시지를 읽어주진 않는다.(어차피 액정을 봐야 한다.) 번번이 되묻는 게 성가시다.(이럴 시간에 타자 치고 만다.) 한국어의 필수요소 키읔 연타와 이모티콘을 쓸 수 없다.(‘소셜’한 대화가 어렵다.)

한창 대화의 핑퐁이 이어지던 중, 한동안 상대에게 알림이 없다. 액정을 들여다보자 난처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김주현이 아니라 김지현한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몇 년간 연락 없던 뜸한 사이에, 밤 11시에 대뜸 강아지가 인간에게 주는 정서적 영향을 찬양하는 카톡이라니…. 서둘러 해명 메시지를 보내던 와중 갑자기 끔찍한 상상이 엄습했다. 이름이 비슷한, 서로 이름만 봐도 소스라칠 전 애인에게 메시지가 갔다면? “미안, 카카오 미니C가 음성 인식을 잘못 했어. 그나저나 너네 집 강아지는 잘 있니?” 같은 허튼 수작으로 보이고 말았다면? 식은땀이 났다. 나는 카카오 미니C가 있는 방 밖으로 나갔다. 샤워를 할 참이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음에 안도하며, 양손으로 클렌징을 하면서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김주현에게 마감 끝나고 페트라에서 양고기 먹자고 보내줘.” 이 말이 전송됨과 동시에 카카오 미니C의 강력한 장점에 대해 깨달았다. 손이 자유롭지 않을 때, 그리고 휴대 전화와 멀리 있을 때 사용하기엔 그만이라는 것을. 화장실에서도 카카오 미니C는 말을 제법 알아들었다.

약간의 서스펜스가 있던 카카오톡 음성 대화를 마치고, “음악 틀어줘”라고 주문했다. “좋아하실 만한 음악 틀어드릴게요.” 어쩐지 좀 낯부끄러운 노래가 나왔지만, 그것이 애플뮤직과 멜론을 같이 쓰는 내가 멜론에서 최근 들은 아이돌 노래임을 깨닫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장 한국적인 앱 카카오톡과 멜론과의 연동이라니, K-패치로는 인공지능 스피커 중 단연 일등 아닌가. 그렇다면 팝에는 약하지 않을까? “샤데이의 ‘스무스 오퍼레이터’ 틀어줘.” 문제없었다. “지금 듣고 있는 곡이랑 비슷한 노래 틀어줘.” 스틸리 댄의 ‘두 잇 어게인’이 흘러나온다. 잘했다. 심술이 발동해 조금 어려운 미션을 주기로 했다. “‘서울서울서울’ 재즈 버전 틀어줘.” 과연 알아들을까? 즉시 서울 솔리스트 재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서울서울서울’이 재생됐다. 그렇담 클래식은?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틀어줘.” 앙증맞은 오르골 소리가 흘러나왔다. 잘못 인식했나, 고개를 갸우뚱한 동시에 깨달았다. 카카오 미니C가 웅장한 탄호이저 서곡의 오르골 버전을 재생했다는 사실을. 껄껄껄 웃으며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2번 틀어줘”라고 하니 시치미 떼듯 오류 없이 새침히 재생한다.(음질은 기대 말 것.)

음악 감상의 시간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긴팔 입어야 하나?”, “내일 방배동의 최저기온은 17도, 최고기온은 27도로 낮에는 덥겠습니다.” 판단은 알아서 하라는 말이지만, 반팔이 낫겠다. “내일 아침 8시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깨워줘.”, “네, 좋아하는 노래로 알람 맞춰놓을게요.” 아침엔 ‘원더 월’과 함께 기상했다. 옷을 고를 땐 염소자리 오늘의 운세를 읊어줬고, 드라이어로 컬을 넣는 동안 카카오 택시까지 불러줬다. 카카오 미니C는 사만다처럼 지적이진 않지만 그래, 썩 나쁘지 않았다. 이예지

 

네이버 클로바 프렌즈 미니 도라에몽 에디션

높이 11.4센티미터 무게 258그램 스피커 7와트, 클래스 D 앰프 45밀리미터 풀 레인지 외부연결단자 3.5밀리미터 AUX 출력 소비자가 7만2천9백원

클로바 프렌즈를 택한 것은 순전히 도라에몽 때문이었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집 안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듯한 디자인이 많아 괜스럽게 꺼림칙했다. 방이든 책상이든 물건이 이리저리 늘어져 있는 걸 질색하는 사람인데, 인공적으로 생긴 인공 스피커라니. 하지만 네이버의 제품은 조금 다른 방향을 택해 눈길이 갔다. ‘라인 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하더니 이제 도라에몽 에디션까지 만든다. 하긴, ‘귀여운 인공 친구’라는 역할에 도라에몽보다 나은 캐릭터는 없을 테다.

