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맛집보다 술집, 술집보다 ‘홈 바’

2018.10.13GQ

바는 어디에나 있다. 집 안 구석구석에 ‘홈 바’를 만드는 세 가지 방법.

리빙 제품 / 트롤리, 구비 at 이노메싸. 가죽 윙 트레이, 피네티코리아. 비둘기 티라이트, 니마 오베로이 at 라곰홈. 지거가 꽂혀 있는 베이스, 비욘드 프로젝트 at 라곰홈. 핸들 피처, 조지 젠슨 at 라곰홈. 회색 세라믹 뚜껑이 있는 보틀, 케흘러 at 이노메싸. 쿠프 글라스와 레드 와인 잔, 모두 이딸라. 하단이 파란 물잔과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보틀, 모두 이켄도르프 밀라노 at 라곰홈. 금속과 버려지는 소가죽을 재가공해 만든 볼, 스튜디오 최예원. 스툴 겸 사이드 테이블, 엔트래디션 at 이노메싸. 스툴 위 온더록 잔은 에디터의 것. 벽 색상 DE6230, 던에드워드페인트. 헤링본 블랙 바닥재, 엘지하우시스.

Living Room
부엌과 거실 사이에 홈 바를 만든다. 술과 안주는 언제나 짝꿍처럼 붙어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마시는 술에는 은근히 식재료가 많이 필요하니까. 얼음부터 과일, 탄산수, 장식용 허브까지 냉장고에서 꺼내야 하는 부재료들은 홈바가 진지해질수록 더 많아진다. 부엌에 술병을 줄줄 늘어놓은 멋없는 홈바를 바꾸고 싶다면 바 카트부터 장만한다. 칵테일을 직접 만들면 한도 끝도 없이 파고들 수 있어 낚시만큼이나 심오한 취미가 될 수 있지만, 이왕 마음먹었다면 ‘빌드업’ 칵테일부터 시작해본다.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음료를 잔에서 섞는, 말 그대로 술을 쌓아 올리는 듯한 간단한 칵테일 제조법이다. 무작정 셰이커부터 사지 말고 아래의 리스트를 먼저 챙긴다.

 

리빙 제품 / 데스크와 의자, 모두 도이치가구. 테이블 램프, 무토 at 라콜렉트. 황동 소재 팩토리 오브제, 스컬투나 at 라곰홈. 펜슬 홀더와 노트, 피네티코리아. 가위, 헤이 at 이노메싸.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탁상시계, 로젠달 at 이노메싸. 만년필, 몽블랑. 스템이 긴 스피릿 잔, 리델 베리타스. 문진과 트레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On The Desk
회장님의 서재에만 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술을 즐긴다면 집 안 어디에라도 홈 바를 만들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조금씩, 가장 느리게 술을 마시는 공간을 꼽자면 ’내 방 책상’이 아닐까? 책을 보면서, 노트북을 꺼내 일을 하면서, 명세서들을 정리하면서, 의미 없는 낙서로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을 가지면서, 중간중간 입술을 적시는 느낌으로 술을 홀짝일 수 있는 공간이다. 책상 위 홈 바는 훨씬 단출해야 한다. 책상에서 취하게 마실 수 없고, 뭘 넣고 섞는 칵테일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술 자체로 맛과 향이 단단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길게 숙성한 럼주는 약간의 단맛과 함께 초콜릿, 바닐라, 커피, 견과류 등의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술이라 일하면서 커피 대신 마시기 좋다. 위스키는 언제나 좋은 선택이다.

책상 위에 홈 바를 만드는 방법
1 작은 잔을 구비한다. 조금씩 맛보는 게 서재에서의 음주법이라면 작지만 향을 퍼뜨려주는 위스키 전용 잔을 반드시 갖춰둔다. 보통 위스키를 시음, 시향할 때 사용하는 스템 없이 몸통이 커브형인 작은 술잔을 ‘글랜캐런’ 글라스라고 부르는데 위스키를 좀 홀짝인다면 이 잔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리델 베리타스 스피릿 잔도 스템이 길고 잔 크기가 작아 서재에 잘 어울린다.
2 얼음 없이 니트를 즐긴다.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를 얼음이나 물을 넣지 않고 마시는 걸 ‘니트 Neat’라고 부른다. 보통 온더록 잔에 30~40밀리리터 정도 따라 마시는데, 바에서 주문할 때도 스트레이트보다는 니트라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다. ‘샷’이나 ‘스트레이트’는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술을 ‘털어 넣는다’에 가깝다. 좋은 술을 털어 넣을 순 없으니 니트로 마신다. 얼음 때문에 생긴 결로 현상으로 책상 위 종이를 망칠 일도 없다.
3 클래식 칵테일 레시피를 익혀둔다.책상에 앉은 김에, 바에서 주문할 수 있는 우아한 클래식 칵테일을 몇 가지 공부해둔다. 술과 관련된 좋은 책은 국내외 넘쳐나는 중이니 취향에 맞게 골라 틈틈히 읽어두면 홈 바 생활은 더 발전할 수 있다. 표지 보고 지나칠 뻔했지만 내용은 충실했던 번역서 <칵테일 도감>과 귀여운 표지에 비해 의외로 칵테일 중급자도 흥미 있게 읽을 책 <일러스트 칵테일북>을 추천한다.
4 공간의 향을 정돈한다. 서재나 침실처럼 작은 공간에 홈 바를 만들 때는 공간의 향도 차분하게 정돈해둔다. 강한 향의 디퓨저나 인센스 스틱으로 향을 꽉 채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술 향이 퍼지도록 좀 비워두는 것도 방법이다. 혹은 나무 향, 가죽 향으로 향을 정리해 위스키, 꼬냑, 럼의 향과 어우러지게 맞춘다.

