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와 펜싱은 무엇이 다른가

검도와 펜싱은 무엇이 다른가

2018-10-17T11:57:06+00:00 |interview|

검도와 펜싱. 검을 겨눈다는 점에서 그것은 얼마나 같은가, 희고 검은 옷부터 얼마나 다른가. 결국 검은 어디를 향하나.

검도와 마음

검도는 어렵다. 야구가 어려운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칙이 어렵다. 검도 역시 다른 투기 스포츠처럼 유효 타격을 통해 득점을 얻는다. 다만 검도는 마음을 평가한다. ‘잔심’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지막까지 처음의 마음을 남겨둔다”는 뜻이다. 한국 검도 사상 최초의 국제대회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이강호는 말한다. “한 동작의 마무리예요. 머리를 치면 ‘머리’라고 하고 돌아서서 다시 태세를 갖추는 것까지 한 판이라고 보는 거죠. 유효 타격을 해도 잔심을 안 넣으면 심판이 득점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즉, 스스로의 타격에 대해 인지하는, 타격이 들어간 후에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의지다.

검도는 수련 전과 후에 묵상을 하고, 따로 기합 넣는 연습까지 하는 스포츠다. 인간이 문득 ‘다른 마음’을 먹는 건 매우 인간적인데, 검도는 그 ‘다른 마음’을 차단하고자 한다. 온몸을 쓰는 것은 온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이라고 못 박는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숱하게 들었듯 ‘인간 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검도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은 ‘인간 되기’를 마음에 두고 번뇌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검도가 몸과 마음을 다해 얻으려는 것은 당연히 승리다. 칼이 죽도가 됐을지언정 손목, 허리, 머리 같은 치명적인 부위만을 노리는, 제압 이상의 살인이다. “가족을 업고 강을 건넌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있으면 죽어요. 다치고 쓰러져도 전진해야 해요.” 이강호는 발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싸울 때 누구나 팔이 먼저 나가게 돼있어요. 힘이 실리지 않죠. 발을 내딛고 허리가 따라가면서 팔을 뻗어야 해요. 뒷걸음질 친다고 하잖아요? 두려움이 있으면 발이 먼저 나갈 수 없어요.” 검도장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리는 위협적인 발소리, 그리고 비명 같은 기합 소리였다.

“진검 승부라고 여기고 시합에 임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스스로 격려하는 거라면 목이 쉴 만큼 크고 날카로운, 그래서 사악하기까지 한 이런 기합이 나올 수 있을까? 검도의 기합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동시에 자신의 두려움을 떨쳐내는 방법이었다. 검도의 공격 자세를 일컬어 ‘기검체일치’라고 하는데, 과연 대련에는 모든 것을 걸고 부딪치는 듯한 절박한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결사적으로 상대와 검을 겨루는 검도는 역설적이게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검도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강호는 1978년생이다.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감독 고종수와 동갑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국가대표다. “국가대표인 제가 선생님들을 못 이기는 게 검도예요. 마음에서 이기지 못하거든요. 제아무리 빨라도 제 상태와 수가 다 읽히면 무용지물이에요.” 검도는 9단을 따려면, 8단 취득 후 10년이 지나 만 65세가 넘어 승단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검도는 인생을 아주 길게 본다. 검도를 하면 이 긴 시간 동안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을까? 검도는 죽도를 쥐지 않았을 때도 이 질문을 갖고 있는 것이 ‘인간 되기’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는 것을 다만 믿고 있다.

 

펜싱의 앞과 뒤

수련과 훈련, 무예와 스포츠…. 펜싱을 설명하기에 적당한 단어를 고르라면 모두 후자다. 인격을 수양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문제는 검끼리 부딪치는 금속의 박수 소리에 조용히 묻힌다. 찌르려는 자와 피하려는 자의 현란한 움직임엔 기합 소리도 끼어들 틈이 없다. 조명은 14미터 길이의 경기장만을 비춰 칼 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의 침묵을 조장한다.

펜싱은 에페, 플뢰레, 사브르 세 종목으로 나뉜다. 칼의 형태가 모두 다르고, 점수를 인정하는 방식과 공격할 수 있는 부위에 따라 진행 속도도 제각각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구본길이 말했다. “에페와 플뢰레는 칼을 잡은 내내 생각을 해야 돼요.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공격할 지점과 시점을 노리죠. 사브르는 가위바위보와 비슷해요. 처음부터 어디를 공격할지 정해놨다가 심판이 ‘알레’라고 외치는 순간 작전대로 뛰쳐나가요.”

칼을 사용하는 방식도 경기 스타일에 차이를 만든다. 에페와 플뢰레는 ‘찌르기’만 할 수 있고 사브르는 ‘베기’도 인정하기 때문에 생사를 건 싸움처럼 동작이 화려할 수밖에 없다. 칼이 눈에 보이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칼을 쥐고 있는 손놀림이 중요하지만, 발동작도 칼의 속도에 한몫해요. 쉼 없이 발을 움직이는 상대가 길다란 무기까지 이리저리 휘두른다고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얇고 잘 휘어지기까지 해요. 감으로 하는 거죠, 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구본길 선수가 속한 팀의 훈련장 화이트보드엔 “제자리에서 하지 말자”고 쓰여 있었다.

투기 종목 대부분이 그렇지만 펜싱은 특히 유래를 정확히 짚기 어려울 만큼 역사가 깊다. 유럽의 검투술이 긴 시간을 거치며 펜싱으로 수렴했고, 현대에 들어 ‘스포츠화’ 되었다. 하지만 펜싱은 다른 투기 종목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복싱, 유도, 레슬링 등 거의 모든 투기 스포츠는 사각 혹은 원형으로 된 공간 안에서 경기를 치른다. 공격하는 방향도, 도망갈 방향도 비교적 많이 열려 있다. 반면 펜싱은 직선의 경기장 위에서 전진과 후진만 할 수 있다. 상대를 치밀하게 공략하면서 더 이상 뒷걸음질 칠 곳이 없을 때까지 몰아간다.

펜싱 경기복 안쪽에는 촘촘한 전기선이 흐른다. 공격 유효면에 칼이 닿으면 선수에게 연결된 전선을 통해 전광판에 신호가 전달된다. 때문에 펜싱은 각자의 진영에서 줄로 연결된 두 기사가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서로의 진영을 정복하려고 벌이는 영토싸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귀족들이 주로 즐긴 ‘위엄 있는’ 운동이라는 걸 생각하면 목숨 건 벼랑 끝 결투처럼 잔인한 면이 있다. 우아한 몸놀림과 분위기에 가려졌지만, 격렬한 칼싸움의 흔적이 아직 탈색되지 않은 것이다.

펜싱에는 이처럼 양면적 속성이 많다. 발레처럼 고상하면서도 폭력적이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얀 슈트를 입는다. 칼은 모든 방향으로 휘지만 검사가 갈 수 있는 방향은 오로지 앞과 뒤다.