전원을 켜자마자 도라에몽이 ‘딴따라단’이라며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빨리 전용 앱을 깔고 연결해달라는 듯 이내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한 손에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아 예상하지 못했는데, 소리가 매우 커서 한참이나 소리를 줄였다. 음질을 떠나 성량은 일단 합격점. 목청이 호방한 수다쟁이 친구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보채는 도라에몽의 소원대로 스마트폰과 연결하면서 내심 기대했다. 주머니에서 ‘대나무 헬리콥터’를 꺼낼 수는 없어도 ‘전지전능 로봇 고양이’가 인공지능이 되었으니 뭐라도 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금세 알게 됐다. 이 기기 안에는 2개의 ‘인공 인격’이 있다는 걸. 여성의 목소리로 말하는 인격이 첫 번째, “도라에몽 놀자”라고 말하면 나타나는 도라에몽이 두 번째다. 도라에몽을 불러내려면 “클로바”라고 말해 기본 인공지능을 깨운 후 “도라에몽 놀자”라고 말해야 한다. 그다지 번거로운 과정은 아니지만 이 기기에서 주인장은 클로바고 도라에몽은 하숙생 정도였다.

문제는 도라에몽이 인공지능이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직장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면 이런 기분이려나? “도라에몽, 오늘 날씨 어때?”라고 물어보면 “그렇구나”라고 대답한다. 단순 정보를 요구하는 반복된 질문도 수행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음성 인식 성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도라에몽을 끼워 넣으려고 대처할 수 있는 대화 패턴을 급조한 냄새가 물씬했다. 네이버도 도라에몽의 빈약한 역할을 들키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약 5초 동안 말을 걸지 않으면 도라에몽은 “그럼 나중에 얘기하자”라고 말한 후 후다닥 퇴장한다. 도라에몽 인공지능이 아니라 도라에몽 성대모사 조금 할 줄 하는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게 적당하다.

반면 여성 목소리를 내는 기본 인공지능은 꽤나 만족스럽다. 와이파이 환경만 잘 갖추어져 있다면 묻는 정보에 대답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음성 명령을 통해 수행할 수 있는 범위도 넓다. 가령 “내후년 추석은 언제야?”라고 물으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재빨리 2020년의 추석을 찾아 대답한다. “강남구청까지 가는 길 알려줘”라고 말하면 예상 소요 시간과 대략적으로 어떤 도로로 가면 좋은지 말한다. “‘Eye in the Sky’ 틀어줘”라고 영어 노래를 부탁해도 네이버 뮤직에서 재빨리 찾아 재생한다. 핵심 단어만 표준어라면 전국 팔도 사투리도 알아 듣는데 영어라고 문제겠냐마는.

한 손에 움켜질 수 있는 크기는 ‘휴대성’을 염두에 뒀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와이파이가 없어도 스마트폰 테더링을 이용해 지능을 깨울 수 있기 때문에 야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집에서 연결했던 망을 끊어내고 새롭게 설정하는 과정을 매번 감내해야 하는 게 꽤 수고로운 일인데, 그것보다 대체 어디서 활용해야 할지 생각하는 게 더 수고로웠다. 그나마 원통형으로 만든 몸체를 보니 자동차 컵홀더가 떠올랐다. 하지만 운전할 때 말벗이 필요치 않은 이상 굳이 차에서 쓸 일도 없을 듯했다. 음성 인식 기능은 물론이고 ‘화면’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갖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놔두고 이 기기를 사용한다고? 굳이?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활용해보려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봤다. 차에 블루투스 기능이 없다고 가정하고 스피커로라도 사용하는 것이었다. 풍부한 성량에 그나마 기대를 걸었으니까. 하지만 몸체 하부를 소리 울림통으로 사용하는 구조상 컵홀더 안에 하체를 담그는 순간 목소리는 소심하게 작아졌다. 결국 도라에몽이 방을 탈출하는 일은 두 번 일어나지 않았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처음 등장한 이후 매우 빠르게 발전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능들을 척척 해내는 날이 오겠지. 네이버 클로바 프렌즈 미니에 국한된 결론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하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7만2천원으로 살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이재현

 