 

왼쪽 부터 / 스노우레퍼드 보드카는 무색 무취 무미라는 말을 아직도 믿는 건 아니겠지? 보드카는 증류주의 가장 청명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최근 새로 출시된 스노우레퍼드 레어는 색은 여전히 투명하지만 꽃 향, 감초 향, 바닐라 향, 매콤한 후추 향이 슬쩍 스치는 매력적인 보드카다. 네이키드 그라우스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 페이머스 그라우스에서 만든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 라벨이 없어서 네이키드이기도 하고 자유분방한 브랜드 이미지를 담아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캐주얼하게 마실 수 있으며 검은 체리가 연상되는 향이 특징이다.

 

맥캘란 싱글 몰트위스키의 새로운 자취를 만들어가는 증류소다. 최근 증류소를 완전히 새로 짓고 위스키 생산 과정을 예술 작품처럼 보여준다. 셰리 오크통이 만드는 싱글 몰트위스키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제품으로 증명하는 중이다.

 

Bedside
침대 머리맡에 술을 두는 게 영 술꾼 같아 부담스럽다면, 침실에 디퓨저나 인센스 스틱을 두고 향을 즐기는 일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좋은 술은 취하려고 마신다기보단 향을 즐기는 쪽이고 특히 싱글 몰트위스키는 향만으로도 저녁 내내 행복할 수 있는 술이다. 잔에 따르면 순식간에 그 주변 공기에 향이 퍼지고 지속 시간도 수면 시간과 비슷한 7~8시간 정도다. 잠들기 전에 위스키를 따라두고 살랑살랑 향이 불어오는 것을 즐기다 잠드는 경험은 꽤 특별하다. 물론 침대 옆은 한잔 가볍게 마시면서 술을 음미하는 방법을 터득하기에도 좋은 장소다. 집에 크고 웅장한 홈 바를 만들 자신이 없다면 침대 옆에 제일 좋아하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두는 것을 첫걸음으로 생각해본다.

침대 옆에 홈 바를 만드는 방법
1 제일 선호하는 위스키를 업데이트한다. 싱글 몰트위스키는 저마다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원액을 어떤 모양의 증류기로 뽑아냈는지, 어떤 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숙성했는지, 얼마나 숙성했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그 작은 차이들 사이를 유영하고, 고유의 향을 온전히 즐기려면 선호하는 위스키를 침대 가장 가까이에 두고 아껴본다. 요즘 위스키 증류소들은 고연산에 집중하기보단 다양한 오크통의 조합으로 숙성의 묘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속에 보이는, 싱글 몰트위스키 업계를 이끄는 브랜드 맥캘란도 같은 연산의 위스키라도 오크통을 어떤 조합으로 몇 개를 거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풍미에 집중해 제품 라인업을 갖췄다. 하이랜드파크는 ‘테루아’에 따라 달라지는 와인처럼, 지역적 특성으로 위스키의 특징을 만드는 싱글 몰트위스키다. 스코틀랜드의 북쪽 끝, 오크니섬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오크니 피트의 향이 한잔에 스며들었다.
2 위스키 디캔터에 투자한다. 한 번 살 때 좋은 것으로 사야 하는 홈 바 품목 중 하나. 위스키 디캔터는 오로지 멋을 위한 장비다. 위스키 향이 잘 새어 나가지 않도록 뚜껑이 견고하다면 디캔터의 기본적인 할 일은 끝난다. 나머지는 홈바에 기대하는 정신적 만족, 언젠가 그려왔던 싱글라이프의 환상, 더 근사한 나를 위한 우아한 사치를 위해 존재하는 오브제다.
3 묵직한 잔을 챙긴다. 디캔터 다음으로 돈을 쓴다면 잔, 그중에서도 침실에 놓고 쓸 온더록 잔이다. 손에 쥐었을 때 묵직하고 크리스털 커팅이 우아할수록 좋다. 그래야 면적이 작은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두었을 때도 단단한 안정감이 있고, 엷게 들어오는 빛에도 아름다운 그림자를 남긴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이현석
    리빙스타일리스트
    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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