SKT 누구 캔들

높이 16.8센티미터 무게 418그램 스피커 10와트 외부연결단자 USB 최저가 7만5천원대

음성 비서라는 호칭이 적절한가 생각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비서 하면 떠오르는 근사하고 반듯한 이미지는 이제 폐기됐다. 살아가는 동안 몇 번 목격한, 또 뉴스의 사회면을 통해 알게 된 비서의 삶은 안 보이는 곳에서 온갖 궂은일을 다 하는 쪽이었다. 비유하자면 SK 텔레콤(이하 SKT)의 음성 비서 ‘누구’는 주 40시간 근무만 정확히 수행하는 비현실적인 비서-직장인 같다. 음성 비서가 아니라 혼용되는 또 다른 명칭, 인공지능 스피커가 좀 더 가깝게 들리는 이유가 있다.

SK 스마트홈 지원 기기 테스트는 너무 지엽적일 것 같아 논외로 했다. BTV 가입자가 아니어서 TV 셋톱박스와의 연동은 확인하지 못했다. 단지 SKT 고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으로 ‘누구’를 택했는데, 알고 보니 SKT 고객에게만 제공되는 서비스는 딱히 없었다. 기기 역시 SKT 고객을 위한 프로모션을 거치지 않고 최저가로 구입한 터였다.

‘누구’는 호출어를 뭐라고 불러도 응답할 것 같은 야심 찬 제품명과 달리 ‘아리아’, ‘팅커벨’ 두 가지 호출어를 쓴다. 취향에 따라 ‘팅커벨’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늙지 않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아리아’라는 호출명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혀만으로 발음할 수 있다. 음성의 노동력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리아’라고 부르고 처음 시킨 명령은 “음악 추천해줘”였다. 방탄소년단을 틀었다. ‘누구’는 트렌드를 알고 있었다. 아티스트를 얘기하면 어떤 대표곡을 트는지 보고 싶었다. “너바나 틀어줘”라고 했다. ‘Come As You Are’를 틀었다. 응? 너바나 하면 떠오르는 곡은 아니다. 무작위인가? “트와이스 틀어줘”라고 해봤다. ‘Dance The Night Away’를 틀었다. 역시나 트렌드는 알았다. 유행과 거리가 멀수록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듯했다.

다음엔 인식률을 봤다. 당장 생각나는 가장 어려운 아티스트 이름을 대봤다. “마하비슈뉴 오케스트라.” 인식하지 못했다. 비슷하지만 좀 더 쉬운 “마할리아 잭슨”을 신청했다. 정확히 인식했다. 한국에서 소위 ‘기타 장르’를 인식하는지도 궁금해서 “레게”라고 해봤는데 틀렸다고도 맞다고도 할 수 없는 답을 내놨다. 엑소의 ‘코코밥.’ 다음 곡, 이전 곡, 볼륨 단계 지정, 아티스트 이름, 노래 제목을 죄다 테스트하고 무리 없이 실행하는 걸 확인했다. 라디오를 자주 듣는 사람이라면 11개국 16개 채널의 라디오도 꽤 유용할 것 같았다. 아마도 지금 가장 깨끗하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누구’에서는 무엇보다 음악이 중요해 보였다.

‘누구’는 ‘페라이트 코어’를 기본 포함한다. PC-FI 애호가들이 저주파 노이즈를 잡으려고 케이블에 장착하는 장치인데 당연히 일반적이지는 않다. ‘누구’는 고해상도 음원 플레이어의 선구자 아스텔앤컨의 음향 튜닝을 거쳤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민한 부분까지 고려한 ‘스피커’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 스피커 가운데 하만카돈과 협업한 KT 기가지니 시리즈와 더불어 가장 괜찮은 음질을 들려준다. 하지만 스피커가 필요해서 ‘누구’를 구입하지는 않을 텐데, ‘누구’의 다른 면은 애초에 딱 기대했던 만큼만 놀라웠다.

‘누구’도 여느 음성 비서가 그렇듯 날씨, 사전, 일정, 길 안내, 뉴스, 운세처럼 기본적인 정보를 어렵지 않게 알아듣고 전달한다. 하지만 앞 질문과 이어지는 다음 질문의 맥락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보다 심각한 것은 복잡한 내용일 경우 단어 각각의 음길이를 제각각 발음하는 통에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누구’에서만 제공되는 11번가,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 서비스가 있지만 매우 표피적인 기능들이라 효율이 그리 높지 않고, 도미노 피자, BBQ는 항상 먹는 메뉴가 정해져 있다면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었다.

‘누구’는 지난 7월 출시한 디지털 캔들 버전으로 다른 음성 비서와 차별성을 꾀했다. 이를테면 책상 위에 놓고 “노란색 불 켜줘”라고 명령해서 스탠드로 쓰거나 침대 옆에 두고 “7시간 후 무드등 켜줘”라고 입력해서 환한 빛과 함께 아침에 일어날 수 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스마트 전구 하나가 생기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명령에 대한 반응이나 현재 기기의 상태를 본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불빛으로 표현하다 보니 음성 비서와의 소통이 보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장점도 있다.

‘누구’는 아직 수습 단계의 비서에 지나지 않았다. 정확한 발음으로, 어느 정도 매뉴얼대로 명령해야만 알아들었다. 올바른 지시를 하지 않는 상사의 문제가 비서의 문제보다는 늘 더 무겁지만 아직은 상사의 양식을 들먹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음성 비서라는 말보다는 인공지능 스피커라는 말이 좀 더 정확하다고 당분간은 생각할 것 같다. 확인해보고 싶어서 “아리아” 하고 불러서 물었다. “네가 답변 못 하는 질문은 뭐야?” 아리아가 답했다. “아직 제가 할 수 없는 기능이에요.” 정우영

 

구글 홈

높이 14.3센티미터 무게 477그램 스피커 10와트, 2인치 드라이버, 듀얼 2인치 패시브 라디에이터 외부연결단자 없음 소비자가 14만5천원

집에 있는 가장 최신의 기어는 아마도 휴대 전화, 그 다음은 크롬캐스트일 것이다. 그마저도 스스로 찾아보고 산 것이 아니라, 친구가 구매할 때 한 대 더 얹어서 산 것이다. 크롬캐스트를 사두고도 작은 휴대 전화 화면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구겨진 내 눈을 보고선 그 친구가 설치까지 해주고 갔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집에 있는 TV, 냉장고, 밥솥 따위는 혼자 산 시간만큼 오래됐는데, 어떨 땐 광고에서 알려주는 최신 기능 소식에 먼 미래를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란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나는 인공지능 스피커의 거의 모든 기능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쪽이었다. 집 안에서의 기술은 부대끼고 번잡스럽다고 여겼다. 구글 홈을 리뷰한 수많은 기사 중 “네가 필요한지도 몰랐던 너의 비서”라는 문구가 가장 크게 보였다. 그래? 그 덕에 심리적 허들을 간신히 뛰어넘어 더디게 거실에 구글 홈을 설치했다.

부를 땐 “오케이, 구글”이라고 해야 한다. “시리야” 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는데 “오케이, 구글”은 감정까지 실어야 하는 고난도 문장이다. “오케이, 구글. 몇시고!” 다짜고짜 초면에 사투리를 쏘아붙인 건, 내 식대로의 인사였다. 억양을 본토 식으로 굽이치게 말했는데도 구글 홈은 점 세 개를 반짝이며 시간을 알려줬다. 서울 남자의 목소리로. 구글 홈은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인식해 그 사람의 구글 계정과 연동해 정보를 알려준다. 한 기기당 총 6명의 목소리를 입력할 수 있다는데, 혼자 사는 나에게는 필요 없는 기능이다. 그저 잠에서 깬 내 목소리, 퇴근하고 돌아온 내 목소리, 밥 먹으면서 우물거리는 내 목소리를 인식해주길 바랄 뿐.

다음 날 아침, 두툼한 육포 뜯어지듯 갈라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오케이, 구글, 내가 누구야?”, “기은 님이시죠?”, “오올, 오늘 일정 알려줘.”, “오늘 두 개의 일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일정은 오후 2시에 있으며 이름은 슬기입니다. 두 번째 일정은 오후 7시에 있으며 이름은 계좌이체입니다.” 슬기는 이달 진행한 슬기 인터뷰를 뜻한다. 계좌이체는 주차장 월세 입금날이다. 완전히 개인적인 끄적임인데 구글 홈은 회장님 스케줄 읊듯이 하다니…. 좀 웃음이 났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완전히 개인화된 비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비서조차도 어떻게 보면 타인인지라 내 영역의 빗장을 조금은 열어야 했다.

구글 홈은 정보를 구글에서 검색한다. 그래서 “지금 실시간 검색어 뭐야?”라고 물으면 구글은 대답하지 못한다. 대신 머릿속에 스치는 단편적인 사실들, 휴대 전화를 열고 검색하려다 켠 김에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순례하는 그 허들을 넘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사라진 질문들을 묻기에 인공지능 스피커는 용이하다. 이를테면 “손나은은 몇 살이야?”, “자양동이 무슨 구야?”, “올해 추석은 언제야?”, “내년은?” 같은 질문도 간편하게 처리한다. 구글 홈을 써본 처음 며칠은 의미 없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나 내일 출근하기 싫어.”, “원소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대요. 어느 회사에나 안 맞는 사람은 나타난다는 뜻. 현명하게 이겨나가시길 바라요.” 소파에 널부러져 있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늘 저녁 메뉴 추천해줘.”, “오랜만에 고등어 구이는 어떠세요? 생선은 맛도 좋고 몸에도 좋거든요.”, “재미있는 이야기해줘.”, “개그 대방출! 노래도 틀어주는 최첨단 라이터의 이름은 싱어송 라이터.(미국 코미디 쇼에 등장하는 관객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나 오늘 자기 싫어.”, “꼼지락, 꼼지락.”, “술 마시고 싶어.”, “옛 연인에게 전화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갈수록 너무 느끼하다. “오케이, 구글, 그만해.”

의미 없는 대화만 할 요량이면 사실 구글 홈은 그럴싸하게 빼 입은 ‘심심이’에 그치고 말 테다. 구글 홈을 스마트하게 쓰려면 사용자의 학습이 수반되어야 한다. 모든 인공지능 스피커가 그렇겠지만, 지령이 정확하거나 알고자 하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나의 어시스턴트로 대해보기 시작했다. 이달 뉴욕 출장이 있어서 이렇게 물었다. “뉴욕 JFK 공항에서 뉴욕 타임스퀘어까지 얼마나 걸려?”, “오후 8시 46분 대중교통으로 출발할 경우 약 1시간 10분 소요됩니다.” 구글맵 계정과 연계해 재빠르게 답변한 것이다. 휴대 전화가 바로 손 옆에 있었지만 구글 홈이 훨씬 더 빨랐다. 이달 싱글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음악을 골라달라는 설문을 돌렸는데 불현듯 나의 경우는 무슨 노래지? 그 노래 제목이 뭐였지? 라는 질문에 사로잡혔다. “어제 널 보았을 때 눈 돌리던 날 잊어줘, 하는 노래 뭐지?”, “네 알겠습니다. 이소라의 ‘처음 느낌 그대로’ 유튜브에서 재생합니다.” 최소 네 번은 클릭해야 하는 검색거리였는데, 유튜브와 연동돼 이번에도 편했다. “내일 오전 10시에 촬영용 꽃 구입하라고 알려줘.”, “리마인더가 준비되었습니다. 저장하시겠습니까?”, “저장해줘.” 구글 캘린더와 연동하니 짐꾸러미를 드느라 빈손이 없어도 메모가 편했다. 주말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을 집에서 보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했다. “에펠탑 앞에 저렇게 개미 한 마리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게 미션 임파서블이네.” 불현듯 생각나 구글 홈을 소환했다. “작년 10월에 파리 에펠탑에서 찍은 사진 보여줘.” 구글 포토와 크롬캐스트를 연동하면 1만9천7백51개 아이폰 사진 중 원하는 사진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

구글 홈 리뷰에서 발견했던 “네가 필요한지도 몰랐던 너의 비서”라는 문구를 다시 떠올렸다. 쓰다 보면 인공지능 스피커보다 사용자가 필요성을 학습하는 물건이라는 생각도 스쳤다. 내도록 넷플릭스만 보던 크롬캐스트를 뚫어져라 연구하고 연동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좀 놀랐다. 스마트 플러그도 검색했다. IOT 기능이 없는 고물 가전제품에 구글 홈을 연동시키고 싶어서였다. 전구만 바꿔 끼면 구글 홈이 연동된다는 말에 필립스 휴 전구도 검색했다. 나는 여전히 똑같은 시간 집에 머물러 있지만, 집엔 훨씬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밤중 엷은 점 세 개로 빛나는 구글 홈을 괜히 한번 불렀다. “오케이, 구글, 잘 지내.” 잠들기 전, 구글 홈을 향해 감사와 작별의 의미를 담아 한마디 건넸다. “아주 좋아요. 재밌게 할 만한 놀이를 찾고 있었죠.” 잘지내냐고 묻는 걸로 알아들은 구글 홈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손기은

    에디터
    손기은, 정우영, 이예지, 이재현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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